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이 정말 좋다. 기억해 둔다.

 

 

     연극

 

 이따금 사람들이 술에 너무 취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창작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부자와 가난뱅이 이야기"라는 것이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는 가난뱅이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이다.

 부자가 테이블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가난뱅이가 들어온다.

 - 장작을 다 팼습니다. 나리.

 - 잘했군. 운동은 역시 몸에 좋아. 그래서 자네는 혈색이 좋군. 뺨이 아주 빨개.

 - 손은 꽁꽁 얼었습니다. 나리.

 - 이리 와! 보여주게! 구역질 나도록 지저분하군! 자네 손은 갈라지고 짓물러 터졌어.

 - 동상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나리.

 - 자네 같은 가난뱅이들은 언제나 더러운 병에 걸려 있어. 불결해. 지겹네. 자, 품삯이나 받아가게.

 부자는 가난뱅이에게 담배 한 갑을 던져준다. 가난뱅이는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러나 문가에 서 있던 그는 재떨이를 찾지 못한다. 감히 테이블 가까이로 가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손바닥에 담뱃재를 턴다. 가난뱅이가 빨리 나가주기만을 기다리던 부자는 가난뱅이가 재떨이를 찾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한다. 그러나 가난뱅이는 배가 고프기 때문에 그 집을 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가 말한다.

 - 좋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나리.

 - 청결한 냄새지.

 - 그건 따끈한 수프 냄새입니다요. 저는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 끼니는 제때에 먹어야지. 난 요리사가 휴가중이라서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갈 참이네.

 가난뱅이가 코를 킁킁거린다.

 - 하지만 이건 이 집에서 나는 따끈한 수프 냄새 같습니다.

 부자가 역정을 낸다.

 - 우리집에서는 수프 냄새가 날 리가 없네. 아무도 수프를 끓이고 있지 않아. 아마도 이웃집에서 새어나온 냄새이거나, 아니면 자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착각을 일으킨 걸세! 자네 같은 가난뱅이들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나. 그러니 돈을 모을 수가 없는 거야. 자네들은 번 돈을 수프와 소시지 사는 데 다 써버리지. 돼지와 진배없어. 돼지라구. 이제 우리집 마룻바닥을 자네 담뱃재로 다 더럽힐 셈인가! 여기서 썩 나가.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부자는 문을 열고, 가난뱅이를 발로 걷어찬다. 가난뱅이는 거리로 나가떨어진다.

 부자는 문을 닫고 수프 접시 앞에 앉아 접시를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 주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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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가 읽어줬을 때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10개 중에 표제작이 가장 좋고 그 표제작이 정말정말 좋다.

 

 p.127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로버트는 거의 10년 동안 내가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가끔은 그에게 말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10년이 되었고, 그동안 우리는 유산, 파산지경 그리고 시부모님의 죽음을 지나왔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그의 반응이 아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는 그 사실을 내면화하여 속으로만 삭일 것이다. 그 때문에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도 그는 아마도 내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을테고, 내게서 로버트에 대한 감정을 듣는다고 해도 내게 상처주지 않을 방법만 생각할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 나의 비밀은 무엇일까? 인간은 비밀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모든 예술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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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좋게 읽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예감이란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거의 틀리지 않는 법이다.)


 올해는 이 책을 읽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의 생각에 대해서 쓴 에세이다.



p. 120 ~ 

 그렇게, 분노로 인한 문제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분노를 느낀다. 인생을 포기하면서 그들을 저버리고 배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비이성적인 생각이 또 있을까. 기꺼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자살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별의 아픔을 겪으며 신을 원망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비이성적인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우주를 원망하는데, 사별이 불가피하고 돌이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느낀 감정은 딱히 그런 건 아니었지만, 2008년 가을 내내 나는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무심한 마음으로 신문을 읽었고 티브이 스포츠 경기를 챙겨 보았다. '뉴스'라고 해봤자 어디까지나 버스를 꽉꽉 메운 예의 나태한 승객들, 자기밖에 모르는 그들의 유아론과 무지의 상태를 실어나르는 동력원을 더 확장하고 더 모욕적으로 강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선가 나는 오바마의 당선에 죽자고 신경을 쏟았지만, 다른 세상사에는 일절 관심을 끄다시피 했다. 금융체제가 붕괴되어 불타오를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지만 나에겐 대수롭지 않았다. 돈이 아내를 살려낼 수 없었다면, 돈의 효용가치가 도대체 무엇이며, 또 닥친 화를 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가? 기후 문제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고들 했지만, 내 관심사의 범위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차를 운전해 병원에서 집까지 다녔는데, 철도교가 나타나기 직전의 어느 길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나는 소리 내어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하고 했다. 

 "이건 그냥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바로 '이것', 이토록 거대하고 강렬한 '이것'이 '모든 것'의 이유일 뿐이었다. 그 말엔 어떤 위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말은 가짜 위안에 저항하는 대안이었는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가 다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면 우주 자신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터이니, 우주 따윈 될 대로 되라지.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이 부분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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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하는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을 짊어지고.... 우뭇가사리처럼 입에서 나온 말이 소위 "사랑의 말"인 것이다!!

