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요랑 영씨를 만났다. 겨울이라 일도 없고 머리 식힐겸 서울 나들이를 왔다. 

역시나 큰 눈은 길조다.

잘 곳은 있냐고 했더니? 영씨는 계획 없이 와서 아무데서나 지하철 역에서 자도 되고. 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집으로 고고!
족발 시켜서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폭설로 영업을 안 하는 바람에 김치 볶음밥 만들어 먹었다.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하던 중에
내가 영씨에게 부러 연락 안했다는 얘기를 했다.
영씨는 연락이 올때가 됐는데, 왜 연락이 안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애요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더니 기분이 좋다.
애요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를 좋아했다.

이 차를 다 마시면 봄날으로 간다. 봄날로 가는게 아니라 봄날으로 가기 때문에 좋은 노래다.

과거는 시간으로만 지나가고 다가올 봄날은 시공간을 합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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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새해 첫날이다.
눈이 옴팡지게 내린다.
캐나다에 눈 내리듯이 내린다.
도로가 마비되거나 말거나 내 기분은 좋다.

자동차를 실은 배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 되고
중국이 작년 4월부터 탈북자들의 출국을 허용하지 않고
예멘에서는 전쟁이 날 것 같지만(7시에 일어나서 뉴스에서 본 내용들)

어쩌면 이 큰 눈이 대재앙의 시작일지도 모르지만(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중국의 인공강우 실험 여파라고 생각하고 있음)

눈은 길조니까 올해는 좋은 날들만 이어질 것 같다.

HAPPY NEW YEAR!!

<사무실 앞 서소문 아파트도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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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 병원

그때그때 2009. 12. 30. 15:17
엄마가 오늘 오전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여러가지 체험을 했다.
하나는 수술 동의서에 싸인 하는거고 또 하나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전화벨이 울리고 나를 찾더니 떼어낸 부분을 보여 준다고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부리나케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남북관계로 따지면 비무장지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수술실과 보호자 대기실의 중간지점이 있다. 집도의가 금속 접시를 들고 북측에서 유유히 걸어 나온다. 의사는 접시 위에는 놓여 있는 엄마의 일부분이었던 것들을 집게로 집어서 보여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나는 차분하게 그 얘기를 듣는다. 남쪽 교섭단은 힘이 없다.

잠시 후에 엄마가 나오고 병실로 옮겨진다. 간단한 수술이었다고 하지만 무기력하게 수술을 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솓는다. 차마 엄마한테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이 안 좋은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제랑 오늘 아침에 엄마랑 여러가지 얘기를 하다가 풍요와 편리를 추구하는 엄마와 지금의 편리와 풍요는 거부하고 싶어하는 나 사이의 격차를 발견했다.
지금이 풍요와 편리의 시대가 아니라면 나도 풍요와 편리를 추구했을 것 같다.는 점에서 그 격차는 격차가 아닌 것이다.

p.s 병원은 돈도 많이 벌면서 입원실에 티비랑 휴게실에 있는 컴퓨터 같은 건 왜 돈을 내고 쓰도록 하는 걸까?

p.s 어젯밤 병원에서 보니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모두 곤죽이더라. 취업문제가 심각한데, 의사랑 간호사 숫자를 늘리면 되는거 아니야?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나? -> 해답은 단순한 생각 속에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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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2009년은 현재에 있으면서 이미 지나가 있다.
그런 2009년을 되돌아보면서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나머지 날들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은 의미 있거나 부질 없는 일이기도 하다.

22, 23일 양일에 걸쳐서 신나게 마시다가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지나간 - 정확하게는 고구미에게 내년 계획을 얘기하다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면 강릉에서 구하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든 - 생각이 그냥 되는대로 살자는 거다.

헤세의 "크눌프"에는 신이 투정하는 크눌프에게 정주하지 못하고 방랑했던 삶에 대해 그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대목이 나온다.

고인물은 썪는다. 인간세계에 고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영원한 방랑자도 잠시 한 곳에 정주하는 순간 썪는다. 육체는 고여있더라도 정신은 부유하고 있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불일치를 스스로 견뎌야 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다. 결국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편안함에 이를 수 있겠지만 나는 부처가 아니다.

나는 되는대로 사는 것으로 깨달음의 세계에 조금 다가가 보고 싶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막 사는 것과는 다르다.

어제 후배 하나를 만났는데,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의 직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결국은 처해있는 현실에 맞춰서 되는대로 살다보면 삶이라는 우주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내 우주에서 남을 해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막 사는 것과 같기도 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내 의지 밖에 있기 때문에 삶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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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전에 큰 추위가 있었고 대설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어도 동지에는 낮이 짧다.

어제 오후 네시에 사무실 밖에 잠깐 나갔는데, 길 건너 건물 창문들에 비친 하늘이 붉었다.

라디오에서는 낯 모르는 사람들의 훈훈한 사연들이 쏟아지고(젠장!) 나는 그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그냥 연말이라 마음이 들떴을 뿐이다. 잠은 무거운 휴식과 같아서 들떠있을 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 뿐이다.

동지는 어둠이 빛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오늘만 지나면 모든것이 빛의 자리를 찾아갈 거라고 

어두웠던 기억들이 앞을 볼 수 있는 힘을 줄 거라고 다짐해 본다.

오늘은 적당히 일 하고 실컷 마셔야겠다.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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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 송년회

그때그때 2009. 12. 18. 11:38
송년회가 하고 싶다.
겸허한 마음으로 일년을 돌아보는 뉴스에나 나오는 송년회가 아니라
흥청망청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리고 뒤엉키고 누구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그런 송년회가 하고 싶다.

짤방은 올 여름에 온수동에서 찍었던 자전거 타고 송년회 하러 가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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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파주에 다녀왔다. 합정에서 버스 타니까 일산 잠깐 지나서 금방 파주였다.
버스에 내려서 상민씨한테 전화를 했다. 걸어오라는 방향으로 걷다가 아파트 2층 베란다에서 손을 흔드는 상민씨를 봤다.
그 모습에서 내 방문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굉장한 여유가 느껴졌다.

