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에서 인생에 큰 문제가 없어서 그런지 아버지 요양원이 집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수시로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아버지 생각을 길게 하면 눈물이 나기 때문에 짧게만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나는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할 만큼 아버지랑 친하거나 아버지에게는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깊은 정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지난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요양원 사무실 옆 별도 공간이 아니라 4층 생활관에 올라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문을 열었을때, 아버지는 정면에 보이는 소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눈을 반짝 뜨며 반가워 했다. 아내가 내가 많이 힘들다고 한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횡설수설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고마워서 잠깐 울뻔했다.
 어렸을 때, 술 드시고 집에 온 아버지가 나랑 동생이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와서 용천혈이라면서 발바닥 가운데를 눌러주던 일이 요즘들어 자꾸 생각난다. 그게 아버지의 애정표현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이랑 영상 통화할 때, 내 전화기에 비친 본인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이게 지금이냐고 묻기도 하다가 동생이 전화 받으면 동생 얼굴보고 놀라면서 <어, 너구나. 잘 지내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동생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생은 먼저 아버지를 직접 보고 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됐다. 못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낫지만 점점 더 본인을 잊어가는 아버지를 체념한듯 받아들이는 상황이 슬프다. 그 와중에 나는 아버지가 가장 늦게 잊어버리는 이름이 내 이름이길...... 하는 이상한 욕심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요양원 가기전에 아버지 자주 봐서 참 다행이다. 거의 매주 서울에 가는 게 정말 힘들긴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된 대화랄 것도 없었지만 아버지랑 말을 주고 받을 수는 있었던 그때가 참 좋았다.
 
 10월이 다 갔다. 내 시간도 아버지의 시간도 공평하게 흘러간다. 아버지, 내일 모레 또 만나자구요.
 

동생이 전화 받기 전에 본인 얼굴 보면서 신기해 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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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해도 나훈아 뒤로 해도 나훈아 공연을 다녀왔다.
 
 치매 걸린 아버지가 지금도 프로그램 시간에 부르는 노래가 나훈아의 '가지마오'다. '가지마오'는 나한테는 '찻집의 고독'이랑 한 세트인 곡인데, 어렸을 때는 노래방에서 두 곡 다 자주 불렀다. 오늘 공연에선 이 곡을 안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나훈아를 좋아했다. 이모랑 외삼촌들이 다 노래를 잘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했다. - 철이 삼촌이 '청춘을 돌려다오'를 특별히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 아버지가 강원도고 엄마가 경북이라 그런지 우리집 어른들은 나훈아랑 남진을 비교하기 보다는 - 경상도 사람들에게 남진은 나훈아랑 비교 대상이 아님 - 화투 치면서 나훈아랑 조용필 중에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집안의 영향으로 나는 조용필도 좋아하고 나훈아도 좋아한다.
 
 나훈아 공연히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좋았다. '고향역'이 첫 곡일거라 생각햇는데, 오프닝에 "코스모스~~" 하는 순간 살짝 울컥했다. '사랑'에서 '영영'으로 바로 이어 부른것도 좋았다. - 나한테는 이 두 곡이 한 세트다 - 공연에서 제일 좋았던 건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 배호의 '누가 울어' 본인의 '무시로'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세션이었다. 특히 '누가 울어'가 정말 좋았다. 50년 이상 프로 가수로 살면 평범한 기타 코드를 쳐도 간지가 줄줄 흐르는구나 생각했고 브라이언 맥나잇이 가끔 어쿠스틱 기타 치면서 본인 노래 업로드 하는 것도 생각났다. 
 
 '공' 이라는 노래 중간에 멘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난 좀 지루했는데, 관람객들이 대체로 나훈아의 말솜씨를 좋아했다. '공'은 비교적 최근 곡인데, 조용필의 최신곡인 '그래도 돼'랑 주제가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장들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 -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본인 멋대로 살면된다 - 일맥상통하는 느낌? 이 같은 주제의식은 요즘 아이돌 노래도 마찬가진가?
 
