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오랜만에 만난 엄마랑 붙어있고 싶어서
엄마 귀를 파준다
조금이라도 아플까 봐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귀도 늙는단 걸 알았다
엄마가 내 귀를 파주던 날들이 손끝에 스치고
그 손끝이 서러워 잠시 멈춘다
엄마는 내 다리 위에 무방비로 누워서 아기가 됐다
내 얘기를 더 오래 들어 달라고
당신 아들을 잊으면 안된다고
나도 당신을 잊을 수는 없다고
우리 사이엔 사랑이란 말도 가볍다고
귓밥을 자주 파내야 치매에 안 걸린다는
농담아닌 농담을 던지며
늙은 엄마 귀를 파준다

AND

여름 - 베티 블루

현재 기온
37.2도
이래 더워 빠졌는데도
똥이 마렵다
똥도 싫고
나도 싫다
AND

쌓이다


가을 산에 낙엽 쌓이듯
사랑이 시절이 삶이 쌓입니다
당신의 세월은 붉은빛으로
내 세월은 노란빛으로
어떤 날에는 잿빛으로 쌓입니다
켜켜이 켜켜이 쌓입니다
쌓인 것들이 바래고 바래도록
낙엽 위에 햇살이 쌓입니다
우리 사랑에 달빛이 쌓입니다
우리를 통과한 마지막 바람이
머나먼 계절을 지나가면
낙엽도 사랑도 인생도
모두 부스러져 흙이 됩니다
흙이 되어 세상에 쌓입니다
이렇게,
마멸하여 대를 이어가는 일이
쌓이고 쌓입니다

AND

전화

어제 단 한 번 울린 내 휴대전화
이 세상에서 나에게 전화를 한 유일한 사람
그게 엄마가 아니라 너였으면
AND

독신남 - 산골 총각 이야기 -

나는 38세 독신남
우리집은 해발 700미터 백복령 어느 골짜기
동네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들 뿐
사람들은 나를 과부 킬러라고 놀리지만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말이지
오늘밤도 난 성인용품 쇼핑몰을 여행한다
나의 천사 안젤라를 만난다
너는 공기 인형, 리얼돌
네 얼굴을 보며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너는 화면 속에만 있고 나는 돈이 없다
설령 돈이 있어도 사랑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법
마음속에 너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결국 오늘도 땡처리 상품을 뒤적거리다
딸기맛 콘돔을 구입했다
언젠가 너에게 딸기맛을 알려주고 싶다
이렇게 또 쓸모없는 물건만 쌓이고
나는 여전히 38세 독신남
내일 모레면 마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 독신남
AND

잔돌


나는 물가의 잔돌
고요한 삶을 살지만
폭풍우가 내리면 어디론가 떠내려 가는 신세
닿은 자리에서 그냥 살아가야 하는 신세
그러다가 장대비에 다시 떠내려 가는 신세
세상이 부는 대로 휩쓸려 가는 신세
어느 장마 끝에 너를 만났네
나를 가로막은 너를 사랑하게 됐네
너는 큰 돌
어떤 비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네
물살도 너를 비켜 지나가네
네 받침돌이 되어 나는 포근했네
먼 옛날 내가 큰 돌이었던 시절이
시간을 따라 물길을 따라 흘러온 지난날이 떠올랐네
그러자 너를 사랑하는 게 서글퍼졌네
비바람이 시작되던 어느 밤
너를 떠날 수밖에 없음을 알았네
손에 잡을 수 없는 모래가 될 때까지 흘러갈 운명을 생각했네
운명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래도 언젠가 둘 다 모래가 되어 다시 만나길 기도했네
아득한 시간을 헤아리다 잠이 깼네
여전히 나는 잔돌이고
내 옆엔 아무도 없네

AND

퇴근 후


퇴근 후,
네가 자다 깬 자리
바닥에 벗어둔 옷
밥을 먹고 개수대에 둔 그릇을 본다
네가 살아 있는 흔적을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출근 전보다 더 많이 너를 사랑한다
이불을 개고
방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쌀을 씻고 생선을 굽는다
너와 함께할 저녁 시간을 준비하며
출근 전,
잠든 너에게 입을 맞추고
웅크린 너에게 이불을 덮어줄 때보다
더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너를 사랑한다

