22시에 잠들었다가 23시 30분에 한 번 깨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잠들었다가 3시 30분에 다시 일어났다. 어제도 최종적으론 4시 30분에 일어났다. 배가 고픈 건 아닌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와서 라면 반 개 - 마침 반 개가 있었음 - 끓여서 밥 말아먹었다. 먹고 나서도 여전히 허전한 감이 있어서 집에 마지막 남은 라면 하나 마저 끓여 먹고 설사가 날 것 같은 가벼운 복통을 느끼면서 키보다 두들기다가 똥 누고 와서 마저 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고 - 조상님들 고맙습니다. - 빨간날인 현충일이 있다.  - 조상님들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집에서 달리 할 것도 없기에 아내랑 아버지 만나러 갔다. 아버지 머리가 약간 길었는데, 긴 머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알아 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동생이 카톡으로 보내준 동생 아이들 동영상을 같이 보는데, 아버지가 좋아했다. 갑자기 영상통화가 생각나서 - 여태까지 이걸 생각 못한 내가 참 멍청하고 불효자다. -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받았다. 상대편에게 아버지 얼굴이 잘 보이도록 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동생 이름을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본인 아들인 건 바로 알았다. 그걸 알아챈 그 순간이 좋았다. 동생이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할아버지한테 인사 시켰다. 아버지가 그 아이가 본인 손주인 걸 알았다. 9살 조카가 약간 뻘쭘해 하길래 내가 아버지에게 '호연아' 불러 보세요, 라고 했다.

 - 호연아  - 네
 - 학교다녀?  - 네
 - 공부 잘해라  - 네
 - 나중에 놀러와 맛있는 거 사줄게 - 네

 별 내용도 없는 대화에 눈물이 터졌지만 곧 참았다. 내 반대편에 있던 아내도 울컥했다. 동생한테 아이가 둘인데, 큰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할아버지랑 놀았던 기억 때문에 할아버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동생은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아프다고만 하고 치매라고 말을 안 했다. 9살한테는 치매가 조금 이른가?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지만 늘 '애들' - 손주들 - 을 언급한다. fucking bloodline. 면회 중간 중간에 너무 좋다고 하면서 머리를 감싸는 아버지 모습을 기억해 둔다. 아버지 저희 오늘 또 만날거에요. 오늘도 손주랑 영상통화 해봐요.
 
 6일부터 강릉 단오제가 시작됐다. 바다 보러 강릉 오는 관광객들은 강릉에 이런 축제가 있네, 규모가 꽤 크네 생각하고 흘려 지나가는 이벤트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축제다. 단오제 기간 중에는 약간 흥청망청해도 괜찮은 분위기 같은 게 있다. 아버지 만난 기분을 상쇄하려고 낮부터 마셨다. 회사 형하고 한 잔 하고 들어와서 쉬다가 밤에는 친구 만나러 갔다가 친구 아내의 일족들도 함께 만났다. 엿장수가 엿을 사준 사람한테 마이크를 주고 노래를 시키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가 감자전 먹던 가게 입구에서 어린 친구가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 불러서 흥이 올랐다. 그 흥을 주체 못한 친구 아내가 노래하고 싶어해서 엿 사줬다. 친구 아내는 노래를 잘 못 불렀지만 친구가 쪼르르 달려나가서 옆에서 같이 부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런 걸 '부창부수'라고 한다. 어제 아내랑 코인 노래방에 갔는데, 아내가 좋아했다. '부창부수'까지는 아니지만 잘 놀았다. 아내가 노래방 가자고하면 -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함 - 따라나서야 겠다고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단오라고 하면 약간 들뜨는게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네. 씨름에도 퍼레이드에도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올해가 다 간 것 같은 기분을 1월 둘 째주랑, 2월 초에 이미 느꼈는데, 지금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다. 삶이 너무 다이나믹 하거나 너무 다이나믹 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니면 모든 걸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할까?
 
 다섯시가 되가네. 바다로 대표되는 도시에 살아도 찾아가지 않으면 바다를 못 보고 산다. 오늘은 바다 한 번 보고 와야겠다. 지금 출발할까?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