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다 2


당신을 생각하다가
술에 취했다
오토바이에 올랐다
평소엔 넓던 길이 점점 좁아졌다

아프지 않다
일으켜 세우는 오토바이가 무겁다
이런, 피가 나잖아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정말 아프지 않다
이런, 피가 멈추질 않는다
그래도 아프지 않다

길이 좁으니 조심해서 가자
아프지 않다
를 되내이며 집에 왔다
아픈것을 참으며 몸을 씻었다

아프다고
아프다고
너무 아프다고
옆에 없는 당신을 붙잡고 울었다

 

울었다 1

AND

불안


손톱끝이 엉망이다
어제도 엉망이 되도록 마셨구나
돌아오던 길의 기억은 없지만
아기가 어미젖을 빨듯 손톱끝을 물어 뜯은 기억만은 생생하다

동지 지나고 해가 길다
어느덧, 문득, 어느샌가, 돌아보니
해는 길고 나는 어른이라 불린다
자고 일어나면 새는 울고 날은 바뀌고 해는 길어진다

그러다가 나는 사라진다
사라지니까 사람이다

오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아침
어딘가에서 들려올 불행한 소식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운다
휴대전화 안에는 불행들이 넘쳐난다
다행이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세상을 향해 분노의 헛발질을 하는 내 모습에 헛구역질이 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AND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휴지에 묻어 나오는 똥처럼
날이 지나고 지나도 자꾸자꾸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메뉴도 간판도 없는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손을 잡고 천변을 걸어보기도 전에 끝나버린 연애가 있었다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개 물그릇에 나뭇잎을 띄워주던 마음이 있었다
내게 발가락을 내어줄 것 같던 사람이, 돌이 될때까지 말없이 나를 안아줄 것 같던 사람이

있었다
AND

협의이혼


오늘은 우리엄마 미쓰김 되는 날
부모님과 함께 법원에 간다

법원 문을 나서며
아버지가 밥을 먹자고 한다

마침 장날이다
사람들이 택배처럼 장터로 쏟아진다

방금 이혼한 두 사람과 그 아들이
시장 구석의 순댓국집에 앉는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부가 자주 먹었다는
말캉한 고깃덩어리와 뜨거운 국물을

한때 내장까지 쏟아낼 것처럼 사랑했을 두 사람과
서른을 훌쩍 넘긴 그들의 큰 아이가

30년 전의 그때처럼 셋이서 먹는다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아버지는 ‘특(特)’으로 먹는다
나와 내 어미에게는 여전히 그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엄마랑 나는 보통으로 먹는다
하지만 나는 보통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

각자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우리는 각자의 세계로 흩어진다

무거운 하늘 위로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간다

AND

무방비


벌에 쏘였다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당했다
엊그제 집안의 벌들을 태워 죽였다
그네들도 급작스럽게 당했다
자식을 잃은 것에 대한 복수였을까
따끔했던 손 끝이 아리고 또 아리다

인간이고 곤충이고 다 무방비다

발정났던 고양이가 울음을 그쳤다
며칠만에 나도 녀석도 집안도 조용하다
온기가 그리웠을까
내 품에 안겨 그르렁댄다
차마, 저린 다리를 풀지 못했다

인간이고 동물이고 다 무방비다

화력발전소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배가 기울어 사람들이 물에 잠겼다
공장에서 일하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죽었다
군대에서는 사람이 맞다 죽기도 한다
어제 나는 아차, 하는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떨어지고 잠기고 죽어가는 순간에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인간이란게, 인생이란 게 다 무방비다

AND

볼음도 생활 - 조개잡이


조선시대 임금님도 먹었다는 상합을 캔다
조개중에 으뜸이라 하여 上字를 쓰는 상합을 캔다
질기기만 하고 맛이 없어 우리들은 잘 먹지 않는 상합을 캔다
바다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상합을 캔다
백까지 빛깔이 나서 백합이라고 블린다는 상합을 캔다

먹지도 않을 거 맛이야 아무려면 어때
많이만 잡으면 그만이지
조갯값만 으뜸이면 그게 상합이지

일년에 단 한 번 북한 땅이 보이는 갯벌에서 상합을 캔다
캔 것을 지고 나갈 힘이 없는 노인들도 캔다
부부가 함께 나와서 캔다
아이도 데려와서 캔다
쉬지도 않고 캔다
땅만 보고 캔다

