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국을 먹다

마주 앉은 사람은 설렁탕을
나는 만두국을 먹는다
뽀얀 뼛국물 안에
고기를 갈아 속을 채운 만두가 잠겨 있고
남의 살을 먹는 주제에
먹으면 피가 잘 돈다는 파도 잔뜩 넣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고기를 건져 먹다가 웃는다
나는 만두를 건져 먹다가 웃는다
살다보면 누군가와든 마주앉아 뼛국물을 먹는 일이 있다
친한 친구나 덜 친한 친구
처음 보는 사람 또는 자주 보는 사람
연인이거나 연인이었던 사람
방금 이혼 수속을 마친 전 아내
누군가와는 마주 앉게 된다
지금 내 앞에선
곧 나를 떠날 사람이 웃는다
뼛국물을 삼키며 웃는다
입안에서 만두가 터지고
만두에선 시큼한 김치맛이 난다
AND

돈까스를 먹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유행하고
돼지들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데
나는 나랑 사장님 뿐인 가게에서 돈까스를 먹는다
세상에 흔한 비오는 오후 네 시에
비 오는 오후 네 시보다 흔한 돈까스를 먹는다
언제부터 돈까스가 흔해졌나
언제부터 돼지고기가 흔해졌나
사람보다 흔한 돼지고기
흔해지고 나면 전멸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좋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군
만날 딴 생각만 하고 있는 나를 닮았다
묵직한 소스가 뱃속에 달콤하게 퍼진다
안도감을 주는 맛이군
어떤 돼지들은 죽고 나는 살았다
어떤 사람들은 죽고 나는 살았다
살아서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날
혼자서 돈까스를 먹는다
모질게 살겠다고 모듬으로 먹는다
AND

생강차를 먹다

 

점심으로 뼈해장국을 먹고

후식으로 생강차를 마시는 오후

대추차를 마시려고 했는데 대추가 다 떨어졌대서

대추차를 못 마시고 생강차를 마시는 오후

조카뻘 나이의 동료와 마주앉아 해장을 말하고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생강차를 마시는 오후

생이 가볍길 바라며

찻잔 위에 둥둥 떠 있는 잣을 씹는 오후

찻잔 바닥엔 무거운 생각같은 생강조각

일부러 끝까지 비우지 않은 찻잔 속을 들여다 보게 되는 오후

AND

이대로 산다면

.....
이대로 죽는다
AND



먹기 위해 싸는지
싸기 위해 먹는지
먹고 살기 위해 싸는지
먹고 싸기 위해 사는지
AND

마른꽃

매번 사랑이 끝나고나면
열병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오르는 마른 꽃
온 몸 구석구석 간지럽게 마른 꽃
피지도 않고 저물지도 않는  꽃
마른 꽃
살아 있지 않지만
살아온 자리자리 기억하라고 피어나는 마른 꽃
작은 기억의 흔적마다 마른 꽃
간지러운 기억들 잊으려 긁은 자리마다
상처로 피어오른
마른 꽃

AND

사거리에서

어느 방향에서건 최초의 파란불이 있었을 사거리 신호등
순서를 지켜 길을 건너는 자동차와 사람들
뜻없이 걷다 붉은 신호등이 사거리 한 모퉁이에 나를 멈춰 세웠을 때
문득,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생각했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을 것이고
그게 지금이라면 좋겠다 생각했다
신호가 바뀌고 내게 다가오거나 내게서 멀어지는 사람들
다시 신호가 바뀌고 나를 지나치는 자동차들
한 번 더 신호가 바뀌었을 때,
굳었던 마음이 풀리고 길을 건너는 대열에 합류했다
뜻없이 걷다가 시작도 끝도 중요하지 않은 사거리에서
다시 붉은 신호를 만났을 때
문득,
이대로 계속 나아가도 좋겠다 생각했다
AND

35번 국도 새벽 한 시

길을 건너다 죽은 죽은 고양이
길을 건너는 고양이
또 죽은 고양이
또 길을 건너는 고양이
눈치를 보다 길을 건너는 고양이
두리번 거리는 고라니
차에 치일 뻔한 고라니
또 두리번 거리는 고라니
길 옆으로 느리게 숨는 고라니
천지사방 고요속에 내 자동차와
자동차 전조등 빛과
고라니와 고양이
죽지 않았으면 살아있는
고양이와 고라니
AND

