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23. 1. 6. 16:02

68p.

 외해에서는 아직 조업이 이루어지지만, 잡힌 것들조차 대개는 어분(魚粉)으로나 쓰일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어획량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년 수천톤의 수은, 카드뮴, 납과 산더미처럼 많은 비료와 농약이 강을 거쳐 독일의 바다로 흘러든다. 대부분의 중금속과 여타의 독성 물질이 도거뱅크(영국 동북쪽 앞바다의 해역) 얕은 수역에 침전되는데, 여기에 사는 물고기의 3분의 1 이미 이상발육과 기형을 안고 태어난다. 면적이 수십 제곱마일에 이르고 깊이가 삼십 피트에 달하는 해안 가까이에 독성 해초무리가 자주 형성되는데, 바다 동물들은 여기서 뗴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희귀한 편에 속하는 몇몇 가자미과 물고기, 붕어, 잉어 등의 암컷은 날이 갈수록 괴상한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수컷 생식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치르는 번식과 관련된 의식은 이제 기껏해야 죽음의 무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우리는 생명계가 놀라운 번식능력과 증식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며 자랐지만, 이런 현상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청어가 하급반에서 자주 애용되는 학습대상이던 것은 우연이 아닌데, 청어는 말하자면 자연의 근본적인 절멸 불가능성의 주요 상징이었다. 나는 지금도 50년대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 시각자료도서관에서 대출하여 보여준 단편영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떨리는 검은 선들이 어른거리던  영화에는 빌헬름스하펜의 어떤 범선이 등장했는데,  배는 화면 위쪽까지 치솟아오른 검은 파도 사이를 운항중이었다. 어부들은 밤에 어망을 펼쳤다가 밤에 다시 건져올리는 듯했다. 모든 일이 황량한 어둠속에서 진행되었다. 밝고 하얀 것은 금세 갑판에 가득 쌓인 물고기의 피부와  위에 뿌려진 소금뿐이었다.  영화에서 검게 번들거리는 방수복을 입은 남자들이 연신 그들은 덮치는 파도 아래에서 영웅적으로 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청어잡이는 자연의 우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투쟁을 보여주는 전범이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배가 고향 항구를 향해 나아갈 , 저녁 햇살은 파도에 부딪혀 조각나고 이제 잠잠해진 바다 위로  광휘를 흩뿌린다. 깨끗이 씻고 머리를 빗어넘긴 선원 하나가 하모니카를 분다. 선장은 키를 잡고 서서 책임감있는 표정으로  곳을 바라본다. 끝으로 화물을 하역하고, 넓은 실내에서 작업하는 장면이 이어졌는데, 여자들이 청어의 내장을 빼내고 크기에 따라 분류하여 통에 넣고 포장한다. 다음으로 바다의   모르는 방랑자들(나는 최근 1936년에 제작된  영화의 별책을 입수할  있었는데, 여기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열차의 화물칸에 실려 지상에서의 마지막 운명을 완수하게  곳들로 수송된다. 다른 곳에서, 그러니까 1857 빈에서 출판된 북해의 자연사를 다룬 책에서 나는 청어가 봄과 여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백만 마리의 떼를지어 어두운 심해에서 올라와 해안의 하천과 얕은 바다 밑바닥에 산란하여 알들을 겹겹이 쌓아놓는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느낌표까지 찍어놓은 문장에 따르면 암컷 청어  마리가 칠만 개의 알을 낳으며,  알들이 모두 아무런 방해 없이 번식한다면 뷔퐁(1707~88, 프랑스의 박물학자) 계산을 따를  오래지 않아 지구의 이십 배에 달하는 부피의 물고기들이 생겨날 것이다. 책에는 청어가 거의 대재앙에 가깝게 과잉공급되는 바람에 청어어업 전체가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던 해들도 연거푸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바람과 파도로 해안까지 떠밀려 육지에 내던져진 어마어마한 청어떼가 몇 마일에 걸쳐  피트 높이로 해변을 뒤덮은 사건까지 있었다고 한다. 근처 마을의 주민들은 이렇게 쌓인 청어의 극히 일부만 겨우 바구니와 상자에 삽으로 퍼넣어 가지고   있었다. 해변에 남은 청어들은 며칠 안에 썩어 자신의 과잉으로 질식하는 자연의 끔찍한 장면을 연출했다. 반면, 청어들이 평소에 들르던 장소를 피하는 바람에  해안지역 전체가 빈곤에 빠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청어들이 어떤 길을 따라 바다를 통과하는지는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빛과 바람의 상황이 청어가 가는 길을 결정한다거나, 지구의 자기(磁氣) 혹은 계속 변하는 물의 등온선이 이를 결정한다는 가정도 있었지만, 이런 모든 추측은 결국 확실하게 입증될  없었다. 그래서 청어잡이들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부분적으로 전설에 근거하는 지식과 관찰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컨대 규칙적인 쐐기 모양으로 대형을 이루어 움직이는 청어들은 햇살이 특정한 각도로 입사(入射)  맥동하는 빛을 하늘을 향해 반사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청어가 있다는  하나의 믿을 만한 신호는 수면에 떠다니는, 문질러져 떨어져나온 무수한 비늘인데, 이런 비늘은 낮에는 은도금처럼 반짝거리고 석양이 비칠 때면 눈이나 재처럼 보인다. 