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위화

2023. 11. 21. 10:48

 린샹푸의 혼례는 곯아떨어진 술고개 여섯명의 코 고는 소리와 아귀들의 게걸스럽게 쩝쩝대는 소리 속에서 치러졌다. 샤오메이는 혼자 조용히 한쪽에 앉아 안방 구들에 누운 린샹푸를 바라보았다. 머리통의 머리카락이 잡초더미 같았다. 본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마당에도 적지 않았다. 배고픔을 참고 있던 사람들이 뺨이 불룩해지도록 음식을 입안에 쑤셔넣고 고개를 숙인 채 쩝쩝거리며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샤오메이는 멀리 남쪽에서 어느 여름날 황혼 무렵 누가 벼 한 줌을 땅에 뿌리자 닭과 오리 떼가 날개를 펼치며 달려들던 광경이 떠올랐다. 지금 한데 모여 먹는 사람들이 그 모습과 비슷했다.

 

 린샹푸는 한숨을 내쉬며 사람이 죽을 때는 자손이 옆을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누구든 빠지면 달도 그만큼 조각나 망자는 눈을 감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옆에 아무도 없었으니 달이 먹구름에 가려진 형상이었다고 슬퍼했다.

 

 매파는 생월생시와 띠를 알아야만 상생인지, 상극인지 알 수 있고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고 했다. "말띠는 소띠와 어울릴 수 없고 양띠는 절대로 쥐띠와 사귀면 안 돼요. 백마는 푸른 소를 두려워하고 양과 쥐는 만나면 싸운다는 말이 있지요. 뱀과 호랑이의 결혼은 칼부림과 같고, 토끼가 용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닭과 개는 재난을 피하기 어렵고, 돼지와 원숭이는 끝가지 함께할 수 없답니다. 개 두 마리는 한 구유를 쓸수 없고, 용 두 마리는 한 연못에 있을 수 없으며, 양은 호랑이 입에 떨어지고요....... 도련님은 양띠니까 두 사람은 양과 쥐였거나 양과 호랑이였을 거예요."       ~        "세상에 이렇게 기이한 일이 있을 수가. 속담에 찢어진 부채도 부치면 바람이 일고 망가진 가마라도 타면 당당해진다고 했어요. 당당함은 일단 제쳐놓고 가마에 태워 오지 않았으면 여자 발은 도련님 게 아니라 여자 것이지요. 언제든 갈 수 있다고요. 샤오메이는 틀림없이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숯이라도 담았던 양 꾀죄죄한 쌀 포대를 가지고 다니며 돈을 받을 때마다 거기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쌀 포대 속 엽전부터 대바구니에 쏟았다. 리메이롄이 대바구니를 집 앞 복숭아나무 아래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엽전이 쌓일 때 신선한 꽃잎도 떨어져 들어가곤 했다. 복사꽃과 엽전이 한데 섞이는 걸 보고 리메이롄은 돈에 기쁨이 깃든다고 말했다.

 

 남편이 사람들에게 들려서 돌아왔는데 입은 물론 콧구멍까지 진흙으로 가득 찼더라고 말했다. 그녀 남편을 데려온 사람들은 치료하기 위해 진흙을 썼다면서, 생아편을 먹은 사람이 진흙과 만나면 흙이 흙을 봐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아무 대꾸도 못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흙이 흙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인가, 남편은 진흙 때문에 질식사한 게 분명했다.

 

 린샹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단호한 어투로 찬밥과 짠지를 먹자고 말했다. 추이핑이 잠시 망설인 뒤 절충안을 냈다.

 "그럼 간장볶음밥을 만들게요."

 추이핑은 창턱 화분에서 기르는 파를 조금 뜯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린샹푸는 문밖 계단 아파에 서서 추이핑이 아래층 부뚜막에서 파를 쫑쫑 썰고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걸 지켜 보았다. 솥이 달궈지자 그녀는 돼지기름과 파를 넣고 잠시 볶다가 찬밥을 넣어 고슬고슬 볶은 뒤 간장을 넣고 뒤섞었다.

 돼지기름과 파, 간장, 쌀밥을 한데 볶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자 계단 앞에 서 있던 린샹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간장볶음밥을 들고 올라오던 추이핑도 린샹푸가 손으로 입가를 훔치는 걸 보았다.

 린샹푸와 추이핑은 마주 앉아 간장볶음밥과 짠지를 먹었다. 청융량 일가가 치자촌으로 떠나고 린바이자가 상하이에 간 뒤 린샹푸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와 밥을 먹었다.

 

-> 재미있게 읽었다. 중국 사람들 아편 하던 시절 얘기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죽어 나간다. 린샹푸와 추이핑의 간장볶음밥 장면이 너무 좋았다.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딸 린바이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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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독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예의 차원에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엥이제이는 행위의 무작위성을 믿지 않았다. 그는 책 읽는 사람이었고, 그가 믿는 것은 서사구조였다. 일막에서 총이 나왔으면 삼막쯤 가서 그 총을 쏘는 게 낫다.

 

 여자애가 뜀틀을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문제에 얼마나 그애와 함께 노심초사하게 되는지, 너 자신도 놀랄걸. 바우슈는 외견상 이렇게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강렬한 긴장감을 짜낼 수 있고(하지만 확실히 이게 포인트지), 바로 그 점을 통찰해야 한다. 뜀틀 행사도 항공기 사고 못잖은 엄청난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

 

 마야는 자신의 손을 에이제이의 손 위에 얹어 아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막는다. 아이는 눈으로 그림과 글 사이를 왔다 갔다 훑는다. 돌연  '빨강'이 빨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이름이 마야라는 것을 알게 되듯,

 

 사람들은 정치와 신, 사랑에 대해 지루한 거짓말을 늘어놓지.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최고의 것들은 죄다 고기에 붙은 비계처럼 야금야금 깎여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레코드 가게가 그랬고, 그다음엔 비디오 가게가, 신문과 잡지에 이어 이제는 사방에 보이던 대형 체인 서점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형 체인 서점이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유일한 세상은, 대형 체인 서점'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 재미있게 읽었다. 글을 모르는 어린이가 책을 읽다가 빨강이 빨강이라는 걸 알게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리처드 바우슈의 '이 세상같은 기분'이란 단편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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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 김훈

2023. 6. 5. 17:22

그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었고 지금도 이름이 없다.
늙은 어부들은 생선 내장을 던져주며 갈매기들을 달랬고, 섬을 향해 고사를 지냈다. 그 어부들은 모두 죽고 없다.
폭격은 마을을 부수면서 들판을 건너갔고 다시 다가왔다. 사람들은 똥을 누다 죽었고 물을 긷다 죽었고 죽은 자를 붙잡고 울다가 죽었다.
전쟁을 살아낸 노인들은 전쟁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로 죽었다.

시간이 겨드랑이에 들러붙어 있었다.
검은 핏줄이 피로해 보였다. 그가 대패로 밀어낸 나뭇결들의 질감이 그 근육 속에 기억되어 있을 것이었다.
이혼율이 해마다 늘어난다는 통계 숫자를 신문에서 읽으면서 나는 나의 생애가 숫자 속에 매몰되기를 바랐다.

오개남 역시 식당이나 동사무소에서 젊은 직원들에게 '아버님'이라는 남데없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일 터인데, '아버님'이라는 말은 아무런 경로심을 포함하지 않는, 무인칭의 늙은이를 부르는 호칭이라는 것을 오개남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때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은희의 온도를 사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은희 쪽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유사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인간의 역사는 9급 시험 문제로 출제되기 위해서 전개되는 것 같았다.
겨울을 겨우 넘긴 마장면 노인들은 봄에 죽었다. 겨울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겨울을 다 견디고 나면 봄에 죽는 것이라고, 안 죽은 노인들은 말했다.

 

-> 오랜만에 김훈을 읽는다. 인생의 큰 곡절이 지나고 나서 예전을 되돌아 보는 작품들이 실려있다. 데이케어센터에서는 센터 이용하는 사람들을 다 '어르신'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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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23. 1. 6. 16:02

68p.