문제

​양파밭엔 양파가 문제
마늘밭엔 마늘이 문제​
​사과밭엔 사과가 문제
포도밭엔 포도가 문제
감자도 문제, 배추도 문제
비가와도 문제
가물어도 문제​
풍년이라 문제
흉년이라 문제
값이 없어 문제
못 팔아서 문제
사람도 없는데 인건비가 문제
비닐도 문젠데 비닐값도 문제
화학비료도 문젠데 비료값도 문제
기계가 있어도 기계값이 문제
해마다 늘어가는 빚도 문제
땅 주인이 문제
그놈이 가져가는 직불금도 문제
농사를 지어도 문제​
​농사을 안 지을수가 없으니 더 문제
AND

기름과 계란

차에 기름을 넣었다
가계부에 계란 5만원이라 적었다가​
아차, 하고 기름으로 바꿔 적었다
기름과 계란, 계란과 기름
계란후라이에 기름
후라이드 치킨에 기름
구리스가 없으면 삶이 빡빡하게 돌아가고
기름기 없는 삼시세끼를 상상하기 어렵다
계란 한 판 자동차에 넣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할 수 있다면
계란 100개로 보일러가 겨울내내 돌아간다면
기름값 걱정 없는 행복한 세상이 올까
집집마다 애지중지 닭을 키우는 풍경이 흐를까​
지구가 닭의 행성이 되는 생각 아래로
기름을 먹은 자동차 바퀴가 구른다
AND

나무​

​오후 네 시
산에서 길을 잃었다
이대로는 죽는다는 생각에
몇 번을 넘어지며 산을 내려왔다
등산로 표지판을 발견하고 나서야
땀을 닦고 숨을 돌렸다
고개를 들자 나무가 있었다
내게 말을 거는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나무
눈 코 잎도 없으면서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나무
나무도 나도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나무를 안았다
그날의 냄새가 났고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다
잘 있으란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세상으로 돌아왔다
산에서 길을 잃은 날
입을 다물고 말을 거는 나무를 만났다
AND

심계탕을 먹다 2

복날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삼계탕을 먹는다
속이 채워진 닭으로 내 뱃속을 채운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
하루 닭 소비량 200만 마리
닭 사육 두수 1억 7천만
1억 빚은 빚도 아닌 세상이니
한 마리 닭을 먹는 일도 무심하다
닭은 인간이 만든 사료를 먹고
사료를 만든 인간은 닭을 먹는다
돌려 막고 돌려 먹는
지극하고 지독한 순환이란 말
레일 위의 기차는 여전히 빠르게 달리고 있고
풍요의 꼭지점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알고도 모르는 척
세상에 섞여서
복날 삼계탕을 먹는다
AND

플라스틱을 살다

나는 참치회를 먹는다
참치는 고등어를 먹고
고등어는 새우를
새우는 플랑크톤을 먹는다
나는 고등어 회도 먹고
생새우도 튀긴새우도 먹는다
새우는 미세 플라스틱과 플랑크톤이 헷갈리고
고등어는 새우와 플라스틱 미끼를 헷갈리고
참치가 큰 입을 열면 헷갈릴 것도 없이
온갖 것들이 뱃속에 들어간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먹는다
할머니 생일을 축하하는 뷔페 식당의 모든 음식이
플라스틱의 사슬에 매여 있다
인간은 그렇게 플라스틱을 먹는다
모든 생명이 플라스틱을 산다
모두가 플라스틱의 은총아래 있다
AND

오리배

​하짓날
오리배를 탔다
생은 정점으로 치닫지 않았지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휴일이다
오리배는 몸을 기울이는 쪽으로 뒤뚱 방향을 돌린다
내가 몸을 기울일 때마다 아내는 웃고 나는 기분이 좋다
호수 위에 둥둥떠서 페달을 밟는다
부표 안쪽으로만 안쪽으로만
세상은 위험투성이
선을 넘으면 안되지
멀리 오리 가족이 보인다
어미 오리의 뒤를 새끼 오리들이 따른다
호수 위에 둥둥 떠서 발을 놀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실함
우리가 따라 잡기도 전에
오리 가족은 부표 너머 점으로 사라진다
우리 바로 곁에 선을 넘는 삶이 있다
정오의 태양이 호수 전체에 축복처럼 내리고
우리의 오리배는 길어진 낮의 한복판에서  ​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AND

