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 박소란

2022. 12. 21. 11:44

다음에
                        ㅡ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 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
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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