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합


느슨해진 나사를 죄듯이
드라이버로 관자놀이를 조였다
삐걱삐걱 쓰걱쓰걱
기름칠을 해가며 머리를 조였다
머릿속에 가득한 당신 생각을 쥐어짰다
눈물이 피고름이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흘러나왔다
아프다
시원하다
아프다



너를 다 쏟아낼 때까지
나사 대가리가 뭉개질 때까지
머리가 반토막이 될 때까지
손에 힘을 꽉 주고 관자놀이를 조였다
그리고나서
귀를 접고 못을 박았다
눈코입을 순서대로 꿰맸다
항상 당신을 향하는 팔다리를 순간접착제를 써서 몸에 붙였다
너는 대못과 망치를 들고 내게로 오는 중이다
너로 내 상처를 봉합하던 시절이 가고
지금부터 너도 자유 나도 자유다


- > 마지막이 별로네

AND

흔한 사랑 이야기


세상에 흔한 것이 물건이다
옷이며 자동차며 아파트까지
많은 것들이 많다
널리고 널린 게 물건이고
버리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
세상에 귀한 것이 없다
흔한 것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들도 흔해 빠졌다
사랑도 한 번 입고 옷장에 둔 옷처럼 흔해 빠졌다
사랑한다는 말이 비 오는 날의 입맞춤이 지난 밤의 열기도 다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에 흔해 빠진 게 사랑이어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흔해 빠져서 귀하지 않더라도
버리지 않고 쌓아두지 않고
평범하게 평범하게만
너를 사랑하고 싶다
AND

어쩌면 사랑


부엌에 난 작은 쪽창으로 담장 끝이 뜯어져 나간 자리가 보인다
그 뜯긴 틈으로 빛이 들어와 밥상 위에 올라 앉는다
햇살이 반찬이다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


차가운 당신 발등에 따뜻한 내 발바닥을 비빈다
내 발이 당신 발을 사랑한다

너는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너는 나를 위해서 태어났고
나는 너를 위해서 태어났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듯이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가끔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뿐이다

AND

삽당령으로 일 나간지 거의 두 달 째다. 4월 급여를 받고 나니 만취한 다음날의 허무처럼 사는 게 허무해졌다. 그러지 말아야지.

일은 재미있다. 10명이 한 팀이 되서 국유림에 나무 심고 약치고 풀 베고 열매를 딴다. 요즘은 접목한 소나무를 심고 있다.
모여서 일하다 보니 누구 보기 싫어서 일을 그만 두기도 하고 서로 견원지간이거나 모두가 마음에 안들어하는 동료도 있는듯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 영향력 안에 없다. 다행인건가.
아직은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면서 체념할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나랑 동갑인 친구가 둘이다. 하나는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하나는 미혼인데, 둘 다 또래 친구라고는 없는 시골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외롭다. 친구들이 더덕도 캐 주고 두릅도 따준다. 나도 그들에게 뭔가 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집에 있던 잼을 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외롭다.는 보편적인 표현이고 이 친구들에게는 좀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고 싶다. 친구들은 정에 굶주렸다. 산골에서 오래 살고 산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일까. 친구들의 마음은 눈빛이나 말투 몸의 표정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알기 쉬워서 좋다. 나도 아내에게는 알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알기 쉬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AND

선이 굶고 섬세한 삶


어머니, 저는 선이 굵고 섬세한 삶을 살고 싶어요
아들아, 그러려므나 그런데 뭐라구?
어머니 그건 람보의 몸에 이소룡의 근육을 붙이는 것과 같아요
배리본즈의 몸에 스즈키 이치로의 근육을 달고 사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들아, 넌 숨쉬는 것도 힘들어 하잖니
오늘부터 운동을 열심히 할 셈인게냐?
어머니, 그게 아니고요 외유내강 모르세요
아들아, 너는 나한테만 강하잖니

부끄러운 아들은 숨을 죽인다

아들아, 엄마는 일하러 갈 시간이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어머니,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때 보던 지리부도를 보고 계세요
아들아, 뭐라구
어머니, 그러니까 아버지는 몇 년째 방에서 나오지 않고 지도책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아들아, 바닥에 달라붙은 네가 뭘 알겠니
넌 우선 숨이나 제대로 쉬어라

아버지를 닮아 부끄러운 아들은 숨을 죽이고 굵고 가는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 4월 8일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어버이날인 줄 알았다.