출판인의 집 답게 책이 많았고 손수 만든 책장이 있었다. 얼만전 만나서 새 책장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기타스탠드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나비목까지 직접 새겨 넣은 책장을 보니 기타 스탠드를 꼭 만들고 싶어졌다. 아마도 이런것이 좋은 영향일 것이다. 나도 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상민씨가 저녁을 해줬다. 요리 전문가(?)답게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인데도 부엌이 정갈하고 냉장고 안과 싱크대가 쓰기 좋게 잘 정리된 상태였다. 상민씨는 이미 끓여 놓은 미역국이 있었는데도 미역국과 된장국 중에 내가 된장국을 선택하자 된장국을 끓여줬다. - 물론 내가 '된장국'이라고 대답할 때, 나는 미역국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된장국 끓일 때, 멸치를 정말 오래 끓이는 것이 맛의 비결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런, 또 좋은 영향을 받아버렸네. 상민씨는 설탕 대신 손수 만든 사과잼을 넣은 제육볶음도 내게 대접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저녁을 다 먹고 술을 많이 마신 나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루에 불이 꺼져 있고 상민씨랑 같이 누워 있었다. 바닥이 따뜻했다. 오랜 시간 정신을 잃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머릿속이 맑았다. 정확하게는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육볶음에 들어간 사과잼 때문이거나 그가 정성껏 끓여준 된장국 때문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미역국을 함께 먹지 못 하는게 미안했지만 좀 더 누워 있다가 집으로 왔다.

상민씨는 흙 속에 사는 생명체들에 대한 어린이 그림책의 원고를 본인의 상식선에서 쓸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다. 나는 상민씨 덕분에 땅강아지의 실체를 서른 두 살의 막바지에 알게 됐다.

해이리는 돈 있는 애들 노는 놀이터이고 여자들 보러 홍대에서 있는 모임에 나가겠다고 하는 그에게 얼른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젯밤에는 영화 '원쓰'를 봤다. falling slowly를 연주하고 싶어졌다.

노래랑은 별개로 아이 아빠를 고향에 두고 아일랜드로 이민 온 체코 여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혹시 그 집에서 쫓겨난는 상황이 왔을 때, 피아노를 가지고 쫓겨날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에 애 아빠도 아일랜드로 왔던데 돈이 궁하면 피아노를 가장 먼저 팔아버릴까? 같은 생각을 했다.

'가난'과 '빈곤'은 같은 말인데, '빈곤'의 반대말은 '풍요'정도로 하면 될 것 같아도 '가난'의 반대말은 암만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영어로 반대말 놀이를 해 보면 the poor <-> the rich, poverty <-> property일까? property는 '재산'을 뜻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재산이 없으니까 그대로 반대말이 된다고 생각해 본다.

루시드 폴의 '고등어'란 노래 가사에서는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라고 한다. 이 노래에서 '고등어'의 반대말은 '서울의 꽃등심'이다. 정말 슬픈 곡이다. 꽃 같은 사람들은 등심을 먹고 등이 푸르도록 일하는 사람들은 고등어를 먹는다고 하면 생각이 지나친 거다. 루시드 폴에게는 '고등어'가 가난이다. 라고 해도 너무 생각이 지나친 것 같다. 어제 늦게 자서 그런가 정신이 횡설수설한다.

어제 루시드 폴 새 앨범 들으면서 깊은 낮잠을 잤는데, 그것이 내가 늦게 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관련이 있다.



짤방은 타무라 시게루의 '고래의 도약'에서...(원제는 glassy ocean)
바다가 얼어버린 미래에 고래가 얼음 바다를 뚫고 도약한다는 아름다운 스토리였다.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잘 안난다.
저 고래자리에 고등어가 있어도 흥미로운 것 같아서 짤방으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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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제목 같다.

아버지가 엊그제 변기에 칫솔을 빠뜨리셨는데, 그 칫솔이 미끄러지듯이 파이프를 타고 내려가다가 어디쯤의 커브에 걸린 것 같다.
물을 내리면 물이 변기 안을 가득 채우다가 서서히 내려간다. 
불안해서 집에서 똥을 안 싼다. 
우리집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없다.
내 생각에는 솔에 휴지랑 이런저런 건더기들이 잔뜩 걸려 있기 때문에 물이 서서히 내려가는 것 같다. 
이 놈의 칫솔은 대체 어디쯤에 걸려 있는걸까?

초고층 아파트의 모든 층마다 옛날식 화장실이 있어서 똥오줌이 아파트 뒷편의 어느 곳에 쌓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퍼다가 온갖 작물이 가득한 주민 공용 텃밭에 뿌리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칫솔이 똥통에 빠져도 불안해서 똥을 못 누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텐데...


플리커에서 퍼온 사진인데 외계인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변기다. 외계인의 출입구를 봉쇄하기 위해서는 빛이 쏟아지는 변기에 얼굴을 묻고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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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 12월 1일

그때그때 2009. 12. 1. 09:22
 매달 1일에는 새로운 기분이 밀려든다.

 매주 일요일이나 월요일에는 그런 기분이 없는데, 1일에는 유독 그렇다.
'힘차게 이번달을 시작해 봐야지' 같은 기분은 아니고 '이번 달에는 어딘가에서 무언가로 횡재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같은 쪽이다.

 오늘은 12월 1일이다. 출근하고 사무실에 앉자마자 올해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이 다 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거나 화요일 오전에 이미 이번주가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랑 비슷한 심리상태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이 다 가고 이번주가 다 가는 것은 뭔가를 털어내는 상큼한 느낌인데, 그에 반해 올해가 다 끝났다는 생각은 쓸쓸함과 술 생각을 동반한다.

 12월의 첫날 파릿파릿한 산뜻함이 아니라 올해가 허망하게 끝난 것 같은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
 털어버려야 할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유난히 많이 뒤엉켜 있는 열한달을 지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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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다. 매일밤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잠든다. 그 동안 쭉 3단으로 틀던 것을 어제 5단으로 틀었던 탓일까? 따뜻한 기운에 싸여서 깊고 길게 잤다. 직장 동료에게 이 얘기를 하니 전기장판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며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한다. 나는 그래서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라고 대꾸한다.

 술을 마실 때는 크게 취한 줄 몰랐다가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취했음을 느낄때가 있다.