 나훈아는 84년에 '청춘을 돌려다오'를 불렀고 2005년 에는 '고장난 벽시계'를 불렀다. 이 두 곡 사이에 20년이란 시간이 있고 같은 듯 다른 두 곡의 노랫말의 간극이 기묘하다. 조용필은 84년에 '아시아의 불꽃' 이 실린 앨범을 냈고, 송창식은 83년에 '우리는' 을 불렀다. 각자 본인들의 길로 간 거장들의 현재 모습이 다 보기에 좋다.
 
 본인 성기가 절단 당했다는 루머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 직후에 나온 곡이 '테스형'이었던 듯 - 세월 흐르고는 공연장에서 웃으면서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나훈아의 은퇴 공연을 봐서 아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잘하시더라. 은퇴 후에 행복하시길 바란다.
 
 조용필 신보를 들으면서는 폴 매카트니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훈아는 비교 대상이 없네.
 
 조용필 공연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다. 글을 마치는 지금 BGM으로 조용필의 '꽃바람'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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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을 먹다

볶음밥을 먹는다
파기름을 내고
계란을 두 개 깨고
식은밥에 간장을 한 숟가락
설탕 소금 후추를 넣고 볶았다
하늘이 점점 더 흐려지고
강풍주의보가 내린 일요일 오후
아직 밥 때는 아닌데
배가 고프다는 아내랑 볶음밥을 먹는다
가끔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 없이 먹는다
집안과 아내, 밥의 온기가 뒤섞였다
세상의 모든 행복이 지금 이 공간에 있다
이 볶음밥은 파 볶음밥인가 달걀 볶음밥인가
아니면 간장 볶음밥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볶음밥을 먹고 
주인공이 그 길로 죽으러 간 소설의 제목이 뭐였더라
나는 죽으러 갈 곳이 없고
자고 일어나면 출근할 곳이 있고
거기가 내 자리라는 걸 안다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째선지 울컥한다
먹는 것은 살겠다는 것이니까
살아야지 살아야지 속으로 반복하면서
좀 짜지않아, 묻고
맛있다는 얘기를 한 번 더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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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바람이 서걱서걱 분다
빈 나뭇가지가 덜렁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부고를 매일매일 듣는다
얼마전
그 중에 당신 소식이 있었다
북서쪽 산 정상으로 향하는 출근 길
라디오에선 이 계절에 어울린다며
30년 전 이별노래가 흘러나오고
운전대를 잡은 반대편 손에서 피워내는 담배 연기
차창을 열자 바로 흩어지는 
온전한 공간에서 혼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해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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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한테는 누나가 있다. 나에겐 고모가 두 명 있다. 아버지 누나는 나에게 큰 고모가 된다. 아버지에게 여자 형제가 셋이었다면 큰고모 중간고모 작은고모가 되나? 큰 고모는 아버지네 육남매 중에 첫째다.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건 확실하고 일찍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봉제공장에 다녔다. 아버지는 방위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고 서울 영등포에서 누나랑 같이 살았다. 그 당시에 고모는 나의 이모들과 친분을 쌓았고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서 결혼했다. 고모를 몹시 때리던 고모부가 있었다. 나는 고모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름은 기억한다. 엄마랑 이모들이 고모부 이름을 부르면서 나쁘 소리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고모는 알콜중독으로 죽은 고모부의 폭력을 피해서 우리집을 자주 찾았다. 한쪽 눈이 멍든 채 울면서 우리집에 왔던 고모가 생각난다. 고모에게는 나랑 동갑인 아들이 하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고모는 서울 집을 팔고 구미에 가서 손주들 돌봐주면서 아들 내외랑 같이 산다.

 

 아버지가 치매 걸린 이후로 고모가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한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간 후로는 더 자주 전화를 한다. 동생이 치매로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본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살다가도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면 나에게 전화를 한다. 울먹이면서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못되게 굴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기를 하나 주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한다. 내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도 하는구나.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기 바로 전날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 고모에게 그 통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로 남았다. 내 생각에 아버지 머릿속에는 아직 누나가 남아 있을 것 같다.

