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5/11/20 | 2 ARTICLE FOUND

  1. 2015.11.20 20151120 - 어쩌다 하나씩
  2. 2015.11.20 20151120 - 오늘 생각

성수(Aqua Benedicta)


원 없이 죽을 수 있게
생명보험을 들었다
집에 불을 지르고 죽으려고
화재보험도 들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덜 슬프게 나를 기억하겠지
조금은 더 오래 기억하겠지
돈은 세상에서 가장 독한 독이지만
평생 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남은 식구들이 한 번도 행복한 순간 없이
살다가게 하고 싶지 않다
죽기 전에 꽃집에 전화해서
'축사망'이 적힌 화환을 주문했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눈물이 마를 무렵
아내가 뒤에서 나를 안는다
살자고
같이 살자고 운다
내 뒷목에 떨어진 눈물로
축복받은 나는
깨끗해진 나는
살아야겠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너랑 살아야겠다

AND

나는 약해빠졌다.

어제 비를 맞고 일했다. 피곤해서 오늘 쉬었다. 지금 하는 일은 아니, 지금 내 상황은 피곤하다고 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런 여유가 미안하다. 나보다도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렇다. 나의 뮤즈 jk도 일 하기 싫었겠지만 툴툴거리면서 출근했을 것이고 몸이 약한 s형도 주중에 빠지면 월차(월차란 건 없어졌다는데, 왜 우리에겐 있는걸까?)가 없어지니까 출근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동료들에게 미안할 일은 없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오늘 쉰 게 미안하다. 그래도 무리하고 싶지 않다.

쉬는 김에 우체국에 가서 신춘문예 응모작들을 10곳에 보냈다. 되면 좋겠지만 안되도 그만이다. 가끔 어째서 내가 쓰고 있나,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풀지 못한 내 욕구를 쏟아내는 쪽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하면 좋겠다. 헌데 세상에 대해서 쓰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당분간은 계속 쓰겠지.

내 마음은 건조하다.

야구에서 일본을 이겼다. 극적인 게임이었지만 그렇게 뭉클하지 않다. 아내가 여러 동물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넌 뭐가 신기해?' 라고 묻는다.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그다지 신기한 게 없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낮에 메모 정리하다 보니 볼음도에서 이런 걸 적었더랬다. '엊그제 우리 쌀로 밥을 해 먹었다. 맛있었다. 내가 농사 지은 쌀을 먹는 기쁨은 없고 그냥 맛있다는 생각만 했다. 건조한 계절을 따라 나도 건조해져 간다. 올해로 서른일곱이 되었다. 나이 먹는 일에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그뿐이다.' 요즘 이때보다 더 메마른 것 같다.

방금 전에 탕파에 물을 채우면서 아내가 웃었다. 그걸 보니까 마음이 풀려서 나도 활짝 웃었다. 아내도 내가 웃는 걸 봤겠지. 네 웃음 때문에 내 하루가 있다. 가까운데서부터 먼데까지 세상 여기저기에 미안하지만 네 웃음이 다 잊게한다. 보통 여섯시에 일어난다. 내가 가장 총명한 새벽 시간에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세상을 잊고 잠든 너를 보면서 아무도 못 보게 혼자만 활짝 웃는 게 내 기쁨이다. 너랑 나는 다른 시간을 살더라도 너는 내가 살아가는 구실이다. 너를 구실로 내일 또 살아야지. 세상에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결국은 또 사랑 얘기.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