AND

낮은데로만


오른쪽이 동쪽 왼쪽은 서쪽이다
지도에는 4자가 있고 두 선의 끝이 맞닿은 곳이 북쪽이다
제삿상 오른쪽에는 사과를 왼쪽에는 배를 놓는다
나는 항상 앞으로만 걷는다
공원에는 뒤로 걷는 아주머니들도 있다
나는 항상 북쪽으로만 걷는다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도 결국은 지상에서 삶을 마친다
위로 흐르는 물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새들이 사는 높이에서 산다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물을 마신다
그런데 나는
북쪽으로만 위쪽으로만 걷는다
앞만 보며 위만 보며 걷는다

뒤로 걷고 싶다
지도를 뒤집고 싶다
낮은데로만 낮은데로만
걷고 싶다 기고 싶다 살고 싶다

- 5월 6일 것 고침
AND

애무(愛舞)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마음이 춤을 추는 시절이었다
그 춤이
네 어깨 위에 내려 앉았다
너는 먼지를 털듯
어깨 위의 춤을 가볍게 털어내고
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춤을 추었다

AND

허명이어도 좋으니 명성을 얻고 싶다
나쁜 평판이어도 좋으니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다
허명과 나쁜 평판을 가지고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해서
불온한 나에 대해서 잔뜩잔뜩 적어서
그것으로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고 싶다
이런 소박하면서 불손한 마음으로 쓴 문장을 불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좋겠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나란 놈이나 너란 놈이나
다 씨발이다
씨발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밤이다
이새끼나 저새끼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씨발이다
씨발 소리가 잘도 나오는 날들이다)

하늘에 달리는 열매는 없다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
헌데
높은곳에 있는 사람은 낮은 곳을 보지 않고
낮은곳에 있는 사람은 높은 곳만 본다
끝까지 올라간 새도 결국은 지상에서 생을 마치고
하늘에 묻히는 사람은 없다

낮은데로만 낮은데로만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기고 싶다 살고 싶다

AND

달아날까


달아날까 달아날까
너에게로만 너에게로만
달아날까 달아날까
너에게서만 너에게서만

날아갈까 날아갈까
너에게로만 너에게로만
날아갈까 날아갈까
너에게서만 너에게서만
AND

탕수육을 배달 시켜서 아내랑 먹었다
배달 탕수육은 결혼하고 처음이다
우적우적 고기를 씹으면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곳이 미안한 일이 미안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탕수육 접시를 깨끗히 비우고는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커피콩을 갈면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4월에 하루도 못 쉬어서 온몸과 마음이 뻐근하다
배 부르고 뻐근뻐근한 채로 이부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이런걸 적어 내려가는데, 계속 미안하다
이러다 자겠지,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으로 바뀐다
한심하다가 잠들겠지
아침이면 미안함도 한심함도 뻐근한 마음도 잊겠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또 미안하겠지

이 비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평년기온*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이
작년의 나무와 올해의 나무가 다른 것처럼
언제나 그보다 높거나 낮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누군가는 알코올 중독으로 죽고 누군가는 술은 입에도 안 댔지만 간암에 걸려 죽는다
오직 삶과 죽음만이 평균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어제의 사랑과 오늘의 사랑이 다르니
나는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다
그렇게 순간순간 평균에 다가간다
언제나 그보다 높거나 낮다가 그것에 다다르는 것이 인생이다

*최근 30년 간의 평균 기온

AND

구름 사내


사내는 구름 위에서 살았다
구름을 뜯어 먹었다
구름에 파묻혀 낮잠을 잤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오줌을 갈겼다
그 오줌이 비가 되어 땅을 적셨을까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흘러 걱정이 없었다
어느날 사내는 구름이 점점 작아지고 있음을 알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줌도 마렵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로워졌다
외로워서 울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펑펑 울었다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땅을 적셨을까

사내는 구름에서 몸을 던졌다
그 몸은 낮은곳으로 낮은곳으로 향했고
추락중인 사내는 구름을 보며 웃고만 있었다
AND

20150423 - 피로

그때그때 2015. 4. 23. 23:51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왕산 목계에 사는 형이 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 형이 좋았다.

