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4/09/23 | 2 ARTICLE FOUND

  1. 2014.09.23 20140923 - 생일, 벼베기
  2. 2014.09.23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류 포터

 오늘은 내 생일이다. 심은하, 이미연 누나도 오늘이 생일이다. 몇 개의 생일축하 연락을 받았다. 생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내가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못 먹었다. 벼베기를 시작 했기 때문이다. 오늘치 일을 마치고 k누나네 가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내 생일날 벼를 벴다. 벼로서는 오늘이 죽는 날이기도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날이기도 하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벼의 일생을 가지고도 한참을 적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저녁 먹는 자리에 주수형, 정훈이형, 완이형, 나, y이장님, 그리고 동네 형들 두 명까지 꽤나 여럿이 모였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어지간히들 취했다. 형들은 올해 작황, 쌀 판매 대책, 배 타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마른벼의 운송비 문제, 젊었을 때 이야기들을 했다. 나도 중간중간 끼었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다.

 

 얼마전에 강릉에 갔다가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의 자전거에 자물쇠가 채워진 것을 봤다. 우리동네는 밤에 문 잠그고 자는 집도 거의 없다. 심지어 우리집은 문이 잠기지도 않는다. 다시 통제의 영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자고 동쪽 끝에서 서쪽의 땅 끝까지 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바람에 떠나가는 마음이 이다지도 무거운 것일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문제다. 개 병신 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문제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떠나려는 마음에 계속 돌덩이가 툭툭 떨어진다. 무겁고도 무겁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된 감사를 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싶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요즘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특히 더 강하게 나를 때리는 2014년 9월의 어느날 내 36번 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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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가 읽어줬을 때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10개 중에 표제작이 가장 좋고 그 표제작이 정말정말 좋다.

 

 p.127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로버트는 거의 10년 동안 내가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가끔은 그에게 말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10년이 되었고, 그동안 우리는 유산, 파산지경 그리고 시부모님의 죽음을 지나왔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그의 반응이 아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는 그 사실을 내면화하여 속으로만 삭일 것이다. 그 때문에 나를 미워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도 그는 아마도 내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을테고, 내게서 로버트에 대한 감정을 듣는다고 해도 내게 상처주지 않을 방법만 생각할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 나의 비밀은 무엇일까? 인간은 비밀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모든 예술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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