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로 서울 다녀왔다. 2박 3일로 갈랬는데, 데이케어센터 선생님과의 면담을 금요일에 전화로 하는 바람에 서울 나들이 일정이 하루 줄었다. 하루만큼 덜 피곤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먼저 만났을 때 아버지가 맨 얼굴에 일회용 면도기를 갖다 대길래 아버지 집에 있던 일회용 면도기는 다 내 짐가방에 넣고 싸구려 도루코 면도기랑 면도날 4개를 검정 봉지에 담아서 데이케어센터 들어가는 문에 묶어뒀다.
 아버지가 빨대 꽂아 먹는 두유를 잘 못 먹길래, 쉽게 먹을 수 있는 다른 음료를 찾아보려 했는데 마땅치 않아서 빨대가 딸려있는 베지밀b를 사놓고 아버지한테 빨대 꽂아서 하나 드렸다. 두유를 먹던 아버지는 빨대가 두유팩에서 절반정도 빠져나오니까 먹기를 멈췄고 나는 빨대 끝이 두유팩 바닥에 닿도록 조치한 다음 아버지가 다 먹도록 유도했다. 아버지가 단 걸 좋아하는 거 같아서 베지밀 a가 아니라 b를 골랐다.
 토요일에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믹스커피 두 봉지를 찬물에 타고 있길래 물 끓여서 한 잔 타드리고 다음날도 한 잔 타줬다. 단 음식이 당기는 건가, 생각했다.
 자주 가는 순대국 집에서 밥을 먹었다. 남자 사장님이 전부터 지켜봤는데 아드님이 아버지한테 참 잘한다고 하면서, 본인은 저녁에 아들이랑 한 진 해야겠다며 말을 걸었다. 이버지가 치매고 요즘 많이 안 좋다고 간략하게 대꾸해줬다. 내가 아버지한테 하는 차분한 말투가 이 아저씨에게 좋게 느껴졌으리라. 우리한테 말 안 걸었으면 좋았을텐데. 다음번에 또 이 집에 갈 수 있을까? 원래 가려고 했던 청국장 집이 휴무였을 때부터 스텝이 꼬였다.
 아버지가 치킨을 먹고 싶어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배달앱에 이버지집 주소 저장하고 치킨 시켜먹었다. 일반 순살 후라이드를 시켰다고 생각햤는데 했는데, 치킨에서 단맛이 났다. 실수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먹는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어설프게 먹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순살을 시키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아버지, 다음엔 짭짤한 걸로 먹자구요. 아버지는 오랜만이라거 하면서 콜라도 맛있게 먹았다.
 나는 누워서 웹툰을 보고 아버지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나는 중간중간 그러냐고 대꾸를 했다. 아버지가 무슨 얘기하려는 건지 잘 모르니 대답이 더 건성이 된다. 아버지는 내 대답이 건성인 걸 모르니 계속 얘기했다. - 돈 들고 튄 계주가 제주도에서 붙잡힌 스토리 같았다 - 다음엔 집중해서 들어봐야겠다.
 아버지가 잠깐 자는 동안 나는 침대 아래 누워서 웹툰을 봤고 내가 잠깐 자는 동안 아버지는 집안을 끝없이 돌아다니면서 뭔가 정리를 했다.
 이틀동안 아버지는 딱 한 번 나한테 큰 소리를 냈다. 집에 들어와서 현관문을 잠그지 않으니 바람에 자꾸 문이 열린다고 도어락에 달린 동그란 버튼 눌러서 문 잠그라고 했더니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면서 나한테 화를냈다. 먼저 방에 오줌 눴을 때도 그랬었지. 말 조심해야겠다.
 아버지는 옷 갈아 입는다는 개념을 잊었다. 먹고 싶어서 라면과 커피믹스를 샀지만 물 끓이는 걸 모른다. 물 끓일줄 몰라서 차라리 다행이다. 순대국이 충분히 짰는데, 밥 한 숟갈 먹고 아버지의 젓가락은 자꾸 양파 찍어 먹으라고 준 된장을 향했다. 여전히 집애서 신발을 신고 있으려고 한다. 짧은 미국 생활의 영향이다. 옷을 타이트하게 입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동생이 연락을 자주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떤 때는 본인 작은 아이의 존재를 잊은듯 보였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면 나보다 동생쪽이 상심이 클테니 연락 자주 하라고 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나만의 착각이려나?

 나랑 있을 때 뭐라도 자꾸 떠드는 아버지는 안심이다. 평소에 얼마나 외롭겠나. 통화할 때 자꾸 언제 오냐고 보고 싶다고 한다. 치매가 오고 나서야 발현된 아버지의 진심이 두렵기도 하지만 나를 보고 싶어힌다는 건 날 잊지 않은거라 안심 쪽이 두려움보다 크다.

 이번 주말이랑 다음 주말엔 엄마가 아버지한테 간다고 하는데, 내가 힘들까봐 아버지한테 가는 엄마가 치매 아버지보다 더 걱정이다.

 운동과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 8시에 퇴근하고 운동왔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아버지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계단 위에서 계단 구르는 속도를 올렸다 늦췄다 하면서 쓴다.

돈 4억 5천 8백이 이렇게 너저지분한 세상을 나는 살고 아버지는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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