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없이 골랐는데, 재미있었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교감, 사람과 시대를 잇는 것에 관한 얘기다. 1부는 물건 - 20세기 초반의 자동차 - 에 관한 생각이 좋았고 2부 초반에 갑자기 재미 없어지면서 이건 뭐지 했는데, 부검이 시작되면서 모든 실타래가 풀렸다. 3부는 초반에 아내가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고 전개가 빨라서 쑥 읽힌다. 이 작가의 다른 것도 읽어봐야겠다.

 

 1부

 
이건 최신품인 4기통 르노란다, 기술이 만든 걸작이지. 이걸 봐라! 이 차는 이성의 힘으로 빛날 뿐 아니라 시의 매력으로 노래하는 창조물이야. 우리 도시를 그토록 더럽히는 동물은 없애버리자고! 자동차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말이 그걸 이길 수 있겠니? 힘도 비교가 되지 않아. 이 르노는 14마력 엔진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격하게 산정한 결과란다. 실제로는 아마 20마력은 출력해낼 거야. 그리고 기계의 마력은 동물의 마력보다 훨씬 강력하단다. 말 서른 필이 마차를 끄는 것을 상상해봐라. 말 서른 필이 두 줄로 서서 발을 구르고 안달하는 광경이 그려지니? 흠, 상상할 필요는 없겠구나, 여기 네 눈앞에 떡하니 있으니까. 말 서른 필이 금속 상자에 압축되어 이 앞바퀴들 사이에 들어가 있지. 그 성능! 그 경제성! 불이 이렇게 눈부시게 획기적인 이유로 타는 건 최초일 거야. 또 자동차 속 어디에 말처럼 불쾌한 내장이 들어 있니? 그런 건 없단다, 다만 연기를 내뿜지만 그거야 공기 중에서 사라지지. 자동차는 담배만큼이나 무해하단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토마스. 금세기는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세기로 기억될 게다!


 하지만 물건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근대산업이 부상하면서부터였고, 일일이 수작업하고 유통 속도가 느리던 산업화 이전 시대에 물건의 가치란 대단했다. 심지어 옷가지도 그냥 버리는 일이 없었다. 예수의 얼마 안 되는 옷가지는 그를 미천한 대중 선동가로만 생각했던 로마 병사들이 나눠 가졌다. 평범한 옷가지도 나눠 입었는데 대형 조각품이라면, 더구나 그것이 사실상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성물이라면, 분명히 보존돼 있을 것이다.

 
오늘 한 노예가 내 구두를 보고 아프리카인의 피부로 만들어졌느냐고 내게 물었다-사실상 그런 의미의 질문을 했다. 구두와 피부는 같은 색이다. 그 사람을 먹었어요? 그의 뼈가 쓸모 있는 가루가 되었나요?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우리 유럽인들이 인육을 먹는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은 자신들이 밭 노동에 쓰인다는 사실에 경악한 데서 비롯된다. 그들의 경험상 생활의 물질적인 부분, 소위 먹고사는 일이라 불리는 것에는 큰 노력이 필요치 않다. 열대 지역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데는 시간과 일손이 거의 들지 않는다. 사냥은 더 품이 들지만 단체 활동이고 즐거움의 원천이니 수고가 아깝지 않다. 그러니 백인이 농사 이상의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왜 그렇게 많은 아프리카인을 잡아가겠는가? 나는 노예에게 내 구두는 그들 동포의 살가죽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그가 내 말에 설득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어떤 지역, 어떤 부족 출신이지-상관없이 노예들은 곧 똑같이 침울한 행동에 젖어든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무심해진다. 감독들이 그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마구 채찍을 휘두르면서 열을 낼수록, 이런 태도는 더욱 고질적이 된다. 노예들이 보이는 무력감의 신호 중 내게 가장 충격을 주는 것은 토식증이다. 그들은 개처럼 땅을 손으로 파고 흙을 동그랗게 뭉쳐서는, 입을 벌려 그것을 씹어 삼킨다. 주님의 부엽토를 먹는 것이 비기독교적 행위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다.

 

 2부

 
그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는 메스로 침팬지의 옆구리에서 털이 붙은 가죽을 한 조각 잘라낸다. 마리아 카스트루는 손가락으로 털을 잡아 문지르고 코를 킁킁대더니, 털에 입술을 대고 누른다. "라파엘은 항상 나보다 신앙심이 깊었어요." 그녀가 말한다. "툭하면 아브라앙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되되었죠. 믿음은 어리다고, 믿음은 우리와 달리 늙지 않는다고."

 

 3부

 
의학 용어가 난무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치료를 할 때마다 희망이 커졌다가 사그라진 뒤에, 몸을 비틀며 신음하고 흐느낀 뒤에, 실금을 하고 살이 쭉 빠진 뒤에, 그의 아름다운 클래라는 흉한 초록색 환자복 차림으로, 흐릿한 눈은 반쯤 감기고 입은 벌린 채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몸부림치고, 가슴에서 한 차례 덜컥대는 소리가 나고, 그녀는 죽는다.

 
커피 가루를 꺼내려고 몸을 돌리다가 부엌 입구에 있는 오도를 보고 피터는 화들짝 놀란다. 얼마 동안이나 거기 쭈그리고 앉아서 그를 지켜봤을까? 침팬지는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인다. 뼈가 삐걱대지 않고, 덜거덕 소리를 내는 발톱이나 발굽도 없다. 피터는 이런 움직임에, 오도가 집의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점에도 익숙해져야 될 것이다. 그게 싫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프라이버시를 누리는 것보다 오도와 같이 있는 게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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