농사 끝나고 만화책을 꽤 읽었는데, '와카마츠씨는 내 아내'가 그 중 최고다. '하렘 + 타임슬립'인가? 찌질이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할 때마다 미래가 바뀌면서 학교의 퀸카들이 번갈아 가며 주인공의 아내가 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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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 신경림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죽이고 두어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 안도현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더 좋아질 것이다.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다. 말이야 근사하고 기분은 좋지만, 어떻게 더 나아진담? 나 자신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이라면 끝도 없이 생각해 낼 수 있지만(외국어를 배울 수도 있고, 인내심을 더 쌓을 수도 있고, 일을 더 열심히 해도 좋다.) - 조너선 사프란 포어

 내가 자주 들르는 구립 도서관 화장실 출입구에는 환경미화원의 사진과 이름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시간별 임무 일정표가 붙어 있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구립 도서관 화장실 청소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몰상식한 '신상털기'와 임무 일정표는 환경미화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효율을 높이려는 고용주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지, 성과 주체의 자기 착취 열정에서 나온 착상이 아니다. - 한병철 '피로사회'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들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친구,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두렵습니다. 나는 농부들 보기가 두려워요. 무슨 대단하고 고상한 목적이 있기에 저들은 괴로워하는지, 저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만약에 인생의 목적이 쾌락에 있다면 저들은 불필요한 여분의 인간들입니다. 만약에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가난과 절대적인 무지 속에 있는 것이라면 이런 가혹한 심판이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 안톤 체홉 '공포'

 

 과거 공동체가 상호 평등한 호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공동체는 그 속에서 생활해 보지 않은 이상주의자의 바람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 石基

 

 대체로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비가 내리면 홍수를 걱정하고 날이 개면 한발 가뭄이 온다고 탄식하는 소인의 길. 둘째, 맑은 날은 일하고 비가 내리면 책을 읽으며 마음의 귀에 따르는 대인의 길. 셋째, 비가 와도 좋고 날이 맑아도 좋다. 구름 위는 푸른 하늘, 개나 흐리나 푸른 하늘과 함께 웃는 초인의 길. - 가와구치 요시카즈

 

 팔램프세스트(흔적 위에 덧쓰기)적인 거. 낡아가고 때 묻고 낙서가 되면서 천천히 마멸되어가는 물건에만 의미가 깃든다. 인간이 그런 물건이기 때문이다. - 류철균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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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한오라기의 혁명

2013. 4. 2. 20:48

 볍씨를 점토 단자로 만들어 뿌려둡니다. ~ 씨앗을 겨울 전에 뿌릴 때는 씨앗 그대로는 쥐나 새들이 먹어버리거나 썩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점토단자를 만들어 뿌립니다. 점토단자는 점토, 곧 진흙에 씨앗을 넣고 섞은 뒤에 물을 붓고 휘저어 섞은 후 철망 사이로 밀어내서 한나절 건조시켜 1센티미터 크기의 알맹이로 만듭니다. 또다른 방법의 하나는 물에 담가 축축해진 씨앗에 진흙 가루를 뿌리면서 회전시켜서 단자를 만드는 방법이지요.

 진드기나 개각충 따위라면 역시 옛날부터 권위를 인정받아온 유황합제나 머신유 정도로 충분하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천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사실상 해충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유황합제나 머신유 정도의 약은 소비자들이 지금처럼 외관이 좋은 과일을 바라는 한 그만두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농약은 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농업에서도 다만 확대가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면적에서 즐겁게 농사를 지으며 물질생활이나 식생활은 가장 간소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도 즐겁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아집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 농부가 농업 규모를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물심양면으로 고달파지며 결국 정신생활과 멀어집니다. 그리스도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신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란 마음이 소박한 사람을 일컫는데......

 성장률이 0%가 되면 왜 나쁩니까? 그것이 오히려 확고부동한 경제가 아닐까요?

 

 경영내용이 뛰어난 농가의 논밭은 작물의 생육상태는 물론 그 주변이 아름답다. 풀숲이 가지런히 잘려져 있고, 쓰레기가 널려 있지 않다. 고유의 미의식인 청정미가 넘친다. 그리고 사람도 아름답고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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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 - 박준

2013. 3. 25. 20:26

     꾀병                           - 박준 -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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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날개'같다. 신문 기사에서 우연히 읽었다. 많이 좋았다. 83년생인 시인이 부러웠다. 아내가 말했다. 83년 생도 그렇게 어린게 아냐. 서른 넘었을 걸? 내가 말했다. 맞다 우리가 늙었구나. 지후 무릎에 누워서 당신 얼굴에 들어오는 볕을 만지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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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이다. 친구 하나가 이걸 읽고 비건이 됐다. 대단한 일이다. 그 친구는 간식으로 생라면을 스프 없이 먹는다. 달걀이 들어간 부침개 종류는 먹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친구는 비건이 되고 담배가 늘었다. 하긴 원래도 많이 피웠다. 그 친구는 자신이 게으르기 때문에 야채를 직접 재배해서 먹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단한 일이다.

