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이다. 심은하, 이미연 누나도 오늘이 생일이다. 몇 개의 생일축하 연락을 받았다. 생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내가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못 먹었다. 벼베기를 시작 했기 때문이다. 오늘치 일을 마치고 k누나네 가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내 생일날 벼를 벴다. 벼로서는 오늘이 죽는 날이기도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날이기도 하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벼의 일생을 가지고도 한참을 적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저녁 먹는 자리에 주수형, 정훈이형, 완이형, 나, y이장님, 그리고 동네 형들 두 명까지 꽤나 여럿이 모였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어지간히들 취했다. 형들은 올해 작황, 쌀 판매 대책, 배 타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마른벼의 운송비 문제, 젊었을 때 이야기들을 했다. 나도 중간중간 끼었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다.

 

 얼마전에 강릉에 갔다가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의 자전거에 자물쇠가 채워진 것을 봤다. 우리동네는 밤에 문 잠그고 자는 집도 거의 없다. 심지어 우리집은 문이 잠기지도 않는다. 다시 통제의 영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자고 동쪽 끝에서 서쪽의 땅 끝까지 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바람에 떠나가는 마음이 이다지도 무거운 것일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문제다. 개 병신 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문제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떠나려는 마음에 계속 돌덩이가 툭툭 떨어진다. 무겁고도 무겁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고마운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된 감사를 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싶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요즘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특히 더 강하게 나를 때리는 2014년 9월의 어느날 내 36번 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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