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뱃속에 애벌레가 생겼다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꿈틀꿈틀 꿈틀꿈틀
나는 울렁거렸다

뱃속에 애벌레가 번데기가 됐다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꿀럭꿀럭 꿀럭꿀럭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뱃속에 나비가 날개짓을 한다
단지 널 사랑할 뿐인데
사뿐사뿐 사뿐사뿐
나는 하늘을 난다

그리움은 배고픈 나비가 되어
네 머리 위로 훨훨
끝을 모르고 활활
AND

우문현답 2 - 아이 생일

여보, 우리 애가 태어난지가 십 년 이네요
여보, 십년 전을 기억하면 어떻게 지금을 살아요
AND

우문현답 1

하루만 지나면 잊을 일들을 왜 오늘 얘기하나?
내일이 와도 잊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AND

"내 맘 같지 않은 일에 화내지 않고 사는 게 참 어렵다."

어느날의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이 문장은 '꼰대'란 말과 연결된다.

어느 주말에 마트에서 장을 봤다. 한 손에 믹서기 상자를 안고서 부식 몇 가지를 더 구입해서 계산대로 갔다. 상자를 내려 놓고 먼저 계산대를 빠져 나오면서 아내에게 봉투 달라고 얘기하라고 몇 번 얘기했다. 그런데 아내가 봉투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화를 냈다.

계산하는 분이 봉투 드릴까요? 했으면 봉투 받으려고 했는데, 아무말 없길래 그냥 봉투 없이 계산을 진행했다고 저녁에 아내가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니 마음대로 안된다고 화내고 그러면 그게 바로 꼰대라고 했다.

깊게 반성했다.

내 맘 같지 않은 일은 크게 두 가지인데, 내가 내 맘 같지 않은 것과 남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이다. 20대에는 내가 내 맘 같지 않아서 스스로 마음 고생을 많이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도 아내를 만난 게 계기일거라 생각함 - 그건 극복을 했다. 서른 중 후반 지나면서 부터는 남이 내 맘 같지 않은 일에 화가 난다. 가끔 그 화가 터져나올 때가 있다. 

어제 영화 '공동정범'을 봤다. 인생살이는 내 맘 같지 않은 남들과의 연속된 충돌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도 사람이 다르면 달라진다. 영화는 그 지점을 잘 파고들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이 충돌에서 시작한다. 영화 '공동정범'이 매우 뛰어난 점은 연출자가 주인공들 스스로가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인정할 때까지 - 인정할 수 있도록 - 인내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 글의 첫 문장과 '꼰대'란 단어를 가슴에 항상 새겨놓고 살아야겠다. 나이 먹고 꼰대 소리 듣는 것 만큼 처량한 게 없다.

그리고 끝까지 용산을 잊지 말자.

AND

반성 - 되뇌다

좋다고 자꾸 좋다 좋다 되뇌면 대책도 없이 좋아진다.
당신이

 

반성 - 장래희망

공부는 잘 못해도 다른 걸 열심히 하거나 잘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 다른 게 어째서 다 음악, 미술, 체육 아니면
요리, 목공, 미용 같은 기술 뿐이냐
장래희망 따위 없어도 살아갈 뿐이다

 

반성 - 아내의 말

남들은 다 잘 살아
우리는 너랑 나랑만 잘 살면 돼

  

반성 - 취미

아내는 매일밤 책을 읽고
나는 매일밤 술을 먹는다

 

반성 - 생각

자꾸 생각하면 생각한대로 저지르고 마니
자꾸 생각하지 말아야지

 

AND

월식달

지구가 달을 먹는다
둥글게 달을 먹는다
나이 마흔이면 생에 한 번쯤은
누군가를 자기 그림자로 먹어버린 경험이 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으니
사랑이었다
지구가 달을 먹는다
너무 사랑해서 달을 먹는다
조급하지도 느긋하지도 않은 속도로
지구가 둥글게 달을 먹는다
한 차례의 어둠이 지나고 나면
그게 사랑이었다
AND

좁쌀

내 마음 속엔 빈 공간이 있다
좁쌀을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알만한
딱 그만한 크기의 작은 공간이 있다
그 안에선 과거와 미래가 함께 뛰놀고
세계의 모든 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유한다
지우고 싶은 과거는 기억하고 싶은 미래가 되고
떠돌던 말들은 폭풍에 휩싸여
어제를 지나 오늘도 건너뛴 채 내일을 넘어 아주 먼 미래로 날아간다
어디에서 채우나 이 허무를
어디에서 채우나 이 공허를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이고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똑같은 말들을 아무 불평없는 소처럼 되새김질 한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
나라는 좁쌀 한 알을 씹고 또 씹는다
AND



