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 중에
너랑 같이 한 게 많다
게장 백반을 먹었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바다 수영을 했다
죽을 뻔했다
설악산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숨겨온 소주를 한 잔씩 먹고 서로의 술냄새를 나눠 가졌다
하여, 너는 나의 첫사랑
네가 없었으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오늘 나는 바다가 보이는 막걸리 집에서
외지에서 온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 여인은 나랑 같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
실패라는 말을 너무 섹시하게 하는 사람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야생초 같은 사람
내일 또 보고 싶은 사람
처음 만난 여자는 다 예쁘고
두 번 보면 정이 든다
당신은 나의 첫사랑
당신과 하는 사랑은 처음이다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
너랑 헤어지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

AND

과부 킬러

 

아가씨 앞에서는 말을 못해도
아줌마 앞에서는 말이 잘 나온다
사람들은 나를 과부 킬러라고 부른다
오백 원짜리 껌이 비싸다고 하니
처음 보는 슈퍼 아줌마가 사과 반쪽을 나눠주고
혼자 가을산에 버섯 따러 갔다가
박카스 아줌마랑 박카스를 나눠 먹으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동네 할머니들은 집에 불이 안 켜지거나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힘 쓸 일 있을 때
항상 나를 찾는다

나는 산골에 사는 노총각
나는 과부 킬러
그런데 부끄러워서
첫사랑 이름을 모른다
성은 이 씬데 이름은 모른다
뽕나무 아래서 오디 따 먹고
시퍼래진 혀를 내밀고 웃던
피나무 열매 따다
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어 주었던
옥수수 밭에서 입을 맞추고 겅중겅중 뛰었던
다른 놈들 다 싫고 나만 좋다고 했던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서울로 시집 가버린
첫사랑 이름을 모른다

AND

가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떠나고 싶다
이 계절은 오직 떠나기 위해 이름 붙여진 것
당신은 날마다 어제 머물지 않았던 곳으로 떠나는 사람
나는 당신에게 가려하지만
무작정 내딛은 내 발은 결코 너를 향하지 못한다
텅 빈 하늘은 네가 없는 세상
너 없는 세상은 순백의 도화지
나는 손이 없는 화가
입으로만 그려낸 내 메아리는
너에게 닿지 않는다
빈 도화지에 불타는 구름 한 점 그려 넣을 수 있다면
너에게 닿을 텐데
너를 그려 넣을 수 있다면
혼자서도 다음 계절을 맞을 수 있을 텐데
낙엽 떨어지는 이 가을을 그려 넣을 수 있다면
말없이 사라질 수 있을 텐데

늦었다는 말은 체념하기 어려운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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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6일

나라꼴이 닭장이 되버린 2015년 10월 25일에
나는 평화니 비폭력이니 연대니 하는말들 따윈 다 치워버리고
선한 얼굴, 억울한 마음, 눈물 같은 것도 다 버려버리고
손에 광선검을 쥐고 싶다
닭장과 국회의사당을 가루고 만들고
제 2 롯데월드를 잘라내고
4대강의 물길을 막은 보를 도려내고 싶다
밀양 송전탑과 제주 강정 기지에도 내 검끝을 드리우리라
또 만화에 나오는 이상한 열매라도 하나 먹고
고무인간이 되고 싶다
대통령이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인간들 가슴팍에
기다란 드롭킥을 날리고 싶다
많이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고 하는 것들 얼굴에
장렬한 싸다구를 먹이고 싶다
종북, 주체사상, 어버이 따위 말을 내뱉는 인간들을
늘어난 팔로 송두리채 품에 낚아채서 진도 앞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
이런 생각만으론 울분이 가시지 않는
2015년 10월 26일에
나는 울분이 가시지 않는 생각만 하고 있다