 외해에서는 아직 조업이 이루어지지만, 잡힌 것들조차 대개는 어분(魚粉)으로나 쓰일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어획량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년 수천톤의 수은, 카드뮴, 납과 산더미처럼 많은 비료와 농약이 강을 거쳐 독일의 바다로 흘러든다. 대부분의 중금속과 여타의 독성 물질이 도거뱅크(영국 동북쪽 앞바다의 해역) 얕은 수역에 침전되는데, 여기에 사는 물고기의 3분의 1 이미 이상발육과 기형을 안고 태어난다. 면적이 수십 제곱마일에 이르고 깊이가 삼십 피트에 달하는 해안 가까이에 독성 해초무리가 자주 형성되는데, 바다 동물들은 여기서 뗴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희귀한 편에 속하는 몇몇 가자미과 물고기, 붕어, 잉어 등의 암컷은 날이 갈수록 괴상한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수컷 생식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치르는 번식과 관련된 의식은 이제 기껏해야 죽음의 무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우리는 생명계가 놀라운 번식능력과 증식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며 자랐지만, 이런 현상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청어가 하급반에서 자주 애용되는 학습대상이던 것은 우연이 아닌데, 청어는 말하자면 자연의 근본적인 절멸 불가능성의 주요 상징이었다. 나는 지금도 50년대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 시각자료도서관에서 대출하여 보여준 단편영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떨리는 검은 선들이 어른거리던  영화에는 빌헬름스하펜의 어떤 범선이 등장했는데,  배는 화면 위쪽까지 치솟아오른 검은 파도 사이를 운항중이었다. 어부들은 밤에 어망을 펼쳤다가 밤에 다시 건져올리는 듯했다. 모든 일이 황량한 어둠속에서 진행되었다. 밝고 하얀 것은 금세 갑판에 가득 쌓인 물고기의 피부와  위에 뿌려진 소금뿐이었다.  영화에서 검게 번들거리는 방수복을 입은 남자들이 연신 그들은 덮치는 파도 아래에서 영웅적으로 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청어잡이는 자연의 우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투쟁을 보여주는 전범이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배가 고향 항구를 향해 나아갈 , 저녁 햇살은 파도에 부딪혀 조각나고 이제 잠잠해진 바다 위로  광휘를 흩뿌린다. 깨끗이 씻고 머리를 빗어넘긴 선원 하나가 하모니카를 분다. 선장은 키를 잡고 서서 책임감있는 표정으로  곳을 바라본다. 끝으로 화물을 하역하고, 넓은 실내에서 작업하는 장면이 이어졌는데, 여자들이 청어의 내장을 빼내고 크기에 따라 분류하여 통에 넣고 포장한다. 다음으로 바다의   모르는 방랑자들(나는 최근 1936년에 제작된  영화의 별책을 입수할  있었는데, 여기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열차의 화물칸에 실려 지상에서의 마지막 운명을 완수하게  곳들로 수송된다. 다른 곳에서, 그러니까 1857 빈에서 출판된 북해의 자연사를 다룬 책에서 나는 청어가 봄과 여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백만 마리의 떼를지어 어두운 심해에서 올라와 해안의 하천과 얕은 바다 밑바닥에 산란하여 알들을 겹겹이 쌓아놓는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느낌표까지 찍어놓은 문장에 따르면 암컷 청어  마리가 칠만 개의 알을 낳으며,  알들이 모두 아무런 방해 없이 번식한다면 뷔퐁(1707~88, 프랑스의 박물학자) 계산을 따를  오래지 않아 지구의 이십 배에 달하는 부피의 물고기들이 생겨날 것이다. 책에는 청어가 거의 대재앙에 가깝게 과잉공급되는 바람에 청어어업 전체가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던 해들도 연거푸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바람과 파도로 해안까지 떠밀려 육지에 내던져진 어마어마한 청어떼가 몇 마일에 걸쳐  피트 높이로 해변을 뒤덮은 사건까지 있었다고 한다. 근처 마을의 주민들은 이렇게 쌓인 청어의 극히 일부만 겨우 바구니와 상자에 삽으로 퍼넣어 가지고   있었다. 해변에 남은 청어들은 며칠 안에 썩어 자신의 과잉으로 질식하는 자연의 끔찍한 장면을 연출했다. 반면, 청어들이 평소에 들르던 장소를 피하는 바람에  해안지역 전체가 빈곤에 빠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청어들이 어떤 길을 따라 바다를 통과하는지는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빛과 바람의 상황이 청어가 가는 길을 결정한다거나, 지구의 자기(磁氣) 혹은 계속 변하는 물의 등온선이 이를 결정한다는 가정도 있었지만, 이런 모든 추측은 결국 확실하게 입증될  없었다. 그래서 청어잡이들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부분적으로 전설에 근거하는 지식과 관찰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컨대 규칙적인 쐐기 모양으로 대형을 이루어 움직이는 청어들은 햇살이 특정한 각도로 입사(入射)  맥동하는 빛을 하늘을 향해 반사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청어가 있다는  하나의 믿을 만한 신호는 수면에 떠다니는, 문질러져 떨어져나온 무수한 비늘인데, 이런 비늘은 낮에는 은도금처럼 반짝거리고 석양이 비칠 때면 눈이나 재처럼 보인다. 일단 청어떼가 확인되고 나면 대개 밤에 잡아들이는데, 앞서 인용한 북해의 자연사 책에 의하면 길이가 이백 피트에 달하고 거의 이십오만 마리의 물고기들을 한꺼번에 잡을  있는 어망이 사용되었다. 거친 페르시아산 비단으로   어망은 경험상 청어들이 밝은 색을 싫어한 탓에 검게 염색되었는데, 어망이 물고기들을 포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벽처럼 물속에  있을 뿐이었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절망적으로 어망을 뚫고 나가려다가 아가미가 그물코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덟 시간에 걸쳐 어망을 끌어올리고 감는 과정에서 질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청어가 물에서 끌어올려질 때는 이미 대부분 죽어 있다. 그래서 라쎄뻬드와 같은 과거의 자연사학자는 청어가 물에서 벗어나는 순간 일종의 심장마비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 순식간에 죽는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자연에 정통한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성질을 청어의 특수한 속성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물에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는 청어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보고는 오랫동안 특별 관심거리가 되었다. 예컨대 삐에르 싸가르라는 캐나다의 선교사가 뉴펀들랜드 해변에서 오랫동안 파닥거리는  무리의 청어를 보았음이 입증됐고, 슈트랄준트의 노이크란츠라는 사람은(사망 시점에서)  시간   전에 물에서 끌어올린 청어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파닥거리를 것을 관찰했음이 확인되었다. 루앙의 생선시장 감독관이던 노엘  마리니에르도 어느날 두세 시간이나 마른  위에 있었음에도 꿈틀거리는 청어들을 보고,  물고기의 생존능력을 정확하게 살펴볼 생각으로 지느러미를 잘라내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절단한 일이 있었다. 우리의 지식욕에서 비롯된 이런 행동은 지속적으로 대재앙의 위협에 노출된  어종이 겪어야 했던 수난사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만하다. 어란(魚卵) 단계에서 해덕이나 학꽁치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도 바다뱀장어나 움브라, 대구, 나아가 인간까지 포함한 수많은 다른 청어 사냥꾼들의 뱃속을 채운다. 1670 경에 이미 팔십만  이상의 네덜란드 사람들과 프리슬판트 사람들이,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상당한 부분이 오로지 청어잡이에만 매달렸다. 백 , 매년 청어 어획량은 육백억 마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확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동물이 죽을  느끼는 몸과 영혼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청어의 골격이 이백 개가 넘는 다양하고 지극히 복잡하게 구성된 연골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뿐이다. 외모에서는  좋은 꼬리지느러미와 폭이 좁은 머리, 약간 돌출된 아래턱, 밝은 은빛 홍채 위에 검은 동공이  있는 커다란 눈이 눈에 띈다. 등은 푸르스름한 녹색을 띈다. 측면과 복부의 비늘은 하나씩 보면 금빛 오렌지색을 띠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수한 백색의 금속 광채를 보여준다. 역광을 비추어보면 몸통 뒤쪽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없는 아름다운 암녹색의 빛을 발한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색깔이 달라진다. 등은 푸르게 변하고, 뺨과 아가미는 피하출혈고 붉어진다. 청어의  하나의 특징은, 사체가 공기에 노출되면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인광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광력(光力) 죽고   며칠이 지나면 정점에 이르렀다가 부패가 시작되면서 차츰 줄어든다. 오랫동안, 아니 내가 알기로는 오늘날까지도 청어의 사체가 이렇게 반짝거리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에 전면적인 조명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들이 도처에서 진행되던 1870년경, 기이하게도 그들의 연구에  맞아떨어지는 이름을 가진  명의 영국 과학자들 헤링턴(청어를 독일어로 '헤링'이라고 부른다) 라이트바운은 죽은 청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발광물질에서 지속적으로 저절로 재생되는 유기적인 광원(光源) 추출해낼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이한 자연현상을 연구했다고 한다.  기발한 계획은 실패했지만, 내가 최근 읽은 인공 조명의 역사를 다룬 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실패는 어둠을 몰아내는 거침없는 발걸음에 별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 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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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 박소란

2022. 12. 21. 11:44

다음에
                        ㅡ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 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
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AND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노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침이 되면 머리에 흰 가루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의 길을 걸으면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손과 발이 얼어붙고. 걷고 걷다보면 어느 결에 허리가 굽어있다. 이 고독이 감옥 같습니다. 말을 나눌 곳이 없어서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아직 쓰이지 않은 종이는 혼란과 완전한 고독과 반복되는 무질서를 받아들인다. 손가락은 망설인다. 손가락은 서성인다. 노인의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 휘파람을 불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은 어쩐지 외롭고. 노인은 언제나 다리가 아프고. 노인은 짐짓 모르는 척 고요히 물러나고. 노인은 노인의 마음으로 가만히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은 망설임을 갖고 있고. 노인의 마음은 말하지 않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노인의 마음으로 거리를 걸으면 있지도 않은 문장은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있지도 않은 문장으로 다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나는 점점 더 붙박이인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은 차고. 구름은 자고. 나무는 잎을 만나지 못하고. 비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흰 가루는 점점 더 수북이 쌓입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거리로 나서면 다시 돋는 잎사귀 곁으로 노인의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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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 밝은 밤

2021. 12. 29. 15:50

영옥아, 내레 너를 처음 봤을 적부터 더러운 정이 들줄 알고 있었다. 저리 가라면서 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너는 강아지마냥 내게 오더구나. 세상이 뒤집히구, 나도 죽을 날이나 기다리며 살고 싶었는데...... 네가 나를 비웃어도 할말이 없어.
내 너를 전쟁통에 만났다. 이제 너를 언제 볼 수 있을까. 내 살아 있을 때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영옥아, 영옥아. 이렇게 불러본다. 항상 건강해라. 건강해라, 영옥아.

할마이가

-> 새벽에 읽어서 그런지 울어버렸네. 더러운 정. 소설이 좋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편지들이 특별히 좋았다고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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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황정은

2021. 12. 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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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영이 창을 열었을 때 풍령에 달린 실이 끊어졌다. 라는 문장을 쓰고 좋아서 며칠 온화한 기분으로 살았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잘 마무리해 마감하고 싶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단편이 될 것이다. 1년 전에 쓰겠다고 약속을 해두고 쓸 수 있을까,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쓸 수 없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 쓰고 있다. 웃는 얼굴로 이 소설을 마무리하고 싶고 그런 장면으로 소설을 마무리할 생각에 행복하다.
사랑이 천성이라고 내가 말한 적 있던가?

133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111면
소설을 쓰는 나는 이 모든 사건들 속에서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궁금하게 여기고 그들 각자의 노동 조건이나 그가 속한 공동체의 이민사나 가족사, 그날을 전후로 그가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 등등을 생각해볼 테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소설을 쓰는 내가 아니니까 이유가 궁금하지 않다. 이유를 생각하는 것으로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 그저 게으름을 생각할 뿐이다. 혐오라는 태도를 선택한 온갖 형태의 게으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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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라는 필터 없이 태양광에 노출된 스타맨의 헬멧이며 로드스터의 핸들이 태양광을 받아 매우 반짝일 때마다 나는 어째선지 인간 종의 수명-필멸성mortality을 생각한다. 할 일이 너무 많아 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산다는 그 차의 차주-일론 머스크도 그걸 자주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심심해서 미국 대통령을 해본 것 같은 도널드 트럼프도 은근히 그걸 자주 생각할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2021년 올해의 책, 올해는 독서량이 많지 않았고, 황정은은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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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생각없이 골랐는데, 재미있었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교감, 사람과 시대를 잇는 것에 관한 얘기다. 1부는 물건 - 20세기 초반의 자동차 - 에 관한 생각이 좋았고 2부 초반에 갑자기 재미 없어지면서 이건 뭐지 했는데, 부검이 시작되면서 모든 실타래가 풀렸다. 3부는 초반에 아내가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고 전개가 빨라서 쑥 읽힌다. 이 작가의 다른 것도 읽어봐야겠다.