갑자기 마신 술
가게를 나서자마자 보이는 눈발
아, 고마운 눈
사랑하는 너

->하이쿠 같아서 수정함

갑자기 마신 술
가게를 나서자마자 보이는 눈발
아, 고마운 눈
술이 깨는 기분에 2차를 마시고
가게를 나설 때 여전한 눈
아, 사랑하는 눈
산불같은 일상의 걱정은 지워버리는 눈
내일 할 일 같은 건 머릿속에서 덮어버리는 눈
아, 난 너에게 가는 길 
취기 따윈 지워 버리고
검정색 점퍼가 하얗게 되도록
너에게 가는 길
아, 사랑하는 너
AND

우리들의 올림픽

달리고 던지고 헤엄치고 붙들고 힘을 겨루다
나중에는 울고불고 나자빠진다
세계 방방곡곡에 와이파이가 흘러넘쳐
진짜로 전 세계가 손에 손 잡고 하나 된 것 같지만
이웃 나라 소식은 좀 아는 척 할 수 있어도
옆집 사는 사람 얼굴도 모르고
같은 말을 쓰는 이웃나라에 사는 가족들 소식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4년에 한 번씩 자동으로 열리는 가짜 축제
따뜻한 계절에만 하는 걸론 모자라서
추워 빠진 날씨에 얼굴 벌개진 채로 스케이트도 타고 썰매도 타보지만
결국은 울고불고 나자빠지고 마는 겨울올림픽 또는 동계올림픽
겨울이란 예쁜 말을 두고 쉽게 부르는 이름 동계올림픽
올림픽은 올림픽이고 겨울올림픽은 동계올림픽이라 서러운 겨울올림픽
500년 된 나무 베어내고 가짜눈을 뿌렸던 자리에
이제 막 피어나는 어린나무를 빼곡히 심고나면
복구란 말을 갖다붙일 수 있는 우리들의 겨울올림픽
이기지 않으면 진 것이고 지면 잊혀지는 세상이지만
정작 패자는 평생을 자고 일어나도 잊지 못하는
우리들의 서러운 겨울올림픽
서러운 우리들의 겨울올림픽
AND

질투

내 색시는 내가 엄마 없으면 못 사는 줄 아는데
엄마는 나랑 220km 떨어져 살고
내 색시는 매일밤 나랑 붙어서 잔다
AND

반성

요즘은 비스듬한 게 좋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다 새롭다
왼쪽은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방향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세상은 왼쪽으로 기운다
온갖 하찮은 것부터 당신의 입술까지
아니, 기울어진 것은 나 뿐인가
기울어진 것은 삐뚤어진 것
삐뚤어진 것은 뒤틀린 것
기울여야 똑바로 보이는 세상은
삐뚤어지고 뒤틀린 것 
고개를 좀 더 기울이면 
삶은 그대로 평탄한 것
요즘은 적당히 비스듬한 게 좋다
더 이상 삐뚤어지지 않을 만큼만
더 뒤틀리지 않을 만큼만
당신 입술에 입맞출 수 있는 만큼만
AND

답이 없다

늙은 개는 죽는다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옆집 강아지가 죽었다 나이는 한 달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사람은 다 죽는다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바다 건너 사는 형이 술 먹고 죽었단 얘기를 들었다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바닷가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술 위에 술을 쌓는다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파도가 내 안에 자꾸 빗금을 긋는다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나는 답이 없고
아내에게선 답이 없다

-> 오늘 아내 생일인데....
AND

할아버지 제사 다녀왔다.
내가 우리집 장손이다.
상 차리는 제사도 장손이란 개념도 다 한국적이다.
아버지가 장남이라 차례, 제사는 우리집에서 지내는데 그 우리집이 작년부터 엄마집이 됐다. 법적으로 이혼한 전남편의 아버지 제삿상을 내 엄마가 준비한다. 좀 웃긴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25~6년 됐고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장기알 가지고 나한테 야바위 가르쳐 줬던 것 뿐이니 내 동생과 그보다 한참 어린 친척동생들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거나 얼굴을 못 보기도 했다.
제사는 대를 이어서 내려가니까 어느 시점에는 고인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는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 후손들 잘 되게 해달라고 또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대를 잇는 과정에서 자주 못보는 친척들과는 멀어지고 형제간에 그러기도 한다. 나부터도 작년에 할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삼촌들과 점점 멀어지는 걸 느낀다. - 작은 고모 딸내미가 아기 낳은 소식을 어제 작은 엄마로부터 전해들었다. -
대를 잇는 제사는 원시적인 무언가를 갖고 있다. 원시적인 건 본능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못 왔지만 삼촌들이 참석했고 제사는 무사히 끝났다.

