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는 지난 주말에 고모랑 찍은 사진을 보더니, 누나라면서 고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사진 속 고모 옆에 본인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동생이랑 영상통화 했을 때, 동생의 첫 마디가 '이제 나도 못 알아봐?' 였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우편물이 오는데 그 안에 기록지가 있다. 매달 그래왔듯이 이번달 기록지에도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다 잊을수가 있나? '어떻게' 가 참 슬픈말이구나. 요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평소엔 이런 생각 안 하는데, 어제는 생각했다. 아이고, 아버지
새벽에 꿈을 꿨다.
- 요양원에 면회 가서 아버지를 엄마랑 나랑 JJ 삼촌이 있는 집으로 데려왔다. 같이 시간 보내다가 요양원에 도로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멀쩡해져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요양원에 돌아가기로 했다. 밤에 자다가 아버지가 사라진 걸 알았다. 다급하게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베란다 쪽으로 나가는 미닫이 문을 열었을 때, 유리로 만든 네모난 상자에 발가벗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버지를 차에 태워서 요양원으로 돌아가로 했다. 내가 운전하고 엄마가 옆에 앉고 아버지가 뒷자리에 앉았다. 요양원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운전 중에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아버지가 사라졌다.
-> 꿈에 동생이랑 내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랑 같이 있던 집은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오래된 한옥을 개량한 형태의 주택이었다. 아버지는 첫 등장부터 '신의 산'이라는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책에 대한 대화를 아버지랑 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인상적인 꿈을 꾸면 내용 해석을 좀 해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 꿈은 해석이 잘 안되네. 벌거벗은 아버지는 이번달 우편물에 옷을 벗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가 들고 있던 책은 어째서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등장했는지 조금의 실마리도 없다.
지난 토요일에 강릉 고모(작은 고모) 아이 결혼식이 강릉에서 있었다. 형 때문에 담배 배웠으니 책임지라고 나한테 장난치던 그 아이가 올해 서른 아홉이다.
구미 고모(큰 고모)는 3주전부터 아버지 면회를 기대하고 있었고, 동생은 아버지한테 아이들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엄마는 둘째 이모랑 함께 강릉에 오게 됐다. 아버지는 만나면 항상 애들(동생 아이들) 얘기를 한다. 둘째 이모는 나에겐 엄마나 마찬가지이고,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오래 못 살 수도 있다. 또 이모는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한 동네에서만 45년 이상을 같이 살았기에 아버지에게는 처형 이전에 절친이다. 큰 고모는 아버지의 누나고 아버지 동생들부터는 엄마가 다르다. 고모가 서울에 올라와서 살 때, 둘째 이모랑 이웃에 살았고 아버지는 누나집에 엄마는 언니집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바람에 지금의 내가 있다.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 임무는 요양원과 연락해서 면회 시간 등을 조율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얼굴을 보게 하는 일이었는데, 시작부터 잘 안됐다. 요양원 근무하시는 사회 복지사 선생님과 금요일부터 통화를 했는데, 이 선생님이 1층 면회실이 아니라 4층 생활실에서 3명씩 짝을 지어서 2타임, 한 타임당 10분씩만 면회를 하는 게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기에 알았다고 했다. 요양원은 입소자 때문에 운영이 되지만 입소자의 보호자와 요양원 사이의 관계에서는 보호자가 을이 되는 현실을 잠깐 생각했다.
암튼 엄마, 이모, JJ삼촌이 먼저 도착해서 4층에서 면회를 추진하려고 했는데, 마침 4층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구급차가 오고 1층 사무실도 소란스러웠다. 해서 1층 면회실에서 면회를 하게 됐다. 응급상황이 럭키가 되는 아이러니. 이모는 아버지를 만나자 마자 눈물이 터지고 이모 딸아이는 엄마 심장 터진다고 울지 말라고 하고 아버지는 처형을 알아봤고 처형이 우니까 따라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랑 이모한테 '내가 미안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모가 또 울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어르신이 예민하니까 울면 안돼요'라고 했다. 그 후에 이모는 구석에서 혼자 울었다. 아버지는 면회 시간이 30분 정도 지나면 슬슬 지겨워 하면서 이제 그만 가라고 할 때가 많은데, 그날은 계속 뭔가를 얘기했다. 그때 마침 고모가 요양원에 도착했고 요양원 원장 선생님이 '아버님이 인기가 많네'라고 하시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다 만나라고 했다.
우는 문제에 있어서 고모가 가장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모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모가 마스크를 벗자마자 '누나'라고 불렀다. 핏줄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고모는 요양원에서 아버지 괴롭힐까봐 걱정하는 타입인데, 아버지의 평온한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누나 입장에서는 동생이 자주 보고 싶겠지만 구미에서 강릉은 너무 멀다. 암튼 고모가 아버지 보고 안심한 일로 내가 안심이 된다.
이 면회의 아수라 장에서 동생은 결국 그날 면회를 포기했다. 다음에 큰 아이 데리고 따로 온다고 한다. 동생이 와서 아이들까지 보여주는 진행이 됐으면, 너무 소란스러웠을 것 같다. 땡큐 브로.
외가집 친척들 다 같이 모여서 놀던 시절에(주로 우리집에서 많이 만남) 이모들이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늘 하던 얘기가 '일우 아바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인데, 너무 착한 덕분에 본인 인생에 모질지 못했던 아버지가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착한 치매라서 너무 다행이다. 아버지, 지금처럼만 쭉 가보자구요.