 

 1부

 
이건 최신품인 4기통 르노란다, 기술이 만든 걸작이지. 이걸 봐라! 이 차는 이성의 힘으로 빛날 뿐 아니라 시의 매력으로 노래하는 창조물이야. 우리 도시를 그토록 더럽히는 동물은 없애버리자고! 자동차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말이 그걸 이길 수 있겠니? 힘도 비교가 되지 않아. 이 르노는 14마력 엔진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격하게 산정한 결과란다. 실제로는 아마 20마력은 출력해낼 거야. 그리고 기계의 마력은 동물의 마력보다 훨씬 강력하단다. 말 서른 필이 마차를 끄는 것을 상상해봐라. 말 서른 필이 두 줄로 서서 발을 구르고 안달하는 광경이 그려지니? 흠, 상상할 필요는 없겠구나, 여기 네 눈앞에 떡하니 있으니까. 말 서른 필이 금속 상자에 압축되어 이 앞바퀴들 사이에 들어가 있지. 그 성능! 그 경제성! 불이 이렇게 눈부시게 획기적인 이유로 타는 건 최초일 거야. 또 자동차 속 어디에 말처럼 불쾌한 내장이 들어 있니? 그런 건 없단다, 다만 연기를 내뿜지만 그거야 공기 중에서 사라지지. 자동차는 담배만큼이나 무해하단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토마스. 금세기는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세기로 기억될 게다!


 하지만 물건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근대산업이 부상하면서부터였고, 일일이 수작업하고 유통 속도가 느리던 산업화 이전 시대에 물건의 가치란 대단했다. 심지어 옷가지도 그냥 버리는 일이 없었다. 예수의 얼마 안 되는 옷가지는 그를 미천한 대중 선동가로만 생각했던 로마 병사들이 나눠 가졌다. 평범한 옷가지도 나눠 입었는데 대형 조각품이라면, 더구나 그것이 사실상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성물이라면, 분명히 보존돼 있을 것이다.

 
오늘 한 노예가 내 구두를 보고 아프리카인의 피부로 만들어졌느냐고 내게 물었다-사실상 그런 의미의 질문을 했다. 구두와 피부는 같은 색이다. 그 사람을 먹었어요? 그의 뼈가 쓸모 있는 가루가 되었나요?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우리 유럽인들이 인육을 먹는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은 자신들이 밭 노동에 쓰인다는 사실에 경악한 데서 비롯된다. 그들의 경험상 생활의 물질적인 부분, 소위 먹고사는 일이라 불리는 것에는 큰 노력이 필요치 않다. 열대 지역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데는 시간과 일손이 거의 들지 않는다. 사냥은 더 품이 들지만 단체 활동이고 즐거움의 원천이니 수고가 아깝지 않다. 그러니 백인이 농사 이상의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왜 그렇게 많은 아프리카인을 잡아가겠는가? 나는 노예에게 내 구두는 그들 동포의 살가죽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그가 내 말에 설득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어떤 지역, 어떤 부족 출신이지-상관없이 노예들은 곧 똑같이 침울한 행동에 젖어든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무심해진다. 감독들이 그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마구 채찍을 휘두르면서 열을 낼수록, 이런 태도는 더욱 고질적이 된다. 노예들이 보이는 무력감의 신호 중 내게 가장 충격을 주는 것은 토식증이다. 그들은 개처럼 땅을 손으로 파고 흙을 동그랗게 뭉쳐서는, 입을 벌려 그것을 씹어 삼킨다. 주님의 부엽토를 먹는 것이 비기독교적 행위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다.

 

 2부

 
그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는 메스로 침팬지의 옆구리에서 털이 붙은 가죽을 한 조각 잘라낸다. 마리아 카스트루는 손가락으로 털을 잡아 문지르고 코를 킁킁대더니, 털에 입술을 대고 누른다. "라파엘은 항상 나보다 신앙심이 깊었어요." 그녀가 말한다. "툭하면 아브라앙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되되었죠. 믿음은 어리다고, 믿음은 우리와 달리 늙지 않는다고."

 

 3부

 
의학 용어가 난무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치료를 할 때마다 희망이 커졌다가 사그라진 뒤에, 몸을 비틀며 신음하고 흐느낀 뒤에, 실금을 하고 살이 쭉 빠진 뒤에, 그의 아름다운 클래라는 흉한 초록색 환자복 차림으로, 흐릿한 눈은 반쯤 감기고 입은 벌린 채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몸부림치고, 가슴에서 한 차례 덜컥대는 소리가 나고, 그녀는 죽는다.

 
커피 가루를 꺼내려고 몸을 돌리다가 부엌 입구에 있는 오도를 보고 피터는 화들짝 놀란다. 얼마 동안이나 거기 쭈그리고 앉아서 그를 지켜봤을까? 침팬지는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인다. 뼈가 삐걱대지 않고, 덜거덕 소리를 내는 발톱이나 발굽도 없다. 피터는 이런 움직임에, 오도가 집의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점에도 익숙해져야 될 것이다. 그게 싫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프라이버시를 누리는 것보다 오도와 같이 있는 게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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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가 - 배삼식

2020. 6. 1. 09:26

 작년에 '배삼식 희곡집'을 읽었고 이번에 '화전가'를 읽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배삼식 작가는 좋은 사람 - 좀 웃긴 말이다. - 같다.

 

 어느 저녁에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곁에 앉아 있었지만 그 말들을 저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요. 두 사람은 이제 곁에 없고 그 저녁의 풍경과 목소리만 희미하게 남았습니다. 무엇을 쓸까 궁리하며 이리저리 헤맸습니다만, 모르는 사이에 결국 저는 그 저녁으로 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으려고요.

 초고를 마치고 오래 묵은 나무들을 보러 가서 겨울 가지 아래 오래 서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 아무런 의미 없이 세계는 충만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보낸 목소리들이 허공에 떠돕니다. 그것을 더듬는 것은 늘 때늦은 일입니다만.

 백 살 먹은 나무는 아흔아홉 해의 죽음 위에 한 해의 삶을 살포시 얹어놓고 있습니다. 얇은 피막 같은 그 삶도 지금은 동면 중입니다만, 나무는 또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겠지요. 지나간 죽음들을 가득 끌어안고 서서, 올해의 잎과 꽃들이 작년 그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은 다시 온다고, '봄이 돌아온다'고 속삭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늘 안타깝고, 오직 이 안타까움만이 영영 돌고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경신일' 이란 걸 알게 됐다. 회충약이 없던 시절, 사람몸에 벌레가 붙어 살고, 사람 똥에서 손가락만큼 긴 벌레가 기어나오던 시절이니 있을 수 있는 풍속이다.

 

 난도 자세는 몰래, 나 어릴 때, 옛날 어른들은 다 그래셌니라. 친구들캉 얼리가 온 집안이 밤새두룩 이약허고 술 자시고 놀고 그랬어. 잠 안 잘라꼬. 그기 삼신가 머인가 무신 벌거지 따문에 그런다 카데, 형님은 아시니껴? 내는 딛기는 딜었는데 다 잊아뿟다.

 삼시(三尸)라꼬, 사램 몸에가 벌거지가 시 마리 산단다. 머리에 한나, 배에 한나, 아랫도리에 한나. 이기 가마이 들앉아가 오래 보고 있다가, 지 쥔이 지은 쥐를 치부책에다가 따박따박 씨논단다. 그래가주고 두 달에 한 번, 경신일에 하늘로 올라가가 옥황상제님한테 마캐 일러바채. 그라만 상제님이 그 진 쥐만큼 맹부책에서 그 사램 맹을 제하는 게래.

 그란데 와 잠은 안 자노?

 이 삼시라 카는 거이는 쥔이 잠을 자야 하늘에 올러갈 수가 있그덩. 그라이 아예 몬 올러가게, 고자질 모하게 하구러 그라제.  

 

 봄꽃에 대한 아름다운 구절도 있다.

 

 시커멓다......그라만 고 울긋불긋하던 거이는 다 어데로 가노?

 거 있지 가기는 어데를 가니껴?

 그란데 와 시커멓노? 어데를 갔으이 시커멓지.

 어데로 가는데?

 어데는. 하늘로 간다. 저녁마동 하늘로 올러갔다 아칙에 도로 니리온다. 고 알록다록허고 울긋불긋헌 거이를 마캐 데불로 오러가니라꼬. 저녁에 놀이 그래 요란하단다. 날마동 그래 올러갔다 니리왔다 하이 그 얼매나 힘드노? 그라이 꽃이 그래 쉬 지는 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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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파묵을 읽었다.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얘기다.

오랜 기다림에 사랑을 얻은 듯하지만 여자는 사고로 죽는다.

이런 단순한 얘기를 800페이지나 써냈다.

1권에서는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심정의 묘사가 좋았고

2권에서는 "때로"란 제목의 챕터가 기억에 남는다. 

'위장에는 점심 때 먹은 음식, 목덜미에는 햇살, 머릿속에는 사랑, 영혼에는 조급함, 그리고 가슴에는 아픔이 있었다.'

-> 이런걸 잘도 쓴다.(질투가 남.)

