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버지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나를 알아봤다 못 알아봤다했고 본인이 입은 냉장고 바지 위로 개미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했다. 이제 환시가 보이는구나. 아버지한테 바지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자꾸만 말했다. 아버지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수발하기 가장 어려운 타입으로 가고 있다. 양치불가(입에 들어가면 다 마심), 옷 갈아입히기 힘듬, 밥 먹이기 힘듬(폭력성향을 동반한 거부와 저항), 기저귀 못 채움(다 찢어서), 3일에 한 번 관장(셋이 달라붙어서) 등은 내가 아는 내용이고 모르는 내용은 더 많을 것이다. 얼굴 자주 보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먼저 요청을 해서 저번에는 아버지 밥 먹여드리고 어제는 바지 갈아입는 거 도와드렸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본인 힘든 거 알아달라고 나한테 호소하는 것 같아서 달갑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버지 일이니까, 군말없이 수행했다. 그게 날 힘들게 한다.
아버지 문제가 표면적으로는 내 우울증의 가장 큰 요인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으면 가만히 두면 된다는 걸 알지만 엄마한테 물려받은 걱정 때문에 - 아버지에게는 낙천을 물려 받았는데 -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걸 멈출수가 없다.
집 마루가 옛날식 나무 마룬데 군데 군데 솟아오르면서 파도를 치더니 냉장고를 들었고 싱크대마저 들어버렸다. 어제 집 계약할 때도 못 만난 집주인을 만났다. 이 집에 공을 많이 들였지만 건물을 내놨다고 했고. 맨 바닥에 냉장고만 덜렁 놓여있는 마루가 있는 집에서 사는 건 본인이 아니니까 바닥 새로 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까,만 궁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 나빴지만 오후에 월세를 입금했다. 세입자가 제 날짜에 월세를 보내는 게 세상의 규칙이니까. 솟아오른 마루를 보면서 심란했던 내 3개월은 무엇인가?
처남이 준 자동차를 1년 정도 탔다. 부동액이 줄줄 세길래 단골 카센타에 갔더니 라디에이터 부품이 없다고 했다. 전국을 뒤져서 춘천 가서 사왔다. 카센타 사장님은 차를 뜯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결국 차를 뜯었는데, 워터펌프도 센다고 내려와서 한 번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비용이 얼마든 고치겠다고 했다. 최종 100만원 정도 들었고 왔다갔다 하느라 조퇴를 밥 먹듯이 하고 부품 알아보느라 전화 열 군데 돌렸다. 차가 2주 정도 카센타에 서 있었다. 그 기간동안 아내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수리비가 문제가 아니고 차를 고치는 일에 전문가가 있는데, 내가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지만 자동차와 집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약간 결이 다른 것은 새차를 사자는 결정과 집을 사서 이사를 가자는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빚)이 필요한데, 그게 자본주의란 걸 안다. 나에게 큰 부담없이 차와 집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집 스트레스와 자동차 스트레스는 없었을 거다. 내가 그 정도 돈이 없다는 거, 그게 화가 난다. 그래서 무력해진다. 강남 어린이들에 대한 불만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나도 걔네들처럼 사소한 돈 걱정은 없이 태어나서 살 수도 있었는데, 하는 공평하지 않은 시작에 대한 불만이다. 암튼 기분 나빠. 이런 내가 어른스럽지 않다는 걸 안다.
이 정도 무력감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걸 견디기가 어렵네. 아내가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얘기했다. 찾아서 좀 읽어봤다. 이론에 따르면 지금 내 나이대는 '생산성 대 침체성'이다. 쉽게는 생산성 결여로 침체가 온다는 얘기다. generativity란 단어의 의미가 묘하긴 하다. - 내가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고 동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일 자체가 생산성인데, 왜 침체가 오지?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그럼 그걸 누가 인정해주지? 기본적으로는 가까운 사람들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본인 일 말고는 관심이 없는 게 지금의 세상이다. 그럼 그걸 누가 인정해주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아내다. 내 아내는 내 창작물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럼 그걸 누가 인정해주지? 생각하다가 아이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가 결여되어 있구나, 생각했다. 아이가 나를 알아주면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지 않아도 외롭지 않구나,란 결론이다. -
아이가 없는 것도 이미 지난일이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감정의 증폭을 완화해주는 약을 계속 먹으면서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하는구나,란 결론이다. 이 결론을 의심하지 말자.
어제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프로골퍼랑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우승 직전에 한 끝 차이로 미끄러지는 걸 봤다. 그들을 응원했으므로 약간 허망해졌는데, 인생이란 그런 것이고 2등도 한 번 못해 본 사람도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다.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건 내가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응원하는 것과 관계가 있네. 운동경기를 인생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내가 어찔할 수 없는 일을 어찌하지 말자. 길게 쓸라다가 이렇게 글을 끝내는 나를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