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6

그때그때 2011. 5. 16. 09:52

 어제는 서울가서 고구미랑 마셨다. 중간에 기억이 끊어졌다. 확실히 술이 약해졌다.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일으키는 '술'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술이 약해져도 약해진대로 좋다. 뭐랄까... 결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지점과 같은 맥락이다.

 다섯시 반에 일어나서 춘천행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황사와 봄안개가 가득하고 청바지에는 자욱한 김칫국물 자국, 이어폰에서는 엘리엇 스미스가 부른 because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당신(들) 생각. 당신이 당신인지 당신이 아닌지, 아니면 다른 당신인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지........ 고추를 심으며 묻었던 당신(들)이 계속 머리를 때렸다.

 교육원으로 걸어 올라오는 길에 거울이 있어서 내 모습을 봤다. 얼굴이 좋다. 활짝 핀 얼굴은 아니지만 몸 전체에서 은은하게 자신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곤 옛날 생각이 났다. 고구미랑 '정영음'얘기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제 안성의 '광신극장'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시나 많은 것은(또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서 했던 고백과 응답, 그리고 여관, 손에 묻은 치킨 기름이 아주 예쁘게 느껴졌던 일, 좌석표가 없는 극장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식스 센스'를 봤던 일, 수원에서의 데이트,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 바람 같았던 이별, 아침 7시에 강의실 앞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담배 피우며 묻던 '잘 지내?'란 말.

 음................................

 고구미, Thank You(언제나 그렇듯이 ^^; 항상 고맙게 ~^^;) 내가 예전에 줬던 티셔츠가 돌아왔네~(이런 사소한 것들이 감동적이야. ^^;) 

 몸은 깼는데, 머릿속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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