이 형이 강릉 산골짜기 왕산에서 몇 년 살면서 느낀 것은 시골에서는 내 땅,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하여 무리해서 빚을 내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있다. 나도 시골에 오래 살진 않았지만 촌에서는 내땅과 내집이 중요하다는데 깊이 공감한다.

- 일우야 낚시 좋아하냐
- 아니오
- 여기가 내 낚시터야. 지금 집 짓는 곳 앞에도 고기 잘 잡힐만한 곳이 있어. 일 안하는 주말에 왕산 올라와서 고기 구워 먹고 저녁 때 고기 잡아서 다음날에 매운탕 끓여 먹자. 사는 게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 네. 좋아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나눈 대화다. 형은 내 아내가 그런 즐거움을 좋아한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볼음도에서도 느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맛있는 걸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된다. 사실 이건 나이랑 상관없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것에 괴로워하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면 괴로움이 커진다. 하지만 본인들 눈에 뒤틀린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뀐다.

닭과 달걀의 패러독스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하나마나 한 것이란 것은 집에 테레비가 있는 강원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니 대형 공사를 따내서 자기 주머니를 챙기는 놈이 있거나 말거나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산 사는 형도 좋아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신경써야할까?

낮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쉬다가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반 바람이 반을 피웠다.

여지껏 쓴 것이 다 바람앞에 부질 없는 생각이다. 머릿속이 피곤하다.



AND

다음 생에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한 여름 동네 사람들 쉬어가는 버드나무도 좋고
한 겨울 실연당한 어느 여인을 안아주는 자작나무도 좋다
잣나무가 되어서 잣을 떨궈도 좋고
소나무가 되어서 어느 집의 기둥이나 서까래가 되어도 좋다
젊은 농부의 희망이 될 과수원의 어린 사과나무도 좋고
고로쇠나무가 되어서 뼈가 약한 사람들에게 물을 퍼주어도 좋다
시집갈 딸을 위해 심은 오동나무도 좋고
누군가의 유골을 묻은 층층나무도 좋다
어느 작은 선술집 앞 벚나무가 되어 꽃피는 계절에 피로에 찌든 여주인의 얼굴에 웃음을 주면 참 좋겠다

다음 생에는
말없이 비바람을 견디고
가만히 모두를 보듬어주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AND

 1권이 정말 좋다. 기억해 둔다.

 

 

     연극

 

 이따금 사람들이 술에 너무 취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창작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부자와 가난뱅이 이야기"라는 것이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는 가난뱅이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이다.

 부자가 테이블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가난뱅이가 들어온다.

 - 장작을 다 팼습니다. 나리.

 - 잘했군. 운동은 역시 몸에 좋아. 그래서 자네는 혈색이 좋군. 뺨이 아주 빨개.

 - 손은 꽁꽁 얼었습니다. 나리.

 - 이리 와! 보여주게! 구역질 나도록 지저분하군! 자네 손은 갈라지고 짓물러 터졌어.

 - 동상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나리.

 - 자네 같은 가난뱅이들은 언제나 더러운 병에 걸려 있어. 불결해. 지겹네. 자, 품삯이나 받아가게.

 부자는 가난뱅이에게 담배 한 갑을 던져준다. 가난뱅이는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러나 문가에 서 있던 그는 재떨이를 찾지 못한다. 감히 테이블 가까이로 가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손바닥에 담뱃재를 턴다. 가난뱅이가 빨리 나가주기만을 기다리던 부자는 가난뱅이가 재떨이를 찾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한다. 그러나 가난뱅이는 배가 고프기 때문에 그 집을 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가 말한다.

 - 좋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나리.

 - 청결한 냄새지.

 - 그건 따끈한 수프 냄새입니다요. 저는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 끼니는 제때에 먹어야지. 난 요리사가 휴가중이라서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갈 참이네.

 가난뱅이가 코를 킁킁거린다.

 - 하지만 이건 이 집에서 나는 따끈한 수프 냄새 같습니다.

 부자가 역정을 낸다.