 

 "그게 코셔가 아니라서 안 드신 거예요?"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먹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안 드셨단 말이에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

 

 

  제가 어떤 회사의 로고를 오용했다면, 감옥에 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어떤 회사가 10억 마리 새들을 학대한다면, 법은 그 새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를 보호해준단 말이에요. 동물의 권리를 부인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거예요. 동물의 권리라는 개념이 누군가한테는 미친 소리로 들리다는 것이야말로 미친 거예요. 우리는 동물을 나무토막처럼 다루는 것이 정상이고, 동물을 동물답게 다루는 것이 극단적인 행동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미성년자 노동법이 생기기 이전에도 열 살짜리 노동자들한테 잘해 주는 업체들이 있었지요. 사회가 미성년자 노동을 금지한 이유는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해서가 아니라, 힘없는 개인들을 지배할 힘을 기업체에 너무 많이 주면 사회가 부패하기 때문이에요. 동물이 고통 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보다 우리가 동물을 먹을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사회가 썩어들어가는 거예요. 

 

 

 문제는 그 녀석들 유전자에 있다니까, 요즘 대량 생산하는 칠면조 축산업을 계획할 때, 실험한답시고 칠면조 수천 마리를 죽여요. 다리를 더 짧게 해야 하나, 아니면 가슴뼈를 더 짧게 해야 하나?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자연 상태에서 종종 인간의 아기들이 기형으로 태어날 때가 있지요. 하지만 대를 이어 죽 그런 기형을 낳으려고 하지는 않소. 그런데 칠면조들한테는 바로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오늘 강화읍에 갔었다. 장날이었다. 토종닭 세 마리를 많원에 파는 트럭을 두 대 봤다. 닭 파는 아저씨가 할머니 한분에게 설명했다. "원래 이 닭이 하루에 알을 두 개 낳아야 하는데, 한 개만 낳으면 잡아서 팔러 가져오는 거예요. 얼마나 맛있는지는 드셔 보시면 알아."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많이 무시무시했다. 결국 그 닭은 산란용 폐계일 뿐이다.

 친구는 비건이 됐는데, 나는 어떻게 할까? 콜라랑 생크림 먹고 싶다.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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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으로 완독했다. 이제 하루키 작품도 꽤 읽었다.

 줄거리 - 내 친구는 자살하고 나는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고, 그녀는 마음이 아프고, 미도리란 여인은 나를 좋아하는데,

 친구의 애인이 자살을 하고 나는 그녀의 친구와 섹스를 한 후 애타게 미도리를 찾는다.

 이미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중에 책의 앞쪽에 나오는 기숙사 생활과 겹치는 것이 있어서 읽다가 지치지 않고 주파했다. 읽는 내내 편지를 잘 쓰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이 작품이 야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대유행했던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야하다.

 격렬했던 민주화 운동의 시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그 후에 밀려든 것이 운동의 한복판에서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야한 이야기인가? 유행이 괜히 오는 것은 아니니까.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다.

 가볍게 읽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 멍해졌다.

 기억해 둔다.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할 것이 많이 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 세상에서 미도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미도리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둘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다. 고 말했다.
 미도리는 한동안 전화 저편에서 잠자코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잔디밭에 온통 이슬비가 내리고 있는 듯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사이에 계속 유리 창에 이마를 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잡은 채 고개를 들어, 전화 박스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나는 그곳이 어디인 지 알 수 없었다. 짐작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이라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디도 아닌 장소의 한복판에서 미도리를 불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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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게 읽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어도 자꾸 상기하거나 상기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그 생각이란 것은 현재의 생활속에 묻혀 버리게 마련이다. 좋은 시점에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변산공동체 생각이 많이 났다.

 

 

 초반에 확 쏠렸던 대목

 34p~ 지치고 더워하는 말에게 땀에 절은 마구를 벗겨 주는 게 특별히 주목할 일은 아닐 것이다. 찬비를 맞으며 바깥에 서 있는 양에게 외양간 문을 열어 주는 것, 닭에게 모이 몇 알을 던져 주는 것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자기 안에 쌓이면,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신문에서나 보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정말 중요한 존재는 아닐지 모르지만,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자기가 하는 일을 누가 썩 잘 알아주거나 관심을 가져 주는 건 아니지만,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속으로 좋은 느낌을 갖고 있으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유명해지면 농사지어서 먹고 살기가 편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뜨끔했다. 중요한 건 내 몸뚱이와 내 마음.

 

 생각의 큰 틀은 비슷하더라도 실제 농업에 있어서는 한국식의 내가 사는 지역식의 우리식의 응용이 필요하다.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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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서 예전에 서점에서 찍어뒀다. 

사람들이 꿈과 함께 살고 있다. 생시에서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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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30 - 빈집에 깃들다

2012. 6. 30. 16:45

 6월 마지막 주,

 

 '빈집에 깃들다'를 읽었다. 기록은 중요하다.

 그리고 농사를 시작하면 일년은 까 먹는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돈이 있어야 한다.