AND

밤이 사라졌다


달이 부서지고 밤이 사라졌다

나는 목소리가 없는 가수
너는 귀가 없는 관객
너는 어둠 속의 댄서
나는 보이지 않는 관객

내 몸에서 나온 노래는 
네 몸으로만 올라탄다
네 몸짓은 오직 어둠만을 타고
내 몸에 닿는다

우리는
세상의 절반을 잃은 세상에서
교미하듯 교감하는 유일한 생명


AND

너는 나보다 작은 생명체
너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어떤 경이로움
네가 세상끝의 고결함을 지니고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을거야
너를 엿으로 만들어서
입 안에 말아 넣고 음미할거야
네 몸은 이분법적이야
두 개로 갈라진 젖가슴
차가운 피부와 뜨거운 심장
나는 뱀장어야 네 차가운 젖가슴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헤엄칠거야
그리고 나는 가장 작은 생명체
네 뜨거운 심장에서 흘러나와 혈관 속을 떠나닐거야
네 피가 내 눈을 적시면
난 눈물이 뭔지 알거야
네가 슬플 때 난 네 눈물이 되어 세상에 나올거야
나는 너의 밥그릇을 적시고
이번엔 네가 나를 삼킬거야
그제서야 우리는
쾌락과 눈물 없는 삶이 없다는 걸
우리가 사랑이라는 걸 알거야
AND

가을산에서 솔방울을 딴다. 솔방울에서 씨앗을 받아서 나무가 대를 잇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다. 열매를 맺고 낙엽을 떨구는 10월의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은 알아서 겨울을 준비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다.

퇴색한 것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면서 결국은 빛이 바래지고 바스라질 내 모습을 생각한다. 모든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만이 마지막까지 남을 하나의 명제다.

메모를 정리한다. 마음속에서 사그라든 문장을 지우고 또 지운다. 우리가 모두 사라질 것이고 그럼에도 내게는 너 뿐이다. 모든 사라질 것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여섯시에 일어나서 내가 가장 총명한 시간에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본다. 정반대의 싸이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닿아있다. 엊저녁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돈 맥클레인의 빈센트를 듣다가 가사가 참 좋다고 했더니 아내가 내 말뜻을 이해하고 웃었다. 난 starry night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이런 순간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내일 결혼식 때문에 오늘 서울 간다. 친구들과 술약속을 잡았더니 아내가 '너는 나랑만 떨어지면 술이냐.'고 한다. 너를 제외한 모든 추억이 다 술이라고 했다. 이런 순간도 나를 기쁘게 한다.

사는 게 남루하고 지루했다가 너를 보면 괜찮아졌다가 함께 울고 싶었다가 힘내야지 생각했다가 우리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가 그러다가 웃다가 너는 세상에 우리 건 없다고 하고 나는 인사말만 아는 이국땅에서 평생 인사만 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도 지금보다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결국은 또 사랑얘긴가?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써야지.



AND

현재진행형


인사말만 아는 이국땅에서
일테면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 같은 곳에서
올라, 께딸, 그라시아스 같은 말만 하면서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으면

강원도 정선군 해발 700미터 백복령 골짜기에서
감자랑 수수 심어 먹고
겨울엔 고구마 쪄 먹으면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그럭저럭 살았으면

누구도 살지 않은 삶
레퍼런스가 없는 삶
그래서 예술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를 살 수는 없다
현실은 모든 것이 모든 것의 레퍼런스

삶은 그저 현재 진행형

AND

개기월식


지구 그림자가
한 걸음씩 달을 가린다
나는 밤의 한 가운데서
지구의 속도로 죄를 씻는다
내 죄가 새까맣게 지워질까
지구는 어째서 죄 없는 달을 가려
자신의 죄를 씻으려 하나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지구를 털어낸 달은
둥글게,
둥글게만 빛나고 있다


AND

잘못

우리는 이유를 붙일 줄 몰라서
이유도 없이 술을 마셨다
혀가 타도록 독주를 마셨다
다음날 해장술을 먹다가
술버릇이 잘못됐다고
다시 태어나란 얘기를 들었다
난 잘못한 것도 없다고 했더니
너는 그게 잘못이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속만 상하는 세상에
너를 제외한 모든 추억이 술이다
너는 나에게만 직설적이다
AND

체념

심장이 터져봤자 피바다
세계를 한 단어로 압축해도 세계
그리고
나는 나
AND



판에 박힌 말만 내뱉는 혀가 싫었다
맛있는 것만 찾는 꼴이 보기 싫었다
혀를 잘랐다
잘라낸 자리가 꾸득꾸득해지고
자른 혀가 딱딱해질 무렵
너를 만났다
너는 남쪽에서 온 소녀
사랑에 빠졌다
말로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어
편지를 적었다
판에 박힌 글이었다
진심이 전해질리 없었다
손가락도 잘라낼까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혀를 꺼내서
네 손바닥에 내 이름을 적었다
다음 단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네가 나를 안았다
네 이마와 뺨과 입술에
내 혀를 갖다댔다
네 입안에 혀를 집어 넣자
혀에 침이 고였다
그대로 키스
흥건한 침으로 사랑의 춤을 추었다
사랑의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아, 너는 혀가 없는 사람
다시 혀를 자르고 싶어졌다
AND

