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돌


나는 물가의 잔돌
고요한 삶을 살지만
폭풍우가 내리면 어디론가 떠내려 가는 신세
닿은 자리에서 그냥 살아가야 하는 신세
그러다가 장대비에 다시 떠내려 가는 신세
세상이 부는 대로 휩쓸려 가는 신세
어느 장마 끝에 너를 만났네
나를 가로막은 너를 사랑하게 됐네
너는 큰 돌
어떤 비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네
물살도 너를 비켜 지나가네
네 받침돌이 되어 나는 포근했네
먼 옛날 내가 큰 돌이었던 시절이
시간을 따라 물길을 따라 흘러온 지난날이 떠올랐네
그러자 너를 사랑하는 게 서글퍼졌네
비바람이 시작되던 어느 밤
너를 떠날 수밖에 없음을 알았네
손에 잡을 수 없는 모래가 될 때까지 흘러갈 운명을 생각했네
운명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래도 언젠가 둘 다 모래가 되어 다시 만나길 기도했네
아득한 시간을 헤아리다 잠이 깼네
여전히 나는 잔돌이고
내 옆엔 아무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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