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잤다. 엄마가 해준 밥 먹었다. 엄마 밥은 맛 없어도 맛있다. 엄마가 싸준 반찬 잔뜩 싸가지고 돌아왔다. 사랑이다. 동생에게 아이가 둘 있다. 조카들을 몇 년만에 봤다. 큰 아이는 초등 2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다섯살 터울이던가? 확실히는 모르겠다. 자주 안 보면 미취학 조카 나이는 잘 모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버지 면회가서 동생이랑 영상통화하면 동생이 항상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인사를 시킨다. 조카 아이는 늘 전화기 너머로 수줍게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큰 아이는 할아버지랑 함께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안다. 다 잊고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뇌가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동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줘서 애들 장난감 두 개 사갔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큰 아이가 어릴적에 프로레슬링 한다고 놀아주면서 '베어허그'를 먹여준 적 있다. 그 아이는 나를  '큰아빠'가 아니라 '베어허그 삼촌'으로 기억한다. 좋은일이다. 애들봐서 좋았다. 어쨋든 핏줄이라 그런지 조카들 일 년에 한 번은 보고 싶고 <엄마 없는 날>  재미있게 놀아준 삼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젠간 그럴 기회가 있을 거다.

 

 연휴 동안 아버지 면회를 두 번 갔다. 같은 시간에 갔는데, 두 번 모두 간식 먹고 휴식 시간에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와 있기에 밖에서 만났다. 아버지 육체가 건강하고 많이 답답해하기에 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담배 피울 때,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고맙습니다. 담배 한 보루 사 드리고 싶은데, 얇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 까지만 알아냈다. 요양원에 코로나가 퍼진 덕분에 면회시간이 짧다. 마스크도 써야하고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면회 신청서 쓰다가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제 기저귀를 차고 있고 점점 더 다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우편물에 아버지가 어찌 지내는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최근 받아본 내용에 똥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봤고 반가워했으니 그걸로 됐다.

 

 엊그제 S누나집에 쌀이랑 양말 갖다주러 갔었다.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길래,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럭저럭이 우울이다. 우울증이 여전해서 병원에 다시 가야지 싶다. 날씨가 문젠지 아버지가 문젠지 회사가 문젠지 내가 제일 문젠지. 9월말  날씨가 8월말 날씨같다. 아버지 만나고 돌아서면 울고 싶다. 회사에서는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아무일도 아닌데도 울렁거리고 짜증이 치솓는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 있는가? 물으면, 대답은, 있다. 많다. 사정이나 형편 같은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내 멋대로 사는 것도 세상의 흐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내 멋대로 살고 있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다. 답답하네.

 

 허리, 어깨 등 군데군데가 아파서 운동을 쉬고 있다. 우울증에 달리기가 좋다고 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에 등록해볼까 한다. 미친놈처럼 달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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