잔치는 즐거웠나? 나는 신랑측 축의금 받고 돈 셌다. 동생네 애들하고 얘기를 제대로 못 나눈게 아쉽네. 엄마랑도 많은 얘기는 못 나눴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 작은 고모가 아들 결혼식은 처음이라 - 큰 아이는 딸인데 몇 년 전에 결혼함 - 많이 긴장했길래 좀 웃겨드렸다. 작은 고모는 우리 집안에 어떻게 이런 애가 있냐면서 평상시에도 나를 듬직하게 생각하고 내 유머를 좋아하신다. 밥먹으면서 5촌 고모들을 비롯해서 집안 어른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 나눈 게 기억에 남는다. 고모님 한 분 큰어머니 한 분과는 기념셀카를 찍었다. 이 두 어른은 몇 년 전에 집안 어른 장례식 끝나고 무덤가에 나란히 앉아 계시길래 내가 사진 한 컷 직어뒀다. 그 컷이 구글포토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밥 다 먹고 예식비랑 식대 계산하고 어르신 두 분 내 차에 모시고 예식장을 떠났다. 그 어르신들 중에 한 분은 나랑 셀카 찍은 큰어머니고 한 분은 누군지 몰랐는데, 올해 97세 이신 큰 고모란 걸 나중에 알았다. 97세면 27년생 정도 되는건가? 밥 먹을 때 고모님이 내 농담에 '아가 재미있다'고 맞장구 쳐주실 때는 고모 나이가 70대 중반 정도일거라 생각했다. 건강이 이렇게 중요하다. 97세 시누이랑 7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보내고 있는 큰어머니를 생각해본다.
고모를 집앞에 내려드리고 기쁜일이 될지 슬플일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인사드렸다.
살아 있다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거구나, 깊게 생각했다. 아버지도 엄마도 다들...... 살아 있다면..... 그날은 이 정도 까지만 생각했는데, 이 글을 마치려는 지금
오랜만에 죽음을 생각한다.
몇 년 전 컷을 굳이 찾아서 올린다. 왼쪽이 큰 어머니, 오른쪽이 서해(왜 이렇게 불리는지 모름) 고모다. 큰 어머니는 기본 심성이 너무 고우신 분이고 고모는 10여년 전에 내가 농사 짓는다고 강릉 내려와서 작은집에 얹혀 살 때, 객지에 와서 얼마냐 고생이 많겠냐면서 나한테 만원짜리 한 장 용돈으로 주신 멋진 분이다. 몇 년 전 강릉 산불 때 두 분의 집이 모두 탔다. 큰 어머니는 아파트로 이사했고 고모는 집을 새로 지었다.(고모네 집은 터 좋음) 일제치하에 태어나 어려서 전쟁을 치르고 늙어서는 산불에 집이 탔다. 살면서 몸의 주름 갯수 보다 많은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겠지. 헤아릴 수 없지만 헤아려 본다.
차에 치인 고양이 내장을 파 먹는 까마귀를 향해 악쎌레다를 밟았다 죽은 고양이는 나랑 알던 사이다 까마귀는 날아올라 충돌을 피했다 고양이는 소리 없이 죽고 까마귀는 까악 소리를 지르고 살았다 죄도 없이 죽고 살고 한다 자동차는 가드레일을 들이 받았다 쿵 소리를 내고 시동이 꺼졌고 나는 소리도 없이 살았다
현 시점에서 인생에 큰 문제가 없어서 그런지 아버지 요양원이 집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수시로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아버지 생각을 길게 하면 눈물이 나기 때문에 짧게만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나는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할 만큼 아버지랑 친하거나 아버지에게는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깊은 정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지난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요양원 사무실 옆 별도 공간이 아니라 4층 생활관에 올라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문을 열었을때, 아버지는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눈을 반짝 뜨며 반가워 했다. 아내가 내가 많이 힘들다고 한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횡설수설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고마워서 잠깐 울뻔했다. 어렸을 때, 술 드시고 집에 온 아버지가 나랑 동생이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와서 용천혈이라면서 발바닥 가운데를 눌러주던 일이 요즘들어 자꾸 생각난다. 그게 아버지의 애정표현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이랑 영상 통화할 때, 내 전화기에 비친 본인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이게 지금이냐고 묻기도 하다가 동생이 전화 받으면 동생 얼굴보고 놀라면서 <어, 너구나. 잘 지내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동생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생은 먼저 아버지를 직접 보고 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못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낫지만 점점 더 본인을 잊어가는 아버지를 체념한듯 받아들이는 상황이 슬프다. 그 와중에 나는 아버지가 가장 늦게 잊어버리는 이름이 내 이름이길...... 하는 이상한 욕심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요양원 가기전에 아버지 자주 봐서 참 다행이다. 거의 매주 서울에 가는 게 정말 힘들긴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된 대화랄 것도 없었지만 아버지랑 말을 주고 받을 수는 있었던 그때가 참 좋았다.
10월이 다 갔다. 내 시간도 아버지의 시간도 공평하게 흘러간다. 아버지, 내일 모레 또 만나자구요.
치매 걸린 아버지가 지금도 프로그램 시간에 부르는 노래가 나훈아의 '가지마오'다. '가지마오'는 나한테는 '찻집의 고독'이랑 한 세트인 곡인데, 어렸을 때는 노래방에서 두 곡 다 자주 불렀다. 오늘 공연에선 이 곡을 안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나훈아를 좋아했다. 이모랑 외삼촌들이 다 노래를 잘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했다. - 철이 삼촌이 '청춘을 돌려다오'를 특별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 아버지가 강원도고 엄마가 경북이라 그런지 우리집 어른들은 나훈아랑 남진을 비교하기 보다는 - 경상도 사람들에게 남진은 나훈아랑 비교 대상이 아님 - 화투 치면서 나훈아랑 조용필 중에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나는 조용필도 좋아하고 나훈아도 좋아한다.
나훈아 공연히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고향역'이 첫 곡일거라 생각햇는데, 오프닝에 "코스모스~~" 하는 순간 살짝 울컥했다. '사랑'에서 '영영'으로 바로 이어 부른것도 좋았다. - 나한테는 이 두 곡이 한 세트다 - 공연에서 제일 좋았던 건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 배호의 '누가 울어' 본인의 '무시로'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세션이었다. 특히 '누가 울어'가 정말 좋았다. 50년 이상 프로 가수로 살면 평범한 기타 코드를 쳐도 간지가 줄줄 흐르는구나 생각했고 브라이언 맥나잇이 가끔 어쿠스틱 기타 치면서 본인 노래 업로드 하는 것도 생각났다.
