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해가 길어졌다
다시 시작하자고
웅크렸던 마음이 말캉말캉 늘어진다
구구소한도를 생각하다가
구구 팔십일일의 기다림을 헤아려본다
소한 추위는 옛말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무렵에 길에서 얼어죽는다
매화가 핀다는 절기는 따로 없지만 그때는 봄인 걸 안다
봄이 와도 여전히 사람들이 길에서 죽다
고무줄이나 풍선껌처럼 늘어났다가
너무 좋거나 너무 싫어서 끊어지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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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2 20250102 - 어쩌다 하나씩
- 2024.12.31 20241231 - 2024년
- 2024.12.27 20241227 - 이사, 생각
- 2024.12.23 20241223 - 부역자, 오만방자, 모리배
- 2024.12.21 20241221 - 어쩌다 하나씩
- 2024.12.20 2024년 사진 08(MI 8)
- 2024.12.20 2024년 사진 07(MI 8)
- 2024.12.20 2024년 사진 06(MI 8)
- 2024.12.20 2024년 사진 05(LG V50)
- 2024.12.20 2024년 사진 04(LG V50)
- 2024.12.20 2024년 사진 03(LG V50)
- 2024.12.20 2024년 사진 02(LG V50)
- 2024.12.20 2024년 사진 01(접사, 세로컷)
- 2024.12.14 20241214 - 탄핵 소추안 국회 통과 생각
- 2024.12.13 20241213 - 월세 계약, 생각
- 2024.12.10 20241210 - 어쩌다 하나씩
- 2024.12.10 20241210 - 어쩌다 하나씩
- 2024.12.10 20241210 - 어쩌다 하나씩
- 2024.12.10 20241210 - 어쩌다 하나씩
- 2024.12.07 20241207 - 서울 가는 중에 생각 1
- 2024.12.05 20241205 - 계엄 생각
- 2024.12.05 20241205 - 어쩌다 하나씩
- 2024.11.30 20141130 - 어쩌다 하나씩
- 2024.11.25 20241125 - 일기, 걱정에 관한
- 2024.11.25 헌치백 - 이치가와 사오
- 2024.11.25 구의 증명 - 최진영
- 2024.11.20 20241120 - 어쩌다 하나씩
- 2024.11.18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컨
- 2024.11.18 20241118 - 어쩌다 하나씩
- 2024.11.17 20241117 - 꿈에서 아버지가
계엄. 부역자. 친일파 후손. 오만방자. C8. 인과응보
이사함. 산림기사가 됨. 계속 우울함. 더 우울함.
일리걸 알츠하이머. 이문(interest). 우울함.
웹툰, 웹소설, 게임, 우울함 계속 우울함.
우울함.
올해의 노래 - 슈퍼내츄럴(뉴진스)
올해의 영화 - 만다라(임권택)
올해의 책 -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컨)
올해의 마지막사진 -강릉 남대천 가죽나무
새 희망은 0.1도 없이 올해가 갔다.
가는 해가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 이미.
어제 이사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돈 잘 주고 받았으니 됐다. 강릉 이사와서 처음 살았던 집주인이 우리 이사 나갈 때 전세 보증금 2700만원 중에 50만원 빼고 줬던 지랄같던 악몽이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소송에서 두 번이나 이기고도 결국 그 돈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집주인들이 국힘이랑 윤석열 찍어주는 사람들이다. 어제 이사온 집에 먼저 살던 사람들도 본인들 월세 보증금 받기 전까지는 출발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이사짐 다 싸놓고서도 현관 비번도 안 알려줬다. 그 사람들은 전광훈 새끼 교회에 다니고 서울로 집회 다닌다. 쓰다보니 울화가 치미네.
2015년에 강릉 내려와서 홍제동 -> 홍제동 -> 옥천동 -> 홍제동. 다시 홍제동이다. 홍제동이랑 인연이 있나? 5년 10개월만에 기름 보일러로 돌아왔다. 기름 채우고 세제랑 고무장갑 받았다. 기름보일러에 기름 채우면 고무장갑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통이다.