어른의 여름

6월​,
이름 모를 나무 아래
이름 모를 애벌레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잎을 먹는다
그늘 한 점 없는 맨바닥에서
부러진 가지 끝의 마지막 한 장을 지걱지걱 씹는다
나무 위에 있었다면 나비나 나방이 될 수 있을 생명
지금은 발에 밟히거나 굶어 죽을 운명
길바닥에 널린 죽음, 또는 꿈틀거리는 삶
욕망은 흉폭하고
멀리 뚱뚱해진 여름산처럼
나는 비대한 몸을 가진 어른이 됐다
여름산을 보고 봄이 그립다면 인생을 돌아봐도 좋은 나이라고
언젠가의 당신이 말했다
마지막 한 입을 남겨 놓고
애벌레는 먹던 일을 멈춘다
돌아볼 일도 없이 마지막에 다가가는 삶
나는 도무지
당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AND

말하지 않는 밤

작은방, 말하지 않는 밤
빈 구석에 웅크린 채
침으로 마른 침묵을 적시고
침묵에 꽃을 피웠네
여름밤, 말하지 않는 작은 방
적막에 꽃이 바스러지고
꽃 부서진 자리 아토피처럼 가렵네
긁은 자리마다 싱싱한 생채기가 피고
마른혀로 상처를 핥았네
상처는 아물고 매미소리 시끄러운데
내가 내게 말하지 않는 밤은 끝나지 않고
뱃속에 마른꽃만 자꾸 피고 지네
AND

퇴근길 - 정선에서 -

태양과 내가 가장 멀리 떨어진 계절
새끼들을 먹이느라 제비 부부가 부산하다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어린것들의 절실한 주둥이
읍내를 빠져나오는 다리 위
왜가리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눈부신 쪽으로 사라진다
사랑을 나누려던 참새 두 마리가 내 기척에 자리를 뜬다
공원 앞 은행나무 가지에도 참새가 한 마리 앉았다
내 마음 때문인지 그저 우연인지
오늘 본 참새들은 다 통통하다
건물 철거 공사장엔 멈춰선 포크레인 한대
너도 오늘 일을 마쳤구나
모퉁이를 돌면 내 작은 방
나를 기다리는 식은 밥
언젠가의 사랑처럼
식어버린 퇴근길
AND

늙은새

늙은새를 봤다
옥수수밭 옆 작은 숲속에서
내 낌새를 느끼고 푸드득 날았다
아주 잠깐,
그리고 불안한 착지
여전히 그 새가 늙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거리다
가까이 다가가자
또 한 번 푸드득 날았다
먼저보다 더 잠깐
털빛이 세월에 삭았다
눈이 마주쳤다
피로로 가득한 늙은새의 눈
새도 내 피로를 읽었을까
먼저 고개를 돌려
내게서 먼 쪽으로 뒤뚱 걷는다
늙은새는 말이 없다
AND

또복이네 - 물회를 먹다 -

​속초 중앙시장
몇 번을 물어야 찾아갈 수 있는 골목에
지역 택시기사도 잘 모르는 작은 가게
50년 된 단골들은 다 죽어 없어졌다는 또복이네
언젠가부터 다리를 저는 김말복 할머니가
손님들 또 오라고 지은 이름 또복이네
한 축에 만원하던 오징어가 두 마리에 만원이 되가는 세월을 견딘 곳
막내 아들뻘인 나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장님 나이따라 물회가 점점 달달해지는 또복이네
물회를 먹다가 설탕을 덩어리 째 씹어도 또 가게 되는 곳


AND

고들빼기 사랑

​고들빼기
흔하게 있지만 ​
​꽃이 피어도 눈에는 잘 안 띄는 식물
사랑은 무엇과도 같을 수 있으니
씀바귀면 어떻고 엉겅퀴면 어떤가
꽃말은 순박함​
줄기가 잎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운다
스스로 상처 입히는 식물
사랑은 무엇도 될 수 있으니
고들빼기 같은 사랑은 순박한 고통
순박한 이들끼리
상처받고 상처받고
가슴이 뚫리는 고통 끝에 피어난 사랑
고들빼기 같은 사랑 