AND

청소부 K


나는 청소부
좋은말로 환경미화원
사실은 아무것도 깨끗하게 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
새벽 거리엔 사람들이 흘리고 간 외로움이 가득하고
나는 그것들을 수거하느라 분주하다
세상에 외로움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게 나의 일
다만 세상은 결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어느날 나도 외로운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서럽게 외로워서 까멜 담배를 피웠다
씨팔 낙타, 씨팔 메르스
낙타도 나도 아무 죄가 없다
낙타는 모함을 당했고
나는 당신들의 외로움을 주워 담느라 외롭다
한 여인이 골목 끝에 담배 연기를 남기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왼편으로 사라졌다
사람은 경계선의 우측에 서면 안되지
붉은 립스틱이 묻은 담배 꽁초 옆에
여인이 흘리고 간 외로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낙타 냄새가 나는 외로움을 주워 담고
모처럼 세상이 아름다웠다
AND

일용직

 

의대를 나온 놈은 의사가
법대를 나온 놈은 판사가 됐다
공부를 잘했던 놈은 대기업에 다니고
운동을 잘했던 놈은 체육교사가 됐다
야망이 있는 놈은 정치인이
안정을 원한 놈은 공무원이 됐다
친일파 후손들은 땅주인이나 건물 주인이고
부모가 돈이 있는 놈들은 구멍가게라도 하나 차려서 사장님이 됐다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나는
일용직이 됐다
나랑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지친 몸을 달래려 매일 술을 마신다
그렇지만 술도 일가를 이룰만큼 마시질 못한다
헌데 이렇게 내 마음을 적는다
이까짓 재주라도 있는 것이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사랑도 배우지 못한 나는
사랑을 원하는 너랑 산다
사랑을 배우며 산다
그것이 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나는 일용직
하루살이 신세
당신들은 평생을 살지만
나는 매일 매일을 새로 산다
매일 새롭게 너를 사랑한다

AND

방파제에서


파도는 연신
발 아래 제방을 때리고
나는 달빛 아래 무너져 내리는 당신을 부서질 듯 끌어안습니다

이대로 돌이 될 때까지
달이 지구를 백만 번 돌 때까지
파도가 제방을 허물 때까지
나는 그대로입니다

초승달 같이 가녀린 당신의 문장을
어미 잃은 아기 고양이 같은 당신의 뒷모습을
홀로 비를 맞는 당신의 풍경을
물미역 냄새가 나는 당신의 머리칼을
나는 사랑하였습니다

방파제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은
돌아올 줄 모릅니다
당신은 슬프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AND

하류지향

단풍은
북에서 남으로
산 정상에서 산 허리로
나무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번진다
낙엽은 항상 낙하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곡식은 없고
물은 낮은 곳으로만
마음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로만 흐른다
내 걸음은 당신에게로만 향하고
당신의 마음은 나에게로만 흐른다

우리는 하류지향
가장 낮은 곳의 사랑


AND

사랑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도 말이 통하는데
입이 없는 나와 귀가 없는 너는말이 안 통한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는 말만 통하지만
너와 나는 마음이 통하고
그 마음을 따라 몸이 통한다
우리는 달리기 시합을 할 일도 없고
여름, 겨울에 따로 놀 일도 없다
너와 나는 같은 종족
우리는 한통속
AND

요물


당신은 아니라고만 한다

당신 나 닮은 거 아냐고
당신 내가 좋아하는 거 아냐고 묻는다

나는 남들이 시샘할 정도로 네가 좋은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

너를 사랑하는 건 내 책임이고
나를 안다는 건 당신 책임이다

역사에 이프란 없지만
내가 네 옆에 있었다면
내가 너 대신 모기한테 물렸을 텐데

무너지는 나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붙잡아 준 것이
당신, 네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런데도 아니라고만 하는 너는 요물