입주청소를 못하고 들어왔기에 너무 찝찝했다. 짐을 대충만 풀고 오늘 입주청소를 불렀다. 아침에 청소하시는 분들 얼굴 보고 출근했다. 어떤 결벽증인지는 모르지만 청소 전에는 똥도 싸고 싶지 않고 씻고 싶지도 않다. 똥은 어쩔 수 없지 쌌는데, 출근해서 샤워했다.
2012년에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TV가 생겼다. 큰 화면으로 유튜브 보려고 샀는데, 잘 샀다. 인터넷이랑 TV를 내 방에 설치했는데, 방이 커서 43인치가 아니라 55인치 샀어도 좋았을 걸 생각했다. 지난 일은 잊자.
아내가 짜장면 먹어야 한다고 해서 짜장면 먹으러 갔는데, 내가 짬뽕 먹는다고 하니까 아내도 짬뽕을 먹었다. 이러면 나가린데, 생각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도 외식(닭갈비)했다.
이사비용, 청소비용, 계약기간보다 두 달 먼저 이사가는 바람에 월세 두 달치 더 내는 것 등 돈을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쪽 집주인, 저쪽 집주인 이쪽 세입자, 부동산, 이사업체, 청소업체랑 연락하면서 받는 심적 스트레스도 심하다.
다음엔 집을 사기로 하자. 아내가 아파트를 싫어하지만 자꾸 얘기해서 내가 봐둔 아파트로 가자.
나라는 계속 개꼴이고 - 얼마전 단골 찻집에서 J누나를 우연히 만났기에 모든 것이 정리되면 한 번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누나가 그런건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계엄 부역자놈들 깔끔하게 감옥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라가 망해가도 이사는 가야하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집주인 건물주인 세상이다.
이사 = 힘들다.
토요일에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는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동생을 잘 못알아봤고 나도 아들이라기 보다는 본인을 찾아온 어떤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다. 최근 아버지의 인지능력을 보면 괄목상대, 점입가경이란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를 잘 챙겨주는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가 화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때문에 여자 선생님들이 조금 힘들어 한단 얘기를 해줬다. 소식지를 통해서 - 화를 내심, 이 자주 보인다 - 알고는 있었지만 얘기를 직접 전해들으니 좀 더 기분이 싸하다. 뭔가 본인 뜻대로 안될 때 화를 내는 것인데, 말로만 화를 내는게 아니라 폭력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 직전에 그랬고 현재 아버지가 그렇다. 나도 그럴까? 아마 그럴 것 같다. 안 그러려고 노력해야지. 나는 아버지랑은 달리 평소에도 화를 많이 내는 편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모르겠다.
12월 3일로부터 20일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자다가 몇 번씩 깬다. 안 깨고 잔 날이 딱 하룬데, 술을 왕창 마셨던 날이다. 화가 난다. 화가 난다. 미친 대통령을 아직 집 밖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법의 테두리와 절차 때문이겠지만 답답하다. 국힘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뒤가 구리길래 대놓고 부역자 노릇을 하는가? 권성동이는 - 나 강릉 산다 - 왜 이리 오만방자한가? 모리배들이 너무 많다. 성조기 들고 다니면서 탄핵 반대 집회하는 전광훈이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보기엔 나도 나라 팔아 먹는 놈인가? 머릿속이 어지럽다. 지금이야 말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데서 시작한 모리배들의 나라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법대로만 해도 다 때려잡을 수 있을텐데, 진행이 원활하지는 않네.