그리고 케말이 퓌순의 집에 찾아간 8년을 요약한 '때로'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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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때로 타륵씨는 우리처럼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지루해하며 곁눈으로는 신문을 읽곤 했다. 때로 비탈길에서 아래로,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시끄럽게 내려갔고, 그러면 우리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때로 비가 오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때로 "날씨가 정말 덥네."라고 했다. 때로 네시베 고모는 재떨이에 담배가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부엌에서 하나 더 불을 붙여 피웠다. 때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퓌순의 손을 십오 초나 이십 초쯤 바라보고 그녀에게 더욱 반하기도 했다. 때로 텔레비전에서 그때 우리가 식탁에서 먹고 있던 음식을 소개하는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때로 멀리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때로 퓌순이 식탁에서 일어나, 난로에 석탄 한두 개를 던져 넣었다. 때로 다음번에는 퓌순에게 머리핀이 아니라, 팔찌를 갖다 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때로 모두 함께 영화를 보다가 내용을 잊어버리고는, 눈은 텔레비전을 향한 채 니샨타쉬에서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보리수 차를 끓여줄게!"라고 했다. 때로 퓌순이 아주 달콤하게 하품을 해서, 그녀가 온 세상을 잊고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더 평온한 삶을, 마치 무더운 여름날 차가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끌어당기듯, 끌어당겼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때로 이제는 더 앉아 있지 말아야지, 일어나야지, 하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때로 맞은편 집 아래층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이발사가 마지막 손님을 보낸 후 빠르게 덧문을 내리는 소리가 밤의 정적 속에서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때로 단수가 되어 이틀 동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때로 석탄 난로 속에서 불길이 아닌 다른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단지 "올리브유를 넣어 만든 콩 요리 좋아하지, 다 없어지기 전에 내일 또 와!"라고 말했기 때문에 다음 날도 그 집에 갔다. 때로 미국-러시아 전쟁, 냉전, 밤에 보스포루스를 지나가는 러시아 전함들, 마르마라 해의 미국 잠수함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오늘 저녁은 아주 덥네!"라고 했다. 때로 퓌순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몽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가 상상하는 나라에 가고 싶어졌으며, 나 사진, 나의 삶, 나의 과묵함, 식탁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무척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때로 식탁에 있는 물건들이 산이나 계곡, 언덕, 고원, 구덩이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때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우스운 것을 보고 모두 함께 웃는 순간도 있었다. 때로 우리 모두 동시에 텔레비전에 몰입하는 것이 굴욕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로 이웃집 아이 알리가 퓌순의 품으로 파고들어 그녀에게 안기는 것이 나를 화나게 했다. 때로 타륵 씨와 남자 대 남자로, 음모나 속임수에 대해 말하듯 교활한 분위기에 낮은 목소리로, 경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 퓌순이 위층으로 올라가 한동안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 이것 역시 나를 불행하게 했다. 때로 전화벨이 울렸지만, 잘못 걸려온 전화일 때도 있었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다음 주 화요일에 호박 후식을 만들어 줄게."라고 했다. 때로 청년 서너 명이 축구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비탈길에서 아래로, 톱하네 쪽으로 가기도 햇다. 때로 나는 퓌순이 난로에 석탄을 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때로 부엌 바닥에서 바퀴벌레가 다급하게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때로 야경꾼이 집 현관문 바로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때로 퓌순이, 때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 시간 일력'에서 날짜가 니난 낱장을 하나하나 뜯었다. 때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식탁에 놓여 있는, 세몰리나로 만든 헬와를 한 수저 더 먹었다. 때로 텔레비전 화면이 잘 나오지 않으면 타륵 씨는 "얘야, 한번 점검해 봐라."라고 했고, 퓌순이 텔레비전 뒤에 있는 버튼을 만지고, 나는 뒤에서 바라보았다. 때로 "담배 한 대 더 피우고 가야지."라고 말했다. 때로 시간을 완전히 잊고는 '지금'의 안으로, 부드러운 침대에 드러눕는 것처럼 팔다리를 쭉뻗고 퍼져 앉아 있곤 했다. 때로 카펫 안에 있는 세균, 벌레, 기생충들을 알아챘다고 생각했다. 때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이에, 퓌순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고, 타륵 씨는 위층 화장실에 갔다. 때로 냄비에 버터로 요리한 호박 돌마, 토마토 돌마, 고추 돌마를 이틀 저녁에 걸쳐 먹기도 했다. 때로 저녁을 먹은 다음 퓌순이 식탁에서 일어나, 레몬의 새장으로 가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 여름날 저녁, 퇴창으로 날아 들어온 나방 한 마리가 전등 주위를 미친 듯이 빠르게 돌았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처음 들었다며 동네의 소문(예를 들면 전기공 에페의 아버지는 유명한 도둑이었다는)을 꺼내기도 했다. 때로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정신을 잃고 마치 우리 둘만 있는 듯 퓌순에게 나의 모든 사랑을 보여 주며,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때로 골목에서 자동차가 조용히 지나갔고, 단지 창문이 떨리는 것으로만 그 사실을 눈치채기도 했다. 때로 퓌루즈아아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여왔다. 때로 퓌순이 뜬금없이 식탁에서 일어나, 비탈길이 보이는 퇴창 밖을 마치 간절한 그리움으로 기다리고 사람이 있다는 듯 한동안 바라보면, 내 가슴이 아파 왔다. 때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전혀 다른 생각(예를 들면 우리가 배 안에 있는 식당에서 만난 승객들이라는 상상)을 했다. 때로 여름날 저녁, 네시베 고모가 위층에 있는 방에 테미즈 이시펌프로 파리약을 뿌렸고, 식당에소 '싸악 한번 뿌리면' 파리가 죽곤 했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옛 이란 왕비 쉬레이야 이야기를 꺼내고, 샤의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이혼한 그녀의 슬픔과 유럽 상류사회에서의 그녀의 삶에 대해 말해 주었다. 때로 타륵 씨는 텔레비전을 보며 "저 파렴치한 놈이 또 나오네!"라고 했다. 때로 퓌순은 이틀 연달아 같은 옷을 입었는데, 그래도 내게는 다르게 보였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있어?"라고 물었다. 때로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창문 쪽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 때로 안초비 튀김을 먹었다. 때로 케스킨 씨네 사람들이, 세상에는 정의가 있고, 죄인들은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꼭 벌을 받는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을 보았다. 때로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 단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가 정적에 휩싸였다. 때로 퓌순이 "아빠, 제발 식탁에 차리기 전에 집어 먹지 마세요!"라고 했고, 그러면 나 때문에 그들조차 식탁에서 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는 반대로, 모두들 아주 편하게 행동한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었다. 때로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눈을 화면에 고정한 네시베 고모가, 손이 뜨거워질 때까지 성냥불을 든 채 끄는 것을 잊어버렸다. 때로 오븐에서 요리한 스파게티를 먹었다. 때로 에쉴쾨이에 있는 공항을 향해 하강하는 비행기가 밤의 어둠 속에서 굉음을 내며 우리 위를 지나갔다. 때로 퓌순은 긴 목과 가슴의 윗부분이 보이는 셔츠를 입었고, 나는 텔레비전을 볼 때 그녀의 아름다운 흰 목에 내 눈이 머물지 않도록 주의했다. 때로 퓌순에게 "그림은 어떻게 돼 가?"라고 물었다. 때로 텔레비전에서는 "눈이 오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오지 않았다. 때로 커다란 유조선의 다급한 뱃고동 소리가 슬프게 들려오기도 했다. 때로 먼 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때로 누군가가 옆집 대문을 세게 두드려서, 내 뒤에 있는 장식장 속 커피 잔이 떨리기도 했다. 때로 전화벨이 울렸는데 레몬은 그것이 암놈 카나리아라고 생각했는지 흥분하며 지저귀었고, 우리는 모두 함께 웃었다. 때로 어떤 부부가 손님으로 오면, 나는 약간 부끄러워졌다. 때로 타륵 씨는 위스퀴다르 여성 합창단이 텔레비전에 나와 옛날 노래를 부르면 앉은 채로 따라 불렀다. 때로 좁은 골목에 자동차 두 대가 맞닥뜨려, 두 운전자가 고집을 피우며 길을 내주지 않은 채 입씨름을 시작했고, 욕설을 했으며, 종국에는 자동차 밖으로 나와 치고받는 싸움을 했다. 때로 집에, 골목에, 모든 동네에 마법적인 정적이 흘렀다. 때로 저녁때 뵈렉과 소금에 절인 다랑어 외에 대구도 사서 가져갔다. 때로 우리는 "오늘 날씨 정말 춥지, 그렇지?"라고 말했다. 때로 타륵 씨가 식사를 마친 후 미소를 지으며 호주머니에서 페라흐 박하사탕을 꺼내 우리에게 한 개씩 나눠 주었다. 때로 문 앞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거세게 야옹거리다가, 나중에는 비명을 지르며 싸움을 했다. 때로 퓌순이 내가 그날 가져온 귀걸이나 브로치를 그자리에서 달았고, 식사 때 나는 낮은 목소리로 아주 잘 어울린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때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랑 영화에서 상봉과 키스 장면이 보이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때로 "음식에 소금을 조금만 넣었어, 원하는 사람은 입맛에 맞게 더 넣어."라고 네시베 고모가 말했다. 때로 먼 곳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때로 보스포루스에서 오래된 배의 날카로운 뱃고동 소리가 우리 가슴에 슬프게 와 닿았다. 때로 펠뤼르에게 알게 되어 농담도 약간 주고받았던 배우가 텔레비전에서 영화나 연속극 혹은 광고에 등장하면 퓌순과 눈이 마주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눈길을 피하곤 했다. 때로 정전이 되면, 어둠 속에 앉아 우리가 피우는 담배의 붉은 끝을 보았다. 때로 누군가가 문 앞에서 혼자 휘파람으로 옛날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대로 네시베 고모가 "아, 오늘 밤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어."라고 했다. 때로 퓌순의 목에 눈길이 갔고, 저녁 내내 더 이상 그곳을 보지 않기 위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나 자신을 억눌렀다. 때로 순간적으로 깊은 침묵이 흐르면, 네시베 고모가 "어디에선가 누군가 죽었나 봐."라고 했다. 대로 타륵 씨의 라이터가 켜지지 않으면 나는 그에게 새 라이터를 선물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면서, 그사이 영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때로 달그츠 골목에서 바로 우리 맞은편에 있는 집에서 또 부부 싸움이 이어났고, 남편이 아내를 때렸는지 우리 마음까지 와 닿는 비명 소리가 들여왔ㄷ. 때로 겨울날 밤에 보자 장수가 방울을 흔들며 "뵈퐈 보오오자아아."라고 고함을 지르며 문 앞을 지나갔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오늘은 아주 기분이 좋은가 봐!"라고 내게 말했다. 때로 몸을 뻗어 퓌순을 만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겨우 억눌렀다. 때로, 특히 여름 저녁이면, 바람이 불어와 문이 서로 부딪혔다. 대로 자임을, 시벨을, 옛 친구들을 생각했다. 때로 식탁에 있는 음식에 파리가 앉으면 네시베 고모가 신경질을 냈다. 때로 네시베 고모는 타륵 씨를 위해 냉장고에서 광천수를 꺼내면서 "자네도 마실래?"라고 내게 물었다. 때로 아직 11시도 되지 않았는데, 야경꾼이 호루라기를 불며 문 앞을 지나갔다. 때로 그녀에게 "널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그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때로 바로 지난번에 가져온 라일락이 여전히 꽃병에 있는 것을 알아보기도 했다. 때로 침묵이 흐르고, 이웃집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밑으로 쓰레기를 던졌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마지막 남은 쾨프테를 누가 먹나 볼까요?"라고 했다. 때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군들을 보며 나의 군대 생활을 떠올렸다. 때로 단지 나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느끼곤 했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오늘 저녁 후식이 뭔지 맞춰 봐."라고 했다. 때로 타륵 씨가 사레들리면 퓌순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때로 퓌순은 내가 몇 년 전에 선물한 브로치를 달기도 했다. 때로 텔레비전에서 화면과는 전혀 다른 설명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로 퓌순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극인이나 문학인, 교수에 대해 내게 질문을 했다. 때로 나도 식탁에 있는 더러워진 접시를 부엌으로 가져갔다. 때로 우리 모두의 입에 음식이 들어 있기 때문에 식탁이 조용했다. 때로 누군가가 먼저 하품을 하면, 그를 보고 다른 이들도 하품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깨달으면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었다. 때로 퓌순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화에 얼마나 집중하고 몰입했던지, 나는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고기 구운 냄새가 저녁 내내 집 안에 남아 있었다. 때로 그저 퓌순 옆에 앉아 있다는 것 때문에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때로 나는 "언제 보스포루스로 저녁 먹으러 가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때로 삶이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곳, 그 식탁에 있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때로 텔레비전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전혀 모르는 주제라고 해도, 예를들면 아르헨티나에 있는 사라진 왕의 무던, 화성에서의 중력,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 수중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오토바이가 이스탄불에서 왜 위험한가, 위르귑에 있는 요전의 굴뚝이 어떻게 형성되었나 등의 주제에 대해 논쟁을 했다. 때로 강한 바람이 불어와 창문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고, 난로 연통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때로 타륵 씨가 그 집에서 50미터 떨어지 보아즈케센 골목으로 오백 년 전에 파티흐 술탄이 전함을 통과시켜 할리치 만으로 끌어내리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가 그 일을 할 때 열아홉 살이었다네!"라고 했다. 때로 퓌순이 식사를 다 하고 식탁에서 일어나 레몬이 있는 새장으로 가면, 나도잠시 후에 그녀 곁으로 갔다. 때로 '오늘 저녁에도 오길 잘했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때로 타륵 씨가 깜박 잊은 안경이나 신문 혹은 복권을 가져오라고 퓌순을 위층으로 보냈고, 그럴 때면 네시베 고모는 식탁에서 "전등 끄는 것 잊지 마라!"라고 위층에 대고 소리를 쳤다. 때로 네시베 고모는 파리에 있는 먼 친척의 결혼식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때로 타륵 씨가 격한 목소리로 "조용히 해봐!"라고 하면, 집 안에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라며 천장을 가리켰고, 그러면 우리는 모두 위층에서 들려오는 것이 쥐나 도둑이 내는 소리인지 궁금해하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남편에게 "텔레비전 볼륨이 적당해요?"라고 물었는데, 타륵 씨는 나이가 들수록 귀가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 사이에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 때로 창가에 눈이 쌓이고, 인도가 얼어붙었다. 때로 폭죽이 터지면 우리는 모두 식탁에서 일어나, 하늘에 수놓아진 색들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고, 나중에는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화약 냄새를 맡았다. 때로 네시베 고모가 "잔은 채울까, 케말?"하고 물었다. 때로 나는 "네가 그린 그림을 볼까, 퓌순?"이라고 하며 그림을 보러 갔고, 그렇게 그녀와 함께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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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기형도 시 전집이 나와서 오랜만에 기형도를 읽는다. 좋았던 것들은 그대로 좋고 새롭게 좋은 작품도 있다. '입 속의 검은 잎'의 시작 메모는 기억해 둬야 할 것 같아서 여기 남겨둔다.