 

 이번주에는 밭에서 일했다. 다음주부터는 새직장에 나간다. 동네 분들이 잘 생각했다고 지금 월급(최저임금)으로는 살 수가 없다고 하셨다. 저번에 형우가 말하길 어차피 직장은 스트레스 투성이기 때문에 돈 많이 주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었다. 뭐가 됐든 돈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직장을 옮겼다. 쉬는 날 없이 바로 이어지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됐다. 이제는 혼자도 아니고 앞으로 내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세상을 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김 선생님이 여주로 떠났다. 환송식도 없이 쓸쓸하게 떠났다. 수요일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강화에 와서 빚만 지고 떠나신다고 했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가족들과 근처에 있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겠다고도 했다. 역시나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 뿐이다. 내 영농이 정착될때까지는 아무도 믿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농부성'에 놀러가서 사장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단순히 농소득 1,000만원이 목표인 것이라면 서도면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강화본토에서 고구마, 쑥, 콩을 재배하는 것이 좋을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목표는 그것보다는 복잡하다. 그래봐야. 많이 복잡할 것도 없다만  

 

 유기농기능사 실기 합격 문자를 받았다. 종자기능사 필기 시험 접수했다. 영농 관련 자격증은 계속 도전해서 따 두려고 한다.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지게차 실기도 다시 도전해 볼까?

 

 목요일에 밭에서 일하다가 등단 시인을 만났다. 밭에 심은 토란과 후추를 자랑하셨다. 올해 나온 시집에 사인을 해서 주셨다. 후추는 처음봤다. 텃밭에 재배할 목록에 후추를 추가했다. 기후만 맞고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텃밭에 못 심을 것은 없다.

 

 다음주부터는 강화도 생활의 제 2기가 시작된다.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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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 김수영

2011. 11. 27. 20:16
 눈     - 김수영 -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AND

 돈은 필요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 최소한의 돈을 얻기 위해 아무 일이나 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실처럼 믿기지 않는 상황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부부는 얼굴 대하기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한 명은 밤에 일하고 다른 한 명은 낮에 일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쉼 없이 뛰어다니는 여자들을, 일하고 장 보고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겼다가 다시 데리러 가기 위해 뛰어다니는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 안 어디에 삶이 있는 걸까요? 삶은 인간의 품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는 자주 오아시스를 떠올렸습니다. 그곳이 그리웠습니다. 내가 사막에 남았다고 해서 더 많은 운이 따랐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가난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아시스에 사는 사람들은 회사 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처럼 인간성을 상실하지는 않았습니다.


 -> 아이폰 사진 정리하다가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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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011. 8. 23. 11:19

 쑥쑥 읽혔고 많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다만 하루키의 문장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없었는데, 이 부분은 기억해두고 싶다.


  그리고 그는 또 알고 있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들 속에는 자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딸들이 가령 우시카와를 잊어버린다해도, 그 피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다. 피는 아마도 오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쿠스케 머리의 징표는 앞으로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때 사람들은 우시카와의 존재를 한숨과 함께 기억해낼 터였다.
 그같은 분출의 현장을 우시카와는 살아서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괜찮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시카와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복수심이 아니다. 이 세계의 구성 요소에 자신이 피할 수 없이 포함되어 있다는 인식이 가져다주는 일종의 충족감이다. 



 
 
피할 수 없이 = 어쩔 수 없이

 작가는 이런글을 쓴다. 부럽다.

AND

저 끝의 공장으로부터
푸른 곰팡이가 쏟아지듯이
포자처럼 집으로 간다 하아하아
입김이 서린 하늘은 차갑도록 하아하아
무사한 하루도 좋다 무사할 내일도 좋다
포장마차나 함바집엔 고기굽는 냄새가 새어나오고
뱉어내었던 작업장 굴뚝이 마냥 하늘로 올라
시장통이나 한 번 뒤적이며 생선의 푸른 등을 찔러본다
장난감 가게의 불은 구멍뚫린 주머니처럼
할 수 없거나 잃어버리거나 없는 것은 그 불처럼
빛나라 시시덕이는 여인네의 짧은 치마
분칠한 얼굴이 고와 입맛 한 번 다셔도 보고
가래침 타악탁 뱉으며 자꾸만 만지작 거리는 인형은
작고 예쁜 집에 잘도 사는구나 양과자 가득
쌓인 과자가게를 지나 정육점 두어근의 돼지고기
빠알갛게 코로 들이치는 바람 무사할 내일 이야기
달랑이며 잠시 실내포장마차 훈기어린 순대국에 낱잔 소주
곁들이었다 지칠 때까지 익힌 그 순대같은 이야기
푸욱 퍼져 달랑이는 모든 것을 꿰어 들고
검정비닐봉지 우리 집에 간다 집으로 간다
아무 할 말 없이
포자처럼 부유하는
푸른 곰팡이
멍이 든다

AND

어둠의 왼손 - 르 귄 -

2011. 7. 4. 09:09

012


 
 몇 년만에 다시 읽었는데, 예전 읽었을 때 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그렇지만 르 귄은 <르 귄>


 
 이 부분만이라도 영문판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17장. 오르고린 창조신화
 


 평론가들은 페미니즘 SF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보내지만 나는 르 귄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통찰력이 좋다. 