 - 우리집에서는 수프 냄새가 날 리가 없네. 아무도 수프를 끓이고 있지 않아. 아마도 이웃집에서 새어나온 냄새이거나, 아니면 자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착각을 일으킨 걸세! 자네 같은 가난뱅이들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나. 그러니 돈을 모을 수가 없는 거야. 자네들은 번 돈을 수프와 소시지 사는 데 다 써버리지. 돼지와 진배없어. 돼지라구. 이제 우리집 마룻바닥을 자네 담뱃재로 다 더럽힐 셈인가! 여기서 썩 나가.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부자는 문을 열고, 가난뱅이를 발로 걷어찬다. 가난뱅이는 거리로 나가떨어진다.

 부자는 문을 닫고 수프 접시 앞에 앉아 접시를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 주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AND

4월


이 계절을 조금 더 걷고 싶다는 애인의 성화에
몸을 굽혀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키려던 담배를
허겁지겁 손에서 놓치고
고개를 들어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전에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위로 벚꽃이 떨어지는 시절

AND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데, 친구가 땅을 사니 마음이 아프다.

지난 토요일에 양양에 다녀왔다. 친구가 땅을 계약했다. 군사 뭐시기 지역인 밭 -실제로는 논이었다. - 1500평에 대한 계약서를 썼다. 변산 공동체에 있다가 나와서 충북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밭 주인에게 쫓겨나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고 농사를 짓지 못하고 일당일을 하다가 이대로는 영원히 농사 짓고 못 살게 될까봐 그게 두렵고 싫어서 전국 이곳 저곳에 땅을 보러 다니며 비싼 땅값에 절망하다가 결국 주말 아침 비행기를 타고 멀리 양양까지 와서 싸다고 생각한 땅을 계약한 친구의 마음을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라면 사지 않았을 땅이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눈빛에 그런 여유는 없었다. 이미 제주에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산 친구에게 이쪽으로 옮겨서 몇 년만 이일 저일 기웃거리다가 함께 공동체든 농업이든 해보자는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친구와 함께 잠든 토요일 밤에 그 땅을 두 배 값으로 파는 꿈을 꿨다.

내 꿈이 그 친구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이길, 친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경험이 마음을 만든다.

볼음도 생활 2년에 현실로 남은 것은 아직 못 받은 작년 쌀값 뿐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희미해지고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의 말은 그냥 듣기만 한다. 나도 친구처럼 내년에는 무리해서라도 땅을 살까, 생각했다가 기왕 늦은 거 동계 올림픽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마음 먹은게 지난 금요일이다.

양수리에 벼농사 모임이 있다. 300평 논을 일곱명이 짓는다.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어제 다녀왔다. 나는 실험보다는 대중적인 것을 좋아해서 100프로 내키지는 않는데, 기분 좋아진 지후의 얼굴을 보니 나도 좋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 또한 좋다. 금요일에는 아내 친구가 강릉에 다녀갔는데 지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좋다. 아내 친구들은 아내 친구들대로 좋고 내 친구들은 내 친구들대로 좋다.

나는 이렇게나 사람을 좋아하는데 가끔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도 그냥 듣기만 한다. 큰일이면서 큰일도 아닌 게 이런 것이 인간이고 나란 사람이다.

삽당령에 일당일을 다니고 있다. 집에서 좀 멀지만 오랜만에 하는 몸 쓰는 일이 좋고 공기랑 물, 나무와 산, 동료들까지 여러가지가 나랑 잘 맞는다. 잘 됐다.

다만 오늘은 국무총리 기념식수용으로 멀쩡히 잘 자라는 나무를 파냈다. 공직 사회도 나도 참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AND

이발사의 노래



나는 노래하는 이발사
기타로 단련된 손으로 남의 머리를 자르지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도 나에게는 정수리를 보이지
나는 남들의 정수리 냄새를 맡고 저녁이면 그 냄새를 노래하지

나는 겸손한 이발사
내 손님들은 모두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지
미국 대통령이 와도 예외란 없지
나는 손님들에게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건내지
나는 어른들이 떡손이라고 했던 두터운 손으로 남의 머리를 떡 주무르듯 하지
기타를 다루듯 세심하게 머리칼과수염을 잘라내고 저녁이면 낮에 잘라낸 머리칼에 대해 노래하지

