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46세가 됐다. 머릿속에 첫날인지 둘쨋날인지 약속의 혼란이 있었지만 오늘은 46세 2일차다. 16790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모든 지나간 일들은 과거라는 한 단어에 합쳐져서 결국은 잊혀진다.


 1978년 9월 23일은 음력으로 팔월 스무하루고 어제도 양력 9월 23일이 음력 8월 21일인 날이었다. 0세 생일과 양력음력 생일이 같은 날로 검색을 해보니 60년 의견과 대략 19년 의견이 있는데, 정확하진 않다. 지나간 내 생일 중에 한 번 정도는 어제와 같은 날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난 명절에 만난 엄마가 이번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 복권을 사라고 했는데, 복권을 안 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사야지. 한국에서 1978년에 태어난 사람이 75만 명이다.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2054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나랑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2000명이 넘는다. 그 중에 가수 나얼도 있고 초등학교 때 친구 호철이도 있다. - 초등학교 졸업후엔 얼굴 못 봄 - 전 세계로 따지면 더 많겠지. 그러니까 특별한 날이란 건 관계자들끼리의 얘기다. 아들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엄마가 고맙다. 충주로 출장 가는 바람에 집에 늦게 돌아왔는데, 집에 미역국이 있었다. 신랑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아내가 고맙다. 고마운 마음과 특별함으로 힘내서 살아야 되는데, 힘이 안난다.  


 강릉에서 로또 1등 당첨되신 분이 빚 갚은 후에 미뤘던 수술 받고 나서 돌아가셨단 얘기를 들었다.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 나 이 말 진짜 좋아하네. - 아픈데가 있건없건, 빚이 있건없건 로또 됐으면 좋겠다.

 

 직장 그만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그래도 출근하기 싫다. 출근하기 싫은건지 그만두고 싶은건지 헷갈린다. 다들 그렇다고 한다. 그런 줄 알고 살아야지. 우리 아버지 말마따나 살아야지. 다만 아버지는 인지능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중이고 - 이미 바닥인 것 같음 - 그 때문에 더 이상 '살아야지'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살자. 복권도 사고, 출근도 하고, 일단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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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에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잤다. 엄마가 해준 밥 먹었다. 엄마 밥은 맛 없어도 맛있다. 엄마가 싸준 반찬 잔뜩 싸가지고 돌아왔다. 사랑이다. 동생에게 아이가 둘 있다. 조카들을 몇 년만에 봤다. 큰 아이는 초등 2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다섯살 터울이던가? 확실히는 모르겠다. 자주 안 보면 미취학 조카 나이는 잘 모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버지 면회가서 동생이랑 영상통화하면 동생이 항상 본인 큰 아이를 불러서 인사를 시킨다. 조카 아이는 늘 전화기 너머로 수줍게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큰 아이는 할아버지랑 함께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안다. 다 잊고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뇌가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동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줘서 애들 장난감 두 개 사갔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큰 아이가 어릴적에 프로레슬링 한다고 놀아주면서 '베어허그'를 먹여준 적 있다. 그 아이는 나를  '큰아빠'가 아니라 '베어허그 삼촌'으로 기억한다. 좋은일이다. 애들봐서 좋았다. 어쨋든 핏줄이라 그런지 조카들 일 년에 한 번은 보고 싶고 <엄마 없는 날>  재미있게 놀아준 삼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젠간 그럴 기회가 있을 거다.

 

 연휴 동안 아버지 면회를 두 번 갔다. 같은 시간에 갔는데, 두 번 모두 간식 먹고 휴식 시간에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와 있기에 밖에서 만났다. 아버지 육체가 건강하고 많이 답답해하기에 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담배 피울 때, 아버지를 데리고 요양원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고맙습니다. 담배 한 보루 사 드리고 싶은데, 얇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 까지만 알아냈다. 요양원에 코로나가 퍼진 덕분에 면회시간이 짧다. 마스크도 써야하고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면회 신청서 쓰다가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버지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제 기저귀를 차고 있고 점점 더 다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고 있다.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우편물에 아버지가 어찌 지내는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최근 받아본 내용에 똥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봤고 반가워했으니 그걸로 됐다.

 

 엊그제 S누나집에 쌀이랑 양말 갖다주러 갔었다. 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길래,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럭저럭이 우울이다. 우울증이 여전해서 병원에 다시 가야지 싶다. 날씨가 문젠지 아버지가 문젠지 회사가 문젠지 내가 제일 문젠지. 9월말  날씨가 8월말 날씨같다. 아버지 만나고 돌아서면 울고 싶다. 회사에서는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아무일도 아닌데도 울렁거리고 짜증이 치솓는다. 이루지 못한 무언가 있는가? 물으면, 대답은, 있다. 많다. 사정이나 형편 같은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내 멋대로 사는 것도 세상의 흐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내 멋대로 살고 있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다. 답답하네.