'공' 이라는 노래 중간에 멘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난 좀 지루했는데, 관람객들이 대체로 나훈아의 말솜씨를 좋아했다. '공'은 비교적 최근 곡인데, 조용필의 최신곡인 '그래도 돼'랑 주제가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장들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 -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본인 멋대로 살면된다 - 일맥상통하는 느낌? 이 같은 주제의식은 요즘 아이돌 노래도 마찬가진가?
나훈아는 84년에 '청춘을 돌려다오'를 불렀고 2005년 에는 '고장난 벽시계'를 불렀다. 이 두 곡 사이에 20년이란 시간이 있고 같은 듯 다른 두 곡의 노랫말의 간극이 기묘하다. 조용필은 84년에 '아시아의 불꽃' 이 실린 앨범을 냈고, 송창식은 83년에 '우리는' 을 불렀다. 각자 본인들의 길로 간 거장들의 현재 모습이 다 보기에 좋다.
본인 성기가 절단 당했다는 루머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 직후에 나온 곡이 '테스형'이었던 듯 - 세월 흐르고는 공연장에서 웃으면서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나훈아의 은퇴 공연을 봐서 아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잘하시더라. 은퇴 후에 행복하시길 바란다.
조용필 신보를 들으면서는 폴 매카트니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훈아는 비교 대상이 없네.
조용필 공연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다. 글을 마치는 지금 BGM으로 조용필의 '꽃바람'이 나오고 있다.
볶음밥을 먹는다 파기름을 내고 계란을 두 개 깨고 식은밥에 간장을 한 숟가락 설탕 소금 후추를 넣고 볶았다 하늘이 점점 더 흐려지고 강풍주의보가 내린 일요일 오후 아직 밥 때는 아닌데 배가 고프다는 아내랑 볶음밥을 먹는다 가끔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 없이 먹는다 집안과 아내, 밥의 온기가 뒤섞였다 세상의 모든 행복이 지금 이 공간에 있다 이 볶음밥은 파 볶음밥인가 달걀 볶음밥인가 아니면 간장 볶음밥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볶음밥을 먹고 주인공이 그 길로 죽으러 간 소설의 제목이 뭐였더라 나는 죽으러 갈 곳이 없고 자고 일어나면 출근할 곳이 있고 거기가 내 자리라는 걸 안다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째선지 울컥한다 먹는 것은 살겠다는 것이니까 살아야지 살아야지 속으로 반복하면서 좀 짜지않아, 묻고 맛있다는 얘기를 한 번 더 듣는다
바람이 서걱서걱 분다 빈 나뭇가지가 덜렁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부고를 매일매일 듣는다 얼마전 그 중에 당신 소식이 있었다 북서쪽 산 정상으로 향하는 출근 길 라디오에선 이 계절에 어울린다며 30년 전 이별노래가 흘러나오고 운전대를 잡은 반대편 손에서 피워내는 담배 연기 차창을 열자 바로 흩어지는 온전한 공간에서 혼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해 보는
아버지한테는 누나가 있다. 나에겐 고모가 두 명 있다. 아버지 누나는 나에게 큰 고모가 된다. 아버지에게 여자 형제가 셋이었다면 큰고모 중간고모 작은고모가 되나? 큰 고모는 아버지네 육남매 중에 첫째다.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건 확실하고 일찍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봉제공장에 다녔다. 아버지는 방위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고 서울 영등포에서 누나랑 같이 살았다. 그 당시에 고모는 나의 이모들과 친분을 쌓았고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서 결혼했다. 고모를 몹시 때리던 고모부가 있었다. 나는 고모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름은 기억한다. 엄마랑 이모들이 고모부 이름을 부르면서 나쁘 소리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고모는 알콜중독으로 죽은 고모부의 폭력을 피해서 우리집을 자주 찾았다. 한쪽 눈이 멍든 채 울면서 우리집에 왔던 고모가 생각난다. 고모에게는 나랑 동갑인 아들이 하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고모는 서울 집을 팔고 구미에 가서 손주들 돌봐주면서 아들 내외랑 같이 산다.
아버지가 치매 걸린 이후로 고모가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한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 후로는 더 자주 전화를 한다. 동생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본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살다가도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면 나에게 전화를 한다. 울먹이면서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기를 하나 주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한다. 내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도 하는구나.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기 바로 전날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고모에게 그 통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로 남았다. 내 생각에 아버지 머릿속에는 아직 누나가 남아 있을 것 같다.
어제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11월 초에 강릉에서 둘째 고모 아이 결혼식이 있는데, 식장에 아버지를 데리고 나올 수 없겠냐고 했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데리고 나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면회만 추진하기로 했다.
고모, 아버지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 금요일에 동생이 강릉에 왔기에 같이 아버지 보러 갔다. 아버지는 나랑 동생을 보고 '아들'이란 말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사람 이름은 아버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간다. 동생이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나랑 동생에게 결혼 - 이 단어도 먼저 꺼내지 못함 - 해야지. 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컨디션이 좋은 편인 것 같았는데도 그랬다. 아버지는 컨디션이 좋을 때 말을 많이 한다. 정리되지 않는 그 얘기를 듣는게 좋다. 아버지 컨디션이 좋은 게 좋다. 아버지 얘기의 핵심은 본인은 걱정하지 말아라, 남들한테 못되게 굴지 말고 잘 살면된다, 회사에 잘 다니면 그걸로 됐다, 정도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혼자 아버지 보러 갈까 싶었는데 내 안의 우울로 그러하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아버지 보러 가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왜 이렇게 출근하기가 싫은지 생각했는데,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지쳤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건 아니다. 업무 분장도 그렇고 예기치 않은 일로도 남들 뒤치닥거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들에 지쳤다. 돈도 명예(?)도 싫다.
올 봄에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엊그제야 전화가 왔다. 올해 연말부터 전세보증금 내줄 수 있다고 한다. 내년 3월초가 계약 만기다. 내년 정월이 지나기 전에는 이사를 가야겠다. 사실 서두를 필요 없는데, 당근마켓 부동산을 자꾸 들여다 보고 있다. 강릉 집값과 내가 가진 돈을 생각하면 그 동안 뭐하고 살았나 속만 상한다. 차분하게 있다가 11월 말에 부동산으로 가자. 10년에서 15년 갚을 것을 생각하고 주택담보대출 받아서 나 보기에 위치가 좋은 아파트 하나 사고 싶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지금 집에서 5년 7개월을 살았다. 10년 가까이 된 직장 생활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집도 지겹긴 하다. 내 집이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어느집에 살아도 집에는 정이 들지 않는다.