 내 방이 생긴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라디오를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 잠을 청하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취했다는 사실을 술자리가 파하고 나서야 알게됐을 때와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어제는 라디오를 듣지 않고 음악을 틀어 놓고 잠들었다. 전기장판의 강도, 라디오를 듣지 않은 것, 피로감이 겹쳐서 푹 잘 수 있었다.
 
 곰플레이어와 곰오디오 실행중에 CTRL + Z를 누르면 현재 파일 재생 후 시스템 종료, 현재 목록 재생 후 종료가 된다. 오디오데크가 없는 나에게는 아주 편리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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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터 시작된 짜증이 계속됐다.
 
 낮에는 대장이랑 그만두네 마네 하는 얘기들을 잠깐 했다.
 동료 하나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하길래. 짜증이 나서 그런다고 했다.

 그러다가 퇴근했다. 퇴근 인파로 가득한 전철이 반가웠다. 까치산에 내려서 집까지 걷다가 영일이네 들렀다.
 영일이 아버지가 귤 먹으라고 해서 귤을 하나 까 먹고 있는데, 영일이 어머니가 직장 다니냐고 물으시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좀 말고 서울에서 잘 다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네 엄마 호강 좀 시켜주라고 덧붙이신다. 나는 밝게 웃으면서 그러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호강'이라는 얘기를 오랜만에 들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낮 시간에 철없었던 내 모습이 엄마에게 미안해서 그랬을까?  갑자기 서러워졌다.

 돈이 없어서 '호강'을 못 하는게 아니라 마음이 문제다. 돈이 아예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잠이 잘 오는데, 마음의 불편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온다. 누구네 아들은 장가갔다는데, 우리 아들들은 언제 돈 벌어서 언제 장가가나.라고 엄마가 가끔 말씀하시는데, 그런 거 말고 다른 차원으로 우리 어머니를 다른 어머니들과의 비교 우위에 모실 수 있는 방법을 좀 생각해 봐야겠다.

 유명해져야 할까? ㅡ.ㅡ;

 내가 행복하면 어머니도 행복하고 어머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겠지만 의미없는 닭과 달걀의 순서 다툼에서 나는 어머니 순서가 먼저로 하고 싶다. 행복을 닭과 달걀로 얘기하려는 순간 이미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행복이 순서대로 오는 것이라면 어머니 순서가 먼저였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내 어머니는 나라는 어둠 속에 빛나는 달이다. 어쩌면 당신도......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필요 없다는 얘기가 무협지 같은데 많이 나오는데, 
 어둠을 밝혀주는 달은 두 개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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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이다. 겨울이다.

 어제는 민중의 집 1주년 기념 리셉션에 다녀왔다. 공식 명칭은 '후원의 밤'이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깊은 후원을 보내면서 지후네 밴드의 첫번째 공연을 봤다.

 즐거워 보이는 당신, 웃는 당신, 얼굴이 붉어진 당신, 아름다운 당신, 아름다운 당신의 목소리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지후는 즐겁게 일한다.
 물론 나도 즐겁게 일한다.

 지후는 정말로 즐거운 것 같은데, 나는 정말로 즐겁지는 않다.
 
 올 초에 일 그만둔게 말도 안 되는 사업제안서라고 부르는 나부랭이들 작성하다가 나를 좀 먹는 것 같아서였는데........
 그 비슷한 걸 또 하게 됐다.

 짜증이 좀 많이 나는데, 차분해지자.
 그렇지만 능력 밖의 일을 눈 먼돈 먹어 보겠다고 제안하려고 하는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게 꽤나 불행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직장운이 참 없다.
 내 마인드가 부정적이라서 그럴수도 있다.

 짜증나서 조금 찌껄이고 퇴근한다.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홍세화 선생이 어제 1주년 기념 축사로 했던 얘기는 내 주변부터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 실천이라는 맥락이었던 것 같은데, 내 직장 주변에는 바꾸고 싶은 것 보다는 부숴버리고 싶은 게 많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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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다가 빵 터졌다. 사실 중간까지는 다큐식으로 들고 찍은데다가 구성적으로도 평범해서 재미를 못 느꼈는데, 외계인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주인공 아저씨가(만화 'Arms'가 생각났다.) 자신의 전 직장으로 중요 물건을 구하러 간 장면에서, 외계인 친구와 함께 등장했기 때문이다. 컷으로는 나이지리아 갱단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외계인 무기를 입수하고 다음 컷에 건물 입구에 외계인 무기가 발사되는 장면이 나오고 다음컷에 외계인 아저씨와 함께 건물로 침입한다. 건물 잠입때 외계인 아저씨가 함께 등장하는 바람에 정말 빵 터졌다.

평론가들이 참 좋아할만하다 싶었다. 80-90년대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에는 영웅은 백인 영웅의 보조자는 흑인이다. 라는 것이 있는데(물론 '토탈리콜'의 흑인 아저씨는 결국에는 악당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백인 영웅이 영웅 같지도 않은데다가 그 보조자가 흑인도 아니고 외계인이다. 게다가 주인공의 흑인 동료는 마지막에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역할을 맡는다. 백인 영웅이 두 개의 유색 인종에게 도움을 받는것이다. 외계인의 이름이 크리스토퍼(콜럼버스)라는 점도 의미 심장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콜럼버스가 외계인이었겠지.

주인공 아저씨는 팔이 외계인으로 변한데 이어서('암스'의 변형으로 해 두자) '패트레이버'에 나왔던 것 같은(어쩌면 에반게리온이나 태권브이.....) 외계 무기에 탑승해서 전투를 벌인다. 이런 짬뽕적인 요소들이 꽤나 즐거웠다.

아저씨가 부인에게 고철로 만든 꽃을 선물하고 고물 더미 위에서 다시 고철 꽃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장면에서는 '이바'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월E'가 떠올랐다.

영화 오랜만이었는데, 재미있었다.

외계인이 약자라는 설정 자체가 훌륭했다.
이 땅에 약자들이 너무나 많이 때문에 좋은 은유다.
정작 이 땅의 수 많은 난민들 중에 이 영화를 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말이 좀 안된다.

영화를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 좋다.