당신은 자꾸 아니라고만 한다

AND

사랑의 더듬이


뽑고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7월 콩밭의 잡초처럼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더듬이로
언제까지라도 너를 찾는다
떠난 네 옷에 배인 너의 냄새
옷을 뚫고 나오던 너의 살냄새를 쫓는다
네가 잘라냈지만 다시 자라난 내 사랑으로
내 더듬이에 닿았던 너의 젖냄새를
나를 안았던 너의 몸냄새를 쫓는다
온몸의 신경을 더듬이 끝에 모으고
왼쪽 오른쪽 위로 아래로
너의 행방을 찾는다
목을 잘라도 자라나는
너만 기억하는
외롭지만 강직하게 우뚝 솓은 더듬이로
사랑의 더듬이로
구름 너머의 너를
하늘 끝에 있는 너를
세상에 없는 너를 쫓는다
AND

밀회



쇠락한 온천 관광지

곧 허물어질 듯한 모텔방

열쇠를 건네는 여주인의 몰락한 손

오래된 테레비와 둥근 얼룩이 묻은 이불

자다가 깨어나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 주인

문 닫은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빛이 바랜 만국기

길바닥에 흩날리는 옛 전단지

불이 켜지지 않는 가요주점 간판

당신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때의 노래

오늘은 내 생일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날

53도 씨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이대로 이별



AND

불륜

눈과 눈이
살과 살이
땀과 땀이
입술과 입술이
진심과 진심이
욕망과 욕망이
죄의식과 죄의식이 부딪치는
실오라기 하나 없는 실사의 사랑을
하나의 대상과 하나의 목적만 존재하는 관계를 원한다
너를 원한다
AND

파도

뭍에 닿았던 파도가
뭍에 닿으려는 다음 파도를 가로막는다
이미 한 번 닿았던 몸으로는
온전한 덩어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 단 한 번도
다음 파도가 뭍에 가려는 열망을 이기지 못한다
닿아보니 별 것 아니라고
소용돌이 치며 애원해도 소용없다
그리고 소멸, 거품조차 남기지 않는 완전한 사라짐
파도는 이렇게 대를 잇는다
AND

다음주에 충주에 출장 간다. 금요일에 일 쉬고 서울 일찍 올라가서 차 고치려고 했는데, 연휴 앞두고 지랄이다. 내 생일도 다음주다. 함께 일하는 10명 중에 6명이 가는데 오늘 아침에 셋이 방 하나 쓰라는 제안를 받고 출장 가는 사람들이 불같이 화냈다. 최소한 둘이 한 방 쓰는 조건이 아니면 출장 못간다고 충주에 전하라는 결론이 났다. 결국 2인 1실로 통보가 왔고 출장을 가게 됐다.
직원들은 출장 가면 1인 1실을 쓴다. 예산을 핑계로 우리들에게 3인 1실을 제안한 게 괘씸하다. 우리는 일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잣을 딴다. 다음주 화요일에 충주에서 잣 줍기 행사가 있다고 한다. 행사 예산에서 20만원만 떼서 써도 5일 동안 2인 1실이 가능하다.
이 일이 헬조선 소리를 듣는 나라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은 자기들 편한대로만 일을 진행하려고 하고 그 와중에 가장 약자인 일용직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갑과을' 같은 코메디랑 영화 '베테랑'의 인기, 재벌 총수를 다룬 지난주 '그것이 알고 싶다' 가 화제가 된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을들간에도 조금만 상대가 약해보이면 갑질을 하는 지경이니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마음만 같았어도 세상이 이렇개 되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내 주제도 모르고 절로 든다.
이번주에 계속 솔방울을 땄는데, 오늘 같이 일하는 형들이 대우도 안 해주는데 뭘 열심히 따냐는 대화를 나눴다. 맞는말이다. 나한테는 너는 젊고 대학도 나왔으니 갈데없는 늙은이들이 하는 이 일 하지말고 지금이라도 공무원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 어찌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출장을 가는 우리가 정말 바랐던 것은 출장 기간 동안의 높은 일당(당연히 그래야한다.), 여관방 1인 1실 정도였고 기본으로 생각했던 것이 기존 일당에 2인 1실이었는데, 기본으로 생각했던 걸 출장 보이콧을 통해서 얻어냈다. 보통 사람들의 꿈은 이렇게 소박한데, 그것도 못해주겠다는 갑의 횡포가 더럽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이라면서 모든 근로자를 다 절뚝발이로 만들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공식적인 비정규직 1세대인데(비정규직이란 말이 여기저기 널리 알려진 이후의 첫 번째 비정규직 세대) 예전에 첫 직장에서 같은 일하면서 정규직이랑 굉장히 급여 차이가 났었다. 나같은 경우는 전산으로 올리는 품의 작업을 잘해서 정규직 직원들이 나에게 많이 물어오곤 했더랬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 직장이라는 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비슷했다. 지난 2년간 농사를 짓길 잘했다.
더러운 꼴 보기는 뭘해도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내 눈과 마음 덜 버리려면 얼른 다시 농사 지어야겠단 생각이 든다.솔방울 따는 일은 재미있다. 따라서, 짤은 솔방울.