지난주에 아버지 요양원 계약서 갱신했다. 아버지 장기요양인정이 갱신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4등급(시설급여)이 됐다. 사회복지가 선생님이랑 계약서 쓰면서 아버님이 착한 치매라 정말 다행이다, 불결 행위가 점점 심해진다, 는 얘기를 들었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많이 힘들게 하지 않는 치매가 온 건 좋은 일이네, 생각했다. 아버지는 엄마, 동생이랑 영상통화 할때, 얼굴 보면 반가워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동생에게는 한 번 와라,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보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웃고, 나도 웃고 만다. 언젠가는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나도 못 알아볼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날이 아주 천천히 오길 바란다.
기후 파괴의 시대에도 인구수로만 보면 세계(인류)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래요,란 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다. 거기에 나도 포함이다. 어딘가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은 없으니 이런걸로 우울해 하지 말자. 가을이 왔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닥치는 대로 살자. 삶에 감사할 수 없는 날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아버지 말마따나 '살자'
이대로 무너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무너지지 말아야지." 매일 생각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은행을 밟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르고 차갑다 공구상들이 늘어선 골목은 평화롭다 국수집, 와플가게, 이불집을 차례대로 지난다 그 순서에 질서가 있다 사람들은 무뚝뚝 부지런히 길을 걷고 교차로 위의 자동차들은 서두르는 듯 보인다 나는 잠깐 멈추어 선다 모든 것이 조화롭다 그것이 시간의 뜻이다 삶이 이루어낸 것들이 차갑게 식는 계절이다 오늘은 차가운 술을 마셔야지 뱃속에서부터 뜨겁게 울어야지
어제부터 46세가 됐다. 머릿속에 첫날인지 둘쨋날인지 약속의 혼란이 있었지만 오늘은 46세 2일차다. 16790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모든 지나간 일들은 과거라는 한 단어에 합쳐져서 결국은 잊혀진다.
1978년 9월 23일은 음력으로 팔월 스무하루고 어제도 양력 9월 23일이 음력 8월 21일인 날이었다. 0세 생일과 양력음력 생일이 같은 날로 검색을 해보니 60년 의견과 대략 19년 의견이 있는데, 정확하진 않다. 지나간 내 생일 중에 한 번 정도는 어제와 같은 날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난 명절에 만난 엄마가 이번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 복권을 사라고 했는데, 복권을 안 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사야지. 한국에서 1978년에 태어난 사람이 75만 명이다.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2054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나랑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2000명이 넘는다. 그 중에 가수 나얼도 있고 초등학교 때 친구 호철이도 있다. - 초등학교 졸업후엔 얼굴 못 봄 - 전 세계로 따지면 더 많겠지. 그러니까 특별한 날이란 건 관계자들끼리의 얘기다. 아들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엄마가 고맙다. 충주로 출장 가는 바람에 집에 늦게 돌아왔는데, 집에 미역국이 있었다. 신랑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아내가 고맙다. 고마운 마음과 특별함으로 힘내서 살아야 되는데, 힘이 안난다.
강릉에서 로또 1등 당첨되신 분이 빚 갚은 후에 미뤘던 수술 받고 나서 돌아가셨단 얘기를 들었다.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 나 이 말 진짜 좋아하네. - 아픈데가 있건없건, 빚이 있건없건 로또 됐으면 좋겠다.
직장 그만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그래도 출근하기 싫다. 출근하기 싫은건지 그만두고 싶은건지 헷갈린다. 다들 그렇다고 한다.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우리 아버지 말마따나 살아야지. 다만 아버지는 인지능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중이고 - 이미 바닥인 것 같음 - 그 때문에 더 이상 '살아야지'란 말을 하지 않는다.
추석 연휴에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잤다. 엄마가 해준 밥 먹었다. 엄마 밥은 맛 없어도 맛있다. 엄마가 싸준 반찬 잔뜩 싸가지고 돌아왔다. 사랑이다. 동생에게 아이가 둘 있다. 조카들을 몇 년만에 봤다. 큰 아이는 초등 2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다섯살 터울이던가? 확실히는 모르겠다. 자주 안 보면 미취학 조카 나이는 잘 모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버지 면회가서 동생이랑 영상통화하면 동생이 항상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인사를 시킨다. 조카 아이는 늘 전화기 너머로 수줍게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큰 아이는 할아버지랑 함께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안다. 다 잊고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뇌가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동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줘서 애들 장난감 두 개 사갔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큰 아이가 어릴적에 프로레슬링 한다고 놀아주면서 '베어허그'를 먹여준 적 있다. 그 아이는 나를 '큰아빠'가 아니라 '베어허그 삼촌'으로 기억한다. 좋은일이다. 애들봐서 좋았다. 어쨋든 핏줄이라 그런지 조카들 일 년에 한 번은 보고 싶고 <엄마 없는 날> 재미있게 놀아준 삼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젠간 그럴 기회가 있을 거다.
연휴 동안 아버지 면회를 두 번 갔다. 같은 시간에 갔는데, 두 번 모두 간식 먹고 휴식 시간에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와 있기에 밖에서 만났다. 아버지 육체가 건강하고 많이 답답해하기에 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담배 피울 때,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고맙습니다. 담배 한 보루 사 드리고 싶은데, 얇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 까지만 알아냈다. 요양원에 코로나가 퍼진 덕분에 면회시간이 짧다. 마스크도 써야하고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면회 신청서 쓰다가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제 기저귀를 차고 있고 점점 더 다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우편물에 아버지가 어찌 지내는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최근 받아본 내용에 똥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봤고 반가워했으니 그걸로 됐다.