매트릭스랑은 다른 의미로 혁명을 생각나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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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에 출근을 안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 5일제의 생활로 주말을 맞이했다. 토요일에는 티비에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기타연습을 했다. 중간중간 밥을 먹었다. 읽던 소설도 마저 읽었다. 뭔가 평화로웠다. 주말이라고 일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보낸게 참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오늘 일요일에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티비로 보고 흔히들 하는 주말 데이트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고 그 사람 앞에서 기타로 연습한 곡도 쳤다. 뭔가 평화로웠다. 그야말로 보통이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는 보통의 주말이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녹색평론을 읽었다. 오랜만이다.

 좀더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그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부유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크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풍요로운 생활은 빈자(貧者)의 이상"(한나 이렌트)이라는 말에는 반박하기 어려운 진실이 담겨 있다. 더욱이 억압적 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소외된 노동에 종사해온 노동자들에게는 차원이 다른 노동형태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따라서 그들의 현실적 욕망은 간소한 생활이 아니라, 부자들처럼 유복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되기 쉽다. -민주주의를 위하여(김종철)- 중에서

 내가 보낸 주말은 간소하기도 한 것이었지만 유복한 것이기도 했고, 내 보통의 주말에서 '보통'은 간소한 쪽보다는 유복한 쪽에 가까웠다. 누가 얼마전에 싫어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나한테 얘기해서 "가난이 싫다고" 똑 부러지게 얘기한 적 있었는데, 기가 막힌 매치다.

 이어서 '두바이 - 노예제 위에 세워진 신기루'란 르뽀 글을 읽다가 마음속이 폭발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고민이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나는 신기루를 세우는 노예가 되기는 싫다.

 영화판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 하나는 강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인줄 알았던 것이 알고보니 바다였고 돌아갈까 뒤를 돌아보니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얘기도 생각났다.
 
  결국은 쓸쓸한 주말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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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새벽에>
<옥상에서 낮에>

 이사 오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옥상이 있다는 점이다. 20층 옥상이 아니라는 점이 무척 아쉽지만 나랑 동생이 담배 피우러 올라가는 것 말고는 올라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3동 살 때는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갔기 때문에 머리 위로 지나가던 비행기가 우리집에 추락하는 상상을 많이 했는데, 1동으로 이사오니까 남의 집에 추락하는 상상을 많이 한다.

 비행기 추락사고라고 하니까 몇 가지 생각나는게 있는데, KAL기 폭파 사건이 있었고 마치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라고 강요하듯이 우뢰매의 심형래는 비행기 폭파 사고에서 살아남은 초능력자로 등장했으며, '시암선셋'이란 영화에서는 지나가던 비행기가 떨어뜨린 냉장고에 깔려서 주인공의 아내가 죽는다.(영화는 별로였는데, 이 장면이 내 머릿속에 몇 년째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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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행'의 여자주인공은 매일 술에 취해 있고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매춘으로 내모는 엄마를 가스로 살해하면서 이후의 인생에서 어둠속을 걷기 시작한다.

 어제 낙산공원에 갔다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엄마와 아들을 봤다. 
 
 엄마와 아들이 공원 매점 앞에 놓인 파라솔 아래서 컵라면을 먹는다. 아들은 짜장 컵라면을 먹고 엄마는 왕뚜껑을 먹는다. 아들은 라면만 먹는데, 엄마는 김밥 두 줄을 라면 국물에 찍어서 한이라도 삼키듯이 꾸역꾸역 삼킨다. 게다가 엄마는 캔 맥주를 마셔가며 먹는다. 테이블 위에는 캔 맥주가 두 개 놓여있다.
 

 짜파게티 면을 삼키던 아들의 무덤덤한 듯 불안한 표정이,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에게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김밥을 라면국물에 담그고, 맥주를 홀짝거리던 엄마의 무심한 듯 불안한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보통 명절연휴는 가족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즐거운 시기다. 

 추석 연휴 첫 날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때마침 '백야행'을 드라마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어제 봤던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겠지.

 어제 본 엄마와 아들의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이라면 좋겠다.

 돌아가신 큰 이모 아들내미(내 사촌 동생)가 술에 취한 채 해가 뜨는 오산천을 바라보다가 울면서 막내이모에게 전화해서는 엄마가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인줄 몰랐다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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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 이사

그때그때 2009. 9. 28. 14:08
윤상 노래 같은 쓸쓸함은 전혀 없고, 엄마를 필두로 시작된 이삿짐 날라주시는 분들에 대한 불만이 온 가족에게 퍼져가는 가운데 이사가 끝났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 이사가야 할 가능성이 높으니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은 피하고 가진 것도 많이 버린 가운데, 남아 있는 덩어리들(장식장, 가구)을 활용해서 집안을 심플하게 가져가자는 내 제안이 엄마에게 받아들여져서 기분이 좋다. 5층 짜리 빌란데, 다른 층에는 두 집씩 있지만 5층에는 우리집 밖에 없고 옥상도 거의 우리집의 전유물이어서 그것도 기분이 좋다.

인터넷이랑 케이블티비 이전료 내라고 해서 해지 위약금 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업체를 사무실에 와서 알아보고 있는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지만 몇 푼이라도 남기면 담배값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마 내가 지금 기분이 괜찮은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리뉴얼한 가게의 장사가 순풍에 돛단 듯 진행되고 있어서 기분이 좋은 엄마에게 언제라도 돈 많이 준다는 사람 있으면 팔고 그만두라고 얘기했는데, 흔쾌히 동의해 준 것 때문인 것 같다.

월급 받자마자 주문한 '여우의 전화박스'가 오늘 도착했길래 금방 읽었다.
슬펐다. 많이.

여우가 요술을 부릴 수 없다고 했던 엄마 여우가 마지막에 요술을 부리지만 수화기 너머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사를 했으니 화이팅이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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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모 회사 연구개발팀에서 일하고 있다.
나를 스카우트까지는 아니지만 Hook Up은 더욱 아닌 것 같고, 내게 Job Offer를 내민 사람이 지금 팀장님인데,
작년에는 내가 팀장님의 팀장이었다.

작년에는 사무실의 4층 발코니에서 가끔 담배나 함께 피우던 사이였는데, 새 직장에서는 술도 늦게까지 같이 먹게 되고 대화의 빈도도 높아지면서 조금 친해졌다.