대통령 대리가 양곡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서울지방 경찰청장 대리가 트랙터 끌고 올라오는 농민들을 남태령에서 막으라고 명령했다. 대통령실 경호처에서는 해군 소령을 상대로 별 개지랄을 다 했다. 내가 보기엔 이들이 다 부역자고 모리배다. 위에서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이 부역자다. 윤석열이는 전두환처럼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참수형에 처하고 싶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가 괜히 피살 당한게 아니다. 남의 나라 일이어서가 아니라 범인이 붙잡힌 게 안타깝다. 이런 경우가 인간의 분노가 끝까지 간 경우다. 마음이 계속 어둡다. 안쪽에 어둠이 자꾸 쌓인다. 암에 걸릴 것 같다는 게 이런거구나 생각한다. 지금 정도 상황에도 마음이 이리 흑빛인데, 독립투사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거리로 나가야겠다. 의인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자고 거리에 모인 사람들이 다 의인이다.
부역자의 후손들이 오만방자한 모리배가 되었구나. 뼛속까지 갈아 죽이고 싶다.
동지
새해 달력을 받으러 조계사로 간다는 장모님
210킬로미터 떨어져 사는 엄마가 보내준 닭개장
연말에 이사 간다고 돈을 보내준 장인어른
장인어른에게 생일 축하 전화를 한 아내
한 시간을 랩 하듯이 혼자서 말하는 치매 아버지
아버지가 아들이란 걸 못 알아본 전화기 너머의 동생
지는 해를 정면으로 보고 걸으며
구름과 하늘과 빛의 경계를 생각하는 나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은 다채롭고
만두집 앞 높게 쌓은 찜통에서 나는 연기가 쓸쓸하지만은 않은 계절
해 떨어지고 걸어서 도착한 단골집에서
커피 첫 모금을 마시고 한숨을 크게 쉬는
여의도 갔다가 강릉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오늘로 대한민국은 21세기에만 세 번째, 대통령을 탄핵 심판으로 보낸 나라가 됐다. 이제부터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시민들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될거다. 오만방자한 대통령을 뽑은 것도 민주주의고 끌어내리고자 탄핵하는 것도 민주주의다.
이제 한 고비 넘었다. 계엄 부역자들 끝까지 색출해서 이번에는 과거처럼 봐주지 말고 제대로 처벌하면 좋겠다.
여의도에 일찍 도착했기에 국회의사당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국회의장이 '가 이 백 네 표'라고 했던 순간을 오랫동안 못 잊을 거 같다. 탄핵 소추안 국회 통과되고 나서 느껴지는 희망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2002 월드컵 4강 때 그러했을까? - 월드컵 때 거리응원을 안 가 봄 - 사람들이 큰 일 있으면 모여서 소리치게 된 것에 2002 월드컵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 역사에 남을 한 순간에 내가 현장에 있었다는 게 조금은 뿌듯하다. 오늘은 그래도 된다.
엊그제 부동산에 가서 월세 계약하고 왔다. 평생 처음으로 월세 살아본다. 아내가 일을 한다면 한 달 50만원이 큰 부담은 아니지만 아내가 일을 못 구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암튼 26일에 지금 사는 집보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간다. 신나지도 서운하지도 않다. 이사에 대한 귀찮음만이 있네. 내 집이 없이 셋방을 전전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부동산, 이사업체, 지금 사는 집주인과 수 차례 통화가 오고가는 일이 번거롭고 짜증났지만 무던한 말투로 잘 해냈다.