 

 

고들빼기  사랑(song ver)

씀바귀도 아니고 엉겅퀴도 아니네 고들빼기 1 5 6
흔하게 있지만 ​눈에는 안 보이는 고들빼기 1 5 6
​꽃이 피어도 눈에는 안 보이는 고들빼기 4 5 6
꽃말은 순박함​ 고들빼기 4 5 6

줄기가 잎을 뚫고 꽃을 피운다 3(7) 6
스스로 상처입히는 사랑 2 5 

사랑은 무엇도 될 수 있으니 4 5
씀바귀면 어떻고 엉겅퀴면 어떤가 6 3(7)

고들빼기 x4  6 5 2 5

나의 사랑은 순박한 고통 고들빼기
혼자서 상처주고 혼자서 상처받는 고들빼기
살을 뚫는 고통 끝에 피어난 고들빼기
씁쓸한 향이 나는 고들빼기

고들빼기 x4  6 5 2 5
고들빼기 x4  1 4 7b 1

 

AND

거미 죽다

거미 한 마리 죽었다
양칫물을 뱉다가 알았다
수챗구멍에 들어간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여덟 개 다리로도 올라오지 못하였다
출장으로 집을 비운 며칠간
겨우 하수구 거름망을 차지했다가
절망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아니, 거미는 절망을 모른다
둥글게 몸을 마는 것으로
생의 마지막 힘을 다하고
배고픔에 죽었을 것이다
나는 죽은 거미를 그대로 두고
찬 방바닥에 눕는다
몸을 둥글게 말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발버둥은 치지 않는다
AND

테트리스

​테트리스 꿈을 꾼다
길고 짧고 뭉툭하고 구부러진
블록으로 가득찬 세상
삶은 매일 다른 모양인 날들의 합
광대의 춤을 보고 악몽을 끝내려면
블록을 빈틈없이 채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추락은 점점 빨라지는데
기다리는 블록은 내려오지 않고
바닥에 닿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는 블록
게임오버 게임오버 게임오버
컨티뉴 코인이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
AND

4월, 발 아래

민들레꽃 피는 계절에
이름에 대해서 생각한다
발 아래 작은 것들을 보는 일이 좋있다
그것들의 모양과 색과 이름,
거짓없는 생을 보는 일이 좋았다
제비꽃 바람꽃 얼레지
몇 개의 이름을 아는 일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일로 어둡고 길었던 소년시절이 끝났다
당신에게 작은 것들의 이름을 알려 주는 일이 나의 사랑이었다
동풍이 부는 계절에 땅만 보고 걸으면서
당신 이름을 자꾸 부른다
이름이 실체가 되어 솟아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붙잡을 수 없는 이름을
거짓없이 지나간 이름을
이름을 모르는 봄꽃에게
영문도 모르는 봄꽃에게만
부르고 또 부른다
AND

우럭회를 먹다

강원도 정선까지 날 보러 온 친구와
정선까지 죽으러 온 우럭을 먹는다
간장에 와사비를 풀고
얼마전 태어난 둘째 아이 이름을 묻는다
술병이 자빠지기 시작하고
친구에게 아이 이름을 묻는다
매운탕 국물을 뜨다가
다시 한 번 아이 이름을 묻는다
횟집을 나와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이 이름을 또 묻는다
둘 다 술과 담배가 가까운 곳으로만 가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우럭회를 먹었던,
친구에게 아이 이름만 자꾸 묻는다
AND

청소

빨래를 널고 방을 닦는다
탈수가 끝난 오래된 빤스에 흰 먼지 묻는다
내 몸에는 소용없게 된 것으로
작은 방에 겹겹이 쌓인 흔적을 문댄다
찢어진 빤스는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고
아무리 훔쳐도 지워지지 않는 생활만 남았다​
AND