나는 노래하는 이발사
세상에게 겸손한 노래하는 이발사

-> 어제 머리를 잘랐고 오늘은 노래하는 이발사를 만났다


AND

나무


나무는 언제부터 나무였을까
나는 언제부터 나였을까
나무가 나였을까
사람이 죽으면 나무가 될까
나무 나무 나무, 하고 부르면
내 몸에서 나무 냄새가 난다
나무 나무 나무

 

song ver


나무는 언제부터 나무였을까
나는 언제부터 나였을까(1 3 2 6)
나무가 나였을까
내가 나무였을까(1 3 2 6)

1 6 2 5

사람이 죽으면 나무가 될까
나무가 죽으면 사람이 될까(1 3 2 6)
나무가 나였을까
내가 나무였을까(1 3 2 6)

나무 나무 나무, 하고 부르면(1 4 5 1)
내 몸에서 나무 냄새가 난다(1 3 2 6)

나무 나무 나무 나무(1 4 5 1)
나무 나무 나는 나무(1 4 5 1)

AND

 강릉에서 진도까지 혼자서 왕복 15시간을 운전한 버스 기사를 생각한다. 돈도 좋지만 - 사실 그 돈도 얼마 안되겠지만 - 업무 환경이 너무 안좋다. 물론 차에 탄 사람들 중에 기사님을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걱정이고 생각일 뿐, 승객들은 피곤하면 자면 그만이고 기사는 운전이 직업이기 때문에 충실히 운전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3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하는 거리에는 두 명의 운전수를 의무화 하는 것이다. 도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아니라 co-worker개념이다. 처음에는 승객들이 생소하게 생각하겠지만 주 40시간 근무나 해마다 조금씩 오르는 최저임금에 이내 익숙해지듯이 이내 응당 시외버스는 두 사람이 운전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는 개념도 없던 최저 임금에 대해서 최저임금이란 건 해마다 조금씩 오르는 것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 학생들 무상급식 문제도 급식은 그냥 나라에서 돈을 내는 것으로 정하고 무상급식에서 무상을 빼고 학교급식이나 급식으로 부르면 이내 사람들이 학생들 밥은 나라에서 먹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직 담배를 못 끊고 있다. 인간은 하던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던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싫어하거나 새해 결심이 새해부터 아작나는 일들이 대표적이다. 하던대로 하려는 경향은 순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위에 적은 예들처럼, 인간은 모든일에 서서히 그리고 순순히 적응한다. 시스템은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시스템을 견고하게 하는 변화를 주고 사람들은 약간 저항하다가 적응하는 경향 말이다. 담뱃값이 대표적이다. 최근 외국의 상황을 보면 시스템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87년도 시스템이 실패한 사례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 재벌들은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낸다.

- 김영란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 최저임금은 한 시간 일하면 국밥 두 그릇은 사 먹을 수 있는 액수로 정한다. 

 

 그런데 제도를 바꾸려면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전국민이 세월호를 인양하고 확실한 진상조사를 할 때까지 모든 선거를 보이콧 한다면 시스템이 알아서 배도 인양하고 진상조사도 제대로 할 하겠지. 시스템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이 된 지 오래다.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다 착취당하고 고통받는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니 그것이 상식이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헌데, 나란 놈만해도 꽤나 순응적인 스타일이다. 시스템의 결정적인 실수를 기다릴까?

 

 변기에 앉으면 창 밖으로 매화와 벌들이 보이는 계절이다.

 살아있다는 게 더럽고도 좋다.     

AND

2015년 춘분, 팽목항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뿌연하늘
보리싹이 올라온 남도의 들판
광양에는 매화축제
파랑인지 초록인지 검은빛인지 모를 바다
그 바다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피어오르는 검은 꽃들
꽃이 된 사람들과 별이 될 사람들
물수제비 뜨는 아이들과 낚시꾼들
새월호 관광객들은 예의가 없어서 주차를 아무데나 한다고 하는 현지인

인사를 하러 왔다가 인사만 하고 돌아가는 나

산사람도 살아야하고 죽은 사람도 살아야하는 세상
언젠가 마멸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감사할 일이 없는 세상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언젠가 꽃과 별, 바다와 하늘,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너와 나까지
한 통속인 모든것이 사라질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AND