오늘 같이 대화하는데, 팀장님이 본인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정말 그런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팀장님은 직장 생활에서는 무관심하면서 착하거나 무관심하면서 악해야 하는데, 본인은 80 퍼센트는 착하고 20 퍼센트는 나쁘다고 한다. 
나는 사람한테 관심을 많이 가지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악해지는 상황들을 이야기하면서 80 퍼센트 착한 지점에 무관심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20퍼센트 악한 지점에 무관심이 들어가 있으면 직장생활이 힘든 것이냐고 묻는다.

예를 들어보자.
한 신입사원이 일을 열심히 안한다. 팀장은 그 신입 사원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냥 지켜본다. -> 관심이 있고 착한 지점
그 신입사원이 어느날 그만 두겠다고 하고 팀장은 '네가 농땡이 치는 걸 알았지만 봐준거야'라고 한다. -> 여전히 착한 지점
그 신입사원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겠다고 하자 팀장은 받아준다. -> 착해서?
팀장은 그 신입사원에게 막중한 책임을 지우고 정말 열심히 일 하도록 만들고 싶다. -> 악하면서 무관심한 지점 

그냥 오늘 오후에 팀장님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사무실 아래 담배 피우는 빈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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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 하고 있다. 다행이다.
재미 있는 사람을 한 명 알게 됐고, 새로운 세계(자본주의의 녹물 같긴 하지만)도 알게 됐고,
나를 초청해 준 고마운 분도 나에게 잘 해준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보고 웃어줘서 너무나 고마웠고,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고,
오늘은 한 후배가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웠고,
동료가 듀얼모니터 설치를 내게 물어봐 줘서 고마웠다.


오늘은 아침부터 큰 비가 왔다.
김형경의 '담배 피우는 여자'는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양치를 하던 새엄마와 같은 것이리라 생각하며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데, 건너편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인네들의 담배 연기가 깊고 웅장하게 피어오른다.
내 담배 연기를 돌아보니 취한 듯 비틀거린다.
어려서는 마음들이 모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된다고 믿었다.
오늘의 내 마음은 비틀거리는 연기가 되어 휘날리다 사라진다.
아마 지금도 어린시절의 마음을 가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번주에는 내 생일이 있고,
이사를 가야하고, 월급이라는 이름의 돈이 생긴다.

여전히 당신이 있어줘서 너무나 다행이고 강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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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에 보면 주인공 아저씨가 주머니에 들어 있는 30원(지금이라면 30만원?) 정도를 가지고 18번을 곱절하면 엄청난 액수가 되니 신문사를 열어서 자기를 채용하지 않은 신문사 편집장 코를 납작하게 해 주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헉슬리의 '토요일 오후'에는 허름한 주인공이 공원을 산책온 미모의 두 여인을 보고 그녀들 중에 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결혼까지 하는 공상을 하다가 위험에 빠진 그녀들의 개를 도와 주면서 악당개에게 물리고 이 상황까지 자신의 공상이 적중하자 더욱더 그녀들과의 결혼을 기정 사실화 하는 상상을 하지만 그녀들은 거지 같은 행색의 그에게 돈 몇푼을 던져주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린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헛물(이나) 켜고 있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헛물을 켜고 있었을까?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라디오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것?
 적게 벌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 가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
 모든 일이 다 잘 될거라고 막연한 기대와 근거없는 자신감에 몸과 마음을 맡긴것?

  너무 주체적인 부분이 부족한 삶을 살았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시스템과 상관없이 어떤 주체성을 갖고 있어햐 하는데, 그런면에서 나는 0점이고 나를 포함한 누구도 내게 미래를 기댈 수 없다. 엄청 슬픈일이다. 올 초에도 주체성 얘기를 하면서 새해 결심과 앞으로의 살아갈 방향을 정했었는데, 원점근처로 되돌아 와 버리는 과정에서 깊은 혼란이 있었다. 변산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살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 경험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그 동안 서울에서 자연스럽게(혹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보다 더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주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거침없이 살아야겠다.

 사라마구의 '모든 이름들' 속의 주인공 처럼 일상 속에서 극대한 자극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로 헛된 공상이다. 공상은 공상으로 끝나는 게 좋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지금까지의 나도 잘 해왔던 것 같은데........... 크게 내 마음을 엇겨나가게 산 적 없는 것 같은데...........

 사는 게 어렵고 어지럽고 쉬워도 어지럽고 봄날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아름답게 무너지기도 하고 흰 꽃가루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두둥실 거리기도 한다.


 두 작품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로또 복권을 사고 일주일을 기대에 부풀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로또를 사야겠다.

 그냥 뭐라도 적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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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 두 개다.

 첫 번째는 어떻게 살까?다. 정말 지겹지도 않게 되버린 지리한 문제다.

 두 번째는 함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다. 첫 번째랑 깊은 연결 고리를 갖고 있고,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깊게 고민할 문제다.

 데이트라는 건 무엇일까? 두 사람이 같은 삶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며 함께 하는 순간들을 갖는 것!이 이상적인 정의다.
 그냥 보통으로는 호감을 갖고 있는 남녀가 함께 하는 순간들을 갖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는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이 순간 같은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 결혼을 시작으로 한국적인 고도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가 많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돈을 벌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집을 사고 저축을 하고 노년을 걱정하며 보험에 가입하고 부부간에 다투기도 하면서 보통의 행복(요즘 이 보통의 행복에 꽂혀있다.)을 부부가 함께 쫓는다.

 결혼을 하고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가끔씩 언론에 노출되는 (인간극장 류에 나오기도 하고) 뭔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보이는 부부관계가 대표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돈 욕심 없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부부다. 이 경우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지 강력하게 체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강력하게 체제를 부인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현실에 대한 전면적인 부인 속에 현실을 사는 모순에 쓰러지지 않고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돈을 많이 쓰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어서 못 쓰는 거지.라는 말은 돈 있는 사람들이 던지는 치명적인 반론인데, 이런말 들으면 확 쳐버리고 싶을 것 같다.) 담배도 사야되고, 초코우유도 사 먹어야 되고, P2P 이용을 위한 결제도 해야하고, 새 휴대전화도 갖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일은 빼 놓을 수 없다.

