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우울감은 많이 줄었다. 약발이 받는다. 다만 자다가 자주 깨는 일은 여전하고 레피졸에 발기부전이나 정력감퇴 부작용이 있나? 생각해 본다. 그런일로 우울하진 않다.
며칠 전에 사무실 뒷동산을 걷던 중에 어디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벌한테 쏘였다. 하루 지나니까 쏘인 왼손이 주먹왕 랄프가 되기 직전이길래 병원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약 먹는 거 있는지 묻는 바람에 외과 선생님과 잠깐 신경정신과 상담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하지 않고 시간 나는 날에는 아버지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은 편해지나?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엄마한테는 굳이 아버지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영상통화로 대체가 가능하다. 지난 토요일 영상통화 때, 아버지가 엄마 보고 유난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그보다 더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에 울었다는 사실이다. -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또 울면 안돼요, 라고 해서 알게 됐다. - 아버지, 울지 말아요.
전자렌지를 샀다. 2012년에 혼수로 샀던 오븐겸 레인지가 고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 것 테스트 하려고 냉동 피자를 돌렸다. 우리 연립의 전력 총량의 문제인지 새 전자렌지도 잠깐 돌아가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내년에 이사 가야 하나? 이런 사소한 일들로 스트레스 받는게 싫다. - 큰 스트레스는 아니다.
중복날 아내랑 소고기 구워 먹었다. 고기를 잘 안 먹는 아내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고기가 맛있진 않았지만 아내가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무빙'이란 시리즈가 생각났다. 무빙에 울적한 류승룡이 아내랑 고기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무빙은 '부부가 한 달에 한 번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의 위대함' 을 알려주는 시리즈란 생각을 했고 아내에게 말해줬는데, 아내는 '무빙'을 보지 않았다. 아내랑 뭘 같이 먹을 때,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먹는 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다.
회사는 인사철이 끝났다. 인사 조치로 전에 있었던 직장 상사가 다시 오게 됐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좋은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나도 좋은 놈은 아니지 - 여긴 직장이니까 오거나 말거나 내 할일이나 하고 이 사람이 나한테 뭐 시키면 부당하지 않은 선에서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회사에서 바쁜 일이 몇 건 끝나서 당분간은 큰 건수 없이 자잘한 업무만 처리하면서 지낼 계획이다.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예정이다. 여름을 거치면서 우울감이 계속 줄어들면 좋겠다.
정치 뉴스를 보면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날씨를 느끼고 생각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뿐이다.
괜찮은 건가?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아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괜찮은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엄마 젖 만지는 꿈 꾸고 벌에 쏘였기에 복권을 샀는데 꽝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 젖 만지는 버릇은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