그날


그날,
너는 술을 먹다가 대학교 운동장의 100미터 트랙을 달렸다
네가 일으킨 바람에 빈 과자 봉지와 종이컵이 나뒹굴고 쏟아진 술은 잔디에 스며들었다
팔을 휙휙 올리며 걷던 아주머니와
아이와 공놀이를 하던 아빠와
농구를 하던 한 무리가
너의 질주를 지켜봤다
우리는 일순간에 구경꾼에서 구경꺼리가 됐다
너는 상기된 얼굴로 몇 초냐고 물었고
나는 14초라고 답했다
나는 네가 달린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연인이었고 이유가 필요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너에게 초시계를 건내고 나도 너를 향해 달렸더라면
나는 너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

너의 뜀박질로 하늘을 올라
너의 날개로 나를 너에게 데려가 줘
이유를 묻지 않는 나를
아무런 이유도 없는 너에게 데려가 줘

-> 맘에 안든다. 열심히 써야지.
AND

겨울나기


기름값이 싸다지만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이번 겨울은 따뜻하다
방한 텐트 안에서 잔다
잠든 아내가 이를 간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멀리서 옆집 아저씨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담배를 태울까
텐트 밖으로 발을 뻗어본다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닿는다
몸을 떤다
냉큼 이불 안으로 들어온다
쓰레기차 지나는 소리 들린다
가난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난한 겨울에 대해서
가난한 이웃에 대해서,
새벽의 쓰레기차를 운전하는 사람과 쓰레기 봉투를 차 뒤에 옮겨 싣는 사람에 대해서
거리에서 자는 사람들과 망루와 철탑에 오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아내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뺨을 어루만진다
온기를 느낀다
이런 나를 모르고 잠든 아내가 고맙다

겨울아 겨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네 옆에 누워서 이를 갈며 자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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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흐르다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
흘러내린 당신의 안경을 올려준다
당신이 나를 똑바로 볼 수 있도록
내 사랑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흘러내린 당신의 안경을 올려준다
뱃속에서 아래로 아래로만 흘러내리는 밥알처럼
안경이란 것은 흘러내리게 돼있다
사랑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당신이나 내가 빈곳과 마주보고 밥을 먹으며
당신의 안경을 올려주던 순간을
안경을 올리던 내 손끝을 떠올릴 것을 생각한다
그때,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눈물이 흘러내릴 것이다
AND

친구(보통은 누나, 가끔은 제수씨)가 집들이 선물로 커튼을 만들어줬다. 우린 아직 집들이도 안했다. 말이 집들이 선물이고 그냥 강릉에 온 기념 선물같은 것이다. - 누나 고마워요. 집들이 한 번 해요. - 아내가 출입문의 아래쪽은 가리지 않도록 커튼 사이즈를 부탁했다. 난 예쁘기만 한데, 아내 생각엔 역시 문을 다 가리는 것이 좋았겠던가 보다. 아내는 일단 커튼을 그대로 뒀다가 계속 마음에 걸리면 손바느질로 두 개의 천을 이어서 원하는 길이로 맞추겠다고 했다.

어제 서울에 왔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아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내 생각엔 아내가 유리 멘탈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아내가 짜증을 내면 난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결국 아내가 내 탓을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짜증을 낸다.

이 부분에서 나도 약간 멘탈 과잉이 있다. 아내가 강릉 날씨 변덕스러워, 라고 하면 나는 강릉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이 아내 마음에 안 들고 그것이 강릉에서 살자고 한 나를 탓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퉁명하게 겨울 날씨는 다 변덕스럽다. 원래 날씨란 변덕스러운 것이다, 따위의 대꾸를 하는 것이다.

아내도 미찬가지다. 내가 혼자 짜증을 내거나 욕을 할 때도 그걸 듣는 사람이 본인 뿐이니 자연스럽게 짜증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일들로 종종 다툰다.

