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2박 3일 보내고 어젯밤에 강릉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다섯 번 깨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했다. 피곤하다.

 23일 저녁에 아버지랑 치킨 먹었다. 올들어 세 번째인데 아버지가 먼저 두 번보다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 먹는 모양새가 어설퍼서 순살 치킨을 시켰다는 점은 섭섭하지만 24일 아침에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반쯤 먹고 남았던 치킨도 다 먹었고 맛있다고 했기에 만족했다. 앞으로 아버지랑 치킨은 페리카나 순살 반반으로 고정하기로 한다.

 여러가지 정황상 아버지는 23일 오전에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못 찾았다. 나는 23일 밤에 친구랑 술을 먹고 친구네서 잤는데, 택시에서 내리고서 휴대전화 잃어버린 걸 알았다. 다음날 아침에 전화기 어떻게 찾을지 약간 막막했는데, 택시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카카오T 사용 기록을 ARS로 조회해서 택시 기사분과 통화를 했고 친절한 택시 기사분 집이 마침 신월 1동(아버지 사는 동네)이라서 파출소에서 전화기를 찾았다. 휴대전화 잃어버리기는 치매에 걸리나 안 걸리나 마찬가지네, 생각했다.

 23일에 나를 재워준 친구네 집은 역곡역 부근이다. 고등학교 때 이 친구네 집에 많이 갔다. 그때 친구는 온수동에 살았다. 서울에서 벗어났지만 삶의 터전이 많이 바뀌진 않았다. - 돈 없는 집들은 다들 조금씩 서울 바깥으로 밀려난다. - 술이 꽤 취해서 들어갔는데도 어렸을 때 느꼈던 특유의 친구네 집 냄새가 났다. 같은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렇다. 나이 먹고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네 집에 갈 일이 거의 없기에 집안의 냄새가 바뀌지 않은 점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그런가, 하고 말았다. 본인 집 냄새를 본인은 모르는 법이다. 나는 남의 집에 갔을 때, 그 집 특유의 냄새(atmosphere)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우리집 냄새에 대해서는 들은 기억이 없다. 지금 엄마집에 가면 나는 냄새가 어릴적 우리집 냄새일까? 궁금하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버지랑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가 정말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아버지와 나는 59.5kg 노인과 82kg 중년이다. 아버지 체중은 위암 수술 후에 5kg 정도 줄었다. 벗은 아버지 몸은 보기에 많이 야위었다. 아버지는 내 몸이 보기 좋다는 맥락의 말을 했다. 아버지랑 열탕에 몸을 담그고 매주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가던 어린날을 떠올렸다. '응답하라 1988' 같은 것. 그때는 어지간한 집은 다들 일요일에 목욕탕에 갔기에 목욕탕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비누칠도 어설펐다. 45세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71세 아버지 몸에 비누칠 해준 걸 기억해둔다.

 아버지랑 순대국도 먹고 만두도 먹고 한우소머리곰탕도 먹었다. 아버지는 머핀도 먹고 두유도 먹었다. 아버지에게 내년에는 요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무슨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거기도 사람들이 많은지, 같은 걸 물어보고는 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내일 학교(데이케어센터)에 가는지 계속 물었다. 나는 그냥 기계적으로 같은 대답을 하고 아버지는 같은 말을 또 묻고의 반복이다. 아버지는 니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도 반복해서 했다. 아버지랑 이런 얘기를 나눌때 마음이 찢어지는 정도는 아닌데, 충분히 상처받는다.

 아버지 집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하이라이트랑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봤다. 잉글랜드 축구는 빡세고, 러브 액츄얼리는 늘 사랑스럽다. 삶은 빡세고 사랑스럽다.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대학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명절이라 전화했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내 말투의 기계같은 면 때문에 후배가 '형, AI에요?' 물었지만 정말 고맙다. 날 생각해서 먼저 전화를 해준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형 중에 한 명(ys형)은 가끔 내가 전화하면 항상 '일우야 고맙다'고 한다. 나도 후배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런 게 삶의 사랑스러운 면이다. 꼭 먼저 연락줘서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전화를 귀찮게 느끼지 않는 것도 - 때로는 귀찮게 느끼더라도 - 삶의 사랑스러운 면이다. 20대 중반에 친구들 전화 잘 안 받은 적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니 생각해서 전화하는데 널 생각한다는 게 고마운 일이니 친구들 전화오면 전화 잘 받으라고 나한테 한 마디 한 적 있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삶의 교훈이다. 아버지는 그런 마음으로 살았고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산다. 내 전화 잘 받아주는 친구들이 항상 고맙다.

 12월 30일부터 1월 2일까지 아버지랑 함께 한다. 아버지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한테 별일 없어야 할텐데. 아버지 만나면 목욕탕도 가고 치킨도 순대국도 먹고 병원도 가고 휴대전화도 내 이름으로 새로 장만하려고 한다.

 엇나가지 말고 체념하지 말고 물의를 일으키지 말고 살아야지. 세 개가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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