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Jean Grenier)

2008. 10. 19. 03:02

내 생에 단 두명의 작가가 있다면(조금 극단적이긴 한데...) 그르니에와 사라마구이고, 단 한명의 작가가 있다면 언제라도 자신있게 그르니에 라고 하겠다. 위대한 작가들의 죽음에 대한 통찰을 읽을때, 나는 굉장한 희열을 느낀다. 아까 커피숍에서 한참 수다 떨다가 그르니에 얘기가 나온 김에 올려본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몹시도 원했었다. 나는 겸허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섬'의 케르겔렌 군도 중에서

'섬'은 전체가 다 훌륭하지만 특별히 케르겔렌 군도 편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너무 좋아서 전체를 타이핑 한 적도 있었다. 내 불안의 터널에 출구를 어느정도 보여준 명문이다. 민음사 버전은 친구에게 준 관계로 청하 출판사 버전으로 올린다. 확실히 민음사 김화영선생의 번역이 좀 더 매끄럽지만 같은 맥락이다. '케르겔렌 군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세이가 아닐까...

 아침이면 산 피에트로 성당에서 그레고리오 미사가 열리고, 저녁이면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온천장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하루 종일 대괴석들의 황홀한 흰빛을 볼 수 있고, 밤새도록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

 '지중해의 영감' 이탈리아.... 에서 

 태양은 아프리카 산 위로 불쑥 솟아올라 사슴 빛깔로 물들이며 하루 종일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바닷속에 다리가 잠길 정도록 길게 기지개를 켜는 이 짐승과도 같은 빛깔을 애무하고 싶어할 것이다.

 익명의 인간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일, 나의 직업, 나의 가족,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곧 잊을 수 있을 것이며, 나를 잘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맡아야 할 역할도 없고, 더 이상 일부러 꾸며서 해야 할 어떤 태도도 이제는 없다.

 '지중해의 영감' 북아프리카....에서 

 만일 인간이 어떤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가 풍경보다 훨씬 더 멀리있는 죽음을 늘 자신의 배경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는 자신의 최후에 대한 첨예한 직감만이 오로지 욕망에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지중해의 영감' 에서

 지중해의 영감도 누군가에게 줘 버렸는데..기록해둔 노트를 오랜만에 꺼내보니 기록해 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편에서 옮긴 부분이 아까 얘기하고 싶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났던 그 대목이다.

 예전에 신대성 군과 그르니에 얘기를 했었는데, 대성군은 그르니에가 제 1세계의 돈 걱정 없는 교수이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태평해 보이고 마음속은 나약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나도 어느정도는 동의하지만 그르니에의 글의 훌륭함은 나쁘게 볼 수 있는 모든 방향을 다 취해보아도 바뀌지 않는 그런 차원의 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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