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냄새도 소리도 색깔도 없이 온다
겨울은
하루 아침 찬바람에,
사람들은 군고구마, 붕어빵, 오뎅을 먹는다
먹고 사는 일에는 냄새도 소리도 색깔도 있다
산에는 빈 나무만 남고
나뭇가지에는 나뭇가지만 남아도
뱃속엔 따뜻함이
가슴 한켠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온기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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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5 20241105 - 어쩌다 하나씩
- 2024.10.31 20241031 - 갑자기 아버지 생각
- 2024.10.26 20241026 - 나훈아 라스트 콘서트 후기, 나훈아 생각
- 2024.10.21 20241021 - 어쩌다 하나씩
- 2024.10.18 20241018 - 어쩌다 하나씩
현 시점에서 인생에 큰 문제가 없어서 그런지 아버지 요양원이 집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수시로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아버지 생각을 길게 하면 눈물이 나기 때문에 짧게만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나는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할 만큼 아버지랑 친하거나 아버지에게는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깊은 정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지난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요양원 사무실 옆 별도 공간이 아니라 4층 생활관에 올라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문을 열었을때, 아버지는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눈을 반짝 뜨며 반가워 했다. 아내가 내가 많이 힘들다고 한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횡설수설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고마워서 잠깐 울뻔했다.
어렸을 때, 술 드시고 집에 온 아버지가 나랑 동생이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와서 용천혈이라면서 발바닥 가운데를 눌러주던 일이 요즘들어 자꾸 생각난다. 그게 아버지의 애정표현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이랑 영상 통화할 때, 내 전화기에 비친 본인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이게 지금이냐고 묻기도 하다가 동생이 전화 받으면 동생 얼굴보고 놀라면서 <어, 너구나. 잘 지내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동생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생은 먼저 아버지를 직접 보고 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못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낫지만 점점 더 본인을 잊어가는 아버지를 체념한듯 받아들이는 상황이 슬프다. 그 와중에 나는 아버지가 가장 늦게 잊어버리는 이름이 내 이름이길...... 하는 이상한 욕심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요양원 가기전에 아버지 자주 봐서 참 다행이다. 거의 매주 서울에 가는 게 정말 힘들긴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된 대화랄 것도 없었지만 아버지랑 말을 주고 받을 수는 있었던 그때가 참 좋았다.
10월이 다 갔다. 내 시간도 아버지의 시간도 공평하게 흘러간다. 아버지, 내일 모레 또 만나자구요.
앞으로 해도 나훈아 뒤로 해도 나훈아 공연을 다녀왔다.
치매 걸린 아버지가 지금도 프로그램 시간에 부르는 노래가 나훈아의 '가지마오'다. '가지마오'는 나한테는 '찻집의 고독'이랑 한 세트인 곡인데, 어렸을 때는 노래방에서 두 곡 다 자주 불렀다. 오늘 공연에선 이 곡을 안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나훈아를 좋아했다. 이모랑 외삼촌들이 다 노래를 잘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했다. - 철이 삼촌이 '청춘을 돌려다오'를 특별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 아버지가 강원도고 엄마가 경북이라 그런지 우리집 어른들은 나훈아랑 남진을 비교하기 보다는 - 경상도 사람들에게 남진은 나훈아랑 비교 대상이 아님 - 화투 치면서 나훈아랑 조용필 중에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나는 조용필도 좋아하고 나훈아도 좋아한다.
나훈아 공연히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고향역'이 첫 곡일거라 생각햇는데, 오프닝에 "코스모스~~" 하는 순간 살짝 울컥했다. '사랑'에서 '영영'으로 바로 이어 부른것도 좋았다. - 나한테는 이 두 곡이 한 세트다 - 공연에서 제일 좋았던 건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 배호의 '누가 울어' 본인의 '무시로'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세션이었다. 특히 '누가 울어'가 정말 좋았다. 50년 이상 프로 가수로 살면 평범한 기타 코드를 쳐도 간지가 줄줄 흐르는구나 생각했고 브라이언 맥나잇이 가끔 어쿠스틱 기타 치면서 본인 노래 업로드 하는 것도 생각났다.
'공' 이라는 노래 중간에 멘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난 좀 지루했는데, 관람객들이 대체로 나훈아의 말솜씨를 좋아했다. '공'은 비교적 최근 곡인데, 조용필의 최신곡인 '그래도 돼'랑 주제가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장들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 -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본인 멋대로 살면된다 - 일맥상통하는 느낌? 이 같은 주제의식은 요즘 아이돌 노래도 마찬가진가?
나훈아는 84년에 '청춘을 돌려다오'를 불렀고 2005년 에는 '고장난 벽시계'를 불렀다. 이 두 곡 사이에 20년이란 시간이 있고 같은 듯 다른 두 곡의 노랫말의 간극이 기묘하다. 조용필은 84년에 '아시아의 불꽃' 이 실린 앨범을 냈고, 송창식은 83년에 '우리는' 을 불렀다. 각자 본인들의 길로 간 거장들의 현재 모습이 다 보기에 좋다.
본인 성기가 절단 당했다는 루머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 직후에 나온 곡이 '테스형'이었던 듯 - 세월 흐르고는 공연장에서 웃으면서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나훈아의 은퇴 공연을 봐서 아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잘하시더라. 은퇴 후에 행복하시길 바란다.
조용필 신보를 들으면서는 폴 매카트니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훈아는 비교 대상이 없네.
조용필 공연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다. 글을 마치는 지금 BGM으로 조용필의 '꽃바람'이 나오고 있다.
볶음밥을 먹다
볶음밥을 먹는다
파기름을 내고
계란을 두 개 깨고
식은밥에 간장을 한 숟가락
설탕 소금 후추를 넣고 볶았다
하늘이 점점 더 흐려지고
강풍주의보가 내린 일요일 오후
아직 밥 때는 아닌데
배가 고프다는 아내랑 볶음밥을 먹는다
가끔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 없이 먹는다
집안과 아내, 밥의 온기가 뒤섞였다
세상의 모든 행복이 지금 이 공간에 있다
이 볶음밥은 파 볶음밥인가 달걀 볶음밥인가
아니면 간장 볶음밥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볶음밥을 먹고
주인공이 그 길로 죽으러 간 소설의 제목이 뭐였더라
나는 죽으러 갈 곳이 없고
자고 일어나면 출근할 곳이 있고
거기가 내 자리라는 걸 안다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째선지 울컥한다
먹는 것은 살겠다는 것이니까
살아야지 살아야지 속으로 반복하면서
좀 짜지않아, 묻고
맛있다는 얘기를 한 번 더 듣는다
상강
바람이 서걱서걱 분다
빈 나뭇가지가 덜렁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부고를 매일매일 듣는다
얼마전
그 중에 당신 소식이 있었다
북서쪽 산 정상으로 향하는 출근 길
라디오에선 이 계절에 어울린다며
30년 전 이별노래가 흘러나오고
운전대를 잡은 반대편 손에서 피워내는 담배 연기
차창을 열자 바로 흩어지는
온전한 공간에서 혼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해 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