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릉에서 친구랑 밥을 먹었다. 친구 뒤쪽 테이블에 엄마가 아이 셋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다. 막내는 이제 아장아장 걷는 정도의 나이다. 엄마가 밥을 뜨러 간 사이에 막내가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하자 언니가 아이를 번쩍 안아서 엄마한테 데려갔다. 언니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였다. 아기는 이내 울음을 그쳤고, 네 사람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둘째 이모가 가끔 우리 엄마를 업어 키운 얘기를 하시는데 - 두 분은 열 살 차이다.- 어제 본 모습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혼자서 집에 오면서, 대를 잇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전에 지후랑 우리 엄마를 만나러 갔었다. 엄마는 지후의 팔을 붙잡고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채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냈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셋이서 밥을 먹으러 나가서는 나랑 동생을 곱게 키웠다는 얘기를 했다. 이미 엄마에게는 과거가 되버린 이야기들이다. 아들이 결혼을 해서 손주를 보는 것도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만 자기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이미 과거인 것이다. 어느덧 부모의 과거는 자식들의 현재가 되고 꾸역꾸역 대를 이어나간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자식들이 다시 물려 받는다는 것, 대를 잇는다는 것,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순환의 고리같은 것.....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함이 느껴진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dignity + destiny의 느낌이다.
명절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둘째 이모가 가끔 우리 엄마를 업어 키운 얘기를 하시는데 - 두 분은 열 살 차이다.- 어제 본 모습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혼자서 집에 오면서, 대를 잇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전에 지후랑 우리 엄마를 만나러 갔었다. 엄마는 지후의 팔을 붙잡고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채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냈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셋이서 밥을 먹으러 나가서는 나랑 동생을 곱게 키웠다는 얘기를 했다. 이미 엄마에게는 과거가 되버린 이야기들이다. 아들이 결혼을 해서 손주를 보는 것도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만 자기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이미 과거인 것이다. 어느덧 부모의 과거는 자식들의 현재가 되고 꾸역꾸역 대를 이어나간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자식들이 다시 물려 받는다는 것, 대를 잇는다는 것,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순환의 고리같은 것.....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함이 느껴진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dignity + destiny의 느낌이다.
명절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