엄마 얼굴 봐서 참 좋았다.
내게 제삿날은 엄마 얼굴 보는 날이다.
일년에 명절 제사 합쳐서 4번씩 엄마를 보게 되니까 엄마가 80까지 산다고 해도 엄마 얼굴 볼 횟수가 80번 밖에 안 남았다. 1년도 365일이나 되는데.....
이 생각을 하니까 깊숙한 곳이 아리다.
어제 본 엄마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AND

겨울비

​물방울이 전깃줄 위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얼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땅에 떨어지지도 않고
거꾸로 매달려서 바닥을 향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줄지어 줄지어 ​위태롭게 위태롭게
나는 끝을 알고 물방울은 그 끝을 모른다
담담하게 담담하게 처연하게 처연하게
오래된 막걸리 집 처마 아래서 피워올린 담배 연기는 
비스듬히 날아올라 지붕 위로 숨는다​
당연하게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전봇대는 기울지 않았으나 전깃줄이 기울었다
세상은 기울지 않았으나 나는 기울었다
물방울은 끝내 땅에 떨어지고
나는 날지 못한다


AND

취기

이 정도 취했을 때가 좋다
비틀거리지 않으며 집으로 가고 있다고 느낄 때
보고 싶은 사람에게 굳이 전화하지 않을 때
집에 가면 한 잔 더 먹고 싶지만 같이 먹을 사람이 없을다는 걸 알 때
집에 와서 옷은 대충 벗어도 양치는 하고 자야겠다 싶을 때
자꾸 네 생각만 날 때
그래도 네 생각만 날 때
AND

겨울산에 버리다

겨울산에서 똥을 눈다
김이 모락모락 똥을 눈다
그 똥을 흰 눈 속에 묻는다
어제까지를 버리고 돌아온다
AND

한파

퇴근길
밖에 나온지 오 분 만에 귀가 얼었다
국밥집 돼지머리 귀도 얼었다
자동차가 얼고 전봇대가 얼었다
강이 얼고 파도도 얼었다
산에 나무들은 얼지도 않고 종일 찬바람을 맞는다
귀가 얼지 않게 속삭인다
얼지말라고 얼면 죽는다고
견디라고 견디라고
이제 곧 봄이라고
서로의 귀에 대고 바람으로 속삭인다
AND

날이 많이 춥다.
출근길에 정선 제2교를 걸어서 건넌다.
조양강이 꽝꽝 얼어서 갈라지고 있다.
얼어붙은 마음은 쉽게 갈라지고 부서진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2년전에 나랑 같이 면접장 들어깄다 나와서 몇 마디 나누었던 게 생각난다. 나랑은 달리 적극적인 밝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꿈을 이루었으나 행복이 길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직장에서 친한 동료 한 명은 2세 소식을 전했다. 생의 덧없음을 어느정도 아는 나이지만 마음이 부대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제부터 내일까지 총 다섯 번의 면접 시험을 진행한다. 일자리를 얻으려는 연세 지긋한 분들을 많이 뵙고있다.
눈도 잘 안 보이시고 글씨도 잘 못 쓰시는 분들이 끙끙대면서 필기시험을 보고 새파랗게 어린 면접관들 앞에서 팔굽혀펴기를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참 못할짓이란 생각이다.
남을 이기고 내가 뽑혀야 한다는 빤히 보이는 말과 행동은 절박함인가 순수함인가 과욕인가? 나도 빤히 보이는 사람이겠지.
대부분의 구직활동에는 계란후라이를 먹다가 덜 녹은 왕소금을 씹는 짠함이 있다.
2주간 집에 못간 사이에 옆집 아기 강아지들은 많이 컸을까? 살아 있는 건 다 제 속도대로 산다.
이런 생각들로 겨울을 건넌다.
곧 봄이다.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올해가 다 끝난 것 같다.
AND

모른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을 봐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랑 같이 사는지 아내를 안고 자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매일 살면서도 모르겠다
짬뽕 그릇을 앞에 두고도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눈이 슬로우모션으로 내리는 겨울 오후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AND

