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 김훈

2023. 6. 5. 17:22

그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었고 지금도 이름이 없다.
늙은 어부들은 생선 내장을 던져주며 갈매기들을 달랬고, 섬을 향해 고사를 지냈다. 그 어부들은 모두 죽고 없다.
폭격은 마을을 부수면서 들판을 건너갔고 다시 다가왔다. 사람들은 똥을 누다 죽었고 물을 긷다 죽었고 죽은 자를 붙잡고 울다가 죽었다.
전쟁을 살아낸 노인들은 전쟁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로 죽었다.

시간이 겨드랑이에 들러붙어 있었다.
검은 핏줄이 피로해 보였다. 그가 대패로 밀어낸 나뭇결들의 질감이 그 근육 속에 기억되어 있을 것이었다.
이혼율이 해마다 늘어난다는 통계 숫자를 신문에서 읽으면서 나는 나의 생애가 숫자 속에 매몰되기를 바랐다.

오개남 역시 식당이나 동사무소에서 젊은 직원들에게 '아버님'이라는 남데없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일 터인데, '아버님'이라는 말은 아무런 경로심을 포함하지 않는, 무인칭의 늙은이를 부르는 호칭이라는 것을 오개남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때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은희의 온도를 사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은희 쪽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유사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인간의 역사는 9급 시험 문제로 출제되기 위해서 전개되는 것 같았다.
겨울을 겨우 넘긴 마장면 노인들은 봄에 죽었다. 겨울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겨울을 다 견디고 나면 봄에 죽는 것이라고, 안 죽은 노인들은 말했다.

 

-> 오랜만에 김훈을 읽는다. 인생의 큰 곡절이 지나고 나서 예전을 되돌아 보는 작품들이 실려있다. 데이케어센터에서는 센터 이용하는 사람들을 다 '어르신'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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