지금 사는 집 계약이 내년 3월 초에 끝난다. 올해 집주인이 바뀌었고, 두 달 전쯤인가 올해 연말에 전세 보증금 내어 줄 수 있다가 연락이 왔다. 전세 보증금 못 돌려받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고 주인이 새 집을 빨리 꾸미고 싶구나, 싶은 생각에 알겠다고 했다. 꼬장꼬장한 사람이었으면 이사비라도 좀 보태줘야 연말에 나가줄 수 있다고 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해 11월 부터 내년 2월까지 강릉에 신규 아파트 입주가 꽉 실려 있기 때문에 아파트 시장이 대충 정리가 된 2월말이나 3월초에 이사가는 게 나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이사갈 집은 6세대가 사는 건물인데, 주인은 경기도 시흥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사람이다. 우리 이사갈 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방을 빼고 싶다고 한 것 같고 월세 보증금 내 줄 돈이 없어서 - 무슨 건물주가 이래 - 빨리 이사올 사람 찾던 중에 나랑 아다리가 맞았다. 집이 비어있어야 입주청소를 할 수 있기에 지금 주인에게 26일 전에 보증금 일부만 먼저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 내가 돈을 줘야 이사갈 집에 사는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상황임 - 본인 부모님에게 물어보고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답이 왔다. 집 주인의 부모님은 우리 동네에서 금은방을 하는데, 옛날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고 생각하고 임대차계약이란 게 그렇게 돈이 오고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야박하다는 마음이 드니 일찍 나가는 대신 이사비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다.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미지의 상대방과 서로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내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다.
나는 이문에 밝은 편이지만 이문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몇몇 사람들에게 했는데, 얘기 들은 사람들이 다 웃었다. 이사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정말 이문에 밝은가? 갑자기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평생 착하다는 소리만 들으면서 살았던 게 이문에 어둡고 본인이 손해를 보고도 '허허' 웃고 넘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제 요양원에서 요양보호 급여 기록지가 왔다. 우편물을 읽다보면 아버지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이달에 특이한 점은 나랑 아내가 아버지 면회 가서 너무 오래 있으니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어르신이 있어서 면회는 가급적 요양원 내부가 아니라 면회실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똥 누고 뒷처리를 못하는 사람이 됐다. 완벽하게. 본인 똥 뒷처리를 스스로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고 응당 그래야 한다고 믿지만 피치못할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아버지처럼 치매가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통해 그걸 해결해야 한다. 아버지의 상태를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슬픈 건 사실이다.
아버지는 평생 손해만 보면서 살다가 나이 72에는 본인이 싼 똥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윤석열이는 똥보다 더 한 걸 싸 놓고 본인이 스스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어제 본인 잘못한 것 없다는 담화문을 읽었다. 윤석열이 추종자를 포함해서 전국민이 이 새끼가 저지른 일의 뒷처리를 하게 됐다. 우리 아버지는 미안하다 고맙단 말을 할 줄 아는 치매 노인이 됐지만 윤석열이는 그냥 먹고 쌀 줄만 아는 악인이다. 전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이다.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 욕을 써내려도 화가 풀리진 않네. 집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화가나면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더 크게 질러야 한다. 그러다가 더 화가나면 불을 지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국이 불 지르는 일 없이 잘 넘어가길 바란다.
건물주
복권에 당첨되면 건물주가 되야지
지방 소도시에 싸게 매물로 나온
오래되고 허름한 모텔 건물을 하나 사야지
2층에서 5층까지
날마다 방을 바꿔가며 당신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201호의 사랑에서 506호의 사랑까지