 

 허리, 어깨 등 군데군데가 아파서 운동을 쉬고 있다. 우울증에 달리기가 좋다고 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에 등록해볼까 한다. 미친놈처럼 달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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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이 무렵엔 마음이 절반으로 꺾인다
너에 대한 마음이 삶에 대한 마음이다
태양일 절반으로 꺾였으니 
나는 너를 두배 더 사랑해야지
너를 두 번 안고 두 번 입맞추고
두배로 충만함을 느끼고
두배속으로 끝난 사랑이 두배로 허무하더라도
두배의 속도로 희망을 살고
무너져버린 계절을 견디고 봄을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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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이슬이 내리지 않는 백로
푸른 하늘 대신 쨍한 하늘의 백로
남대천 한복판 돌 섬
늘 가마우지 두 마리가 있던 자리에
백로 한 마리가 고고하게 서 있다
나는 강변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본다
새도 앉는 법을 아나
강가엔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고
퇴근 하는 사람, 장 바구니를 든 사람이 섞여 있다
사상 최고의 가을 더위에도
사람들 사이엔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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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랑 성묘 행사가 있었다. 산소는 강릉에 있고 작은아버지 한 분만 강릉에 있으니까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JJ삼촌이 본인들 부모니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길래 신경 끄기로 했다. 나랑 아내는 벌초 다 끝난 다음에 가서 절만 하고 왔다. 편했다. 막내 삼촌이 25살 사촌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와서 오랜만에 얼굴 봤다. 동생이 직장 다니기 너무 싫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돈 쥐어줘서 동생한테 밥 사 먹으라고 용돈 줬다. 잘한 일이다. 엄마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별 대화는 못나눴다. 10명이 점심 먹으러 옹심이 집에 갔는데, 엄마랑 마주 보고 먹은 게 좋았고 엄마 옆엔 아내가 앉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게 좋았다. 기억해 둔다.

 

 아버지 있는 요양원에 코로나 이슈가 있어서 엄마를 비롯한 친척들이 면회를 못했다. 면회 가능한지 묻느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랑 통화할 때 아버지 잘 지내는지 물었더니, 행복하시죠, 라고 대답해서 약간은 안심이 됐다.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아버지는 혼자서 생각의 나무를 키우다가 밥 먹으라 하면 밥 먹고 간식 먹으라 하면 간식 먹고 머리 자르자고 하면 머리를 자를 것이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고맙습니다,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나무를 처음부터 다시 키울 것이다. 얼른 아버지 면회가서 컨디션 좋은 아버지가 한 시간 내내 떠드는 거 듣고 싶네. 사랑인가?

 

 어제는 아내랑 횡계에 있는 자생식물원이랑 월정사에 다녀왔다. 월정사를 처음 가봤네. 유명하다는 전나무 숲길도 걸었다. 어느 나무에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길을 걷는 일의 시작이다, - 원문은 '명상의 시작이다.' - 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우울증 핑계로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를 잠깐 돌아봤다.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가을이 어쩌구 저쩌구 하길래, 올 가을엔 나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을 보냈는데, 내 사연 읽혔다. 블로그에 종종 쓰는 일기가 나에게 쓰는 편지니까 어차피 쓸 편지를 쓰겠다는 사연이었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는 내가 보낸 사연이 본편적인 얘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점심으로 아내랑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다. 아내가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갔다. 교동 보헤미안에 아내랑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자주 간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참 좋다. 내가 전날 커피 마시러 가자고 말하면 다음날 억지로 일찍 일어나 주는 아내가 참 좋다. 사랑이다.

 

 직장 일을 포함해서 모든 일은 추석뒤로 미루기로 했다. -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고맙다. -  이번주 잘 보내고 연휴가 기니까 추석엔 차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엄마한테 다녀올까 싶다. - 엄마가 연휴 때 나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 맥락의 말을 함 - 회사에서의  세 시간은 너무나 길지만 엄마에게 가는 세 시간은 너무나 짧지. 사랑인가? 

 

 사랑? 사랑. 사랑? 이 다 사랑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산다. 사랑으로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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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가 9월 1일이었다. 어제는 9월이구나, 싶지 않았는데 오늘 출근하니까 9월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사무실 근처에서 각시취 꽃이랑 용담꽃을 보니 가을이구나 싶다. 이렇게 세상 속에 동화되어 간다.
 
 주말엔 거의 누워 있었다. 어떤 의욕없음이 여전히 나를 지배한다. 토요일 아침엔 아내랑 데이트를 했다. 보헤미안 본점에서 커피 마셨고 양양 휴휴암에 다녀왔다. 아내랑 뭘 같이 하는 게 활력을 준다. 집에서 밥을 같이 먹고 옆에 누워서 각자 휴대전화를 보는 일들도 그러하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아내가 곱게 자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도 위안이 됐다. 안심이 더ㅣㄴ다고 해야하나?. 어제 아침에 아버지 친구들을 잠깐 만났다. 전날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원에 가서 유리 칸막이 너머로 아버지를 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반가워했다고 전해들었다. 위로금 100만원을 받았고 엄마한테 줬다. 치매 걸린 친구를 위해서 위로금을 모으는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아버지 친구들이니까 52년 전후에 태어난 분들인데,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람이 일단 안 아프고 볼 일이고 아프더라도 치매는 피해야 한다. 치매는 치명적이라 치매다.
 
 지난주에는 일주일 전에 만난 DJ 선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 한 명 만나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프로 뮤지션인 선배랑 프로 얘기를 하다가 선배가 '프로는 선택받는 거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도 선택받고 싶은가? 강렬한 열망은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선택받지 못해서 우울한 건 아니다. 이번달부터는 본격적으로 노래 녹음을 해볼까 싶기도 하네.
 
 프로야구 프로축구에서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야구는 2패 했고 축구는 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해서 비겼다. 나야 그 결과에 잠깐 화를 내거나 속상한 마음을 가지면서 지켜볼 뿐이지만 선수들과 감독들은 간절하게 뛰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이게 프로의 세계다. 냉정.
 
 나는 선택받고 싶은가? 일단 글이 좀 잘됐으면 좋겠네. 글쓰기도 노래만들기도 어느 지점에서 멈춘 느낌이다. 2024년 9월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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