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해도 나훈아 뒤로 해도 나훈아 공연을 다녀왔다.
치매 걸린 아버지가 지금도 프로그램 시간에 부르는 노래가 나훈아의 '가지마오'다. '가지마오'는 나한테는 '찻집의 고독'이랑 한 세트인 곡인데, 어렸을 때는 노래방에서 두 곡 다 자주 불렀다. 오늘 공연에선 이 곡을 안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나훈아를 좋아했다. 이모랑 외삼촌들이 다 노래를 잘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했다. - 철이 삼촌이 '청춘을 돌려다오'를 특별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 아버지가 강원도고 엄마가 경북이라 그런지 우리집 어른들은 나훈아랑 남진을 비교하기 보다는 - 경상도 사람들에게 남진은 나훈아랑 비교 대상이 아님 - 화투 치면서 나훈아랑 조용필 중에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나는 조용필도 좋아하고 나훈아도 좋아한다.
나훈아 공연히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고향역'이 첫 곡일거라 생각햇는데, 오프닝에 "코스모스~~" 하는 순간 살짝 울컥했다. '사랑'에서 '영영'으로 바로 이어 부른것도 좋았다. - 나한테는 이 두 곡이 한 세트다 - 공연에서 제일 좋았던 건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 배호의 '누가 울어' 본인의 '무시로'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세션이었다. 특히 '누가 울어'가 정말 좋았다. 50년 이상 프로 가수로 살면 평범한 기타 코드를 쳐도 간지가 줄줄 흐르는구나 생각했고 브라이언 맥나잇이 가끔 어쿠스틱 기타 치면서 본인 노래 업로드 하는 것도 생각났다.
'공' 이라는 노래 중간에 멘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난 좀 지루했는데, 관람객들이 대체로 나훈아의 말솜씨를 좋아했다. '공'은 비교적 최근 곡인데, 조용필의 최신곡인 '그래도 돼'랑 주제가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장들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 -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본인 멋대로 살면된다 - 일맥상통하는 느낌? 이 같은 주제의식은 요즘 아이돌 노래도 마찬가진가?
나훈아는 84년에 '청춘을 돌려다오'를 불렀고 2005년 에는 '고장난 벽시계'를 불렀다. 이 두 곡 사이에 20년이란 시간이 있고 같은 듯 다른 두 곡의 노랫말의 간극이 기묘하다. 조용필은 84년에 '아시아의 불꽃' 이 실린 앨범을 냈고, 송창식은 83년에 '우리는' 을 불렀다. 각자 본인들의 길로 간 거장들의 현재 모습이 다 보기에 좋다.
본인 성기가 절단 당했다는 루머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 직후에 나온 곡이 '테스형'이었던 듯 - 세월 흐르고는 공연장에서 웃으면서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나훈아의 은퇴 공연을 봐서 아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잘하시더라. 은퇴 후에 행복하시길 바란다.
조용필 신보를 들으면서는 폴 매카트니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훈아는 비교 대상이 없네.
조용필 공연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다. 글을 마치는 지금 BGM으로 조용필의 '꽃바람'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