 어제는 무척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활자들을 쭉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당신이랑 함께라서 좋았다.

AND

바다의 기별 - 김훈

2011. 4. 22. 23:04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바쇼의 하이쿠다. 이걸 읽고 '바다의 기별'의 서문이 읽고 싶어졌다. 미친듯이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누구도 올려놓질 않았다. 결국 오늘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마침 30% 할인 중이었다. 우리 인생은 '마침'이라는 부사가 어울리는 이런식의 우연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의 기별의 서문은 시장에서 닭발 천 원어치를 사는 아이, 어두운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등장하고 강가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로 이어진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자전거를 타는 아이 부분이다.


 바쇼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렇게나 읽고 싶었는데, 읽자마자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외로웠는데, 
 
 타이밍을 놓쳐서인지 막상 읽을때는 덤덤했다. 이제 막 이별한 연인이 비를 맞아 떨어진 벚꽃잎들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바람에 괜히 책만 한 권 늘어났다.
AND

강가에서 - 김수영

2011. 4. 16. 00:52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 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 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셔츠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1964년-

 
AND

 이번 설 연휴에 3100만명이 귀성길에 오른다고 한다. 해외로 놀러가는 사람들은 58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이니까 어림잡아 60%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이다. 귀성길에 오른 3100만명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숫자일거다.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몇 해 전에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명절 연휴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공원 매점 앞, 파라솔 아래에 두 사람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국물이 있는 것을 마주 앉은 어린이는 짜장(자장)을 앞에 두고 있다. 테이블에는 김밥도 두 줄 놓여있고, 여자는 이미 한 캔의 맥주를 비우고 두 캔째를 시작했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는 한 올 한 올 면발을 집어 먹는데, 여자는 보란듯이 김밥을 라면 국물에 찍어서 아귀아귀 씹어 먹고는 맥주를 들이킨다. 두 사람은 한 마디 말도 섞지 않는다.

 담배 한 대가 타들어 가는 동안 특별할지도 모를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다가 애인과 함께 그들을 뒤로했더랬다.

 설 쇠러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 얼굴을 보니까 참 좋다.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로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였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히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례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 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히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펏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正月)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뺄뺼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AND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he infinite sky is motionless overhead and the restless water is boisterous.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the children meet with shouts and dances.
 
They build their houses with sand, and they play with empty shells. With withered leaves they weave their boats and smilingly float them on the vast deep. Children have their play on the seashore of worlds.
 
They know not how to swim, they know not how to cast nets. Pearl-fishers dive for pearls, merchants sail in their ships, while children gather pebbles and scatter them again. They seek not for hidden treasures, they know not how to cast nets.
 
The sea surges up with laughter, and pale gleams the smile of the sea-beach. Death-dealing waves sing meaningless ballads to the children, even like a mother while rocking her baby's cradle. The sea plays with children, and pale gleams the smile of the sea-beach.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Tempest roams in the pathless sky, ships are wrecked in the trackless water, death is abroad and children play.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is the great meeting of children.


 타고르의 시들 중에 유독 이 작품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민음사 버전을 읽었었는데, 새로 산 열린책들 버전의 번역은 영 느낌이 살지 않는다. 여튼 멋진시다. 'On the seashore at the end of the world'로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릉에 와서 아직 바다엘 못 갔다. 크리스마스 전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어느 바다에 가야 saeshore of endless worlds의 느낌이 날까나.....



 

AND

백의 그림자 - 황정은

2010. 11. 8. 19:56
짧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정말 오랜만에 국내 작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평론가 신형철의 한 문장 정리가 매우 적절하다.

이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절(節)로 된 장시(長詩)다.

무재 씨, 춥네요.
가만히 서 있어서 그래요.
죽겠다.
죽겠다니요.
그냥 죽겠다고요.
입버릇인가요.
죽을 것 같으니까요.
무재 씨가 소매로 풀 즙을 닦아 내고 똑바로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죽을까요?
여기서, 라고 너무도 고요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겁을 먹었다. 새삼스럽게 무재 씨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엔 좀 헝클어진 듯 부풀어 있던 머리털이 빗물에 젖어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
네.
그러면 계속 걷죠, 라면서 앞서 걷는 무재 씨를 따라서 걸었다. 눈물이 솟았다. 무재 씨처럼 매정한 사람은 먼저 가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나대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 숲에서, 그림자마저 일어난 처지에 그럴 수도 없었서 눈을 닦으며 걸었다.
울어요?
울지 않는데요.
이런 대화를 나누며 걷는 동안 공기가 문득 가벼워졌다. 무재 씨가 멈춰 서서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비가 멈췄네요.
네.
껌 씹을래요?
네.                                        -12page-

나는 이런식의 대화가 좋다. 사람들은 멋들어지고 긴 말들보다는 짧은 얘기들을 나누게 마련이다. 그것이 연인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사람들의 대화는 보통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씨'는 의존명사라 띄어써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제 나한테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작가의 필치를 따라서 써보면 이렇다.