엊그제 S누나집에 쌀이랑 양말 갖다주러 갔었다.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길래,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럭저럭이 우울이다. 우울증이 여전해서 병원에 다시 가야지 싶다. 날씨가 문젠지 아버지가 문젠지 회사가 문젠지 내가 제일 문젠지. 9월말 날씨가 8월말 날씨같다. 아버지 만나고 돌아서면 울고 싶다. 회사에서는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아무일도 아닌데도 울렁거리고 짜증이 치솓는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 있는가? 물으면, 대답은, 있다. 많다. 사정이나 형편 같은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내 멋대로 사는 것도 세상의 흐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내 멋대로 살고 있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다. 답답하네.
허리, 어깨 등 군데군데가 아파서 운동을 쉬고 있다. 우울증에 달리기가 좋다고 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에 등록해볼까 한다. 미친놈처럼 달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이 무렵엔 마음이 절반으로 꺾인다 너에 대한 마음이 삶에 대한 마음이다 태양일 절반으로 꺾였으니 나는 너를 두배 더 사랑해야지 너를 두 번 안고 두 번 입맞추고 두배로 충만함을 느끼고 두배속으로 끝난 사랑이 두배로 허무하더라도 두배의 속도로 희망을 살고 무너져버린 계절을 견디고 봄을 기다려야지
이슬이 내리지 않는 백로 푸른 하늘 대신 쨍한 하늘의 백로 남대천 한복판 돌 섬 늘 가마우지 두 마리가 있던 자리에 백로 한 마리가 고고하게 서 있다 나는 강변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본다 새도 앉는 법을 아나 강가엔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고 퇴근 하는 사람, 장 바구니를 든 사람이 섞여 있다 사상 최고의 가을 더위에도 사람들 사이엔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랑 성묘 행사가 있었다. 산소는 강릉에 있고 작은아버지 한 분만 강릉에 있으니까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JJ삼촌이 본인들 부모니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길래 신경 끄기로 했다. 나랑 아내는 벌초 다 끝난 다음에 가서 절만 하고 왔다. 편했다. 막내 삼촌이 25살 사촌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와서 오랜만에 얼굴 봤다. 동생이 직장 다니기 너무 싫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돈 쥐어줘서 동생한테 밥 사 먹으라고 용돈 줬다. 잘한 일이다. 엄마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별 대화는 못나눴다. 10명이 점심 먹으러 옹심이 집에 갔는데, 엄마랑 마주 보고 먹은 게 좋았고 엄마 옆엔 아내가 앉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게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 있는 요양원에 코로나 이슈가 있어서 엄마를 비롯한 친척들이 면회를 못했다. 면회 가능한지 묻느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통화할 때 아버지 잘 지내는지 물었더니, 행복하시죠, 라고 대답해서 약간은 안심이 됐다.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아버지는 혼자서 생각의 나무를 키우다가 밥 먹으라 하면 밥 먹고 간식 먹으라 하면 간식 먹고 머리 자르자고 하면 머리를 자를 것이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나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것이다. 얼른 아버지 면회가서 컨디션 좋은 아버지가 한 시간 내내 떠드는 거 듣고 싶네. 사랑인가?
어제는 아내랑 횡계에 있는 자생식물원이랑 월정사에 다녀왔다. 월정사를 처음 가봤네. 유명하다는 전나무 숲길도 걸었다. 어느 나무에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길을 걷는 일의 시작이다, - 원문은 '명상의 시작이다.' - 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우울증 핑계로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를 잠깐 돌아봤다.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가을이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올 가을엔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을 보냈는데, 내 사연 읽혔다. 블로그에 종종 쓰는 일기가 나에게 쓰는 편지니까 어차피 쓸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이었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는 내가 보낸 사연이 본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점심으로 아내랑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다. 아내가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갔다. 교동 보헤미안에 아내랑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자주 간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참 좋다. 내가 전날 커피 마시러 가자고 말하면 다음날 억지로 일찍 일어나 주는 아내가 참 좋다. 사랑이다.
직장 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은 추석뒤로 미루기로 했다. -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고맙다. - 이번주 잘 보내고 연휴가 기니까 추석엔 차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엄마한테 다녀올까 싶다. - 엄마가 연휴 때 나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 맥락의 말을 함 - 회사에서의 세 시간은 너무나 길지만 엄마에게 가는 세 시간은 너무나 짧지. 사랑인가?
어제가 9월 1일이었다. 어제는 9월이구나, 싶지 않았는데 오늘 출근하니까 9월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사무실 근처에서 각시취 꽃이랑 용담꽃을 보니 가을이구나 싶다. 이렇게 세상 속에 동화되어 간다.
주말엔 거의 누워 있었다. 어떤 의욕없음이 여전히 나를 지배한다. 토요일 아침엔 아내랑 데이트를 했다. 보헤미안 본점에서 커피 마셨고 양양 휴휴암에 다녀왔다. 아내랑 뭘 같이 하는 게 활력을 준다. 집에서 밥을 같이 먹고 옆에 누워서 각자 휴대전화를 보는 일들도 그러하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아내가 곱게 자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도 위안이 됐다. 안심이 더ㅣㄴ다고 해야하나?. 어제 아침에 아버지 친구들을 잠깐 만났다. 전날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원에 가서 유리 칸막이 너머로 아버지를 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반가워했다고 전해들었다. 위로금 100만원을 받았고 엄마한테 줬다. 치매 걸린 친구를 위해서 위로금을 모으는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아버지 친구들이니까 52년 전후에 태어난 분들인데,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람이 일단 안 아프고 볼 일이고 아프더라도 치매는 피해야 한다. 치매는 치명적이라 치매다.
지난주에는 일주일 전에 만난 DJ 선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 한 명 만나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프로 뮤지션인 선배랑 프로 얘기를 하다가 선배가 '프로는 선택받는 거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선택받고 싶은가? 강렬한 열망은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선택받지 못해서 우울한 건 아니다. 이번달부터는 본격적으로 노래 녹음을 해볼까 싶기도 하네.
프로야구 프로축구에서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야구는 2패 했고 축구는 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해서 비겼다. 나야 그 결과에 잠깐 화를 내거나 속상한 마음을 가지면서 지켜볼 뿐이지만 선수들과 감독들은 간절하게 뛰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이게 프로의 세계다. 냉정.
