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18. 8. 7. 08:16
34p~
브라운에게는 우리가 단 하루라도 존속하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는 스러지는 시간의 아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쓴다. 겨울의 해는 빛이 얼마나 신속하게 재 속에서 사라지는지, 밤이 얼마나 재빨리 우리를 에워싸는지 보여준다. 한 시간, 한 시간이 계산서에 더해진다. 시간조차도 늙는다. 피라미드, 개선문, 오벨리스크 따위는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만든 탑에 불과하다. 천공의 형상들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것들조차도 영원히 영예를 누릴수는 없다. 니므룻(바빌로니아의 왕으로 사후에 신격화되어 오리온 별자리에 자리했다고 여겨졌다)은 오리온 별자리 속에서 사라졌으며, 오씨리스(고대 이집트의 신으로 씨리우스별로 상징되었다)는 씨리우스별 속에서 사라졌다. 위대한 종족보다 더 오래 산 떡갈나무는 세 그루도 못된다. 어떤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고 해도 기억될 권리를 확보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상의 인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누가 알겠는가. 양귀비 씨앗은 어디서나 꽃을 피우지만,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비참함이 눈처럼 우리 위로 내려오면 우리는 이제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 제발트 번역의 느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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