 체제에 전적으로 순응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어떻게 살까를 내 마음에 들게 구상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고, 그 구상에 지후가 동의해 준다면 함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는 사소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농사 짓는다고 변산에 내려 갔을 때, 지후는 올 초에 지리산에 같은 목표 지점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 무척 좋았겠지만 나는 서울에 남아 있는 당신이 아쉬웠다. 함께 내려와서 삶에 대한 서로의 고민들을 함께 했더라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까? 

 현실적으로 나는 돈 문제 없이 살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 지점을 안고 가기로 결정했다. 변산에 있어 봤기 때문에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지후와 함께 하고 싶은 문제는 결국 이래서야 '밥을 같이 먹는 것 밖에 없잖아'라는 그녀의 얘기에서 시작됐다. 그냥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로의 취미를 존중하며 서로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시간들이 좋은 것만으로 좋은 것이다.

 내 문제는 내 얘기를 당신에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함께 할지, 어느 곳을 함께 바라볼지는 좀 더 천천히 생각해도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언제나 같은 결론으로 나는 나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너무나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는게 다 어렵지, 남들도 다 어렵게 사는데, 상관없어.라는 마음으로는 못 살겠다는 것이다.

 두서 없이 길었다.

 정비석의 '성황당'이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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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냉장고가 고장났다. 이사 오면서 샀던, 대문보다 사이즈가 커서 냉장고 문짝을 떼고 힘들게 지금 자리를 차지한 냉장고가 8년만에 고장났다. 냉장실, 냉동실이 한꺼번에 맛이 갔다. 수리를 하려고 했는데, 수리비가 20만원이고 고치고 나도 또 고장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는 어차피 이달말에 이사가야 하니 힘들게 들어왔던 냉장고 버리고 이사사면서 새로 사자고 하신다.

그래서 냉장고 없이 한달을 살게 됐다.
내가 냉장고에서 주로 이용했던 것은 계란과 고추장과 물과 콜라 뿐이어서 큰 불편은 없을 것 같긴한데, 시원한 물을 먹고 싶다고 슈퍼에서 생수를 사오는 동생과 막걸리를 보관할 곳을 잃은 아버지를 보면 약간 싱숭생숭하긴 하다.

그래도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냉장보관이 필요한 것들은 냉장고에 보관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다.

냉장고 고장 때문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다. 네이버랑 다음이 한꺼번에 없어져도 사람들은 포탈 사이트를 찾을까?

습관은 무섭고 물질문명이 부여하는 습관은 더 무섭다.
반자동 세탁기를 쓰는 우리식구들은 자동세탁기로 갈 수 있겠지만 삶아주는 기능을 가진 트롬 세탁기를 쓰던 집은 자동세탁기로 돌아가기도 힘들 것이다. 동생과 아버지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불편인데, 문제는 편하고 불편하고가 아니라 실질적인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마이너스인 상태인데, 짧은 기간 동안의 경제 성장으로 몸과 마음에 익은 각종 경제수치가 올라가면 실질 소득도 올라간다는 인식 때문에 몸과 마음이 최신 물질문명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최신 물질문명은 빚덩이의 대기업이 만들어낸 것이고 소비자들은 가계빚으로 그 물질문명을 이용한다.

돈이 세상을 굴리는게 아니라 빚이 세상을 굴린다는 생각을 했다.

냉장고 고장에서 생각이 지나치게 나갔다.

다시 결국은 매체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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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 8월이

그때그때 2009. 8. 31. 20:03
8월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서 구름 한 점 없는 적당히 파란 하늘 아래를 지나 화곡역까지 오랜만에 걸었다.
점심 먹고는 파랗디 파란 하늘속에 구름들이 송송 박혀 있는 풍경 아래서 담배를 태웠다.
오후 시간에는 점점 짙어지는 구름들이 여전히 파란 하늘 아래 반짝였다.

8월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내 마음도 모르고 지나간다.
내가 잔인한지 시간이 잔인한지 잔인하게 지나간다.
도무지 시작을 알 수 없는 뒤틀림 속에
그렇게 8월이


중심을 세우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중심을 세우는 일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내 중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 중심이 남들 다 하는 중심이더라도 그게 내 결론이면 그게 맞는거라고 생각한다.
8월은 잔인하게 흘러가는데, 나는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앉아서 여전히 파란 밤하늘 아래 이러고만 있다.


상진군과 잠깐 통화했다. 진주에서 딸기 농사 얘기를 건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 일단은 열심히 하라는 간단한 말을 해줬다.
위로가 됐다. 그냥 일단을 열심히 하라는 간단한 말에 위안이 찾아왔다.

사실은 힘을 내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건내는 '힘내'라는 한 마디가 소중한 것이
지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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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났다. 얼마전 일이

저녁 징소리가 울리기 전에 나무랑 보리랑 늘 그렇듯이 야구를 하다가 (셋이서 하는 야구는 정말이지 재미있다. 한명은 투수, 한명은 수비, 한명은 타자) 기숙사에서 식당으로 향하던 새날이랑 선웅이 모습을 보고 문득 선웅이가 괜찮은 공을 던질 것 같아서 새날이를 타자로 세우고 선웅이한테 공을 던져 보라고 했었다.
                                                                   <밀집모자 쓴 뒷모습이 나>

초반에는 좋은 공을 던지더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바로 엉뚱한대로 공을 던졌던 일이 생각났다. 이윽고 저녁징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은 더 하고 싶다고 했지만 피곤한 나는 밥 먹고 더 하자고 하면서 놀이를 마쳤다.

밥을 먹고 이어서 야구를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때 말고도 나무랑 보리랑은 야구를 많이 했다. Y가 Y의 축구 교실이라고 해서 초딩들이랑 축구를 많이 했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데, 야구를 잘 모르던 아이들이 나랑 야구 몇 번 하더니 즐거워 하길래 종종 야구를 했다. 빵꾸난 테니스 공에 청테이프를 둘둘 감아서 만든 공으로 많이 놀았다.

그냥 점심을 먹고 갑자기 이때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어쩌면 사진은 (기록은) 아주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지금이 나쁜건 아닌데, 그냥 점심을 먹고 갑자기 이 사진 속의 순간이 생각났다.
이 사진을 찍은 손님도 누군지 기억이 난다.

지금이 나쁜건 아닌데, 그냥 점심을 먹고 하늘을 보다가 갑자기 이 사진이 생각났다.