아무래도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AND

 이 작품은 '어둠의 왼손'(1969년)과 '빼앗긴 자들'(1974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이다. 세 작품을 묶어서 르 귄의 유토피아 삼부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최고 전성기에 쓰여진 작품답게 거대한 주제를 아름답게 다루고 있다. 모든면에서 중앙(중도)의 상태에 있는 자는 꿈을 꾸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싶은 야심가는 꿈 꾸는 자의 꿈을 이용한다.는 줄거리다.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목적이 바로..... 뭔가를 하고 뭔가를 바꾸고, 뭔가를 다스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의 목적이 뭐죠?"  "모르겠어요. 사물은 목적이 없어요, 우주가 마치 하나의 기계인 것처럼 거기서 모든 부분이 유용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일 뿐이죠. 은하계의 기능이 뭘까요? 우리의 삶이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고 그것이 중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의 부분이라는 것이죠. 피륙 속에 실 한 가닥이나 들판에 풀잎처럼요. 그것도 일부분이고 우리도 일부분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은 풀밭에 부는 바람 같은 거라고요."  ~~~  "당신은 유대 기독교 합리주의의 서구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는 독특하게 수동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네요. 일종의 타고난 불교 신자로군요. 동양의 신비주의를 공부해 본 적이 있나요, 조지?"     130p


 적의 없고 증오 없는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할까? 그녀는 의아해했다. 우주에 결코 심술궂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악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면서도 전혀 그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물론 존재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순수한 동정심에 운명의 물레로 돌아왔던 사람들, 그들이 그 길을 따른다는 것도 모르는 채 따를 수 없는 길을 따르는 사람들, 앨라배마에 소작농의 아내와 티베트 라마승과 페루의 곤충학자와 오데사의 목공과 런던의 채소 상인과 나이지리아의 염소 치기와 오스트레일리아 어디쯤 메마른 강바닥 옆에서 지팡이를 깎고 있는 늙고늙은 노인과 다른 모든 이들. 우리는 모두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들은 충분히 많다, 우리가 계속 나아가도록 할 만큼 충분히. 아마도.     157p


 에~ 그러니까~ 그렇다~

AND

절연/이병률

2010. 3. 9. 10:23

절연   - 이병률 -

어딘가를 향하는 내 눈을 믿지 마오
흘기는 눈이더라도 마음 아파 마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뒤를 볼 수도 없으니
당신도 전생엔 그러하였으므로
내 눈은 폭포만 보나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소리이긴 하나
손끝으로 글자를 알기는 하나
점이어서 비참하다는 것
묶지 않은 채로 꿰맨 것이 마음이려니
잘못 얼어 밉게 녹는 것이 마음이려니

눈 감아도 보이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한 번 보았기 때문
심장에 담았기 때문
눈에 서리가 내려도 시리지 않으며
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은
볼 걸 다 보아 눈을 어디다 묻었다는 것

지독히 전생을 사랑한 이들이
다음 생에 앞을 못 본다 믿으니
그렇게라도 영혼을 씻어야 다음 생은 괜찮아진다 믿나니

많이 오해함으로써 아름다우니

딱하다 안타깝다 마오
한 식경쯤이라도 눈을 뜨고 봐야 삶은 그저 진할 뿐
그저 나는 나대로 살 터 당신은 당신대로 잘살기를
내 눈이 허락하는 반경 내에서 연(緣)은 단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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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천양희

2010. 1. 4. 11:55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굉장히 좋아하는 시인데, 포스팅을 안했길래 올린다.
나이 먹을 수록 기억을 바탕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유덕화는 여전히 젊어 보이지만 '열혈남아'는 20년도 넘은 영화가 되버렸다.
나는 적어도 20년을 넘게 살았다.
생이 직선으로 간다는 건 어떤건지 생각해 본다.
너무 뒤만 보지는 말아야겠다.
AND

 해가 뜬 맑은 날이었다. 코지모 형은 나무 위에서 큰 그릇을 들고 비눗방울을 만들어 방 안으로, 환자의 침대 쪽으로 불었다. 엄마는 방 안에 가득 날아다니는 그 무지갯빛 방울을 보고 말했다. "오, 너희들 무슨 장난을 하는 거니!" 우리가 어린아이였고, 언제나 쓸데없고 유치하기만 하던 놀이를 엄마가 금지하던 그 옛날 같았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도 아마 처음으로 우리의 놀이가 즐거우셨을 것이다. 비눗방울이 엄마의 얼굴에까지 내려앉자 엄마는 후 하고 불어 방울을 터뜨렸고 웃으셨다. 방울 하나가 엄마의 입술 위까지 날아갔는데 터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엄마에게 몸을 숙였다. 코지모 형은 그릇을 떨어뜨렸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AND

