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네. 올해가 거의 다 갔네.
오래된 노래 가사처럼 <주말이 되면 의무감으로> 요양원에 전화를 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현재, 아버지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 어제는 컨디션이 좋아서 내 이름을 불러줬는데, 그것도 한 번 뿐이었다. 머릿속의 기억이 단백질 덩어리로 뒤덮이고 복잡하게 뒤엉킨 이미지를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어제 그 뒤엉킴 속에서 내 이름을 뽑아올렸다. 조만간 내가 면회를 가도 그냥 누가 왔나보다 할 것 같다. 내가 한 달에 두 번이나 한 달에 한 번만 아버지를 만나러 가도 상황은 지금과 같다. 그런데 왜 나는 매주 아버지를 보러 가나? 아버지가 말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매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가까이 살아서? 그런 것 같다. 못다한 사랑이 남아서? 는 아닌 것 같다. 재작년에 아버지 만나러 매주 서울 올라갔던 때가 정말 힘들었지만 호시절이었다.
아버지의 봄도 나의 봄도 다 지난일이다.
삶이 정체됐다. 나이 먹으니 당연한 일인가? 싶다가도 답답할 때가 많다. 뭔가 새로운 걸 하면 괜찮아지나? 삶이 마음에서부터 굳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 새로운 걸 하는 루틴만 일상에 추가될 뿐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나? 잘 모르겠다. 젊은이들 운동하는 걸 보기만 해도 젊어지는 기분이니 운동을 다시 시작할까? 갑자기 어깨가 또 아프면 어쩌지?
요즘 재미 중에 하나가 오래된 007영화를 보는 거다. 예전 007은 액션이 과하지 않아서 좋고 - 툭 치면 상대가 기절함 -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좋고, 눈만 마주치면 본드걸들이 유혹에 넘어오고,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아서 좋다. 인생을 게임이나 웹툰이나 영화처럼 살고 싶은데, 현실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써야 하니 답답한가?
도널드 트럼프는 인생이 재미있을까? 그 사람과 나의 공통점은 콜라를 좋아한다는 점인데(트럼프도 코카콜라만 마실거라고 생각한다.) 차이점은 트럼프는 책상 아래 버튼을 누르면 비서가 콜라를 갖다주고 나는 콜라를 집에 쟁여두고 먹고 싶은데 아내 눈치가 보여서 그때그때 사 먹는다는 것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걸어서 10분 거리다.) 암튼 트럼프는 콜라 마실 때, 인생이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어제 아버지랑 헤어지고 답답한 마음에 콜라를 사 먹었다.
일론 머스크는 인생이 재미있을까? 스페이스 엑스를 쏘아 올리는 카운트다운을 할 때만 인생이 재미있을 것 같다.
저녁에 술 마실까? 술도 깨고 나면 허망함만 남는다.
병원에 가봐야겠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아직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병원에 가봐야겠다. 다녔던 곳 말고 새로운 곳으로 체육관 등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