 그리고 '가는 비 온다' 가 너무 좋다.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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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96

 그렇다. 내 행복과 불행은 문제가 아니다. 세쓰코의 행복이나 불행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세대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조금 눅눅해진 것 같다. 창을 닫아야지. 도호쿠 쪽은 아마 아직 추울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쓰코의 상처 자리가 아프진 않을지. 아프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데.....

 

-> 신형철의 추천으로 읽었다. 마지막 문단에 전율을 느꼈다. 상실의 시대 마지막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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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존 윌리암스

2019. 1. 5. 19:31

 p.264~ 하지만 이미 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조금 전처럼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스토너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잘 마셨다고 인사한 뒤 작별인사를 했다. 드라스콜은 문까지 그를 배웅해주었지만,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할 때는 거의 무뚝뚝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밖은 어두웠다. 봄의 싸늘함이 저녁 공기 속에 베어 있었다. 스토너가 심호흡을 하자 그 서늘한 기운에 몸이 찌릿찌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들쭉날쭉한 집들의 윤곽 너머로 시내의 불빛들이 엷은 안개 속에서 반짝였다. 길모퉁이의 가로등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어둠을 힘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그 너머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뒷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는 안개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p.392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윌리엄 스토너란 사람이 어떤 삶을 살다 죽었다는 이야기다. 책의 첫장을 읽다가 작년에 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다시 읽었다. 설명은 못하겠는데, 좋다.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도 오늘 마저 읽었는데, 그 책의 주인공 메리가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와 비슷한 신경증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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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복음 - 사라마구

2018. 11. 9. 12:19
예수는 마르다에게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죽음은 나사로 같은 사람들, 절대 소생하지 못하고 계속 죽어갈 사람들의 모든 죽음을 끌어안을 겁니다. 마리아에게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나를 버리지 말고 손을 뻗어줘요, 안 그러면 나는 삶을 잊을 거예요, 아니면 삶이 나를 잊거나. 며칠 뒤 예수는 제자들에게로 갔다. 막달라 마리아도 함꼐 갔다. 내가 너를 보는 걸 원하지 않으면 네 그림자만 볼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예수는 대답했다, 당신 눈이 내 그림자에 있다면 나도 어디든 내 그림자가 있는 곳에 있고 싶어요. 이들은 서로 사랑했고 이런 사랑의 말을 나누었다. 그들이 아름답고 진실했기 때문일 뿐 아니라, 그림자들이 몰려와, 두 사람이 함꼐 있다 해도 최종적인 부재의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 나사렛 사람 예수가 죽으러 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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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황정은

2018. 8. 31. 11:38

 예컨대 dd의 갈색 구두, 그것과 같은 구두는 세상에 없었다. dd의 발 모양으로 늘어났고 dd의 걸음걸이 습관 그대로 굽이 닳았으며 반복해 접혔고 주름졌으니까. 그것을 상자에 넣으며 d는 생각했다. 이것을 이 상자에 넣었으므로 저쪽 상자엔 넣을 수 없지. 동시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사물은..... 이 상자에 있는 동시에 저 상자에 있을 수는 없다. 이제 여기 담겼으니 저쪽엔 없다. 여기에 있으면 저기엔 없지. 사물이 그렇지만 구두를 신던 사람은......인간은 사물과는 달라서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을 수 있다고...... 내가 언젠가 그와 같은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적어도 들은 적이...... 누군가가 없어져도 그를 기억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여기 없어도 여기 있고......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냐? 사기를 치지 마라...... 인간은 너무도 사물과 같이...... 없으면 없어. 있지 않으면 없고, 없으니 여기 없다......

 

 

 손녀하고 딸년은 내 사는 꼴이 지저분하다고 부끄럽다지만...... 그것이 무엇이 부끄러운가? 내가 아는 부끄러운 것 중에 그런 것은 없어. 산 사람의 살림이 오만 잡종인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몇 년 전만 해도 언제든 수리실 밖으로 나가면 상가 어딘가에 갈 곳이 있었고 방문할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여소녀는 생각했다. 인사도 없이 쓱 들어가서 그거 달라고 하면 그거를 알아듣고 틀림없이 그거를 줄 수 있었던 사람들, 사기꾼 같은 놈들, 진짜 사기꾼들, 그래도 내가 보기에 썩 좋았던 사람들과 다음 생에 또 볼까 내내 재수없어하다가 낯익어버린 인간들...... 오디오 팔던 사람들, 부품상들, 도란스 기술자, 스피커 제조없자, 진짜와 똑같이 로고 라벨을 만드는 기술이 있던 노인들, 다른 기술자들. 그와 같은 공간에서 한 시절을 겪은 사람들. 그들이 다 어디 갔느냐고? 여소녀는 그 질문을 돌이킬 때마다 그들의 부재와 자신의 잔여와 이제 닥쳐올 자신의 부재를 한꺼번에 생각했다.

 

 

 곽정은은 dd와 별로 닮지 않았지만 그가 잠을 잘 때, 눈을 감고 잘 때는 닮아 보일 거라고 d는 생각했다. d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런 식으로 닮았고 아마도 d 역시 부모와 그런식으로 닮았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산 사람들은, 가장 방심한 얼굴이 닮았다.

 

 

 자기가 속한 체제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된 나머지 귀순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그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두 손으로 조종간을 붙들고 목적지를 향해 전투기를 몰아갔을 그 새끼가 너무 부럽다...... 남쪽의 가요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 두고 음악이 흐르는 전투기에 실려 북측과 남측의 경계를 향해 날아가던 순간, 그 아득한 허공을 날던 순간의 그가 말입니다.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 겹만을 남겨둔 채 채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

 

 너의 오디오가 이제 좀 특별해졌느냐고 여소녀는 물었다.

 같은 모델이라도 그 기기를 다룬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고 여소녀는 말했다. 세상에 그거 한 대뿐이니까. 빈티지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고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말하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수리실 안으로 불어 들었다. 비가 들이치자 여소녀는 창을 닫았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유리 벌브 속에 불빛이 있었다. d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 투명한 구(球)를 잡아보았다. 섬뜩한 열을 느끼고 손을 뗐다.

 쓰라렸다.

 d는 놀라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이미 손을 뗐는데도 그 얇고 뜨거운 유리막이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통증은 피부를 뚫고 들어온 가시처럼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

 

 -> 황정은이 서울시 강서구와 종로구 세운상가로 돌아왔다. 