사진이 먼저 생각나고, 사진 속의 순간이 생각나고, 이때가 생각난 순서가 맞겠지만
지금이 나쁜건 아니기 때문에 상관 없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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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형이 요양원을 개업했다. 개입식에서 선배, 동기, 후배들을 만났고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남현이 생일에는 술 먹다가 기절해서 친구들이 여관에서 재워줬다. 주사를 안 부려서 다행이지만 각별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상민씨랑 술을 마셨고 고구미 생일도 있었고 강릉에 갔다가 밤바다를 잠깐 봤고, 고무신을 신고 감자를 캤으나 그 다음날 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그 다음다음날부터 출근했다.

지후가 엑스자로 가는 것 같다고 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가슴이 쿵닥쿵닥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아닌 것 같은 신뢰, 서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후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7월말에 신문에서 '여우의 전화박스'라는 책 소개를 읽었다.

줄거리 - 아빠 여우가 병으로 죽고 엄마 여우가 살아갈 유일한 힘이던 아기 여우가 엄마 여우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게 되자 엄마 여우는 길가의 전화박스에서 먼 곳에 사는 엄마와 통화하는 사람 아이의 통화를 엿들으며 아기 여우를 잃은 슬픔을 달래게 되고 사람 아이도 사람 엄마에게 떠나고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전화박스에 들어간 엄마 여우는 아기여우에게 엄마는 혼자서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단지 책 소개를 읽었을 뿐인데, 지하철에서 줄줄 눈물을 흘렸다.

아기들이 엄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는 그 아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성장한 아이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엄마를 사랑하는 것 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엄마들은........

나는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기 여우이고 지후는 엄마 곁을 떠난 아기 여우인데, 우리 엄마는 보통의 행복을 이야기 하고 내 취직에 무척이나 행복해하고 항상 나를 걱정하고, 나는 엄마의 행복 얘기에 답을 하지 않고 취직을 통해서 약간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데, 동준이 아들내미 돌잔치에서 본 5개월된 건영이 딸내미는 완전 예쁘고, 너네 아이 정말 예쁘다는 내 얘기에 건영이는 너도 얼른 결혼해서 아기 낳아! 얼마나 행복한데. 라고 답했다. 이러고 있는데 집은 갑자기 이사를 가야하고 엄마는 한숨만 푹푹쉬고 지후는 엑스자로 나가고 있다고 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를 떠날 수 없는 아기 여우는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대학로를 산책하다가 15까치 넘게 들은 담배를 두 갑 주웠다.

다 잘 될거라고 나한테 힘을 주는 메세지라고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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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다녀왔다.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조금은 뒤로하고 다녀왔다.
나를 배려해주는 지후의 마음 때문에 함께 걷는 길이 더욱 즐거웠다.
이틀에 걸쳐서(시간적으로는 하루에 걸쳐서) 한 구간 반을 걸었다.
중간에 냇가도 만나고, 저수지도 만나고,
냇가에 발담그고 놀기도 하고 풀밭에 들어가서 똥도 누고 함께 노래도 듣고 당신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 등 오랜만에 즐거운 기분이었다.

전주에서 묶었던 숙소도 맘에 들었고, 막걸리 촌에서 함께(?) 마신 막걸리도 좋았다.

더군다나 이틀동안 무척 파란하늘 아래 우리 두 사람이 놓여 있어서 뒤죽박죽인 마음이 많이 상쾌해졌다.

이런 좋은 기분과 기운들을 그대로 이어서

행복해져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지리산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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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다. 7월인가 싶었는데, 6월인가 싶었는데, 새해인가 싶었는데.... 8월이다.
쓸쓸하게 지후집을 나서서 터덜터덜 음악을 듣고 있는데, DS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아니 잘 못 지내. 라고 얘기하고 여러가지 위태로움들을 말했더니, 그런게 사람 사는 거지 나 보다 낫네라고 한다. 또 자기는 로봇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는 아시모프의 단편들을 읽었다. 로봇같이 사는것도 "그런게 사람 사는 거지"에 포함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지후가 대중이 형의 요양원 개업 소식을 들으며 내가 제일 나은 것 같다고 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머릿속이 많이 꼬여있다.

계속 거절하던 보험가입을 마지못해 해버렸다. 지후에게 왜 거절하지 못했냐고 하는 얘기를 듣자마자 후회했다. 그러게 나는 줏대도 없이(그것 보다는 대책도 없이) 가입하기 싫은 보험에 가입했다.
요양원 개업식에서 본 대학 선후배와 동기들은 어떻게든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지후는 차가운 내 모습에 끝내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 삶의 거대한 부분에 그녀가 있다.
엄마 말대로 그녀가 다른 곳을 못 보게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녀에게도 같은 것이다.
다른곳을 못 보게 만들어 놓고 당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내가 원망스럽고 서러울 것이 당연하다.
지난 사년간을 통해 아무말도 못하게 만든 것은 당신일텐데, 대답없는 나 때문에 당신은 울고 있다.

이것은 달아날까?의 문제가 아니다.
달아날까.는 장난같은 상황에 써야하는 말이다.

현경 누나는 믿을 사람이 있는가에 대해서 묻고 나서 내가 남의 말들을 전한 것에 대해서 말한다.
나는 그것이 내 악마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내가 가진 폭로의 문제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상민이는 부쩍 나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내가 지후에게서 얻던 위안들을 지후는 나를 통해서 얻어 왔을까?

모든것이 혼란스럽다.

아마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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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볼 일이다.

지난 금요일에 급작스럽게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계속 변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들이다.
그 곳 생활이 너무 나랑 잘 맞아서 즐거웠고,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잠 못 드는 이유야 앞으로의 내 인생 때문이다. 원점으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나아간 듯 멀어진 듯 다시 제자리로구나..
리틀 포레스트의 '인생=나선'이 더욱 뼛속 깊이 와닿는다. 

나는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일 수록 본인들의 인생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아둥바둥 하고 있다.