일단 청어떼가 확인되고 나면 대개 밤에 잡아들이는데, 앞서 인용한 북해의 자연사 책에 의하면 길이가 이백 피트에 달하고 거의 이십오만 마리의 물고기들을 한꺼번에 잡을  있는 어망이 사용되었다. 거친 페르시아산 비단으로   어망은 경험상 청어들이 밝은 색을 싫어한 탓에 검게 염색되었는데, 어망이 물고기들을 포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벽처럼 물속에  있을 뿐이었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절망적으로 어망을 뚫고 나가려다가 아가미가 그물코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덟 시간에 걸쳐 어망을 끌어올리고 감는 과정에서 질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청어가 물에서 끌어올려질 때는 이미 대부분 죽어 있다. 그래서 라쎄뻬드와 같은 과거의 자연사학자는 청어가 물에서 벗어나는 순간 일종의 심장마비 혹은 어떤 다른 이유로 순식간에 죽는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자연에 정통한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성질을 청어의 특수한 속성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물에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는 청어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보고는 오랫동안 특별 관심거리가 되었다. 예컨대 삐에르 싸가르라는 캐나다의 선교사가 뉴펀들랜드 해변에서 오랫동안 파닥거리는  무리의 청어를 보았음이 입증됐고, 슈트랄준트의 노이크란츠라는 사람은(사망 시점에서)  시간   전에 물에서 끌어올린 청어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파닥거리를 것을 관찰했음이 확인되었다. 루앙의 생선시장 감독관이던 노엘  마리니에르도 어느날 두세 시간이나 마른  위에 있었음에도 꿈틀거리는 청어들을 보고,  물고기의 생존능력을 정확하게 살펴볼 생각으로 지느러미를 잘라내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절단한 일이 있었다. 우리의 지식욕에서 비롯된 이런 행동은 지속적으로 대재앙의 위협에 노출된  어종이 겪어야 했던 수난사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만하다. 어란(魚卵) 단계에서 해덕이나 학꽁치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도 바다뱀장어나 움브라, 대구, 나아가 인간까지 포함한 수많은 다른 청어 사냥꾼들의 뱃속을 채운다. 1670 경에 이미 팔십만  이상의 네덜란드 사람들과 프리슬판트 사람들이,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상당한 부분이 오로지 청어잡이에만 매달렸다. 백 , 매년 청어 어획량은 육백억 마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확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동물이 죽을  느끼는 몸과 영혼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청어의 골격이 이백 개가 넘는 다양하고 지극히 복잡하게 구성된 연골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뿐이다. 외모에서는  좋은 꼬리지느러미와 폭이 좁은 머리, 약간 돌출된 아래턱, 밝은 은빛 홍채 위에 검은 동공이  있는 커다란 눈이 눈에 띈다. 등은 푸르스름한 녹색을 띈다. 측면과 복부의 비늘은 하나씩 보면 금빛 오렌지색을 띠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수한 백색의 금속 광채를 보여준다. 역광을 비추어보면 몸통 뒤쪽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없는 아름다운 암녹색의 빛을 발한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색깔이 달라진다. 등은 푸르게 변하고, 뺨과 아가미는 피하출혈고 붉어진다. 청어의  하나의 특징은, 사체가 공기에 노출되면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인광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광력(光力) 죽고   며칠이 지나면 정점에 이르렀다가 부패가 시작되면서 차츰 줄어든다. 오랫동안, 아니 내가 알기로는 오늘날까지도 청어의 사체가 이렇게 반짝거리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에 전면적인 조명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들이 도처에서 진행되던 1870년경, 기이하게도 그들의 연구에  맞아떨어지는 이름을 가진  명의 영국 과학자들 헤링턴(청어를 독일어로 '헤링'이라고 부른다) 라이트바운은 죽은 청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발광물질에서 지속적으로 저절로 재생되는 유기적인 광원(光源) 추출해낼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이한 자연현상을 연구했다고 한다.  기발한 계획은 실패했지만, 내가 최근 읽은 인공 조명의 역사를 다룬 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실패는 어둠을 몰아내는 거침없는 발걸음에 별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 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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