방 번호마다 각기 다른 사랑의 이름을 붙여야지
당신 이름과 내 이름으로 시작해서
사랑의 마지막 이름은 <기쁜 우리 젊은날>로 해야지
건물을 사고 팔고 반복하면서 다음 건물로 다음 건물로
온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지
사랑으로 세상이 터질때까지 사랑을 해야지
악몽 8
주위는 온통 산이다
태양이 지나가기도 전에 해가졌다
배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어둑어둑,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배들은 어디서 왔나
나는 계단위에 있고
계단 끝에 그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왔나
계단은 어디서 왔나
악역이 등장하고
나는 그에게 쫒기지는 않는다
그와 몇 마디 나누다가
함께 목이 터져라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를 부른다
오 마이 리틀 걸 곤나니모 아이시떼루
남의 나라 노래 가사를 아는게 신기하다
30억을 훔친 돈가방을 잃어버린 걸 알았다
아내랑 엄마,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꿈속을 계속 들락날락한다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선지 해장국을 먹다
소주 한 병을 채 안 마시는 밤이 있다
겨울밤 해장국 집에 혼자 앉아서
선지를 뒤적거리면서
피의 근원 같은 걸 생각하는데
계엄령을 내린 대통령 맘은 알겠어도
그 악당을 지지하든 안하든
요즘 젊은이들 마음은 도통 모르겠는
얼어붙었던 발가락이 대충은 녹은듯하고
국밥에서 올라오는 김이 문득 역하게 느껴져서
끝내 한 잔을 남기고 깍두기만 씹는
그러다가 혀를 씹는
결국 피맛을 느끼는
동지
세상 가장 어두운 날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되어
길어지는 해를 쫒아갈 수 있을까
지난한 반복을 무구하게 견딜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
어제 동생이랑 아버지랑 셋이 순댓국 먹었다. 신월동 살 때 가끔 셋이 곰달래길이나 남부순환도로 주변에 뼈해장국 같은 거 먹으러 다녔었다. 셋이서만 밥 먹은 거 진짜 오랜만이다. 4일이 아버지 생일이었고 그걸 아는 동생이 강릉에 일이 없는데도 일부러 시간내서 찾아왔다. 아버지는 좋다는 얘기를 연발했다. 동생에게 '아빠' 소리 듣는 것이 좋았었으리라. 동생도 인지 능력이 떨어질만큼 떨어진 아버지 상태를 잘 알기에 '아빠가 기분 좋으니까 좋네' 라고 했다. 난 그거면 됐다.
아버지는 본인 아이 얼굴도 한 번에 못 알아보는 72세가 됐다.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아버지를 걱정하는 46세 아들이고 동생은 멀리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44세 아들이다. 나이로 적으니까 세월이 야속하단 생각이 드네. - 떠난 당신이 무정하단 생각도 - 하춘화 노래였나? 야속과 무정은 비슷한 뜻이다.
탄핵 집회하러 서울 가는 중이다. 기차표가 없어서 입석으로 올라간다. 이번 계엄 사건 때문에 정말 울화가 울화로 치민다. 박근혜는 양반이었네. 소리를 자르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윤석열이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울적함이 좀 가실까?
강릉으로 오는 사람 강릉을 떠나는 사람, 역무원, 던킨 도너츠 알바, 역 근처 흡연실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커피 사 먹는 사람. 이 시국에도 세상은 굴러간다. 계엄이 통과됐어도 세상은 굴러 갔을 거다. 다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제 살 길은 제가 찾아야 하니까. 인간은 먹고 싸고 자는 동물이니까.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다.
얼마전부터 유튜브로 성경을 듣는다. 잠이 잘 와서 듣는다. 구약의 앞부분을 반복해서 듣다가 생각한 게 있다. 하나님은 한 놈 찍어서 잘해줘야지 생각하면 같은 잘못 반복해도 끝까지 잘해준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 반복해서 속이는 게 대표적이다. 하나님은 한 놈 찍어서 용서하는 습성이 있지만 진짜 윤석열은 용서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진짜 있다면 세상에 인과응보가 있다면 이래서 내가 교회를 안간다, 에 추가 이유를 만들어 주면 안된다. 암튼 난 교회에 안간다.
대통령 탄핵 집회에 가기 위해서 ktx타고 서울에 가는 자유, 5호 열차와 6호 열차 사이 간이석에 앉아서 윤석열이랑 연루자들 때려 죽이고 싶다는 글을 쓸 수 있는 게 윤석열이가 떠드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아니라 진짜 자유다. 이 자유를 위해 흘린 피눈물을 생각한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춥고 배고팠을 독립투사 선생님들을 생각한다.
잡스럽게 적었다.
윤석열 제일 열받는 점 - 뭔가 말할 때마다 거들먹 거리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끼워 넣음(들먹거림). 근데 이 양반의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박정희 때 자유민주주의임. 본인과 주변 사람들만 그걸 모름.
이 새끼 본인 불리하니까 또 숨어버리고 진짜 울화통 터지네.