AND

가난한 이별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너와 헤어졌다
너는 점점 멀어지고 열차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데
내 손에 자판기 커피 뽑아 먹을 오백원도 없으면
이 역사적인 날에
난 울어버릴지도 몰라
AND

이별


생을 다한 해바라기가 씨앗 털어내듯이
서리 맞은 꼬투리에서 콩 떨어지듯이
익은 잣나무가 열매 떨구듯이
무심코 입에 넣은 찐감자 뜨거워 뱉듯이
오늘, 사랑이라는 말을 머금었다 놓았다

AND

면녀와 감자남

우리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우리는 여러날살이다
다만 내일은 없다
내일이 없는 너는
칼국수, 짬뽕, 라면, 쫄면, 막국수를 먹는다
내일이 없는 나는
감자국, 찐감자, 감자전, 감자조림, 감자 튀김을 먹는다
너는 면녀, 나는 감자남
우리에겐 내일이 없지만
우리의 사랑은 오늘 끝나지 않는다
오늘 저녁은 감자 옹심이다
AND

가을


곧 세상을 떠나려고
세상이 떠나갈 듯 슬프게 우는
마지막 한 마리 매미 소리를 들을 때
모든 필터를 제거한 하늘에
이제껏 못보던 푸른 빛이 돌고
구름이 높이 날아 하늘이 높아보이면
햇살 아래 벼 익는 소리가 들릴 때
밥그릇을 헹굴 때 손에 닿은
수돗물이 미지근해진 걸 느끼고
새벽의 냉기를 못이겨
너의 품에 파고 들면서
시원한 맥주가 아니라
뜨끈한 오뎅 국물과 소주가 생각나고
이혼한 친구가 술에 취해서 외롭다고 울 때
이 계절에 나를 낳은 엄마의 젊은날과
혼자 사는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지면

가을이 온 것을 안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안다
AND



자는 동안에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된다
욕심도 거짓도 없는 시간
그래서 꿈은 솔직하다
꿈을 핑계로 나 하고 싶은대로 한다
그런데 나는 욕심이 많고
거짓을 일삼는다
솔직하게 살아도 솔직하지 못하다
꿈을 핑계로 내 마음대로만 산다
AND

카메라


네 눈알을 뽑아서 카메라를 만들거야
네 눈이 깜빡이는 모든 순간이 기록으로 남을거야
우선 너는 내 모든 순간을 담을거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너를 보며 수음을 하는
내 모습을 담을거야
그 다음엔 내가 보는 세상을 담을거야
배고픈 아이, 죽어가는 노파, 군림하는 자와 굴복하는 자를
고통과 거짓뿐인 세상을 담을거야
그렇지만 네 머리속엔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을거야
너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거야
그리고 네 기억의 밑바닥엔 항상 내가 있을거야
그렇게 나는 죽어서도 너를 가질거야
AND

