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난주에 또 길을 잃었다. 아버지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신정동 파출소에서 전화 왔다. - 까치산역까지 걸어갔다가 방향을 잃고 신정동까지 갔을거라 추측해본다. -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침 7시 30분에 전화해 주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친절한 경찰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버지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요양등급 내용변경한 건 3일에 처리가 됐고, 이버지가 길을 자꾸 잃으니 요양원 진행을 서둘렀다. 아주 다행히 집 바로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 빈 자리가 하나 있어서 입소(이용?)를 결정했다. 서류 준비 때문에 목요일 오후부터 바빴다.

 아버지 신분증을 엄마가 갖고 있어서 금요일 7시 차를 타고 경기도 오산에 갔다. 시속 110킬로 미터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잠들면서 '기사와 나 뿐인 고속버스에서 운전자가 졸면 둘이 같이 죽겠구나' 단순 명료한 죽음을 생각했다.

 엄마는 제사 준비 중이었다. 제주(祭主)가 치매에 걸렸어도 본인 형님과 이혼한 전 형수님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중요한 삼촌들 꼴 보기 싫다. 점쟁이가 제사는 계속 지내는 게 좋겠다고 하니까 그 말 듣고 본인 몸이 엉망인데도 혼자서 제사 준비하는 엄마도 문제다.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 데리고 나와서 은행 세 곳 들르고 요양원 입소용 건강검진 받고 고지혈증 약 문제로 의사랑 상담했다. 우체국에서 어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어디 아프냐고 해서 치매라고 했더니 본인은 치매 안 걸릴라고 뭣두하고 뭣두하고 하면서 계속 말을 걸길래, '할머니도 치매 걸리고 싶어요?' 말할까 하다가 속으로 이 할머니도 치매 걸리길.... 하고 저주를 퍼붓고 말았다. 은행에서는 이름을 본인이 써야 한다고 하고 보험료 자동이체 때문에 전화한 콜센터에서는 치매라도 본인이 직접 전화해야 한다고 하고, 정신없이 다니다가 농협 체크카드 잃어버려서 농협 다시 들르고 자꾸 짜증이 치미는데, 아버지는 계속 멍하고, 중간중간 내가 목소리를 높일때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아버지를 보니까 더 화가 나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아버지랑 밥 먹다가 순대국에 소면 사리를 두 번 넣어 줬는데, 너무 맛있게 먹길래 잘 드시니까 좋네, 진짜 좋네, 라고 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진짜 좋다'는 내 말이 진심이라 눈물이 났다.

 고모(아버지 누나)가 전화해서 요양원에 가면 학대도 많이 하고 죽으러 가는거라던데 어떻하니, 하길래 엄청 짜증이 났지만 좋게 좋게 얘기했다. 전국에 장기요양인정자(아버지처럼 요양 등급 받은 사람)가 100만명 정도 된다. 고모 생각대로라면 나는 백 만명이 요양보호사한테 학대받는 나라에 살고 있네. 무지(無知)가 무섭고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 무지는 더 무섭다. 그리고 요양원에 가면 요양원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죽으러 가는 거 맞다. 

 아버지는 자꾸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경기도 오산에 있고 엄마도 많이 아프고 앞으로 자주 못 볼거라고 말해줬다. 강릉으로 간단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강릉>이란 단어에 몰두했다. 치매에 걸렸어도 고향은 고향인가?

 회사에 일이 있어서 더 빨리 진행은 못하고 19일에 입소할 계획이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 아버지 요양원 입소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다. 서울 가는 것도 이번주면 끝이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고 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버지 요양원 가고나면, 엄마가 괜찮은 사람 만나서 홀가분한 상태로 재혼해서 편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다.  


많은 아버지 컷 중에 베스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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