서울에 아파트 있는 친구들 중에 지난 대선에 윤석열 찍은 애들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놈들도 열받음.
예전에 어떤 누나가 자기 딸 욕하면서 '이년아 어떤 시어머니가 너 같은 며느리 만나서 마음이 쑥밭이 되겠냐'고 했는데, 지금 내 마음이 쑥밭이 됐다.
대설
소설주의보는 없지만
대설주의보는 있다
오늘 대설주의보는 내리지 않았지만
절기에 맞춰 눈이 내린다
35번 국도 위
눈을 치우는 차 뒤에 바짝 붙었다
소금이 튀고 눈가루가 튄다
하얗게 태어나 새까맣게 변하는 존재들
세상은 결코 새하얗게 끝나지 않는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사는 중에
뜻하지 않게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해 보게 된 겨울
무겁게 내리는 눈 바라보며
내 마음에 무거운 주의보가 내린다
유전
아버지를 만났지
매주 만난다
지난주에 아버지는 내가 본인 동생인 줄 알았다
오늘은 아들이라고 했다
그걸 들은 요양 보호사 선생님이
오늘은 아들이라고 하네요, 말했다
나는 그 얘길 들어도 슬프지 않다
아버지도 슬프지 않다
아버지는 아픈건가? 아님 죽은건가?
할아버지도 죽기 전엔 아버지를 몰라봤다
나도 나중엔 아무도 몰라볼까?
술을 아무리 마셔도 비틀거린적 없다는 할아버지와
내 기억속에 취해서 비틀거린 모습 뿐인 아버지와
빨리 많이 마시고 멀쩡해 보이지만 빨리 취하는 나
핏줄이 이리 무섭다
나중엔 나도 아무도 몰라볼 것 같다
할아버지 저고리 단추는 할머니가 채워줬고
아버지 겉옷 지퍼는 내가 채워주는데
낡은 나를 챙겨줄 내 사랑은 어디에 있나
지난 금요일에 건강검진 받았다. 수면 위내시경 처음 해봤다. 내시경 방에 있는 선생님들이 수면은 준비할 게 많아서 귀찮다고 하길래 다음부턴 다시 쌩으로 하겠다고 받아쳤더니, 그래 달라고 하면서 웃었다. 약물에 의해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고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첫경험은 늘 새롭지, 라는 진부한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약에서 깨어나서 의식이 돌아온 후에, 약물로 사람 하나 조용히 보내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건강검진 마치고 서울가서 친구들 만났다. 26년전 처음 알았던 사람들이 모여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는 자리, 후련해지기도 하고 찝찝해지기도 하는 그런 자리였다. 얼마전에 아내가 남들 걱정하지 말고 자기 걱정해달라고 했는데, 실상은 친구 daniel이 늘 걱정이다. 회사 그만 두는 게 큰 의미가 없어서 회사 그만두지 않은 것처럼 내가 남들 걱정하는 일로 그들이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걱정이다. s 선배도 걱정이고 친구 s도 걱정이다. 생각해보니까 내 걱정의 주된 요인은 돈 문제와 관련이네. - 동네에 새로 개업한 가게를 걱정한다거나 하는 일 - 나의 21세기에는 돈과 사랑만 남았네. 이제부터 이사갈 집 알아봐야 하는데, 나도 걱정이다.
토요일 밤에 꿈을 꿨다. 명절 앞두고 엄마에게 가는 길이다. 신월동에서 출발해서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개봉동 정도에 있는 우체국에 돈 찾으려고 들렀다. 엄마가 은행문 열었을 때, 창구에 가서 돈 찾으라고 했는데, ATM으로 찾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우체국 ATM이 내 돈을 두 번 먹었다. 액수는 10만원 정도다. 마음이 급해졌다. 경비 서는 사람이 두 명 있길래 사정을 말했더니 담당자가 지금 자리에 없다면서 담당자 집으로 찾아가보라면서 집을 알려줬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ATM 주변에서 고장신고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당황한 채 잠에서 깼다. 별거 아닌 꿈이다. 돈도 없는데, 왜 돈 꿈을 꿨을까? 생각했다. 이사 스트레스 때문인가?