나는 선택받고 싶은가? 일단 글이 좀 잘됐으면 좋겠네. 글쓰기도 노래만들기도 어느 지점에서 멈춘 느낌이다. 2024년 9월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있다.
먹자 골목에서 십오분 째 너를 기다리고 십오분은 칠천 오백원이다 짜장면 4500원이라 붙여놓은 중국집 앞에서 약속하지 않은 너를 십오분 더 기다리고 이 자리에서 돌아서려고 한다 삼십분은 삼만원일 수도 삼십만원일 수도 있지만 뒤에 자투리가 붙지 않는다 다들 얼마짜리 기다림을 사는지 만나고 나면 기다림은 제 값을 다 한건지 칠천 오백원짜리 국밥 같은 기다림을 한 번 더 오백원으로 끝나는 기다림을 생각하면서 한 번 더 한 번만 더
계란이 깨졌다 24시간 콩나물 국밥 집에서 내 몫의 콩나물 국밥 뚝배기 옆에 아직 술이 덜깬 오전 7시 하나 더 달란 말은 차마 할 수가 없고 노른자만 숟가락과 손가락으로 건져서 국밥 그릇에 옮겼다 흰자의 끈적함이 테이블 바닥에서 뚝배기까지 흔적을 남겼다 노른자는 익어갈 것이다 나는 끝내 내 몫은 챙겼다 대체 나는 무엇을 살렸나 계란 = 달걀 계란 닭의알 닭알 달걀 계란찜은 계란찜인데 계란찜은 달걀찜인가 계란 후라이냐 달걀 후라이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지난 토요일에 대학 선배, 동기, 후배 만났다. 후배 섭외로 선배가 횡계에 와서 공연을 한 덕분이다. 술 마시고 노래방엘 갔다. 학교 다닐때 개별적으로는 많이 놀았어도 넷이 모여서 술 한 잔 마셔본 적 없다. 첫 만남이 25년 이상 지나면 모든 만남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풍화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봤다. 선배는 앨범을 낸 가수고 주업으로 요양원을 했는데 최근에 건강원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한다. 동기는 강릉에 사니까 자주 보는 편이고 중고등학생들 수학 가르친다. 후배는 올해 고향인 평창으로 귀농했다. 나는 이일저일 하다가 산림청에 취직했다. 다들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단편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그 속은 다들 복잡하다. 가수로 약간은 성공의 맛을 본 선배, 본인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 직전까지 갔던 동기, 가족들 춘천에 두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후배, 나는..... 음..... 다들 먹고 사는 걱정 없었으면.
토요일, 일요일에 아버지 만났다. 이번주는 아버지 컨디션이 안 좋았다. 먼저처럼 혼자서 막 떠드는 거 듣는게 좋지 아버지가 별말 없이 먼데만 보고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엄마랑 애들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애들도 애들인데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것 같다. 9월 첫 주말에 추석성묘 예정이라 그때는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동생은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고, 요양원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서 당분간 면회가 중단된다는 문자를 오늘 받았다. 어제 아버지 보고 오길 잘했다. 아버지가 9월초에 엄마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렇다.
오늘 아침도 여지없이 출근하기 싫었는데, 출근했다. 기간제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벌에 쏘였다. 요즘 벌쏘임 사고가 많다. 더워서 벌이 많다는데,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잽싸게 태워서 강릉의료원 다녀왔다. 장수말벌에 쏘인 것 같고 쏘인 곳이 가렵고 많이 부어서 응급실에서 수액 맞았다. 벌에 쏘인 선생님은 나보다 한 살 형이다. 병원에서 이 형 기다리면서 46세 남성이 5년 전에 정선군 임계면으로 이사 와서 혼자 살면서 최저임금 받는 산림청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나도 마찬가진가? 오늘 날을 제대로 잡았는지 기간제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내가 병원 갔다 오는 사이에 뭔가에 쏘여서 병원에 내려갔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아이가 고3인데, 정선군 임계면에 살면서 매일 술을 마시고 매년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일자리에 지원하는 삶을 생각했다. 내가 계산한 병원비는 어떻게 돌려받나? - 액수가 적지 않다. - 다들 먹고 사는 걱정 없었으면.
보통일이 아니네, 란 말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살아가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우울하다고 술 마시고 무너지지 말아야지. 나에게는 술 마시고 무너질 수 있는 여유는 있는건가,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올해 발초는 업체에 맡긴다고 작은집에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못하겠네. 자동차 보험도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못하겠네. 보통일이 아니네.
나는 2000년에 운전면허를 땄다. 아내는 나보다 일찍 땄다. 아내는 쭉 운전을 안했다. 작년에 어떤 결심이 섰는지 운전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8월에 새차를 샀다. 꼬마차라면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경차를 샀다. 새차를 3달 이상 그냥 세워뒀다. - 좀 열받았었지. - 겨울이 깊어질 무렵 운전연수를 받았다. 도로주행 선생을 자주 봐서 불편했는지 마지막 타임은 건너뛰었다. - 그게 다 돈인데. -
아내는 운전을 곧잘 한다. 비보호 좌회전도 회전교차로 진입도 잘 한다. 아내는 주차에 애를 먹는다. 차 폭과 길이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 그렇다. 한동안 집 앞에 차를 세우지 못하고 널찍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내는 차를 타고 밭이랑 사회복지사 실습받은 요양원에 오고갔다. 가끔은 주문진에도 간다. 운전을 곧잘 하니까 괜찮다. 다만 비오는 날 운전과 밤운전은 피했으면 한다.
집 앞에 차를 세우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사고가 났다. 차 빼다가 서 있는 남의 차를 들이 받았다. 상대방이 쿨하기에 보험처리하지 않고 35만원에 수리하시라하고 끝났다. 아내 차는 뒤쪽이 많이 다쳤는데, 언제 또 사고 날지 모르니 차량용 스티커 사서 붙이고 말았다. 얼마전에 두 번째 사고가 났다. 집에 돌아와서 차를 세우다가 실수로 엑셀을 밟아서 앞 바퀴를 지탱해주는 높은 턱을 넘고 연립 입구 계단에 자동차 앞쪽을 긁었다. 밖에 나와있던 이웃 주민들이 그 사고를 목격했고 그 후로 아내는 운전에 침울하다. 하지만 침울할 필요 없다. 두 개의 사고 모두 혼자 들이받은 사고라 그렇다. 다친 사람이 없는 사고라 그렇다. 귀요미야 힘내.