어딜가는 사람사는 일이 다 똑같다는 얘기를 많이들 한다.
이 말이 먹고 자고 싸고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비슷하다는 맥락임을 알겠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의 인간관계란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딜가든 비슷할 수 있다. 어쨋든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점에서 삶이란 것이 크게 봤을 때 누구에게나 비슷한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작은 부분에 사람들이 목을 매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다.
글로 정리 하니까 일목요연하긴 한데, 마음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조심하자고 조심하자고 몇번을 다짐하고 적고 생각했는데도 트러블을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는 무책임한 도피.....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

처음부터 책임감이 없었기 때문에 그쪽 어른들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도피는 아닐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솔직히 그 사람을 한 번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냥 어느 시점부터 그 사람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험하게 싸우더라도 다음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화해하고 얼굴 보면서 같은 상에서 밥 먹을 수 있겠지만 도저히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지난번에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가 식구들이 모여서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서 식구들 만나서 자주 밥을 같이 먹는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이 지후의 지금이 우리 관계에서 중요한 시기.라는 말과 함께 자꾸 머릿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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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했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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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나면 내가 처음에 정말로 지랄같은 곳이라고 하더라고 버티는 기분으로 있자고 생각했던 변산에서의 3개월을 맞이한다. 아주 좋은 사람들이 많은 시기에 이곳에 내려와서 쉬기도 많이 쉬고 놀기도 많이 놀았다. 물론 일도 많이 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독립해서 근처에 사는 식구들 얘기는 한결같이 6, 7월은 일이 힘들어서 사람들도 날카로워 지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는데, 그 분들도 내 얘기에 동의 하는 지점은 지금이 공동체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고 날을 세우는 사람들이 없는 시기라는 점이다. 나는 이런 좋은 시기에 이 곳에 내려와서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좋은 시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던 한 친구가 엊그제 서울로 떠났다. 본인의 말로는 일이 힘들었다거나 누군가와의 다툼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전에 서울에서 하던일에 계속 미련이 남아서라고 한다. 나는 당연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곳을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자기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는(나로 친다면 지후나 고구미 영일군) 친구가 이곳에 없었다는 점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과 함께 그가 떠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는 점이다.(물론 나는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떠나는 것이 맞는 진행이 아니겠는가 라고 그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현재 공동체 식구들 대부분이 사람이든 일이든 스스로가 견딜 수 있는 울타리를 크게 쳐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어쩌면 내 얘기인지도 모른다. 내 또래의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기 보다는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신나게 놀고 그 중에 몇몇에게는 하고 싶은 얘기도 다 하고 있다. 아마도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을 넘어서는 대화를 이곳의 젊은 사람들과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너무 예쁘다. 

어제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5시에 새벽일을 잡아서 고구마와 들깨를 심었다. 다 심고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쏟아졌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늘 오전에 후딱 해치운 모내기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제발 비가 많이 오기를 바랐다. 확실히 6월의 일이 힘들어서인가 대부분의 작업들에 덤덤한 나도 많이 지쳤다. 그래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비 소식을 기다렸다가 고구마를 심은 이유는 고구마를 심고 바로 비가 오지 않으면 일일이 물을 떠와서 물을 줘야하기 때문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곳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농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비가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은 나는 가장 일손도 많고 사람들끼리 다투는 일도 적은 행복한 시기에 이 곳에 내려온 곁다리 식구인 것인데................
요즘 사람들도 편해지고 일도 익숙해져서 인지 말이 조금은 많아져서 걱정이다. 어제 정말 오래만에 쓰는 일기에서 이런 걱정을 여러차례에 걸쳐 쓴 것으로 봐서 곁다리 멤버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말로 오래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지후가 많이 보고 싶은 것 말고는 항상 즐거운 진행이니 과음과 그에 이어지는 말들을 조심하면서 계속해서 즐겁게 지냈으면 한다.

곁다리~ 오늘 식구들끼리 보리 심었던 자리에 모내기를 했다. 식구들이 워낙 많아서 후딱 끝났다. 나는 모내기때 모도 잠깐 심고 주로 못줄을 잡았다.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을 수 있도록 논의 넓이에 따라서 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팽팽하게 당겨주는 일이다. 내가 "어이~`"라고 외치면서 줄을 뒤쪽으로 옮기면 사람들이 또 겁나게 모를 심는 식이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 손모내기를 하다보니 일이 정말 많이 익는다. 경철이 형이라고 이 동네에서 오래 농사 지으신 형님이 나한테 모 잘 심는다고 칭찬해 주셔서 살짝 기분이 좋았다.  장마 전에 되도록 많은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6월 5일부터 정말이지 바빴다. 덕분에 기장을 제외한 모든 밭작물을 다 심었고 앞으로는 논과 밭을 매는 일이 주가 될 것 같다. 6월의 땡볕을 맞으면서 논에 웃거름을 주고 보리를 베고 탈곡하고 콩과 팥과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는 일, 삽으로 밭 두둑을 잡는 일은 정말 힘들다. 그렇지만 맨발로 잘 갈린 밭에 들어가서 메주콩을 심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결국은 익숙해졌을때 사람들을 대하는 일과 내가 하는 말들을 조심하자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포스팅~~
내일 또 비가 온다고 하니 비 오기 전에 참깨를 옮겨 심어야 해서 오후에는 참깨밭 일을 할 듯 하다. 언제나처럼 즐겁게 일하고 깔끔하게 담배 한대를 피울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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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치고 서울에 4박 5일 동안 올라와 있었다.
담담한 모습으로 사는 일이야 서울이건 변산이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담담함이 스스로 편하게 느끼는 담담함이냐가 문제인 것 같다.

그곳에서의 삶이 나를 얼마나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바꾸고 있는지를 알게 해준 서울 방문이었다.
내일이 망종인데, 내가 없는 동안 보리를 베지 않았기를 기원해 본다.
이 마음은 일에 대한 막연한 욕심이 아니라.... 함께 몸을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욕심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농사일도, 식사당번도 열심히 해 나가야겠다.

'리틀 포레스트' 라는 만화를 지후 덕에 읽었다.
여자 주인공은 고향인 시골마을로 도망쳐 내려와서 살고, 그녀의 남자 후배는 자신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내려와 산다.
변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내려와서 정착한 사람, 정착을 위해 내려온 사람, 도망치듯 내려온 사람, 도망친 사람,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살고 있다.
여자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받은 편지 내용은 이러하다. '인생은 무엇을 하든 제자리로 돌아와서 원을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이 아니라 나선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선이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닐까' 
만화속의 주인공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거창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여름 계절학교나 추석때까지만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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