어제는 아내랑 같이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면 아내가 꺄르르 웃는 일의 반복이다. 아내가 웃는 걸 보는 게 좋다. 아내에게 왜 아버지 면회 자꾸 같이 가냐고 물으면 아버지 귀여워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게 맞는 건가 싶지만 아내가 웃으니 좋고 웃는 며느리를 보고 아버지도 기분 좋으니까 좋다. 어제 아버지는 두 번 정도 나를 본인 동생과 헷갈렸는데, 그 동생이 어느 동생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면회 마치고 아내 차로 잠깐 드라이브를 했는데, 아직 운전이 서툰 아내가 내게 이것저것 물어올 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 면회를 막 마친데다가 아내 운전이 서투니까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긴 한데, 싸움이 안 난게 다행이다. 아내에게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낸다기 보다는 내 안의 화를 표출하는 방법이다. 아내도 그걸 알기 때문에 가끔 본인에게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얘기해준다. 아내 말을 듣고 아내에게 큰소리 내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일로 마음이 많이 진정되기도 한다. 날 걱정해주는 아내가 늘 고맙다. 근데 나는 친구들은 걱정되는데, 남들 걱정말고 본인 걱정하라는 아내는 별로 걱정이 안되네. 걱정하지 않는 사랑인가? 걱정하지 않는 것도 사랑인가? 사랑이다. 걱정하면 돈이고 걱정하지 않으면 사랑이다. 그게 나의 21세기 자본주의다.
벽시계는 정오를 넘보고 있었다. 방광을 의식하자 부쩍 요의가 느껴져서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갔다. 열반의 석가모니께서도 이따금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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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마찰에서 멀어진 여자에서, 마찰로 돈을 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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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심적인 고뇌를 <모나리자> 그림에 던졌던 요네즈 도모코의 심정 그 자체와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모나리자>를 더럽히고 싶어지는 이유는 있다. 박물관이든 도서관이든 보존되는 역사적 건조물이 나는 싫다. 완성된 모습으로 그곳에 계속 존재하는 오래된 것이 싫다. 파괴되지 않고 남아서 낡아가는 데 가치가 있는 것들이 싫은 것이다. 살아갈수록 내 몸은 비뚤어지고 파괴되어 간다. 죽음을 향해 파괴되어 가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그런 점이 비장애인이 걸리는 위중한 불치병과는 결정적으로 다르고, 다소의 시간 차가 있을 뿐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파괴되어 가는 비장애인의 노화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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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 옆방 입주자가 메마른 소리로 손뼉을 쳤다. 나와 비슷한 근 질환으로 자리보전 중인 옆방 여성은 침대 위 이동식 변기에 볼일을 보면 주방 근처에서 대기 중인 간병인에게 손뼉으로 신호를 보내 뒤처리를 부탁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리며 말할 것이다. "나라면 절대 못 견뎌. 나라면 죽음을 선택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옆방의 그녀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에야말로 인간의 존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된 열반이 거기에 있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 이 다음에 사용하지 않았던 텔레비전이 고장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그 연결이 매우 인상적이다.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번개 맞아 죽은 고목 같은 집에서 까만 청설모처럼 살아야 한다고
-> 요즘 젊은 이들이 피폐물의 대표작 격으로 좋아한다길래 읽어봤다. 읽다가 울었다. 이 두 문장을 기억해 둔다.
함께 걸으며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겨울에는 붕어빵을 사 먹었다.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과 밤바람에 들떠서 무엇을 사 먹을 생각도 못했다.
-> 좋았던 시절에 대한 묘사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담이 먼저 말했다.
밥은 먹었어?
어제 본 사람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그건 뭐야?