 -> 83년에 이웅평이 북에서 올 때, 우리 엄마는 전쟁나는 줄 알고 나랑 내 동생 불쌍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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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18. 8. 7. 08:16
34p~
브라운에게는 우리가 단 하루라도 존속하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는 스러지는 시간의 아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쓴다. 겨울의 해는 빛이 얼마나 신속하게 재 속에서 사라지는지, 밤이 얼마나 재빨리 우리를 에워싸는지 보여준다. 한 시간, 한 시간이 계산서에 더해진다. 시간조차도 늙는다. 피라미드, 개선문, 오벨리스크 따위는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만든 탑에 불과하다. 천공의 형상들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것들조차도 영원히 영예를 누릴수는 없다. 니므룻(바빌로니아의 왕으로 사후에 신격화되어 오리온 별자리에 자리했다고 여겨졌다)은 오리온 별자리 속에서 사라졌으며, 오씨리스(고대 이집트의 신으로 씨리우스별로 상징되었다)는 씨리우스별 속에서 사라졌다. 위대한 종족보다 더 오래 산 떡갈나무는 세 그루도 못된다. 어떤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고 해도 기억될 권리를 확보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상의 인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누가 알겠는가. 양귀비 씨앗은 어디서나 꽃을 피우지만,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비참함이 눈처럼 우리 위로 내려오면 우리는 이제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 제발트 번역의 느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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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17. 11. 17. 11:19

p.199~

17세기에 이미 섬 전체에서 지난날의 숲으로부터 남은 것이라고는 대개 하염없이 몰락해버리고 남은 미미한 잔여들뿐이었다. 이제 거대한 불길은 대서양의 반대편에서 타올랐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너른 땅 브라질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목탄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등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들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최초의 유리등에서 18세기의 칸델라(휴대용 석유등의 일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칸델라의 불빛에서 벨기에 고속도로를 비추는 아크등의 창백한 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소이며, 연소는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사물들의 내적 원리다. 낚시 바늘의 제작, 사기잔을 만드는 수공업,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연소라는 동일한 과정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 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은 우리의 도시들이 빛을 발하고, 아직은 불이 번져간다.

 

- '아우스터리츠'를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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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생각해.
이곳의 장례 전통은 어떠한가.
무덤 속 머리는 동서남북 중 어디를 향하나.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를 기꺼이 맞이해준다면.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서 죽어도 될까요?
물어봐도 화들짝 놀라지 않고
열쇠와 필기구를 말없이 건네준다면.
객사의 원래 뜻은 손님으로 죽는 것.
가장 멀리 뻗은 길 따라 몸을 누이고
그때 밤하늘에 뜬 삐뚤빼뚤한 별자리 하나를
삐뚤빼뚤한 내 영혼에 딱 맞는 관으로 삼는 거지.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생각해.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얼마나 좋을까?
죽는 곳은 여럿이어도
태어나는 곳은 하나라면.
같은 세계에서 같은 사람들이랑
부디 단 한 번이라도
삶이 고단하지 않을 때까지
죽음이 서럽지 않을 때까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책은 안 읽고 뒤표지만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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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총 - 황인찬

2017. 6. 16. 13:45

지국총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걸어간다 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물 위에서 노를 젓고 어떤 사람들은 물 위를 걷는 주말이다 물 위의 사람들은 신나 보이는군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공원의 모두가 은총 아래 있다 나란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노부부도 물 위를 홀로 걷는 고독한 남자도 모두 완전하다 나는 은총 아래 연인을 기다렸다 주말 오후의 빛이 공원을 비춘다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공원에 서려있다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연인은 물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AND

p.32~33

 그림속의 여인은 관객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욕망하는 남자를, 연인이라 생각하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 남자는 드로스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드로스트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림 속 바로 그 여인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박물관에서는 보통 떠오르지 않는 생각이 떠올랐다.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 욕망이 또한 상호적이라면 - 그 대상이 되는 이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 아래층 전시실에 있는 그 어떤 갑옷을 입는다고 해도, 그 정도로 완벽하게 보호 받는 느낌은 가질 수 없다.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살아서 경험할 수 있는 느낌 중 불멸의 느낌에 가장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p.70

 로잘리와 루카는 그가 출장을 다니며 발견한 몇몇 도시로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옛 친구들도 만나고, 자신이 구상했던 몇몇 발명품의 시제품을 한두 개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몇 년이 지나고, 로잘리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가끔 집을 나서서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를 따라 헤매다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루카는 직접 아내를 보살폈지만, 로잘리는 서서히 기능들을 하나씩 잃어 갔고 마침내 병원에 입원했다. 루카는 매일 찾아가, 숟가락으로 저녁식사를 먹여 주었다. 가끔 아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녀는 그를 완전히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안 가면, 안 왔다는 건 알지 않을까요? 루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p.85

 깊이있는 정치적 저항은 부재하는 정의에 호소하는 것이고, 미래에는 그 정의가 세워질 거라는 희망과 함께한다. 하지만 이 희망이 저항이 이루어지는 첫번째 이유는 아니다.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은 저항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모욕적이고, 너무 왜소해지고, 죽은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바리케이드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p. 109~

 할인 슈퍼마켓에 와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식품연쇄소매점의 지점이다. 지점 수가 팔천 개가 넘는다. 다른 슈퍼마켓의 절반 가격에 물건들-예를 들면 사과 주스 한 상자-을 살 수 있다. 슈퍼마켓은 도시 외곽 자동차 전용도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다.

 슈퍼마켓 여기저기에 육십여 명 정도의 직원이 있고, 비슷한 숫자의 감시 카메라가 있다. 어떤 물건도 제대로 진열되어 있지 않다. 한쪽 면이 뜯어진 상자에 담겨 있다. 손님들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들이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손님들 중에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가난한 노인들도 있고, 아이들이나, 파트너(파트너가 있는 경우), 본인 혹은 부양가족을 위해 물건을 사는 젊은 여자들이 많다. 모두들, 각자 형편에 맞춰 물건을 최대한 많이 사는데, 일 주일에 한 번-혹은 기껏해야 두번-이상 이곳에 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수레에는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고, 언제나 똑같은 음식들-예를들면, 마카로니, 멕시칸 토르티야, 소고기 아시 파르망티에 등-이 몇 개씩 들어 있다. 일부의 노인들만 현금으로 계산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월말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다들 신중하다.

 가끔씩, 따라온 아이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말이 없다. 우리 모두-손님과 직원들- 용의자이고, 우리의 움직임을 하나한나 관찰당한다. 모두 물건을 집어 들고, 수레를 밀고, 물건을 살피고, 코드를 입력하고, 조절하고, 야채 무게를 달고, 일정을 생각하고, 계산한다.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창고는, 절도(竊盜)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

 길거리 시장의 정반대다. 그곳에서 핵심은 흥정이다. 길거리 시장에서는, 모두가 최선의 거래를 하과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창고형 슈퍼마켓에서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도둑놈으로 여겨진다.

 자유공간은 거의 없고-물건 더미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계산대 앞에 늘어선 수레의 줄도 빽뺵하다. 내 앞에 수레를 쥐고 있는 사람은 임신부이다. 키가 크고 밝은 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폴란드 출신으로 보이고, 곧 태어날 배 속의 아이는 첫째가 아닐 것 같다. 수레에 담은 물건들을 계산대에 내려놓을 때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다.

 우리가 있는 이 창고형 할인 슈퍼마켓을 사로잡고 있는-다른 생각은 거의 모두 배제해 버리는-, 이 절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쇼핑하는 손님들의 도둑질. 종종 회사에서는 '수상한 손님'을 상점에 들여보낸다. 이들의 임무는 몇몇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오는 일, 즉 계산원들이 얼마나 잘 감시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직원들의 도둑질. 직원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사야 할 때면 계산서에 관리자의 서명을 받아야 하고, 아무 때나 몸수색을 당할 수 있다. 회사에 의한 체계적인 도둑질은 직원들의 초과근무 시간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계산원들은 적어도 일 주일에 두 시간 이상 임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가끔 더 해야 할 때도 있다. 많은 직원들이-관리자급부터 그 아래로- 근무시간이 아닌 때도, 필요한 경우에는 밤낮으로 긴급 상황에 불려 나와야 한다. 병가는 허용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보장된 교대 시간 사이의 휴식도 없고, 역시 보장된 주중 휴무도 없다. 직원들의 권리에 대한 도둑질. 마지막으로 농산물 업계, 전 지구적인 식품 유통업계와 연결된 그 회사의 도둑질. 한때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쥐고 있던 주도권,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변종과 종자, 비료, 기를 가축들 등에 대한 결정권을 뺏어 간 것. 한때 이런 것은 지역 내에서 현실에 맞춰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오늘날은 거대 기업이 생산자를 공급하고, 생산될 게 무엇인지 지시한다. 전 지구적인 농업이 미리 계획되고 있는데, 목적은 자연 전체를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폴란드 출신일 거라고 짐작한 임신부가 줄 맨 앞에 있다. 계산원들에게 주어진 분당 목표 계산량은 서른다섯 개다! 아무도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모두들 근무 평가에서 감점을 당한다. 계산할 준비를 마친 임신부가 신용카드를 긁는다.

 고개를 든 임신부가 내 뒤에 줄을 선 누군가를 알아본 모양이다. 어쩌면 둘이 같이 온 것일 수도 있고, 같은 시각에 이곳에서 장을 보기로 약속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상하게 조심스러워진 나는 고개를 돌려 그 누군가를 확인하지 않는다. 짐작에 남자는 아닐 것 같다. 아마 여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폴란드 여성이 고개를 들고 머리를 흔들며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여자는 계속 미소짓는다.

 그녀의 미소는 순수한 행복의 표현으로, 빛을 내면서 동시에 빨아들인다. 갑작스런 행복이 모두 그렇듯, 그 미소도 예측할 수 없다.

 그녀의 미소는, 한순간 다시 현실이 되어 버린, 잊어버린 약속들을 담고 있다.

 내가 그녀의 미소가 담고 있는 약속에 대해, 혹은 도둑질로 가득한 창고에 대해 과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다. 둘 다 존재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

 

-> 와, 존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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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시마자키 도손

2017. 4. 22. 20:46

-> 아오키 군은 자살을 했다. 

 

"아오키 군, 자네는 왜 이런 곳에 와 있는가?"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라니,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닌가?"

 이렇게 아오키는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방의 창문에는 쇠로 만든 격자문이 끼워져 있었다. 책장이 있어야 할 곳에 책장이 없고, 그 대신 천연 암석이 있었다. 그 바위 끝에는 지금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바위가 위험하게 걸려 있었다. 방 입구의 열린 곳으로 호랑이 우리가 보이고, 게다가 그 우리는 이쪽을 향해 문이 열려 있었다. 옆 창에서 무엇인가 들여다보는 것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무서운 살모사였다.

 "여기가 어디지?"

 아오키는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알 텐데-감옥이야."

 그 모르는 사람이 말했다.

