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건강검진 받았다. 수면 위내시경 처음 해봤다. 내시경 방에 있는 선생님들이 수면은 준비할 게 많아서 귀찮다고 하길래 다음부턴 다시 쌩으로 하겠다고 받아쳤더니, 그래 달라고 하면서 웃었다. 약물에 의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고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첫경험은 늘 새롭지, 라는 진부한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약에서 깨어나서 의식이 돌아온 후에, 약물로 사람 하나 조용히 보내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건강검진 마치고 서울가서 친구들 만났다. 26년전 처음 알았던 사람들이 모여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는 자리, 후련해지기도 하고 찝찝해지기도 하는 그런 자리였다. 얼마전에 아내가 남들 걱정하지 말고 자기 걱정해달라고 했는데, 실상은 친구 daniel이 늘 걱정이다. 회사 그만 두는 게 큰 의미가 없어서 회사 그만두지 않은 것처럼 내가 남들 걱정하는 일로 그들이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걱정이다. s 선배도 걱정이고 친구 s도 걱정이다. 생각해보니까 내 걱정의 주된 요인은 돈 문제와 관련이네. - 동네에 새로 개업한 가게를 걱정한다거나 하는 일 - 나의 21세기에는 돈과 사랑만 남았네. 이제부터 이사갈 집 알아봐야 하는데, 나도 걱정이다.
토요일 밤에 꿈을 꿨다. 명절 앞두고 엄마에게 가는 길이다. 신월동에서 출발해서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개봉동 정도에 있는 우체국에 돈 찾으려고 들렀다. 엄마가 은행문 열었을 때, 창구에 가서 돈 찾으라고 했는데, ATM으로 찾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우체국 ATM이 내 돈을 두 번 먹었다. 액수는 10만원 정도다. 마음이 급해졌다. 경비 서는 사람이 두 명 있길래 사정을 말했더니 담당자가 지금 자리에 없다면서 담당자 집으로 찾아가보라면서 집을 알려줬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ATM 주변에서 고장신고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당황한 채 잠에서 깼다. 별거 아닌 꿈이다. 돈도 없는데, 왜 돈 꿈을 꿨을까? 생각했다. 이사 스트레스 때문인가?
어제는 아내랑 같이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면 아내가 꺄르르 웃는 일의 반복이다. 아내가 웃는 걸 보는 게 좋다. 아내에게 왜 아버지 면회 자꾸 같이 가냐고 물으면 아버지 귀여워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게 맞는 건가 싶지만 아내가 웃으니 좋고 웃는 며느리를 보고 아버지도 기분 좋으니까 좋다. 어제 아버지는 두 번 정도 나를 본인 동생과 헷갈렸는데, 그 동생이 어느 동생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면회 마치고 아내 차로 잠깐 드라이브를 했는데, 아직 운전이 서툰 아내가 내게 이것저것 물어올 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 면회를 막 마친데다가 아내 운전이 서투니까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긴 한데, 싸움이 안 난게 다행이다. 아내에게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낸다기 보다는 내 안의 화를 표출하는 방법이다. 아내도 그걸 알기 때문에 가끔 본인에게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얘기해준다. 아내 말을 듣고 아내에게 큰소리 내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일로 마음이 많이 진정되기도 한다. 날 걱정해주는 아내가 늘 고맙다. 근데 나는 친구들은 걱정되는데, 남들 걱정말고 본인 걱정하라는 아내는 별로 걱정이 안되네. 걱정하지 않는 사랑인가? 걱정하지 않는 것도 사랑인가? 사랑이다. 걱정하면 돈이고 걱정하지 않으면 사랑이다. 그게 나의 21세기 자본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