내 손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검은 봉지를 보며 물었다.
응, 소고기.
거의 삼 년 만에 만나, 내가 담에게 한 첫 말이었다.
그래 들어가자. 국 끓여 먹자.
담이 문을 열며 말했다.
이거 등심인데. 꽃등심인데.
거의 삼 년 만에 만나, 내가 담에게 건넨 두 번째 말.
그래 구워 먹자, 그럼.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담이 얼굴만 멍청히 쳐다봤다. 담이 내 손을 잡았다.
->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장면
소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도
서로 등을 돌렸던 날도
눈이 내렸다
가장 따뜻했던 겨울과
가장 시린 겨울이
같은 선상에 있다
입동이 지났어도 겨울은 아니다
첫눈이 오기까지는 겨울이 아니다
해마다 절기에 맞춰 눈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에 더 가질 것 없이 눈이 내린다
발 아래 싸박싸박 무언가 쌓인다
행복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고
지금이 불행한 것도 아니다
생에 좋았던 날은 며칠 뿐이었다
이제 태양이 기울어서 일렁이는 물결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무서워진다. 나는 아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처럼 집시 아이 같은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 있는 내가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다음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맡겨진 소녀 -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In October there were yellow trees. Then the clocks went back the hour and the long November winds came in and blew, and stripped the trees bare. In the town of New Ross, chimneys threw out smoke which fell away and drifted off in hairy, drawn-out strings before dispersing along the quays, and soon the River Barrow, dark as stout, swelled up with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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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은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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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 클레어 키컨. 좋네.
신의 산
아버지는 '신의 산'이란 책을 들고 있었지
우리는 그 책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현실에서의 모든 대화를 합친 것보다 더 깊은 얘기를
꿈 속에서,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로 '신의 산'이란 소설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산은 신의 영역이었고
산의 신은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아버지의 모든 기억을 먹어 치운다
아버지는 산골에서 태어났고
나는 산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다
나는 모든 산은 신의 산이라는 걸 안다
길에서 태어난 사람은 길로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다로
산에서 태어난 사람은 산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신이 되어 산으로 가는 중이다
어제 아버지 면회 다녀왔다. 아버지는 지난 주말에 고모랑 찍은 사진을 보더니, 누나라면서 고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사진 속 고모 옆에 본인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동생이랑 영상통화 했을 때, 동생의 첫 마디가 '이제 나도 못 알아봐?' 였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우편물이 오는데 그 안에 기록지가 있다. 매달 그래왔듯이 이번달 기록지에도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다 잊을수가 있나? '어떻게' 가 참 슬픈말이구나. 요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평소엔 이런 생각 안 하는데, 어제는 생각했다. 아이고, 아버지
새벽에 꿈을 꿨다.
- 요양원에 면회 가서 아버지를 엄마랑 나랑 JJ 삼촌이 있는 집으로 데려왔다. 같이 시간 보내다가 요양원에 도로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멀쩡해져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요양원에 돌아가기로 했다. 밤에 자다가 아버지가 사라진 걸 알았다. 다급하게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베란다 쪽으로 나가는 미닫이 문을 열었을 때, 유리로 만든 네모난 상자에 발가벗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버지를 차에 태워서 요양원으로 돌아가로 했다. 내가 운전하고 엄마가 옆에 앉고 아버지가 뒷자리에 앉았다. 요양원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운전 중에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아버지가 사라졌다.
-> 꿈에 동생이랑 내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랑 같이 있던 집은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오래된 한옥을 개량한 형태의 주택이었다. 아버지는 첫 등장부터 '신의 산'이라는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책에 대한 대화를 아버지랑 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인상적인 꿈을 꾸면 내용 해석을 좀 해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 꿈은 해석이 잘 안되네. 벌거벗은 아버지는 이번달 우편물에 옷을 벗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가 들고 있던 책은 어째서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등장했는지 조금의 실마리도 없다.
심란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