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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10.14 20241014 - 아버지랑 고모 생각
  2. 2024.10.10 20241010 - 일기
  3. 2024.10.04 20241004 - 어쩌다 하나씩
  4. 2024.09.24 20240924 - 생일, 숫자
  5. 2024.09.20 20240920 - 연휴 끝 생각

 아버지한테는 누나가 있다. 나에겐 고모가 두 명 있다. 아버지 누나는 나에게 큰 고모가 된다. 아버지에게 여자 형제가 셋이었다면 큰고모 중간고모 작은고모가 되나? 큰 고모는 아버지네 육남매 중에 첫째다.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건 확실하고 일찍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봉제공장에 다녔다. 아버지는 방위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고 서울 영등포에서 누나랑 같이 살았다. 그 당시에 고모는 이모들과 친분을 쌓았고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서 결혼했다. 고모를 몹시 때리던 고모부가 있었다. 나는 고모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름은 기억한다. 엄마랑 이모들이 고모부 이름을 부르면서 나쁘 소리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고모는 알콜중독으로 죽은 고모부의 폭력을 피해서 우리집을 자주 찾았다. 한쪽 눈이 멍든 채 울면서 우리집에 왔던 고모가 생각난다. 고모에게는 나랑 동갑인 아들이 하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고모는 서울 집을 팔고 구미에 가서 손주들 돌봐주면서 아들 내외랑 같이 산다.

 

 아버지가 치매 걸린 이후로 고모가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한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 후로는 더 자주 전화를 한다. 동생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본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살다가도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면 나에게 전화를 한다. 울먹이면서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기를 하나 주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한다. 내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도 하는구나.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기 바로 전날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고모에게 그 통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로 남았다. 내 생각에 아버지 머릿속에는 아직 누나가 남아 있을 것 같다.

 

 어제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11월 초에 강릉에서 둘째 고모 아이 결혼식이 있는데, 식장에 아버지를 데리고 나올 수 없겠냐고 했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데리고 나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면회만 추진하기로 했다. 

 고모, 아버지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 금요일에 동생이 강릉에 왔기에 같이 아버지 보러 갔다. 아버지는 나랑 동생을 보고 '아들'이란 말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사람 이름은 아버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간다. 동생이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나랑 동생에게 결혼 - 이 단어도 먼저 꺼내지 못함 - 해야지. 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컨디션이 좋은 편인 것 같았는데도 그랬다. 아버지는 컨디션이 좋을 때 말을 많이 한다. 정리되지 않는 그 얘기를 듣는게 좋다. 아버지 컨디션이 좋은 게 좋다. 아버지 얘기의 핵심은 본인은 걱정하지 말아라, 남들한테 못되게 굴지 말고 잘 살면된다, 회사에 잘 다니면 그걸로 됐다, 정도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혼자 아버지 보러 갈까 싶었는데 내 안의 우울로 그러하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후회하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 알아보는 동안이라도 더 자주 보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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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 일기

그때그때 2024. 10. 10. 13:11

 10월 10일이네 엊그제가 한로였고 며칠 있으면 상강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흘러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왜 이렇게 출근하기가 싫은지 생각했는데,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지쳤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건 아니다. 업무 분장도 그렇고 예기치 않은 일로도 남들 뒤치닥거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들에 지쳤다. 돈도 명예(?)도 싫다.

 

 올 봄에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엊그제야 전화가 왔다. 올해 연말부터 전세보증금 내줄 수 있다고 한다. 내년 3월초가 계약 만기다. 내년 정월이 지나기 전에는 이사를 가야겠다. 사실 서두를 필요 없는데, 당근마켓 부동산을 자꾸 들여다 보고 있다. 강릉 집값과 내가 가진 돈을 생각하면 그 동안 뭐하고 살았나 속만 상한다. 차분하게 있다가 11월 말에 부동산으로 가자. 10년에서 15년 갚을 것을 생각하고 주택담보대출 받아서 나 보기에 위치가 좋은 아파트 하나 사고 싶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지금 집에서 5년 7개월을 살았다. 10년 가까이 된 직장 생활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집도 지겹긴 하다. 내 집이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어느집에 살아도 집에는 정이 들지 않는다.

 

 지난주에 아버지 요양원 계약서 갱신했다. 아버지 장기요양인정이 갱신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4등급(시설급여)이 됐다. 사회복지가 선생님이랑 계약서 쓰면서 아버님이 착한 치매라 정말 다행이다, 불결 행위가 점점 심해진다, 는 얘기를 들었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많이 힘들게 하지 않는 치매가 온 건 좋은 일이네, 생각했다. 아버지는 엄마, 동생이랑 영상통화 할때, 얼굴 보면 반가워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동생에게는 한 번 와라,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보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웃고, 나도 웃고 만다. 언젠가는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나도 못 알아볼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날이 아주 천천히 오길 바란다.

