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랑 성묘 행사가 있었다. 산소는 강릉에 있고 작은아버지 한 분만 강릉에 있으니까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JJ삼촌이 본인들 부모니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길래 신경 끄기로 했다. 나랑 아내는 벌초 다 끝난 다음에 가서 절만 하고 왔다. 편했다. 막내 삼촌이 25살 사촌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와서 오랜만에 얼굴 봤다. 동생이 직장 다니기 너무 싫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돈 쥐어줘서 동생한테 밥 사 먹으라고 용돈 줬다. 잘한 일이다. 엄마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별 대화는 못나눴다. 10명이 점심 먹으러 옹심이 집에 갔는데, 엄마랑 마주 보고 먹은 게 좋았고 엄마 옆엔 아내가 앉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게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 있는 요양원에 코로나 이슈가 있어서 엄마를 비롯한 친척들이 면회를 못했다. 면회 가능한지 묻느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통화할 때 아버지 잘 지내는지 물었더니, 행복하시죠, 라고 대답해서 약간은 안심이 됐다.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아버지는 혼자서 생각의 나무를 키우다가 밥 먹으라 하면 밥 먹고 간식 먹으라 하면 간식 먹고 머리 자르자고 하면 머리를 자를 것이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나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것이다. 얼른 아버지 면회가서 컨디션 좋은 아버지가 한 시간 내내 떠드는 거 듣고 싶네. 사랑인가?
어제는 아내랑 횡계에 있는 자생식물원이랑 월정사에 다녀왔다. 월정사를 처음 가봤네. 유명하다는 전나무 숲길도 걸었다. 어느 나무에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길을 걷는 일의 시작이다, - 원문은 '명상의 시작이다.' - 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우울증 핑계로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를 잠깐 돌아봤다.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가을이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올 가을엔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을 보냈는데, 내 사연 읽혔다. 블로그에 종종 쓰는 일기가 나에게 쓰는 편지니까 어차피 쓸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이었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는 내가 보낸 사연이 본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점심으로 아내랑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다. 아내가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갔다. 교동 보헤미안에 아내랑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자주 간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참 좋다. 내가 전날 커피 마시러 가자고 말하면 다음날 억지로 일찍 일어나 주는 아내가 참 좋다. 사랑이다.
직장 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은 추석뒤로 미루기로 했다. -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고맙다. - 이번주 잘 보내고 연휴가 기니까 추석엔 차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엄마한테 다녀올까 싶다. - 엄마가 연휴 때 나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 맥락의 말을 함 - 회사에서의 세 시간은 너무나 길지만 엄마에게 가는 세 시간은 너무나 짧지. 사랑인가?
사랑? 사랑. 사랑? 이 다 사랑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