 

 어제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11월 초에 강릉에서 둘째 고모 아이 결혼식이 있는데, 식장에 아버지를 데리고 나올 수 없겠냐고 했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차고 있으니 데리고 나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면회만 추진하기로 했다. 

 고모, 아버지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 금요일에 동생이 강릉에 왔기에 같이 아버지 보러 갔다. 아버지는 나랑 동생을 보고 '아들'이란 말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사람 이름은 아버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간다. 동생이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나랑 동생에게 결혼 - 이 단어도 먼저 꺼내지 못함 - 해야지. 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컨디션이 좋은 편인 것 같았는데도 그랬다. 아버지는 컨디션이 좋을 때 말을 많이 한다. 정리되지 않는 그 얘기를 듣는게 좋다. 아버지 컨디션이 좋은 게 좋다. 아버지 얘기의 핵심은 본인은 걱정하지 말아라, 남들한테 못되게 굴지 말고 잘 살면된다, 회사에 잘 다니면 그걸로 됐다, 정도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혼자 아버지 보러 갈까 싶었는데 내 안의 우울로 그러하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아버지 보러 가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 알아보는 동안이라도 더 자주 보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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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 일기

그때그때 2024. 10. 10. 13:11

 10월 10일이네 엊그제가 한로였고 며칠 있으면 상강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흘러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왜 이렇게 출근하기가 싫은지 생각했는데,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지쳤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건 아니다. 업무 분장도 그렇고 예기치 않은 일로도 남들 뒤치닥거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들에 지쳤다. 돈도 명예(?)도 싫다.

 

 올 봄에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엊그제야 전화가 왔다. 올해 연말부터 전세보증금 내줄 수 있다고 한다. 내년 3월초가 계약 만기다. 내년 정월이 지나기 전에는 이사를 가야겠다. 사실 서두를 필요 없는데, 당근마켓 부동산을 자꾸 들여다 보고 있다. 강릉 집값과 내가 가진 돈을 생각하면 그 동안 뭐하고 살았나 속만 상한다. 차분하게 있다가 11월 말에 부동산으로 가자. 10년에서 15년 갚을 것을 생각하고 주택담보대출 받아서 나 보기에 위치가 좋은 아파트 하나 사고 싶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지금 집에서 5년 7개월을 살았다. 10년 가까이 된 직장 생활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집도 지겹긴 하다. 내 집이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어느집에 살아도 집에는 정이 들지 않는다.

 

 지난주에 아버지 요양원 계약서 갱신했다. 아버지 장기요양인정이 갱신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4등급(시설급여)이 됐다. 사회복지가 선생님이랑 계약서 쓰면서 아버님이 착한 치매라 정말 다행이다, 불결 행위가 점점 심해진다, 는 얘기를 들었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많이 힘들게 하지 않는 치매가 온 건 좋은 일이네, 생각했다. 아버지는 엄마, 동생이랑 영상통화 할때, 얼굴 보면 반가워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동생에게는 한 번 와라,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보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웃고, 나도 웃고 만다. 언젠가는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나도 못 알아볼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날이 아주 천천히 오길 바란다.

 

 기후 파괴의 시대에도 인구수로만 보면 세계(인류)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래요,란 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다. 거기에 나도 포함이다. 어딘가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은 없으니 이런걸로 우울해 하지 말자. 가을이 왔음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닥치는 대로 살자. 삶에 감사할 수 없는 날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아버지 말마따나 '살자'

 

 이대로 무너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무너지지 말아야지." 매일 생각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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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

은행을 밟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르고 차갑다
공구상들이 늘어선 골목은 평화롭다
국수집, 와플가게, 이불집을 차례대로 지난다
그 순서에 질서가 있다 
사람들은 무뚝뚝 부지런히 길을 걷고
교차로 위의 자동차들은 서두르는 듯 보인다
나는 잠깐 멈추어 선다
모든 것이 조화롭다
그것이 시간의 뜻이다
삶이 이루어낸 것들이 차갑게 식는 계절이다
오늘은 차가운 술을 마셔야지
뱃속에서부터 뜨겁게 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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