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에서 솔방울을 딴다. 솔방울에서 씨앗을 받아서 나무가 대를 잇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다. 열매를 맺고 낙엽을 떨구는 10월의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은 알아서 겨울을 준비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다.

퇴색한 것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면서 결국은 빛이 바래지고 바스라질 내 모습을 생각한다. 모든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만이 마지막까지 남을 하나의 명제다.

메모를 정리한다. 마음속에서 사그라든 문장을 지우고 또 지운다. 우리가 모두 사라질 것이고 그럼에도 내게는 너 뿐이다. 모든 사라질 것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여섯시에 일어나서 내가 가장 총명한 시간에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본다. 정반대의 싸이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닿아있다. 엊저녁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돈 맥클레인의 빈센트를 듣다가 가사가 참 좋다고 했더니 아내가 내 말뜻을 이해하고 웃었다. 난 starry night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이런 순간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내일 결혼식 때문에 오늘 서울 간다. 친구들과 술약속을 잡았더니 아내가 '너는 나랑만 떨어지면 술이냐.'고 한다. 너를 제외한 모든 추억이 다 술이라고 했다. 이런 순간도 나를 기쁘게 한다.

사는 게 남루하고 지루했다가 너를 보면 괜찮아졌다가 함께 울고 싶었다가 힘내야지 생각했다가 우리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가 그러다가 웃다가 너는 세상에 우리 건 없다고 하고 나는 인사말만 아는 이국땅에서 평생 인사만 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도 지금보다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결국은 또 사랑얘긴가?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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