4월, 오후 6시

​바람에 실려 오는 물큰한 공기
오늘은 종일 물냄새가 났다
제비는 낮게만 낮게만 난다
짝을 찾는 것이지 도망칠 곳을 찾는 곳은 아니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 먼저 어두워진 하늘
곧 비가 오겠다
누군가의 부음을 들은 날
점점 짙어지는 퇴근길
다리 위의 사람들은 성급해 보인다
얼굴에 비 한 방울 떨어진다
나도 사람들도 도망칠 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AND

순대를 먹다

하루의 마지막 시간
셔터를 내리려는 분식집 앞에 멈췄다
순대 1인분 주세요
간 위 허파 염통 귀
간을 먹으면 눈이 좋아지고
염통을 먹으면 피가 맑아진다
먹으면 뭐든 좋아지는,
순대는 돼지가 주는 축복
마지막으로 둘이 먹었던 순대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태어난 날에 나 혼자 먹는 순대 1인분
순대는 둘이서 1인분을 먹으면 좋은 음식
​순대는 혼자서 1인분을 먹기엔 버거운 음식​


AND

비가 온다. 팀 회식을 했다. 비가 오면 산불 근무를 안 하니까 으레 회식을 한다. 어제도 많이 마시고 오늘도 꽤나 먹었다. 자기 자신이 자기 몸을 제일 잘 아는 법이니까 죽을만큼 먹지는 않는다. 올 1월 말에 팀장이 바뀌었다. 먼저 팀장만큼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대학생 때 돌도 좀 던져 본 형인 거 같다. - 모든 팀장이 나한테는 형이지만 이 형은 진짜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다. - 암튼 좋다. 지금 내 방에서 코를 골고 잔다. 인간은 인간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이불을 잘 깔아 줄랬는데 그럴 수 없는 지경이다. 그것도 좋다.

특수진화대 얘기 올리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연락을 받았다. 기자들의 집요함을 절감했다. 절실하니 집요하다. 나는 절실한 사람은 아닌데. 많은 매체에 특수진화대 얘기가 실렸다. 틀린 얘기도 있지만 일단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안프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될대로 되라 잘못되면 투쟁한다.는 심보라 다행인 것이 있다. 동아일보 기자한테 연락 왔다며 걱정해 주는 전화를 받는 일이 좋았다. 인간은 인간인지라.....

회사에서 최근에 내 업무 파트를 둘이 하게 됐다. 작년에는 혼자했던 일인데. 둘이 하니까 좋다. 좋은 건 좋은데 어린 친구(28세)한테 내가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너무 입히지 않나 싶어서 걱정 되기도 한다. 주말에 집에 못 가기는 둘이 같지만 나는 집에 가면 아내가 있는데. 그 친구는 애인이 없다.

지난 일요일에 집에 잠깐 갔다 왔는데, 낮잠을 잔 일이 너무 좋아서 뭘 적었다. 

술 먹고 짧은 일기를 적는 일도 좋고 지난 일요일에 잠이 깨서 적어 둔 것도 좋다. 씨팔 세상에 좋은 것 투성이네. 노래로 만들까 한다.


낮잠


낮잠을 길게 잤다
깨어보니 어둠
옆엔 당신
날 지켜주는 건 
나보다 키도 덩치도 작은 당신
나보다 마음이 넓은 당신

자는 당신을 지켜보다 잠들었다
깨어보니 어둠
날 들여다보고 있는 당신
날 지켜주는 건
내 작은 발을 사랑하는 당신
나보다 넓은 가슴을 가진 당신

AND

해바라기

화분에 물을 준다
아직 잎도 나오지 않은 어린 것
흙속에서 생각에 잠긴 해바라기 씨앗
간질간질한 껍질
축축해지는 머리 끝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나는 어디가 아픈것도 아닌데
생기 없이 집안에 틀어박혀서
오직 생활만을 생각한다
나, 당신, 우리, 생활..... 무능
멍하니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베란다에 오후가 내려 앉았다
화분에 흙이 말랐다

AND

인연


당신이 말했다
네가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사람은 전생에 너를 죽인 사람이니 무조건 피해라
그 말을 남기고 이 생에 처음 만난 사람이 나를 떠났다
당신은 이 생에 나를 죽인 사람
나는 전생에 당신을 죽인 사람
우리는 죽어서야 이루어질 인연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