떼돈을 줘도 내일은 안 나온다는 일
그래놓고 떼돈을 안 줘서 내일도 나오는 일
다리에 마비가 오고 온몸에 뻘흙이 묻어도 조개 꾸러미를 짊어지고 나와야 하는 일
굴껍데기에 발바닥이 다 찢어져도 내 힘으로 뭍으로 나와야 죽음을 모면하는 일
다음날 아침 뱃터에서 내가 제일 많이 잡았다며 자랑해야 하는 일
모두가 많이 잡아서 부자가 되는 일
꿈이 되는 일

AND

마음 치료기(마음 회복기)


다친 마음, 슬픈 마음을 치료해드립니다. 들뜬 마음을 가라 앉혀 드립니다. 마음속의 안타까움을 없애드립니다. 사랑의 열병을 지워드립니다. 어떤 마음이든 회복해 드립니다. 하얗게 만들어 드립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마음을 제 안에 넣고 눈을 감으세요. 마음의 뿌리까지 꺼내주세요. 그래야 제가 정상 작동합니다. 삶이 두려움 뿐이세요? 저에게 당신의 두려움을 주십시오. 삶에서 달아나고 싶으세요? 달아나기 전에 저에게 오십시오. 원망과 탄식 불만과 상처들을 다 잡아 삼켜드립니다. 구름이 해를 가리듯 지워드립니다. 비용은 받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만을 먹고 사는 괴물이니까요.
AND

내 친구들의 불안함에 대하여


모두가 취한 밤

친구가 친구의 자지를 빨았다
- 야 너 이 새끼 죽을래
친구끼리니까 괜찮겠지. 생각했다
자지를 빨린 친구는 뼈까지 토해낼 듯
먹고 마신 것을 쏟아냈다

친구가 친구의 입술을 훔쳤다
- 이 새끼 혀 집어넣었어
친구끼리니까 정말 괜찮은걸까. 생각했다
친구라도 괜찮지 않은 것이 있다
친구의 주먹에 친구가 나가 떨어졌다

다들 결혼생활이 불만이라고 했다
누구는 애 때문에 살고
누구는 바람을 피웠고
누구는 바람을 피우고 있고
누구는 생활비의 대부분을 유흥비로 쓴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가 친구의 자지를 빨았다
친구는 요리사다
친구의 자지를 빨 때
친구의 눈빛은 요리를 할 때처럼 반짝거렸다
친구의 혀는 불판에 고인 삼겹살 기름처럼 번들거렸다


이런 밤에 나는 혼자 말똥말똥하다
나만 혼자 죄를 지은 것 같다

한 친구는 집에 돌아오면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자기 삶에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어떻게 잘 풀리는 애들이 하나도 없냐고 했다
나는 가난하지만 뭐든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친구가 어이구. 라고 했다
내 이름은 어일운데. 라고 내가 말했다

친구가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ㅡ> 예전에 써둔 것. 


AND

공장에서


이력도 모르는 사내들과 점심을 먹는다
사내들은 선량한 몸을 가졌다
그 사내들과 저녁도 먹는다
선량한 몸을 가진 사내들끼리는 말이 필요없다
씹지도 않은 밥을 뭉개듯 삼키고
사내들은 다시 일을 시작한다
덜컥덜컥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밥이 내려간다

땀에서 맹물 맛이 날 때까지 일을 하면
누구와 몸을 섞어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력도 모르는 선량한 몸을 가진 사내들은 애인이 없다

- 오늘도 특근이구나
- 월급날에는 부러지게 마셔야지
- 다음 달에는 차를 사고 내년엔 집을 사야지
- 그 다음엔 결혼을 해야지

우리들은 간식으로 나온 빵을 씹으며 미래를 생각한다
나도 사내들도 꿈과 함께 살고 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에서

AND

빈 머리


내 아내는 머리가 비었다
내 머리에는 빈틈이 없는데

ㅋㅋㅋ ㅋㅋㅋ

내 아내는 이마가 넓다
내 이마는 좁은데

ㅋㅋㅋ ㅋㅋㅋ

내 아내의 머리는 이리 넘기면 이리 비고 저리 넘기면 저리 빈다
내 머리는 이리 넘겨도 빽빽하고 저리 넘겨도 마찬가진데

ㅋㅋㅋ ㅋㅋㅋ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는데 내 아내는 머리가 비었다
나는 내 아내의 텅빈 머리도 사랑하는데
내 아내는 자기 머리를 쓸어 넘기는 나를 향해 죽인다고 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ㅠ.ㅠ