 듣고 보니, 방은 단단한 철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오키 자신은 강철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솨사슬의 길이 이상으로는 걸을 수도 어쩔 수도 없었다.

 "왜 자네는 이런 곳에 와 있나."

 "나는 법에 어긋나는 일을 별로 한 적이 없어. 보게나, 나는 겁쟁이야. 강도질하고, 살인을 하는 그런 용기 있는 사내가 아니야. 나는 벌레를 죽여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그 정도로 용기가 없는 인간이니까."

 이렇게 아오키가 말했지만, 현재 감옥 안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죄가 있어서 여기에 와 있는가, 누가 묶어서 이런 감옥에 넣어 버렸는가, 그것은 아오키도 모른다. 자신의 집이다. 집이다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어느새 이처럼 감옥 속에 들어 있었다. 방구석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기분 좋은 향연 흉내를 내며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무리들은 감옥의 간수가 지날 때마다 손을 모아서 합장하기도 하고, 고마운 듯이 인사를 하며 자칫 간수의 발을 받을어 보이는 우스운 흉내를 내곤 했다.

 변덕스러운 박쥐가 창으로 날아 들어왔다. '야 누군가 사바 세계에 있는 사람으로 이 박쥐 얼굴과 닮은 것이 없냐?' 라고 한 사람이 말하니까, '어디 얼굴을 보여라'라고 또 한 사람이 말을 꺼내서 각자 박쥐를 잡으려고 방안을 쫓아 다녔다.

 왠지 이 소란이 두렵게 느껴져서 아오키는 창 쪽으로 도망쳤다. 그는 자신이 쓴 초고를 읽을 참이었다. 철로 만든 격자문을 잡으면서 창 밖을 보았더니 쓸쓸하게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가슴 위에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여자다운 입술을 약간 내민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창백한 뺨에는 이제 예전의 향기가 없었다. '저런' 하고 앙쾨는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감옥 속으로 끌어들이려다가 잠이 깼다.

 

-> 기시모토는 살았다.

 

 "아, 나 같은 인간이라도 어떻게든지 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고 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유리창 밖에는 회색빛 하늘, 젖어서 빛나는 초목, 물안개, 그리고 쓸쓸하게 농가 처마 아래에 서 있던 닭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사람들은 빗속 여행에 싫증이 나서 대부분 기차 안에서 잤다.

 다시 쏴 하고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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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헨미 요

2017. 4. 18. 12:07
자그레브에서는 동물원 앞에 있는 식당 '막시밀'이 난민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되어 있었다.
묘한 광경이다.
동물원에서는 곰이 구경꾼에게 빵을 얻는다. 바로 바깥에서는 어마어마한 수의 인간이 목숨을 이어 가기 위해 음식을 얻으려고 줄에 선다. 내가 찾아갔을 때 메뉴는 독일이 원조한 깡통 수프와 폭찹이었다. 이 곳에 이슬람계 난민이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라예보에서 탈출했다는 예순여덟 살의 여성 이슬람교도인 니콜라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를 씹어 먹고 있다.
식욕이란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순수'한 민족이나 종교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보스니아의 이슬람계 주민들도 원래 10~15세기 발칸 지방에서 성행한 보고밀파 기독교도였지만, 그 뒤 터키의 지배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나쁠 리 없다.
먹고사는 것이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자부심보다 중요하다.
유엔 관계자에 따르면, 사라예보 동물원의 굶주린 곰은 자그레브 동물원으로 이송되는 길에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날벼락이다. 하지만 지금은 곰보다 인간이 문제다.
"일본으로 데려가 주시오. 먹을 것만 주면 화장실이든 하수구든 다 청소할 테니까."
예순한 살이라는 난민이 나한테 매달리면서 따라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부고이노에서 탈출했다는, 오른쪽 눈이 부연 남자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아내를 두고 왔고. 난 이제 사바 강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자그레브 중심부에서 네오고딕 양식 첨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성슈테판 대사원.
이 사원도 유고 출신 가톨릭교 수녀인 마더 테레사의 내방을 기념해, 주로 거지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소를 두고 있다.
1991년에 세르비아 측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두세명이 올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급식 인원인 80명을 넘는 굶주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수녀에게 취재 요청을 거절당했지만 나는 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남자들 틈에서 급식소에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겨우 5분 만에 사람들로 꽉 찼다. 문이 닫혔다.
먼지, 땀 냄새, 게다가 지독한 썩은 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기침을 마구 해 댔다. 벽에 걸린 마더 테레사와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이 때에 전 남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크로아티아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들이다. 터키계 얼굴이 보이고, 콧수염을 기른 옛 신사는 세르비아계였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수프 냄새가 난다 했는데, 수녀가 "여러분, 이걸 들어야 식사할 수 있습니다." 하고 운을 떼더니 성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보류되었다. 누군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는 기립해서 찬송가를 부른다. 숟가락을 꽉 쥔 남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악에 받친 듯 숟가락을 휘두르면서 노래하는 남자도 있다.
아니, 입만 뻥긋거리는 사람이 많다. 다리를 떠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의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훌륭한 자선이지만 좀 잔혹하다. 바로 음식을 나눠 주면 안 될까?
11세기 기독교회의 동서 분리, 반목, 스라브족의 분열, 식전 의식이 이런 분쟁의 깊은 뿌리에 얽혀 쓸데없는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까? 신앙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은 지나친 걱정을 한다 싶은 사이에 찬송가가 끝났다.
아아, 그 뒤에 이어지는 남자들의 식욕은 대단했다.
다양한 민족의 피를 받은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똑같이 맹렬하게 달라붙었다. 그러니 종파든 뭐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직하구나. 왠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빵이 왔다. 받을 수가 없었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손이 창 밖에서 뻗쳐 왔기 때문이다.

- 크로아티아 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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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굿맨 브라운은 황혼녘에 쎄일럼 마을의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문간을 넘고 나서 젊은 아내와 작별의 키스를 나누려고 고개를 돌렸다. 페이스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그의 아내가 예쁜 얼굴을 길가로 내밀며 굿맨 브라운을 부를 때 그녀의 모자에 달린 분홍색 리본이 바람에 나부꼈다.

YOUNG GOODMAN BROWN came forth at sunset, into the street of Salem village, but put his head back, after crossing the threshold, to exchange a parting kiss with his young wife. And Faith, as the wife was aptly named, thrust her own pretty head into the street, letting the wind play with the pink ribbons of her cap, while she called to Goodman Brown.

 

-> 예전에 EBS 라디오에서 들었던 걸 오늘 읽었다. 첫 문단이 딱 맘에 들어서 원문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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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부터 한 방 먹여주고 시작한다. 가슴속에 있는 얼굴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얼굴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64p. 베니치아 화가의 기법으로 그린 세큐레의 초상화가 있었더라면 12년이나 계속된 여행 중에도 고향에 두고 온 옛 연인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운 여인의 얼굴이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면, 세상 어느 곳에 있든 그곳이 내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299p. 죽기 직전. 유년기의 마지막 시절에 들었던 시리아 동화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노인이 한밤중 잠에서 깨어 부엌에 가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물 컵을 탁자에 놓는데 그곳에 놓여 있던 초가 없어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실낱 같은 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노인은 그 빛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자기 침대에 낯선 사람이 손에 촛불을 들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이 물었다. "댁은 뉘시오?" 그러자 그 이방인은 "죽음이다."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는 "이제 왔군." 하고 말했다. 죽음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노인은 "아니야. 너는 다 끝나지 않은 내 꿈이야."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는 이방인의 손에 있는 촛불을 단숨에 불어 껐다. 그러자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빈 침대에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노인은 그 후로 20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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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살아있는 한 불멸, 영원한 아이" 삶에 대한 통찰은 죽음에 대한 통찰이다. 조르바랑 크눌프가 생각났다. 

 

 p.100~

 "왜 술을 끊었소?" 나는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소, 나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그러자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마치 내가 내게 할당되지 않은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소. 다른 사람에게 할당된 역할을 하면서 인생의 일부를 산다는 것은 아주 좋지 않소. 게다가 과거를 고칠 수 없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힘도 없을 때 그런 사실을 깨닫는 것은 더욱 좋지 않소. 내 말을 알아듣겠소?"

 "그렇소, 이해한다고 생각하오. 내게도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소. 나는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내 다리로 딛고 일어설 수 있었소." 나는 대화의 방향을 바꾸는 동시에 내가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가비에로, 당신은 불멸의 인간이오. 다른 사람들처럼 언젠가 죽는다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소. 그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테니 말이오. 당신은 살아 있는 한 불멸이오. 나는 내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생각하오. 내 인생은 마치 옷을 자른 다음에 남은 조각들을 아무렇게나 이어붙인 것처럼 만들어져 있소.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는 아과르디엔테를 입에 대지 않았고. 나는 더이상 계속해서 나 자신을 기만할 수 없소. 학교 교실에서 당신이 다시 살아나고 병을 이기는 것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분명하게 보았소. 내 실수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알았소."

 "함부르크를 떠났을 때였소?" 나는 이렇게 물으면서 그 동기를 알아보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소. 혹시 당신은 아시오? 중국 소녀와 도망칠 때일 수 있소. 서인도제도를 떠나던 때도 될 수 있소. 나는 모르겠소. 그것 역시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오. 어쨋든 중요하지 않소." 그의 목소리에 불쾌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나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그렇게 멀리 가리라고 기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소." 그가 덧붙였다.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소. 우리가 그런 결론에 도달할 때면, 시작은 중요하지 않소. 시작을 안다고 모든 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니까."

 

 p.443

그는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아직도 그 통증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그를 불시에 덮치고 있었다. 그는 늙는다는 것의 진정한 비극은 저곳, 그러니까 우리 내부에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영원한 아이가 계속 살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비밀은 가비에로가 아라쿠리아레 협곡에 칩거했을 때 아주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그 아이는 늙지 않는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깨어진 꿈과 완고한 희망, 그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시간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혼잡하고 난잡하며 환영적인 정신이라는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육체는 우리의 노화, 즉 누군가가 우리의 삶을 살면서 우리의 기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를 알려주며, 잠시 그런 증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즉시 우리는 더럽혀지지 않은 젊은 시절의 착각으로 돌아가며, 그렇게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마지막 자각의 순간까지 계속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인용구 1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되풀이하라!

 우리의 운명보다 더 나아가라!

 모든 것은 죽음으로 나아갈 뿐이며,

 거기에는 항구가 없다.