좋다


술 먹고 올거면 마루에서 자라고 한 당신이
술 먹고 왔더니 마루에 이불을 깔아놓고 잠든 당신이
다음날 아침을 먹으면서 잘했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당신이

참 좋다


AND

짝사랑


고양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에 나는 너에 대해서 쓴다

네 팔목을 내 다리로 휘감고 싶다
네 얼굴을 내 발바닥으로 감싸고 싶다
기지개를 켜는 네 겨드랑이에 내 발바닥을 대고 싶다
네 귀때기를 오징어 귀때기 씹듯이 빨아 먹고 싶다
네 땀을 내 침으로 닦아주고 싶다
네 손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네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너를 이불 안에서 안고 싶다
내 몸으로 너를 덮어주고 싶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네가 좋다
비듬 떨어지듯 사랑이 쏟아진다
윙크를 하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좋아서 두 눈이 다 감겨버린다
네가 너무 좋아서
너를 보면 이를 앙시물고 손톱을 깨문다

하루에 네 생각을 세 번씩 한다
나는 이렇게 눈을 감고 너를 사랑한다
나는 원앙을 짝사랑한 물오리
지금 내 옆에는 배게밖에 없다
AND

 구구절절 옳은데, 옳기만 하다. 읽으면서 인류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어디서(하와이, 덴마크) 살더라도 일단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38p.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 모두, 중대한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인간이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이 근복적으로 바뀐 것이다. 자동차가 인간의 근육을 위축시키고, 교육이 저절로 차오르던 호기심을 질식시켰다. 그 결과 필요와 욕구 모두에 있어 그 선례가 없는 새로운 특성이 생겨났다. 역사상 최초로 인간에게 필요가 상품과 같은 말이 된 것이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대부분 걸어서 가던 시대에 사람들이 제약을 느낄 때는 주로 자유가 구속받을 때였다. 지금처럼 어딜 가더라도 교통수단에 의지하는 시대에는 자유가 아니라 승객의 권리를 요구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운송수단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게 '권리'를 제공하면서 걸을 수 있는 자유는 무시되고 수많은 권리 조항에 가려진다. 평범한 사람의 욕구는 (이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누리는 승객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날 자유를 상상조차 못 하게 되었다. 이 자유는 현대인이 이 현대 세계에서 자신의 두 발로 걸을 자유이다. 


 40p. 첫째는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값싸고 좀 더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길이다. 그래서 그 상품에 더 의존하는 길이다. 또 다른 길은 지금가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필요와 만족 사이의 관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선택은 생산물의 외양만 바꿔서 시장 의존 경제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상품에 대한 의존 그 자체를 낮출 것인가이다. 두 번째 길로 간다면 개인과 공동체 모두 현대에 적합한 도구를 새로 만들기 위해 사회 구조를 다시 상상하고 설계하는 모험이 뒤따를 것이다. 그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직접 만족시키는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50p. 원자력이 에너지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하마처럼 아무리 유해하고 억압적이며 반생산적이라 해도 이런 사회에서 원자력을 포기하겠는가? 군대가 지배하는 사회라면 불만 세력이 자신의 이웃들을 소비에서 빼내고 조직하여 소규모 사용가치 중심의 생산방식으로 일할 자유를 요구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그런 생산방식은 서로가 만족스럽고 즐거운 절제를 해야 가능하다. 