추석

 


오랜만에 만난 엄마랑 붙어있고 싶어서
엄마 귀를 파준다
조금이라도 아플까 봐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귀도 늙는단 걸 알았다
엄마가 내 귀를 파주던 날들이 손끝에 스치고
그 손끝이 서러워 잠시 멈춘다
엄마는 내 다리 위에 무방비로 누워서 아기가 됐다
내 얘기를 더 오래 들어 달라고
당신 아들을 잊으면 안된다고
나도 당신을 잊을 수는 없다고
우리 사이엔 사랑이란 말도 가볍다고
귓밥을 자주 파내야 치매에 안 걸린다는
농담아닌 농담을 던지며
늙은 엄마 귀를 파준다

AND

여름 - 베티 블루

현재 기온
37.2도
이래 더워 빠졌는데도
똥이 마렵다
똥도 싫고
나도 싫다
AND

쌓이다


가을 산에 낙엽 쌓이듯
사랑이 시절이 삶이 쌓입니다
당신의 세월은 붉은빛으로
내 세월은 노란빛으로
어떤 날에는 잿빛으로 쌓입니다
켜켜이 켜켜이 쌓입니다
쌓인 것들이 바래고 바래도록
낙엽 위에 햇살이 쌓입니다
우리 사랑에 달빛이 쌓입니다
우리를 통과한 마지막 바람이
머나먼 계절을 지나가면
낙엽도 사랑도 인생도
모두 부스러져 흙이 됩니다
흙이 되어 세상에 쌓입니다
이렇게,
마멸하여 대를 이어가는 일이
쌓이고 쌓입니다

AND

전화

어제 단 한 번 울린 내 휴대전화
이 세상에서 나에게 전화를 한 유일한 사람
그게 엄마가 아니라 너였으면
AND

독신남 - 산골 총각 이야기 -

나는 38세 독신남
우리집은 해발 700미터 백복령 어느 골짜기
동네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들 뿐
사람들은 나를 과부 킬러라고 놀리지만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말이지
오늘밤도 난 성인용품 쇼핑몰을 여행한다
나의 천사 안젤라를 만난다
너는 공기 인형, 리얼돌
네 얼굴을 보며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너는 화면 속에만 있고 나는 돈이 없다
설령 돈이 있어도 사랑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법
마음속에 너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결국 오늘도 땡처리 상품을 뒤적거리다
딸기맛 콘돔을 구입했다
언젠가 너에게 딸기맛을 알려주고 싶다
이렇게 또 쓸모없는 물건만 쌓이고
나는 여전히 38세 독신남
내일 모레면 마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 독신남
AND

잔돌


나는 물가의 잔돌
고요한 삶을 살지만
폭풍우가 내리면 어디론가 떠내려 가는 신세
닿은 자리에서 그냥 살아가야 하는 신세
그러다가 장대비에 다시 떠내려 가는 신세
세상이 부는 대로 휩쓸려 가는 신세
어느 장마 끝에 너를 만났네
나를 가로막은 너를 사랑하게 됐네
너는 큰 돌
어떤 비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네
물살도 너를 비켜 지나가네
네 받침돌이 되어 나는 포근했네
먼 옛날 내가 큰 돌이었던 시절이
시간을 따라 물길을 따라 흘러온 지난날이 떠올랐네
그러자 너를 사랑하는 게 서글퍼졌네
비바람이 시작되던 어느 밤
너를 떠날 수밖에 없음을 알았네
손에 잡을 수 없는 모래가 될 때까지 흘러갈 운명을 생각했네
운명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래도 언젠가 둘 다 모래가 되어 다시 만나길 기도했네
아득한 시간을 헤아리다 잠이 깼네
여전히 나는 잔돌이고
내 옆엔 아무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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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퇴근 후,
네가 자다 깬 자리
바닥에 벗어둔 옷
밥을 먹고 개수대에 둔 그릇을 본다
네가 살아 있는 흔적을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출근 전보다 더 많이 너를 사랑한다
이불을 개고
방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쌀을 씻고 생선을 굽는다
너와 함께할 저녁 시간을 준비하며
출근 전,
잠든 너에게 입을 맞추고
웅크린 너에게 이불을 덮어줄 때보다
더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너를 사랑한다

