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어둠 소리
바다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생명
너와 함께 했던 바다
갈매기가 소리지르던 바다
언젠가의 바다
그밤의 바다
기억속의 바다
지금은 네가 없는 바다
파도 위로 부서지는 빗소리
나는 물 속에서 비를 맞는 물고기
바다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생명
포장지
모든 상품에는 포장지가 있다
생명조차도 상품인 시대에
맨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
나는 당신의 껍데기가 되고 싶다
편지
너에게 편지를 쓴다
과거까지 전해질 수 있게
옛날식으로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잘 있니?
한참을 울어버렸다
그리고 또,
잘 있니?
잘 있니?
대답할 수 없는 너에게
부칠길 없는 편지를 쓴다
사탕
투, 사탕을 뱉는다
툭, 깨져서 흩어진다
이것도 생이라면
아직 달콤할 때 부서졌으니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을까
자음 하나 차이로
사랑은 달콤하게만 끝나지 않고
끝나지 않는 밧줄을 올라도
운명은 한 길로만 향한다
입안에 씁쓸한 단내만 남았다
낮잠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다
춥다
잠들면 식고 식으면 죽는다
불멸은 영원한 불면
식은밥, 식은 정신, 식은 사랑
식으면 죽는다
사랑은 한쪽만 식어도 끝난다
그러니 아가,
어서 그 차가운 물에서 나오렴
어느 일요일 오후의 생각
TV뉴스가 김정남의 죽음을 두 시간 째 떠들고 있다
조선땅에 사는 수 천의 김정남 중에 한 명이 살해당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아, 뉴스에 나오는 김정남은 북한 사람 김정남이지
남한 사람들은 북쪽의 일에 관심이 많지
또 그는 김일성의 손주이고 김정일의 아들이지
남한에는 이병철의 손주가 구속된 건 아쉬워 하면서도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것에는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많지
핏줄이란 게 무섭지
화면속 고인의 모습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았다
남북은 하나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니까 고인은 나랑도 닮았겠지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얼굴에 눈 코 입이 달린 것이 닮았고
콧구멍이 두 개인 것도 닮았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일요일 오후에
강원도 정선군 오일장 한 귀퉁이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누가 보는 줄도 모르고 오줌을 누는 중년 남자가 집에 잘 들어가는 일보다
먼 이국땅에서 김정남이 독살당한 일과 그 범인을 잡은 일이 중요한 일일까
둘 다 나랑 닮은 사람이고 우리는 한민족인데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아직 살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죽은자가 산자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북한사람 김정남은 죽어서도 관심을 받는 일이 행복할까
본인 토사물 위에 쓰러질 뻔 한 남자는 집에 잘 들어갔을까
나는 오늘 죽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고 집에 잘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늘빛이 기묘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