서울에선 운전 안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지만 지방 소도시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강릉 이사온지 8년만에 아내가 운전을 결심한 것이다. 본인 자동차가 생긴다는 일에 설레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동차가 있다는 건 신경쓸 것이 많아짐을 뜻한다. 보험가입과 갱신, 세차 - 차 사고 6개월 만에 첫 세차를 했는데, 떼가 안 지워졌다. - 정기점검 - 이건 아내가 다녀왔고 정기점검 가던날 첫 사고가 났다. - 타이어 펑크나면 긴급출동도 불러야 하고 경고등 뜨면 뭔지 확인해야 한다. 그때그때 기름도 채워야 한다. 얼핏 사소할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다 스트레스다. 운전을 오래한 나에게도 그러하니, 아내에게는 더 스트레스다. 그래도 내 아내가 본인 자동차 기름은 혼자 넣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차차 나아지겠지 생각한다. 아내가 두 번째 사고의 후유증을 훌훌털고 꼬마차 타고 훌훌 날아다니길. 다 쓰고 나니까 배가 고프네. 귀요미야 기운내.
요즘하는 생각인데, 왕복 54km 출퇴근 너무 힘들다. 자동차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단어의 정의를 오랜만에 찾아본다. 우리말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걸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만드는 사람들이? 인간은 정의하는 동물이고 우울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에 나는 더 우울하다.
우울 -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 사전상의 정의다. 위키백과에서는 활동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적 상태라고 하고, '우울 정의'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슬프고 희망이 없고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는 상태,라고 나온다.
다 맞는말이다. 근심스러운 일이 있으니 답답하고 답답함은 활기 없음과 같다. 활기가 없으니 활동력이 떨어지고 무기력을 동반하게 된다. 내 근심의 원인은 결국은 나다. 그걸 아니 더 우울하다. 우울의 뜻을 뒤적거리다 보니 번민이란 단어가 나온다.
번민 -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하여 괴로워함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구와도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출근을 해야한다. 출근하기 싫다. 직장 동료들과 인사도 하고 싶지 않다. 괴롭다. 흔히 말하는 쉬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가만히 있고 싶다. 혼자서 어둠의 끝까지 다녀오고 싶다. 중간에 자체적으로 약을 끊은 게 실수였나? 약을 다시 먹어야겠다.
이번주가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다음주엔 아무 일도 없길, 아무 일도 만들지 않는 내가 되길. 출퇴근만 하는 식물이 되야지.
여전히 덥다. 강릉은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 기온 상으로는 오늘아침까지도 열대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저기온이 30도가 넘는 날들에 비해서는 한결 나아졌다. 시간의 흐름을 이런식으로도 느낀다.
좀 웃긴 표현이지만 베프 중에 베프 Y가 중3 아들이랑 같이 강릉에 다녀갔다. 친구는 산에 온 게 세 번째고 아이는 처음이다. 친구가 삽당령을 좋아해서 좋다. 친구 아이는 개미, 메뚜기, 거미를 신기해했다. 중학교 3학년이 이게 맞나? Y는 자수성가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느샌가 사람의 가치를 본인이 그냥 내어줄 수 있는 돈의 액수로 평가하는 사람이 됐다. 어제 저녁에 술 한참 마시다가 본인 친구 중에 내가 1등이라 필요하다면 돈 4천만원은 그냥 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 베프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게 씁쓸하다. 본인은 아나? 나중에 얘기 한 번 해줘야겠다. 혹시 나도 모든 걸 돈의 액수로만 평가하고 있지는 않나? 그 와중에 내가 일등이라 난 기분 좋은건가? 아싸 1등. 지금 본인 모습이 본인이 살아온 결과이고 열심히 산 친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친구 아이가 굉장히 부주의하다고 느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 원래 그 나이때 많이들 그런지. 친구는 본인 아이라 크게 이상한 점을 못 느끼는 건지 생각했다. 내 아이도 아니고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 친구를 2주 전에 서울가서 봤지만 강르에서 또 만난 게 좋았다. 고기가 익는 화로 앞에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 주로 옛날 얘기 - 나눈 순간이 특별히 좋았다. 친구도 그랬으리라 기억해두자.
아버지를 만났다. 지난주에는 한 시간이 넘게 조금도 쉬지 않고 말을 뱉었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별 말이 없었다. 동생이랑 영상통화를 했다. 동생 큰 아이가 9살인데, 동생은 아버지랑 영상통화할 때마다 그 아이를 아버지와 인사시킨다. 아이가 뭔가 희생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런게 있다. 그래도 자꾸 얘기하면 아버지가 아이 이름도 얘기하고 알아보니까. 괜찮은건가? 아버지는 언젠가 어씨 일족이 다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고 - 추석 성묘 때 아버지 외출 하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었다. - 어씨들이 착해서 잘 산다는 '어씨부심'이 있다. '어씨부심'은 아내의 표현인데, 좀 재미있다. 아버지랑 나랑 이런저런 얘기하는 중에 아내 얼굴을 보면 아내가 '꺄르르꺄르르' 웃을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일이 좋다. 사랑이다. 아내 말로는 아버지가 귀여워서 웃는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주말이 이렇게 지나갔다. 이번주도 별탈없이 보내자. 이번주는 광복절에도 아버지 보러 가야겠다.