 - 쥘 라포르그, "달빛의 사람"

 

 인용구 2

 해야할 일을 하면서

 낚시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낚는다.

 하찮은 피라미를 올린 그물의 첫번째 낚시꾼은

 경솔하게도 질병이라는 바닥의 진흙을 끌어올리고,

 어떤 이는 자신을 위협하는 절망을 향해

 그물을 펼친다.

 그이는 강가에서 쓰라린 회한의 잔해를 모으고 있다.

 - 에밀 베르하렌, "낚시꾼들"

 

AND

 알지만 자신이 없다.

 "세상에 물건이 너무 흔하다." 고 자주 말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말하는 것이데, 실제로는 언제든 그 흔한 물건을 소비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변산에 있을 때, 볼음도에 있을 때, 강릉에서만 생활할 때가 지금 강릉과 정선을 왔다갔다 하면서 살 때보다 심적으로 많이 편했다. 생활 반경(세계)이 넓어지면 어려움도 많은 법이다. 처음으로 다른 동네에 갔을 때, 처음으로 시외버스를 탔을 때,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갔을 때의 기억이 강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절제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 영화 'arrival'을 봤고 이번주엔 이 책을 읽었다. 영화의 결말은 해석에 따라 희망일 수 있지만 나는 '정해진 결론을 향해 가는 인간' 이라는 부정적인 느낌으로 봤다. 나는 절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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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사람들

2017. 2. 18. 20:03

 생활보조금으로 받은 한 달 수입을 거의 다 집세로 내면서도 쫓겨나고 쫓겨나고 또 쫓겨나는 사람들 이야기다. 아래 인용한 부분 말고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Y형은 작년에만 세 번의 이사를 했고(쫓겨난 건 아니지만 엄밀히는 쫓겨난 거다.) 우리집은 먼저 살던 집 주인아줌마한테 전세보증금을 아직 다 못 돌려받았다. 책은 미국 밀워키의 사례를 다루지만 한국에도 비슷한 일이 많겠지.

 자기 집이 없으면 어쨋든 이사를 가야하고 이사 몇 번 다니다보면 그게 싫어서 무리해서 집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런 무리조차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점점 형편이 어려운 쪽으로 나가다보면 밥을 굷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왜 집값을 낮추지 못하나? 왜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나? 이재용 구속에 나라걱정을 왜 하나? 왜 나는 이런일들에 저항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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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식민지의 자유민들이 지구로부터 독립을 이루어낸다.는 간략한 스토리다. 작품 내내 재기발랄한 위트가 넘치고 마지막에는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브라이언 싱어가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이 있다.

 달 세계의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서 옮긴다. 국운이 기울어진 - 인류의 운명도 -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Distrust the obvious, suspect the traditional."

 

p. 458 

 "의원 동지 여러분, 정부란 불과 핵융합처럼 위험한 하인이며 두려운 상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여러분은 다른 어떤 폭군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손에 의해서 더 빨리 이 자유를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좀더 천천히, 더 신중하게 모든 어구가 의미하는 결과를 해석해야 합니다. 저는 이 헌법 제정 위원회가 그러한 연구에 10년 동안 매달린다고 해도 별로 유감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서 보고서를 내놓는다면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불신하고 전통적인 것을 의심하십시오........ 과거 인류는 스스로 정부라는 안장을 얹었을 때 별로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초안 보고서 한 장에서 달 세계를 선거구별로 분할하고 주기적으로 인구에 따라 의원 수를 다시 배분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의심을 받아야 하며, 무죄가 증명될 때까지는 유죄라고 간주해야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내가 다른 방법을 제시해 볼까요? 인간이 사는 장소가 그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덜 중요한 요소임을 틀림없습니다. 선거구는 직업에 따라 유권자를 분할함으로써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는 연령별로.... 심지어 알파벳 순서로도 가능합니다. 또는 유권자를 나누지 말고 모든 의원을 전국구로 선출할 수도 있습니다. 달 세계 전역에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면 당선 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달 세계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여러분은 가장 적은 표를 얻은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기가 없는 사람은 새로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 제안을 거부하지는 마십시오. 무엇이든 천천히 생각해 본 후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선출된 정부가 다른 정부보다 더 나았던 것도 아니며 때로는 명백한 압제자들보다 훨씬 나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의 정치 체제가 여러분의 최종적인 결론이 된다 해도 여전히 선거구를 지역으로 나누는 것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이것을 성취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여러분 각자는 1만 명가량의 주민을 대표합니다. 약 7000명의 유권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소수 거주 구역에서 선출되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선거 대신에 4000명의 시민이 서명한 청원서로 공직에 나갈 자격을 부여받는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그는 4000명의 사람은 확고하게 대표하지만, 반대로 불평하는 소수파는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지역구 내에서 소수파인 사람들도 다른 청원서를 받거나 다른 청원서에 서명하는 것은 자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그들이 선택한 사람을 대표로 세우게 됩니다. 어쩌면 8000명의 지지자를 가진 사람은 이 기구 안에서 두 개의 투표권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해결해야 할 난점, 반발,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럿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의 정치 시스템의 만성적인 병폐를 피하고, 공민권을 박탈당했다고 느끼는(사실 옳은 느낌이지요!) 불만 있는 소수파들이 생겨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과거에 구속받지는 마십시외!

 저는 의회를 양원제로 하자는 제안을 보았습니다. 훌륭합니다. 입법에는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다르는 대신에, 저는 입법가들로 구성된 하나의 기관과, 오로지 법률을 폐지하는 것만을 임무로 삼는 또 하나의 기관으로 나눌 것을 제안합니다. 입법 기관은 정족수의 3분의 2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하게 하고.... 폐지 기관은 3분의 1만 찬성해도 어떤 법이든 폐지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터무니없다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법안이 여러분 가운데 3분의 2의 찬성을 얻을 수 없을 정도라면 쓸모없는 법률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법률이 3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면 그런 법률은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헌법을 작성하는 데 '부정'이라는 훌륭한 미덕에 관해 깊이 생각하길 바랍니다! 부정을 강조합니다! 정부가 영원히 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는 숨낳은 일들로 여러분의 문서를 가득 채우십시오. 병역 징집 없음..... 출판, 언론, 여행, 집회, 종교, 교육, 통신, 직업의 자유에 아무런 사소한 간섭도 없음......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는 어떠한 세금도 없음..... 동지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5년 동안 역사 연구를 하고 여러분의 정부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할 사항들을 여러 가지 생각한 후에 여러분의 헌법을 그렇게 부정으로 가득한 문서로 만든다면 저는 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두려원하는 것은 실행이 요구될 듯한 무언가를 '하도록' 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성실하고 선량한 의도를 지닌 사람들의 확신에 찬 행동입니다. 지구의 달 세계 총독부가 대중의 인기를 얻어 선출된 성실하고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대단히 고귀한 목적을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마십시오. 이제 어의 이러한 생각을 말씀드리고 여러분에게 어려운 산고를 맡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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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절절 옳은데, 옳기만 하다. 읽으면서 인류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어디서(하와이, 덴마크) 살더라도 일단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38p.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 모두, 중대한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인간이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이 근복적으로 바뀐 것이다. 자동차가 인간의 근육을 위축시키고, 교육이 저절로 차오르던 호기심을 질식시켰다. 그 결과 필요와 욕구 모두에 있어 그 선례가 없는 새로운 특성이 생겨났다. 역사상 최초로 인간에게 필요가 상품과 같은 말이 된 것이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대부분 걸어서 가던 시대에 사람들이 제약을 느낄 때는 주로 자유가 구속받을 때였다. 지금처럼 어딜 가더라도 교통수단에 의지하는 시대에는 자유가 아니라 승객의 권리를 요구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운송수단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게 '권리'를 제공하면서 걸을 수 있는 자유는 무시되고 수많은 권리 조항에 가려진다. 평범한 사람의 욕구는 (이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누리는 승객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날 자유를 상상조차 못 하게 되었다. 이 자유는 현대인이 이 현대 세계에서 자신의 두 발로 걸을 자유이다. 


 40p. 첫째는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값싸고 좀 더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길이다. 그래서 그 상품에 더 의존하는 길이다. 또 다른 길은 지금가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필요와 만족 사이의 관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선택은 생산물의 외양만 바꿔서 시장 의존 경제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상품에 대한 의존 그 자체를 낮출 것인가이다. 두 번째 길로 간다면 개인과 공동체 모두 현대에 적합한 도구를 새로 만들기 위해 사회 구조를 다시 상상하고 설계하는 모험이 뒤따를 것이다. 그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직접 만족시키는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50p. 원자력이 에너지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하마처럼 아무리 유해하고 억압적이며 반생산적이라 해도 이런 사회에서 원자력을 포기하겠는가? 군대가 지배하는 사회라면 불만 세력이 자신의 이웃들을 소비에서 빼내고 조직하여 소규모 사용가치 중심의 생산방식으로 일할 자유를 요구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그런 생산방식은 서로가 만족스럽고 즐거운 절제를 해야 가능하다. 


 86p. 지금까지 사용가치의 생산방식과 상품의 생산방식이 서로 대립하여 이루어진 평형상태로 한 사회의 행복을 측정한 것은 없다. 언제나 두 생산방식이 풍요롭게 맞물려 상승 효과를 냈을 때 생겨나는 균형을 통해 측정할 수 있었다. 타율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은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개인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을 향상하고 보완할 수 있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서로 합쳐진 두 생산방식은 사용가치를 만들건 상품을 만들건 애초에 의도한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볼 수 없었다. 주류 환경운동이 이 점을 가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원자로가 위험하기 때문이고 기술 관료만 막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이 에너지 탐욕을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다. 에너지가 정량을 너머 소비되면 사회를 파괴하는 힘으로 전환되어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는 주장은 아직도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60p. 이 시대의 전문가는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람을 처방할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은 무엇이 좋다고 광고할 뿐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선포한다. 전문가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은 고수익도 아니며, 오랫동안 배워야 하는 교육 과정도, 복잡한 기술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아니다. 수익은 적을 수도 있고 대부분이 세금으로 빠질 수도 있다. 수련기간은 몇 년을 몇 주로 압축할 수 있고, 사회적 지위는 전통적 직업보다도 낮을 수 있다. 전문가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을 고객으로 정의하는 권위이며, 그 고객에게 필요를 결정해주는 권위이고,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알려주는 처방을 하는 권위이다. 현대의 전문가는 옛날의 매춘부처럼 돈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팔아야 할 것과 무료로 제공해서는 안 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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