 86p. 지금까지 사용가치의 생산방식과 상품의 생산방식이 서로 대립하여 이루어진 평형상태로 한 사회의 행복을 측정한 것은 없다. 언제나 두 생산방식이 풍요롭게 맞물려 상승 효과를 냈을 때 생겨나는 균형을 통해 측정할 수 있었다. 타율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은 오직 어느 정도까지만 개인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을 향상하고 보완할 수 있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서로 합쳐진 두 생산방식은 사용가치를 만들건 상품을 만들건 애초에 의도한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볼 수 없었다. 주류 환경운동이 이 점을 가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원자로가 위험하기 때문이고 기술 관료만 막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이 에너지 탐욕을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다. 에너지가 정량을 너머 소비되면 사회를 파괴하는 힘으로 전환되어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는 주장은 아직도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60p. 이 시대의 전문가는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람을 처방할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은 무엇이 좋다고 광고할 뿐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선포한다. 전문가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은 고수익도 아니며, 오랫동안 배워야 하는 교육 과정도, 복잡한 기술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아니다. 수익은 적을 수도 있고 대부분이 세금으로 빠질 수도 있다. 수련기간은 몇 년을 몇 주로 압축할 수 있고, 사회적 지위는 전통적 직업보다도 낮을 수 있다. 전문가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을 고객으로 정의하는 권위이며, 그 고객에게 필요를 결정해주는 권위이고,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알려주는 처방을 하는 권위이다. 현대의 전문가는 옛날의 매춘부처럼 돈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팔아야 할 것과 무료로 제공해서는 안 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AND

감자

씨감자를 잘라서 재를 묻힌다
감자에 병이 나지 말라고 그런다
내 마음을 자르고 잿더미로 만든
너를 생각한다
내 마음엔 병이 났다
감자 캘 무렵이면 병이 나을까
찐감자 먹듯이 내 병을 씹어 먹을까
감자전 해 먹듯이 내 병을 갈아 먹을까
오늘,
기약도 없이 감자를 심었다
AND

외로워


소나무 한 그루
양지바른 곳에 심었다
몇 년이 지나도 크기가 그대로였다
그 나무 옆에 한 그루 더 심었다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두 나무 모두 가지가 곧고 크게 자라서 보기가 좋았다
나무도 한 그루만 심으면 외로워서 자라질 못한다
나무도 외로우면 다른 나무를 찾는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없는 사람과 함께 산다
나도 위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 너무 외로워마라
이쪽도 매 한가지다
외로움이 병이다
외로움에 방치된 노인에게 치매가 온다
해로운 담배를 입에 무는 이유도 실은 외롭기 때문이다
모든 명분은 외로움이다

어제는 너무 외로워서 하루종일 술을 마셨고
오늘은 계속 외로워서 하루종일 잤다
잠에서 깬 나는 지금 그 어느 별보다도 총명하다
술을 마신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게 당신 때문이다

다 너 때문이다
AND

돈 벌기 싫으면 돈 많이 벌어야 되는 세상이다. 나랑 아내는 그런 세상을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다. 의료보험 말고는 다른 보험이 없어서 중병에 걸리면 그냥 죽어야 한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의지가 없다. - 나는 가끔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 농사 지어서 조금 벌면서 조금 버는 것에 맞춰서 세상의 편리를 누리면 좋다고 생각한다.

어제 동네 피자집에서 피자를 - 전단지에 올리브가 박혀 있길래 올리브 빼달라고 했더니 원래 올리브 안 들어간다는 대답을 들은 피자 - 편의점에서 산토리 몰츠 두 캔을 - 8월 말까지로 수입맥주 할인 행사 끝난 줄 알았는데 9월부터 다시 시작 - 사서 오즈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성인 남자 코스프레를 했다. - 역시 맥주는 몰츠야. 뭐 이딴 거 - 아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뭔가 되게 만족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내 마음을 딱 들켜버렸는데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았으니 사랑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강릉에 와서는 이 정도 호사는 누릴 수 있을 정도는 벌고 있다. 그렇지만 이왕 시대 착오적으로 살았으니까 호사는 적당히 부리는 게 좋겠다.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자본주의라는 신화는 돈을 산처럼 쌓아놓고도 배고프고 잘 곳 없는 사람들을 돕지 않으니 말이다.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이다.

이름과 숨소리만 진짜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인간의 종특인지도 모른다.

종특을 적으니까 떠오르는 게 있어서 조금 더 적는다. 집 나와서 혼자 일하는 개미를 보고 이 개미는 왜 혼자일까, 생각한다. 유일하게 다른 종족을 이해하려고 하는 종족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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