부부란, 길이가 마음에 안드는 커튼을 수선하듯, 손바느질로 서로의 이질감을 한땀 한땀 꿰메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 둘째 이모가 놀러오셨다. 이모는 열매가 없는 꽃은 시들면 그만이고 열매가 없으면 줄다리기를 하다가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줄이 끊어지도록 놔둔다고 했다. 애를 가지라는 얘기다. 마음속으로 강하게 '저희 아기 안 가질 거예요.' 라고 하면서 아내 눈치를 한 번 보고 나와 아내를 이어주는 한 바늘을 꿰멨다.

나는 시들면 그만인 것은 좋지만 줄이 끊어지도록 두기는 싫다. 그러니 아내가 결혼 같은 건 왜 했나 몰라,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목욕탕에 갔다가 불알을 꼼꼼하게 닦는 노인들을 봤다. 시간을 븥잡고 싶은 마음으로 늘어진 생식기를 붙잡고 있는걸까.

우리 시들면 그만인 채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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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애인과 방파제 위를 걷고 있었다. 파도의 포말이 주는 포만감에 먹은 것도 없이 배가 불렀다. 고래 한 마리가 불뚝 튀어올라 내 오른팔을 뜯어 먹었다. 고래는 배가 고팠다고 했고 나는 알았다고 했다. 구멍난 어깨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그믐달이 바다를 비추고 피를 먹은 바다는 분홍빛으로 물들었다배고픔을 몰라서일까. 팔이 떨어져나간 자리가 아프질 않았다. 왼팔로만 애인을 안고 피가 멎을 때까지,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입을 맞췄다. 나는 이제 왼손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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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부장도 새벽 네 시에 잠이 깨서 옆에 누운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때가 있을까?

힌과 상하차 알바를 하고 있다. 강릉 사천면에 한과 마을이 있다. 강릉 한과가 유명하기 때문에 한과 가게(공장)들 마다 명절을 앞두고 택배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강릉우체국 소포영업팀에서 알바를 한다. 1톤 탑차를 타고 한과 공장들을 돌면서 물건을 싣고 내리고 5톤 탑차에 싣기를 반복한다. 12일 중에 8일 지났다.

조부장은 나를 데리고 다니는 우체국 직원이다. 조부장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그의 짝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조부장, 하고 부르는 걸 보니 소포영업팀 내에서는 꽤 높은 사람인듯 하다. 45세, 동안이고 아이 안 가지려고 했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아이가 둘이고, 술 안주로는 돼지고기(찌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다. 운전은 거칠지만 한과 사장들이 짜증나게 해도 화를 잘 안낸다. 우체국에서는 10년 넘게 일했고 그 전에는 여기저기서 살았다고 했다.(했던가?)

조부장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일할 때 나랑 합이 잘 맞는다.

그냥 이 새벽에 조부장 생각이 났다.

가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생각한다. 무엇도 결정하지 않은 삶을 사나,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면 손 쉬운 대답이 되지만 그것은 사실일 뿐 현실은 아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도 이어지지만 나에게로 가는 길을 찾기가 어렵고도 어렵다.

어제부터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 표면적인 부분부터라도 새사람이 되자.

조부장의 어금니 하나를 치료한 의사가 그 이는 가망이 없으니 쓰는데까지 쓰고 폐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폐기라는 단어를 쓴 의사를 욕하자는게 아니라 가망이 없는 이를 달고 택배 배달을 쭉 하다가 어느날 너무 아파서 그 이를 없애게 될 조부장의 삶을 생각한다. 그런것이 삶이 아닐까?

암튼 알바는 4일 남았다. 40여 만원 벌어서 이 치료비로 다 쓰게 생겼다. 그런것이 삶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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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이 복지 과잉이면 국민들이 나태해진다고 했다. 이 새끼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알바몬 사태도 기가 막힌 일이다.

교육이 중요하다.

택배 기사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택배비가 오른다? 청소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건물 관리비가 오른다? 그랴서 결국 너희들이 손해다. 학교에서 이런식으로 가르치지 마라. 네 아버지가 건물 청소원이고 경비고 네 장래 직업이 택배 기사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가르치지 마라.

담뱃값을 올린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동통신 요금 2만원 무제한 통화나 법인세 인상 같은것들이 대표적이다. 다수의 국민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일들이다. 왜 두 눈을 질끈 감고 이런일들을 정책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가.