입술

내 입술은 붉다
네 입술은 빨갛다
붉고 빨간 것이 뒤섞인다
이름도 모르고

내 입술은 빨갛다
네 입술은 붉다
빨갛고 붉은 것이 뒤섞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붉디붉고 빨갛고 빨간
키스 키스 키스
입술 입술 입술

파랗게 질리도록
키스 키스 키스
입술 입술 입술
AND

신년사

어차피 맨날 뜨는 해
항상 마음뿐인 소원 성취
올해 계획은 그저 12월까지 잘 보내는 것
AND

장날

5일마다 새로 태어나는 장날
새벽을 깨는 두부가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솥뚜껑 위로 메밀전 뒤집는 솔길이 분주하다
시장 맨 끝자리에서 김을 굽던 부부가 안 보인다
커피를 사러 들른 빵집에 늘 있던 알바생이 없다
늘 있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고장나도 티가 나지 않는 시계 부속같은 삶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는 출근길
언젠간 녹아 흘러갈 시간
AND

마음같지 않은 일


자도 자도 기운이 없다
피부가 생기를 잃은지 오래다
바다 앞에 앉아도 감흥이 없고
술을 마셔도 기분이 그저 그렇다
애인을 봐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기억하는한 살아남았다
무언가를 아는한 살아남았다
목소리를 잃은 매미로라도 살아남았다
나조차 내 마음 같지 않아도 살아남았다

이렇게 살아남았다
AND

12월 생

꽃 피는 3월도 아니고
장맛비 요란한 6월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더위 쏟아지거나
나뭇잎 붉은 때도 아닌
크리스마스와 망년회로
사람들 흥청망청한 12월
나는 12월 생
남들보다 빨리 한 살 먹고 시작했다고
축하도 못 받고 나이만 빨리 먹는
나는 서러운 12월 생
AND

열병

열병을 앓았다
39.4도 불같은 몸으로
꿈 속에서 당신과 뜨겁게 사랑했다
깨어나 응급실에 갔다
사랑이 끝난 자리엔
병원비와 차가운 계절
낫지 않으면 좋았을
열병을 앓았다
AND



잠결에 눈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요가 먼저인지 눈이 먼저인지
사박사박 사박사박
세상에 고요가 쌓이는 소리
모든것을 원래로 되돌리는 소리
달빛 아래 맨발로 눈 위를 달린다
아직은 더럽혀지지 않은 삶
눈 그치자마자 더러워질 세상
그리고 나
눈은 사람보다 차갑고
나는 추위를 모르는 사람
아무리 뛰어도 내 발자국 남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소복소복 소복소복 
잠결에 눈 쌓이는 소리를 들었다
AND

겨울 아침 생각

밖은 영하 십 도
쪽창으로 누런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방 
구석 이부자리에 비스듬히 누워서
창 앞 책상에 앉아 뭔가가 바쁜 당신을 보면서
눈민 꿈뻑꿈뻑
나는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진다
허망할 겨를도 없이 삶이 허무로만 돌아오는 계절에
조금씩 세상과 멀어진다
AND

젊음이 사라져가는 것을 
온 몸으로 안다
아니 온 맘으로 안다
어제보다 지치는 오늘
오늘보다 힘들 내일
져려오는 뼈마디에 아프기만 한 마음으로
그 모든 걸 안다
티비에서 아이돌 아이들이 열심히 하는 걸 보니
눈물이 난다
더 많은 아이들은 아무 꿈도 없을텐데
너희들의 꿈은 잠깐의 주목이라도 받는구나
피씨방에서 욕하며 게임하는 애들을 봐도 눈물이 난다
미역국은 얘기할 필요도 없지
너희들 또한 알지 못하는 세상이 여기에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들도 이 세상의 어느 자리에서 자기 몫을 챙기겠지
눈물이 나고 또 난다.
AND

가락국수


영주 가는 무궁화 열차
종착지는 안동이었을까
약초의 고장 제천에서
오래 머물던 기차
열차안에는 군것질 거리 파는 형아들 뛰어다니고
차창 밖에는 250원 짜리 가락국수를 들이키던 외삼촌
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일
출발지는 청량리였을까
생각하면 옛날 생각만 나는
그때의 가락국수와 어머니의 남동생
AND

겨울산

동물 발자국만 보이는 하얀 산에 오른다
멀리서 까마귀 운다
내 발자국 더해질 때마다
깊어가는 울음
나는 왜 그리고 너는 왜
울음은 물음과 같고
맥없이 뒤돌아 오는 길에
내 발자국에게만 묻는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