내 머리칼을 모두 심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내 옆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AND

덜 취해서 쓰는 낙서


우리가 우리의 슬픔을 다 알 때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것을 다 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매일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까지만 살아가는 것이다

AND

내꺼


뭐든지 다 내 것이 좋은 거야
논도 밭도 경운기도 트랙터도 이앙기도 콤바인도
내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야

그래서 다들 내껄 가지려고 하는거야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이 슬픔이 되는 일은 별일 아니지만
죽음은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해

뭐든지 다 내 것이 좋은 거야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아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내껀 좋은 거야
아,
아내는 남의 것도 좋은 거야

뭐든지 다 내 것이 될 수 있는건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는거야
그래도 죽음만은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해

그리고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더라도
그리운 당신은 내꺼였으면 해
AND

봄밤


4월의 첫날, 밤마실을 나선다
오늘은 만우절, 농담처럼 눈이 내리고
산수유 꽃망울 하얗게 덮는다
눈을 맞은 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눈이 내리는 잊을 수 없는 봄밤
바람은 무릎위로 빠르고
바람을 맞은 내 맘은 휘청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눈,
내리다 그친 봄밤
애인과 첫키스를 했던
친구와 흥청망청 술을 마셨던
혼자서 울기도 했던

봄밤


-> 언젠가 적어둔 것
AND

당신


구름을 쫓던 길에 당신을 만났습니다
누군가에게 등을 돌린날 당신을 만났습니다
손을 잡고 강가를 걸어보지도 못하고 끝난 연애를 생각하다가 당신을 만났습니다

구름 사이로 손을 뻗어 당신을 잡았습니다
등을 돌린채 울다가 울음을 멈추고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벚꽃 흐르는 강가를 걸었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다가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을 당신을 생각하다가
당신을 당신을 만났습니다
AND

명절 - 과식(꾸역꾸역)

고기 구워 먹자
잡채 먹자
갈비찜 먹자
저녁에 뭐 먹을까
(또 먹어요?)

엄마가 주는대로 먹는다
꾸역꾸역 먹는다

가족의 증명은 과식
거푸 먹는 술에 취하듯
꾸역꾸역 집어 넣은 엄마 손길에 체했다

이리와 돌아 앉아봐

바늘이 손을 찌르기도 전에
엄마에게 내맡긴 등짝이 편안하다

함께 먹는 것이 사랑이다
내 등짝을 쓸어내리는 손이 사랑이다
AND

겸손

 

난 겸손하지
높은 놈과 악수를 할 때처럼 두 손으로 밥을 먹지
한 손으로 거들먹거리며 밥 먹는 놈들과는 다르지

난 겸손하지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지
거만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누군가를 부르는 녀석들과는 다르지

난 겸손하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지
미용실에서 고개를 뒤로 빳빳하게 세우고 남에게 자기 머리를 내 맡기는 종자들과는 다르지

난 아주아주 겸손하지
고무신을 신고 누더기를 걸쳤어도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지

난 누구보다도 겸손하지
대통령을 김 씨, 이 씨, 박 씨라고 부르고
그들은 날 모르지

그래서
난 겸손하지만 때론 우울하기도 하지

그렇지만
너희들은 모르는 겸손을, 나는 알지

AND

춘분


봄가뭄에 아내가 울었다
울다지쳐 잠들었다
새우처럼 웅크렸다
살그머니 다가갔다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뒤에서 안았다
온기가 전해진다

오늘은 춘분
바람이 불어 별이 많았다
바람이 불어 별이 떨어졌다

AND

농민 신문 신춘문예 공고가 났다. 불손한 마음으로 300만원에 도전해야겠다. 시라고 쓰고 시로 읽으면 시가 되는 것이 시다.