정책 입안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어딘가 구린데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망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나라가 망해도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고 가정과 학교에서 똑바로 가르쳤으면 한다.

건강하게는 어렵더라도 건전하게는 살자.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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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까지 우체국 택배 알바를 한다. 한과를 차에 싣고 내리는 단순 업무다. 이틀 나갔다. 알바를 하면서 갓 스무살이 된 친구들을 본다.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어딘가 어설프다. 처음엔 다 그런거다. 며칠만 지나면 능숙해지겠지. 나는 처음부터 능숙하다. 경험의 차이다. 다만 나는 어제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 그 애들은 안 그럴텐데.

인간이란 종의 능력치에 대해서 말하려고 알바 얘기를 꺼냈다. 머리엔 눈, 코, 입이 붙어 있고 몸뚱아리엔 두 팔과 다리가 붙어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육체적 능력치에 큰 차이가 없다. 리오넬 메시도 공을 차고 나도 공을 찬다. 드리블을 하고 슛을 한다. 내가 좀 많이 어설프고 쉽게 지칠 뿐이다. fc바르셀로나가 팔레스타인 국가대표 축구팀에게 50대 0으로 이길 수는 없다.(20점은 가능할 것 같음.)

그러니 살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면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너무 애쓸 것 없다.

삼촌 내외와 고모랑 고모부가 집에 다녀가셨다. 집들이다. 아내가 밀푀유나베를 만들었다. 맛있었다. 어른들은 좁은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셨고 싸고 깨끗하다고 만족하셨다.

당장 알바도 하고 있고 삼월엔 어디 나간다고 하니 삼촌이 덜 걱정하시는 듯 하다. 다행이다. 고모랑 고모부는 걱정보다는 조카 내외가 강릉에 이사 왔다는 자체를 좋아하셨다. (애기 때, 옥수수 먹던 사진 보러 갈게요.) 그것도 다행이다.

어제는 친구랑 술을 먹으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말도 많다. 대리비를 아끼려고 외박을 했다. 지후한테 혼났다. 미안, 앞으론 정말 안 그럴게요. 해장으로 아내랑 잿빛의 떡국을 먹었는데, 서로에게 무심한듯 무심하지 않은 중년 부부의 느낌이 났다. 저녁 먹고는 동네 산책을 했다. 우리 동네는 골목길도 예쁘고 오래된 예쁜 집이 많다.

여러가지로 다행이고 기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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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도 모르고 쓰는 말 4

새누리

새 - bird
누리 -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새들이 사는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니 자기 눈높이에 없는 것들은 다 하찮게 생각하는가?
날지 못하는 새가 너희들 대장이란다
그러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팔매에 날개가 부러진다




-> 뜻도 모르고 쓰는 말 시리즈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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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 일이 돈이 되는지 아닌지가 마지막 결론이고 남에게는 돈이 되는 일에 대해서 잘도 말하는데, 자신은 돈이 안되는 일만 하거나 스스로 만족할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면 괴롭다. 괴로우니 자꾸 말만 늘어난다. 괴로우니 괴롭다. 이래선 안된다.

올해는 어딘가에 다니겠지만 내년에는 다시 농사를 지을거다. 강화에서는 돈이 안되는 농사를 지었으니 강릉에서는 죽기살기로 돈 되는 농사를 지을거다. 그게 내 직업이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연간 소득목표는 천만원이다. 내 땅이 없어도 내 집이 없어도 농사 지어서 천만원을 벌면 지금처럼 그리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물론 더 벌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일이다.

그릇의 크기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일년에 천 만원이 소득 목표인 사람에게 사 천만원을 버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되고 돈도 못 번다고 해서야 그 말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남의 말에 민감한 때도 있는 내 아내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 내가 무척 화를 낼지도 모른다.

들기름이 꽤 많았는데 여기저기 한 병씩 돌리고 나니 딱 우리 둘이 일년 동안 먹을만큼만 남았다. 기분이 좋다. 누군가와 무엇을 나누는 건 이렇게 좋은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애쓸 것이다.

강릉 오고 보름이 지났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결론은 여전하다. 놀 때는 같이 놀고 사이좋게 지내더라도 일은 같이 하지 말자. 나는 혼자 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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