20091024 - 여러가지

2009. 10. 24. 22:56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 심보선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애인과 나 손 꼭 잡고 통장을 만들었네
등 뒤에서 유리문의 날개가 펄럭거리네
은행은 날아가지 않고 정주하고 있다네
애인과 나는 흐뭇하다네
꿈은 모양이 다양하다네
우리는 낄낄대며 담배를 나눠 갖네
은행의 예절은 금연 하나뿐이라네
어쩐지 세상에 대한 장난으로
사랑을 하는 것 같네 사랑 사랑 사랑
이라고 중얼대며 은행을 나서네
유리문의 날개에는 깃털이 없다네
문밖에서 불을 붙여주며
애인은 아직도 낄낄거리네
우리는 이제부터 미래에 속한다고
미래 속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애인이 나에게 가르쳐주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아프네
금방 머리 위로 파산한 새가 날아갔네
후드드득
깃털 같은 빗방울들이 떨어지네
어느 날 우리는 많은 돈을 갖겠네


오늘 친구 하나가 결혼을 했다. 그 친구는 작년까지 자동차 영업을 하다가 올해는 보험 영업을 하는데,
그 소식을 오늘 접한 친구 하나가 얼른 돈 벌어서 보험 들어줘야 겠다고 한다.(그 친구에게 요새 뭐하냐고 물으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 놀지 뭐 해. 라고 한다. ㅡ.ㅡ; 오늘 만났던 후배 하나도 너무 자연스럽게 같은 얘기를 했는데 ㅡ.ㅡ;;) 그러면서 자기 보험 든 것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친구에게 보험 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 라고 물으니 당연히 있다고 한다. 하긴 나는 그런 마음도 없는데, 세 개의 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어머니 때문인데, 가장 최근에 보험 가입했을 때, 저항하지 못했던 내가 밉다.

보험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 때문에 드는 것인데, 나는 현재조차 불확실하기 때문에 보험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머니는 너무도 재정적으로 불확실한 현재 때문에 자꾸만 보험 들어 놓으면 좋다고 반복해서 내게 말씀하시나 보다. 재정적으로 불확실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보험 산업이 잘 되나보다.

오늘 결혼한 친구는 이제 미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일까?
보험회사 명부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나는 이미 미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일까? 

돈이 제시하는 꿈들은 다양하고, 파산한 새가 떨군 깃털 같은 빗방울들이 돈이 되어 우리들에게 떨어지는 날을 기대한다는 시다.

K군, 잘 살아라~~

AND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게 됐다. 집안의 반응이 무척 좋다. 그렇지만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더군다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는 이런 대목을 읽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비개성화된 평등이라는 이상을 설교 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대집단 속에서 마찰 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량 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표준화를 평등이라고 한다. ...중략.... 개인은 세, 네살 때 일치의 유형으로 유도되고 따라서 군중과의 접촉이 끊기지 않는다. 개인의 장례식 조차도 - 개인은 그의 마지막 사회적 대사건으로서 장례식을 기대하고 있다 - 이러한 유형과 엄밀하게 일치되어 있다.
 분리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의 일치와 함께 현대 생활의 다른 요인, 곧 일상적인 노동과 일상적인 오락의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평균화되고 노동력 또는 사무원이나 관리자의 관료적 힘의 일부가 된다. 그는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그가 하는 일은 이 일을 관리하는조직에 의해 지시된다. 계급의 높고 낮음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조직의 전체적 구조에 의해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지시 받고 있다. 쾌활함, 믿음직함, 모든 사람들과 마찰 없이 지내는 능력까지도. 오락도 비록 격렬한 방법으로는 아니더라도 역시 상투적인 것으로 된다. 책은 독서 클럽에 의해 선택되고 영화는 필름이나 극장의 소유자에 의해 선택되고 광고의 스로우건도 그들로부터 지불을 받는다. 휴식 역시 일정하다. 곧 일요일의 드라이브, 텔레비젼의 연속물, 크다놀이, 사교파티 등이 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그는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고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

내일부터 금요일이 마감인 문서작업을 정해진 방식으로 해야하고 중간중간 책도 읽고 영화도 한 편쯤 볼 수 있을 것이며, 퇴근후에는 거의 텔레비전을 보게 될 것이지만 희망, 정말, 슬픔,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을 갖고 살아야겠다.

예의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관료적 힘안에 일단은 들어가 보자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대목을 읽고 뼛속까지 무언가를 느끼는 내가, 6월까지 농촌에서 지냈던 내가 청년인턴이 되어서 일을 한다니 많이 한심한 것도 사실이다. 

지후가 내 힘이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한 '내 힘' 때문에 지난주에 조금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후가 내 힘이다.

에리히 프롬은 50년 전에 이런걸 썼다. 표준화된 인간들 중에서 특이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 요즘 초식남이 유행인 것 같다. 프롬의 말에 의하면 초식남의 취미들도 일정하고 기성품화 되어 있는 상품속에 있다.

그냥 쭉쭉 건너 뛰면 결국 문제는 '매체'라는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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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변산에 내려와서 읽게 되었다. 정말 훌륭한 분이시고 두고두고 읽고 싶은 훌륭한 책이다. 아주 인상적인 부분을 통으로 옮겨 본다. '영원히 부끄러울 전쟁' 이라는 산문의 일부분이다.

아무것도 감춰진 것이 없어 차라리 전쟁은 인간의 가장 정직한 행동을 그래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연극일지 모른다.