 

 기후 파괴의 시대에도 인구수로만 보면 세계(인류)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래요,란 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다. 거기에 나도 포함이다. 어딘가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은 없으니 이런걸로 우울해 하지 말자. 가을이 왔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닥치는 대로 살자. 삶에 감사할 수 없는 날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아버지 말마따나 '살자'

 

 이대로 무너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무너지지 말아야지." 매일 생각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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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

은행을 밟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르고 차갑다
공구상들이 늘어선 골목은 평화롭다
국수집, 와플가게, 이불집을 차례대로 지난다
그 순서에 질서가 있다 
사람들은 무뚝뚝 부지런히 길을 걷고
교차로 위의 자동차들은 서두르는 듯 보인다
나는 잠깐 멈추어 선다
모든 것이 조화롭다
그것이 시간의 뜻이다
삶이 이루어낸 것들이 차갑게 식는 계절이다
오늘은 차가운 술을 마셔야지
뱃속에서부터 뜨겁게 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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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터 46세가 됐다. 머릿속에 첫날인지 둘쨋날인지 약속의 혼란이 있었지만 오늘은 46세 2일차다. 16790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모든 지나간 일들은 과거라는 한 단어에 합쳐져서 결국은 잊혀진다.


 1978년 9월 23일은 음력으로 팔월 스무하루고 어제도 양력 9월 23일이 음력 8월 21일인 날이었다. 0세 생일과 양력음력 생일이 같은 날로 검색을 해보니 60년 의견과 대략 19년 의견이 있는데, 정확하진 않다. 지나간 내 생일 중에 한 번 정도는 어제와 같은 날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난 명절에 만난 엄마가 이번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 복권을 사라고 했는데, 복권을 안 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사야지. 한국에서 1978년에 태어난 사람이 75만 명이다.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2054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나랑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2000명이 넘는다. 그 중에 가수 나얼도 있고 초등학교 때 친구 호철이도 있다. - 초등학교 졸업후엔 얼굴 못 봄 - 전 세계로 따지면 더 많겠지. 그러니까 특별한 날이란 건 관계자들끼리의 얘기다. 아들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엄마가 고맙다. 충주로 출장 가는 바람에 집에 늦게 돌아왔는데, 집에 미역국이 있었다. 신랑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아내가 고맙다. 고마운 마음과 특별함으로 힘내서 살아야 되는데, 힘이 안난다.  


 강릉에서 로또 1등 당첨되신 분이 빚 갚은 후에 미뤘던 수술 받고 나서 돌아가셨단 얘기를 들었다.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 나 이 말 진짜 좋아하네. - 아픈데가 있건없건, 빚이 있건없건 로또 됐으면 좋겠다.

 

 직장 그만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그래도 출근하기 싫다. 출근하기 싫은건지 그만두고 싶은건지 헷갈린다. 다들 그렇다고 한다.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우리 아버지 말마따나 살아야지. 다만 아버지는 인지능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중이고 - 이미 바닥인 것 같음 - 그 때문에 더 이상 '살아야지'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살자. 복권도 사고, 출근도 하고, 일단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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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에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잤다. 엄마가 해준 밥 먹었다. 엄마 밥은 맛 없어도 맛있다. 엄마가 싸준 반찬 잔뜩 싸가지고 돌아왔다. 사랑이다. 동생에게 아이가 둘 있다. 조카들을 몇 년만에 봤다. 큰 아이는 초등 2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다섯살 터울이던가? 확실히는 모르겠다. 자주 안 보면 미취학 조카 나이는 잘 모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버지 면회가서 동생이랑 영상통화하면 동생이 항상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인사를 시킨다. 조카 아이는 늘 전화기 너머로 수줍게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큰 아이는 할아버지랑 함께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안다. 다 잊고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뇌가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동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줘서 애들 장난감 두 개 사갔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큰 아이가 어릴적에 프로레슬링 한다고 놀아주면서 '베어허그'를 먹여준 적 있다. 그 아이는 나를  '큰아빠'가 아니라 '베어허그 삼촌'으로 기억한다. 좋은일이다. 애들봐서 좋았다. 어쨋든 핏줄이라 그런지 조카들 일 년에 한 번은 보고 싶고 <엄마 없는 날>  재미있게 놀아준 삼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젠간 그럴 기회가 있을 거다.

 

 연휴 동안 아버지 면회를 두 번 갔다. 같은 시간에 갔는데, 두 번 모두 간식 먹고 휴식 시간에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와 있기에 밖에서 만났다. 아버지 육체가 건강하고 많이 답답해하기에 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담배 피울 때,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고맙습니다. 담배 한 보루 사 드리고 싶은데, 얇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 까지만 알아냈다. 요양원에 코로나가 퍼진 덕분에 면회시간이 짧다. 마스크도 써야하고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면회 신청서 쓰다가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제 기저귀를 차고 있고 점점 더 다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우편물에 아버지가 어찌 지내는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최근 받아본 내용에 똥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봤고 반가워했으니 그걸로 됐다.

 

 엊그제 S누나집에 쌀이랑 양말 갖다주러 갔었다.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길래,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럭저럭이 우울이다. 우울증이 여전해서 병원에 다시 가야지 싶다. 날씨가 문젠지 아버지가 문젠지 회사가 문젠지 내가 제일 문젠지. 9월말  날씨가 8월말 날씨같다. 아버지 만나고 돌아서면 울고 싶다. 회사에서는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아무일도 아닌데도 울렁거리고 짜증이 치솓는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 있는가? 물으면, 대답은, 있다. 많다. 사정이나 형편 같은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내 멋대로 사는 것도 세상의 흐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내 멋대로 살고 있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다. 답답하네.

 

 허리, 어깨 등 군데군데가 아파서 운동을 쉬고 있다. 우울증에 달리기가 좋다고 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에 등록해볼까 한다. 미친놈처럼 달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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