여름이 가라고 매미가 우나 아직 귀뚜라미는 보지 못했는데, 벼가 익으라고 이렇게 덥나 벼 이삭은 이제 막 패려고 하는데, 찬바람은 언제 불려나 낙엽 떨어지는 소리 듣고 싶은데, 모든 계절의 입구에는 지나간 계절의 끝이 있는데, 뜨겁게 지나간 사랑의 끝에는 타버린 폐허만 남았다
어제 아내랑 같이 아버지 만나고 왔다. 토요일에는 서울에 있었기에 주 2회 아버지 만나고자 하는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지난주에 특별히 외뤄웠는지 한 시간 넘게 쉴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제대로 알아 들은 얘기는 없고 마무리는 본인은 잘 지낸다, 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했던 얘기를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음주에는 아버지가 말하는 걸 좀 더 신경써서 들어봐야겠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일어나서 밥 먹고 간식 먹고 점심 먹고 프로그램 있는날은 프로그램 진행하고 낮잠도 자고 저녁 먹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다시 일어나서 밥 먹고....의 반복을 산다. 이 반복 속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족이라던가 본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외롭다는 것과 현재 본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랑 관계 없이 현실을 받아 들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내가 매일매일 바짝 붙어 지내면서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든 다 들어준다면 아버지는 지금보다 덜 외롭겠지. 불가능한 일이다. 브루스 윌리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낼까? 생각해본다. 어제는 내가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면회 가는 바람에 아버지가 동생과 영상통화를 못했다. 내 불찰이다. 이번주에는 별일 없으니 토요일 일요일 아버지 면회를 가기로 한다. 우리 아버지 외로워서 어쩌나?
현재 우리 아버지는 - 우리 집이 요양원에서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무 외로워서 집에 오고 싶어한다. - 본인이 현재 있는 요양원을 학교라고 할 때도 있고 회사라고 할 때도 있다. - 아들 둘이 회사에 잘 다니는지 궁금해하고 회사를 학교라고 할 때가 있다. - 한글을 읽는 법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 애들이라고 하는 건 손주들을 지칭한다. - 엄마라고 하는 건 내 엄마(본인 전처)를 지칭한다. - 내 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 어씨들이 다 착하다는 말을 매번 반복한다.(이 말은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 불결 행위는 어쩔 수 없게 됐다.
아버지의 상태를 단편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게 현재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인가? 이런 아버지가 추석 때 성묘 행사에 참석하는 게 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버지 형제자매들과 가족들은 다들 밖에서 만난 아버지를 좋아할 것 같으니 아버지에게도 의미가 있는 걸까? 내일 모레 입추네. 덥다.
엄마 돌아가시고 세 달 자꾸 생간이 먹고 싶다 엄마랑 추억 중에 간과 관련된 건 없는데도 그렇다 핏줄이 끊어져 피맛이 당기는 것인가 생각하며 소 간을 먹는다 단지 엄마 핑계로 술 한 잔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물컹한 간 한접시와 소주 한 병이 물렁한 마음에 스며들고 소를 잡을 때 소가 운다던데 나는 울었던 소를 먹으면서 운다 엄마 한 번 생각하고 소주 두 잔 먹고 소주 한 잔에 간 두 점씩 먹는다 두 배로 슬퍼지고 네 배로 운다
바닥을 들여다 보다가 네잎 클로버를 보고 조심스레 수확했다 그대로 두면 금방 마를 것을 알지만 일단은 손에 쥐고 있다 네잎클로버가 발생할 확률은 오천 분의 일 이 숫자는 공신력이 있나? 이 숫자를 알아낸 사람은 누구인가? 이 숫자는 수학인가 과학인가? 둘 중에 누가 먼저고 어느쪽이 더 행운인가? 복권에 당첨되야만 행운은 아니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오천 분의 일의 오십만 배 정도 된다 오 천 분의 일짜리 행운을 어디다 쓸까 길을 가다 돈이라도 줍나? 누군가 나를 칭찬해 주나? 나머지 사천 구백 구십 구개의 행복은 다 어디에 있나 클로버를 쥐었던 손에 힘을 뺐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우울감은 많이 줄었다. 약발이 받는다. 다만 자다가 자주 깨는 일은 여전하고 레피졸에 발기부전이나 정력감퇴 부작용이 있나? 생각해 본다. 그런일로 우울하진 않다.
며칠 전에 사무실 뒷동산을 걷던 중에 어디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벌한테 쏘였다. 하루 지나니까 쏘인 왼손이 주먹왕 랄프가 되기 직전이길래 병원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약 먹는 거 있는지 묻는 바람에 외과 선생님과 잠깐 신경정신과 상담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하지 않고 시간 나는 날에는 아버지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은 편해지나?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엄마한테는 굳이 아버지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영상통화로 대체가 가능하다. 지난 토요일 영상통화 때, 아버지가 엄마 보고 유난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그보다 더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혼자 있는 시간에 울었다는 사실이다. -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또 울면 안돼요, 라고 해서 알게 됐다. - 아버지, 울지 말아요.
전자렌지를 샀다. 2012년에 혼수로 샀던 오븐겸 레인지가 고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 것 테스트 하려고 냉동 피자를 돌렸다. 우리 연립의 전력 총량의 문제인지 새 전자렌지도 잠깐 돌아가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내년에 이사 가야 하나? 이런 사소한 일들로 스트레스 받는게 싫다. - 큰 스트레스는 아니다.
중복날 아내랑 소고기 구워 먹었다. 고기를 잘 안 먹는 아내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고기가 맛있진 않았지만 아내가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무빙'이란 시리즈가 생각났다. 무빙에 울적한 류승룡이 아내랑 고기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무빙은 '부부가 한 달에 한 번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의 위대함' 을 알려주는 시리즈란 생각을 했고 아내에게 말해줬는데, 아내는 '무빙'을 보지 않았다. 아내랑 뭘 같이 먹을 때,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먹는 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다.
회사는 인사철이 끝났다. 인사 조치로 전에 있었던 직장 상사가 다시 오게 됐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좋은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나도 좋은 놈은 아니지 - 여긴 직장이니까 오거나 말거나 내 할일이나 하고 이 사람이 나한테 뭐 시키면 부당하지 않은 선에서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회사에서 바쁜 일이 몇 건 끝나서 당분간은 큰 건수 없이 자잘한 업무만 처리하면서 지낼 계획이다.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예정이다. 여름을 거치면서 우울감이 계속 줄어들면 좋겠다.
정치 뉴스를 보면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날씨를 느끼고 생각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 뿐이다.
괜찮은 건가?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아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괜찮은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엄마 젖 만지는 꿈 꾸고 벌에 쏘였기에 복권을 샀는데 꽝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 젖 만지는 버릇은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