AND

청소부 K


나는 청소부
좋은말로 환경미화원
사실은 아무것도 깨끗하게 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
새벽 거리엔 사람들이 흘리고 간 외로움이 가득하고
나는 그것들을 수거하느라 분주하다
세상에 외로움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게 나의 일
다만 세상은 결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어느날 나도 외로운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서럽게 외로워서 까멜 담배를 피웠다
씨팔 낙타, 씨팔 메르스
낙타도 나도 아무 죄가 없다
낙타는 모함을 당했고
나는 당신들의 외로움을 주워 담느라 외롭다
한 여인이 골목 끝에 담배 연기를 남기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왼편으로 사라졌다
사람은 경계선의 우측에 서면 안되지
붉은 립스틱이 묻은 담배 꽁초 옆에
여인이 흘리고 간 외로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낙타 냄새가 나는 외로움을 주워 담고
모처럼 세상이 아름다웠다
AND

일용직

 

의대를 나온 놈은 의사가
법대를 나온 놈은 판사가 됐다
공부를 잘했던 놈은 대기업에 다니고
운동을 잘했던 놈은 체육교사가 됐다
야망이 있는 놈은 정치인이
안정을 원한 놈은 공무원이 됐다
친일파 후손들은 땅주인이나 건물 주인이고
부모가 돈이 있는 놈들은 구멍가게라도 하나 차려서 사장님이 됐다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나는
일용직이 됐다
나랑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지친 몸을 달래려 매일 술을 마신다
그렇지만 술도 일가를 이룰만큼 마시질 못한다
헌데 이렇게 내 마음을 적는다
이까짓 재주라도 있는 것이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랑도 배우지 못한 나는
사랑을 원하는 너랑 산다
사랑을 배우며 산다
그것이 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나는 일용직
하루살이 신세
당신들은 평생을 살지만
나는 매일 매일을 새로 산다
매일 새롭게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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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서


파도는 연신
발 아래 제방을 때리고
나는 달빛 아래 무너져 내리는 당신을 부서질 듯 끌어안습니다

이대로 돌이 될 때까지
달이 지구를 백만 번 돌 때까지
파도가 제방을 허물 때까지
나는 그대로입니다

초승달 같이 가녀린 당신의 문장을
어미 잃은 아기 고양이 같은 당신의 뒷모습을
홀로 비를 맞는 당신의 풍경을
물미역 냄새가 나는 당신의 머리칼을
나는 사랑하였습니다

방파제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은
돌아올 줄 모릅니다
당신은 슬프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AND

하류지향

단풍은
북에서 남으로
산 정상에서 산 허리로
나무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번진다
낙엽은 항상 낙하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곡식은 없고
물은 낮은 곳으로만
마음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로만 흐른다
내 걸음은 당신에게로만 향하고
당신의 마음은 나에게로만 흐른다

우리는 하류지향
가장 낮은 곳의 사랑


AND

사랑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도 말이 통하는데
입이 없는 나와 귀가 없는 너는말이 안 통한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는 말만 통하지만
너와 나는 마음이 통하고
그 마음을 따라 몸이 통한다
우리는 달리기 시합을 할 일도 없고
여름, 겨울에 따로 놀 일도 없다
너와 나는 같은 종족
우리는 한통속
AND

요물


당신은 아니라고만 한다

당신 나 닮은 거 아냐고
당신 내가 좋아하는 거 아냐고 묻는다

나는 남들이 시샘할 정도로 네가 좋은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

너를 사랑하는 건 내 책임이고
나를 안다는 건 당신 책임이다

역사에 이프란 없지만
내가 네 옆에 있었다면
내가 너 대신 모기한테 물렸을 텐데

무너지는 나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붙잡아 준 것이
당신, 네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런데도 아니라고만 하는 너는 요물

당신은 자꾸 아니라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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