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림동에 있는 ‘이상철 통증의학과’에 오늘까지 두 번 다녀왔다. 지난주까지는 팔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 의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대상포진 걸리면 너무 아파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함. - 지금은 아픔이 많이 가셨기에 이렇게 일기도 쓴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왔기 때문에 당분간 서울 갈 일 없을줄 알았는데, 다음주까지 3주말 연속으로 서울 가게 됐네. 병원이 지하철역에서 멀리 있어서 다니기가 피곤하다. 그래도 아픈것 보다는 낫다. 어깨 통증이라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팔 통증이었고 명절 전에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게 이 병원 얘기 못 들었으면 강릉에서 병원만 계속 옮겨다닐 뻔 했다. 서울로 가기 전에 강릉에서 한의원 두 곳 포함해서 병원 네 군데를 들렀는데, 어느곳에서도 나의 팔 통증을 경감시키지 못했다. 강릉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유명한 병원이 괜히 유명한 건 아니구나, 지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아프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부터 찾는 게 괜히 그런건 아니구나, 를 이번에 몸으로 깨달았다. 8시 예약이고 7시 30분에 병원 도착했는데, 내가 네 번째였다. 내 앞에 오신 아주머니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지난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부산에 실업자가 너무 많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식을 치료실 칸막이 너머로 들려주신 그 아주머니 쾌차하시길.

 너무 아플때는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하니까 몇 가지 생각을 했다.

 - 건강은 술값보다 중요하다.

 - 감옥 독방이나 보호자 하나 없는 병실에서 본인이 죽을 것을 알고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을 생각해봤다.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푸틴의 정적이라는 나발니란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 일정 때 감옥에서 쓸쓸히 죽었을 독립 투사들도 생각해본다. 독립 투사들이야 말로 못 먹고 얻어 맞고 고문당하다가 기력 떨어져서 죽는 괴로움의 결정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 내 인생에 행복했던 일이 막 떠오르진 않지만 소소한 순간들에 즐거움이 있었고 불행이 생을 휩쓸고 가진 않았다. 어깨 통증도 지나갈 일일 뿐이다.

 - 샤워실에 꼭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해바라기 샤워기 같이 단순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사소하고 간절한 열망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나의 해바라기 샤워기는 무엇일까?

 - 봄이 온다고 말해주는 아내가 있으니 나는 외롭지 않구나. 너는 나의 신선한 이마다.

 강릉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 때문에 이틀동안 출근을 못했다. 정확하게는 수요일에는 출근 못하고 목요일에는 일 때문에 억지로 출근했다가 - 차가 눈에 미끄러져서 1시간 30분 걸림 - 급한일만 처리하고 미끄러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에 있는 우리 사무실은 눈이 1미터 20센티미터 쌓여있다. 팔은 쉬지 않고 아픈데, 눈도 쉬지 않고 내리고 덕분에 강제로 휴가를 쓰게 되니까 많이 우울했다. 그 와중에 수요일 아침에는 눈길을 운전해서 산림기사 1차 시험을 보러갔다. - 합격했다. - 그렇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는 내 인생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보험, 아버지 일, 어깨 치료, 출근같이 귀찮은 일들 다 내팽개치고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망가진 중년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무너지지 말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팔 통증과 함께 싸우고 있다.

 오늘 진료 마치고 오산에 엄마한테 들렀다. 엄마는 지난해 연말부터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콩 h지수 연계 ELS에 노후자금이라 생각한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뉴스에 나오는 불행이 바로 내 것이거나 내 옆에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엄마가 차려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 앞에서는 맛 없어도 맛있게 먹는게 내 철칙이다. 김치찌개는 맛이 있었다. 미스 트롯 재방송 보면서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출 받아서 투자한 사람들이나 전세사기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무너지지 말고 너무 우울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게 실제로는 나한테 하는 얘기다. 엄마가 오산터미널까지 태워줬다. 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들면서 ‘안녕 내 사랑’ 두 번 말했다. 들으라고 말했으니까 엄마가 들었을거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봐서 힘이 됐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알고 나 아픈거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내랑 엄마 뿐이다. 빨리 낫고 싶네.

 요새 글이 잘 안된다. 독서 부족인가?

사무실 근처. 3년째 한 자리를 찍고 있다. 4년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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