전쟁만 없고 폭격만 없었다면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신문 연재소설에서 시장 바닥에서 파는 삼류 대중 잡지까지 닥치는 대로 읽고 있었다. 내 소년 시절은 눈과 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였다. 완전히 잡식동물이 되었던 것이다.

음식도 그렇다. 요즘도 누가 뭘 먹고 싶은 것이 없느냐고 물으면 언뜻 대답을 못한다. 음식에 대한 미각도 어릴 때부터 길들여져야 하는데 나는 병을 앓으면서도 절대 음식투정을 해보지 못했다. 무엇이나 그게 그런 맛으로 먹을 뿐이다. 입는 옷도 그렇고 잠자리도 아무데나 쭈그리고 누우면 잠이 든다.

<양철북>이란 영화의 주인공 소년 오스카는 성장을 거부하면서 어른들의 작태를 계속 주시하는데, 나는 일찍 체념한 탓인지 쓰레기장에서 그 쓰레기처럼 함께 묻혀 사는 쪽이 더 편했다. 오히려 깨끗한 것이 불편하고 싫다. 깨끗한 것이란 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고 불신해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지난 날 어두웠던 그림들이 끝도 없이 스치고 간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좁은 골목길에 모여 살던 사람들, 세상에 빈민이란 말만큼 성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쳐다본다.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빈민들이 살던 골목길엔 국경도 없고 인종 차별도 없다.

찐동야(광대)집 딸이었던 하나코 누나와 시장 모퉁이 삼류 영화관에 가는 즐거움, 빈터에서 어둡도록 숨바꼭질 하면서 놀던 애들, 오시카사마 신사에 축제가 있는 날은 야시장도 함께 열린다. 온 동네 애들이 몰려가서 공짜로 모든 것을 구경했다. 꽃밭처럼 환한 칸델라 불빛과 거기 펼쳐놓고 파는 물건들, 1전씩만 가지고 가면 대나무로 만든 딱총 하나씩은 살 수 있다. 누나들은 밤 12시가 넘도록 기다렸다가 군고구마를 떨이로 사온다.

전쟁만 없었고 폭격만 없었으면 가난한 그 동네에 평생을 살아도 좋았을 게다.

가끔은 나도 변산공동체에서 평생을 살아도 좋았을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이 대목이 가장 내 마음에 끌렸던 것은 단지 변산에 내려온 이후에 잘 씻지도 않고 살면서도 행복한 내 마음을 권 선생님의 마음과 비슷한 것으로 미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이됐든 간에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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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즙 - 정양

2009. 6. 2. 18:03
초여름 산길에서 풀 뜯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내 또래쯤 되는 것 같다
백초즙(百草汁)을 담그려고 풀을 뜯는다고 한다

콩알 백 개 헤아려 품에 넣고
풀 한 무더기 뜯을 때마다 쉼표처럼
콩알 하나씩 그 자리에 놓으면서
품안에 콩알 다 없어질 때까지
아무 풀이나 보이는 대로 뜯는다는데

풀 한 가지에 한 소쿠리식 백 소쿠리를
항아리에 삭혀 우려낸 그 백초즙이
묵은 해소도 가슴애피도 소갈증도
몰매 맞은 삭신도 다 풀려버리는
명약 중의 명약이라는데
이렇게 아무 풀이나 뜯다가
독초라도 섞이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못난 사람 못된 사람 다 소용 닿듯이
맛만 보아도 대번에 숨이 넘어가는
소문난 독초들이 섞여야 더 약이 된다며
나를 돌아보며 확인하듯 할머니는
두어 번이나 고개를 끄덕인다

못난 풀 못된 풀 모진 풀
짓밟아도 뜯어내도 다시 돋는
모질고 모진 꿈들아

할어미의 풀짐을 메고 화끈거리며
할머니의 굽은 등을 따라간다
못난 풀 못된 풀 다 소용에 닿는,
아무 풀이든 한 데 섞이어
명약이 되는 그 이치가 풀짐보다 더 무겁다


서울에 잠깐 올라와서 '변산에서' 태그를 쓰자니 좀 거시기하다.
정양 시인 고향이 김제여서 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를 읽다보면 변산쪽이랑 왠지 통하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공동체에서는 희정이 형이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서 특별한 일이 없는한 온종일 백초효소를 담그기 위해서 풀을 뜯는다.
오늘 엄마한테 잠깐 다녀왔는데, 피부가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아마 먹는 것이 좋아서 그런것 같다고 했다.
백초즙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백초효소를 거의 매일 마셔서 그런것 같다.
시의 마지막 연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데, 백초즙을 만드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시집을 변산에 두고 두고두고 읽고 있는 시 중에 한 편이다.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 읽으니 못난 사람 못된 사람이 다 소용 닿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마을 공동체의 모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못된 사람은 싫고 못난 사람으로 소용이 닿고 싶다. 일테면 경운기 운전도 서투르고 밭일도 남들보다 잘 못 하더라도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할 때나 단순히 힘쓰는 일이 있을 때, 내가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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