명절 - 간장밥 이야기 -


뱃터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할머니들의 동네에 자가용들이 부르릉
젊은 얼굴들이 동네를 두리번두리번

나는 외롭다

흰 쌀밥 한 주걱에 s표 진간장 한 숟갈 주르륵
참기름 반 숟갈 더해서 쓱싹쓱싹 비벼서 쓱싹쓱싹 먹는다
간장밥은 참기름으로 비벼야 맛있어.
엄마가 말했다
어린것이 기름맛을 알았을까?
나이 먹고도 엄마한테 배운대로 먹는다
엄마의 맛, 집밥의 맛, 고향의 맛이다
바다 건너 보고 싶은 맛이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맛이다
울면서 먹는 맛이다


간장밥을 자주 먹는다. 반찬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렇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엄마가 나에게 간장밥을 해줬더랬다. 여러번 해줬겠지? 간장은 샘표 진간장이 맛있고 간장밥은 들기름이 아니라 참기름을 넣고 비벼야 맛있다고 했던 단 한 번의 기억 때문에 나이 먹고도 간장밥을 먹는다. 이제는 기름맛을 알까?
AND

신월동에 왔다가 이발소에 들렀다. 몇 년 전에 한 번 머리를 잘랐을 뿐인 곳인데 이상하게 발길이 창대 이용원으로 향했다. 예전에 써둔 것 때문이겠지. 이발비는 변함없이 8000원이었다.



창대이용원


머리를 자른다
생면부지의 이발사에게 내 몸을 맡긴다

어떻게 자를까요
이대로요

윙윙윙
싹둑싹둑싹둑

귀 뒤로 고추 잠자리 날개 잘리는 소리가 들리고
라디오에선 어느 목사가 죄악에 대해 말한다

그렇게

이발사도 나도
말이 없다

머리를 감기고
이발사가 요구르트를 건낸다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창대이용원
복되고 창대하게

온전한 남자들만의 공간
이발비는 8,000원

AND

20131210 - 이치

하나씩 2013. 12. 10. 22:51
나이서른 여섯에 마이쭈를 씹다가 이십년 전에 해 넣은 금니가 빠졌다. 예전에 이 아팠을 때 써둔 것


이齒


이가 아프다
온몸에 열불이 난다

이는 치(齒)다

둘을 붙이니 이빨이 아니라 이치가 된다

나는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싶어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있는데

이가 아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도의 성인도 이가 아플 때는 아프다는 생각만 했을까

아픈 이에 금을 씌우면 반짝이는 이치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어떤 사람들의 은빛의 이치로 세상을 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반짝이지는 않아도 태어난 그대로의 이치로 살겠지

세상사는 이치를 얼른 깨닫고 싶어
내 온몸이 뜨겁다
AND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아는 형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이 형과는 여지껏 두 번 만나서 술 두 번 마신 게 전부다. 그러니까 그냥 아는 사이 정도인데, 이상하게 닮고 싶고 신뢰가 가고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다. 이 형을 아는 다른 분들도 다 이 형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직 결혼을 안했다. 인품과 결혼은 아무 관계가 없구나.

형, 정리 다 하시고 쉬러 한 번 들어 오셔요. 얼음 깨고 낚시해요.


엄마 생각이 났다. 예전에 엄마 생각 하면서 썼던 것


엄마랑 나랑


가을 햇살에 벼가 익는다
모락모락 무럭무럭 소리 내며 익는다
누렇게 누렇게 노래하며 익는다

저 벼가 다 익으면
흰 쌀밥을 먹겠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쌀밥을 먹겠지

후후 불어가며
흰 쌀밥을 먹겠지

날 버린 당신도 서울 가신 아버지도 잊고
엄마랑 나랑 둘이서만 먹겠지

고봉으로 먹겠지
둘이서만 먹겠지

울면서 울면서
둘이서만 먹겠지
AND

울었다.

하나씩 2013. 10. 27. 11:46

고추를 심었다


고추를 심었다
정성껏 심었다

한 포기 한 포기마다
당신 얼굴이 떠올랐다

한 포기 한 포기마다
당신 얼굴을 지웠다

심으려 땅을 팔 때마다
당신 얼굴이 떠올랐다

심고 흙을 덮을 때마다
당신 얼굴을 꾹꾹 눌렀다

고추를 심다가 울었다
비가 왔고

비를 피하러 온
마구간에서 울었다

소들이 밥 달라고 울었다
소들이 왜 우느냐고 나를 보고 울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