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바람 불면 떨어지고
...
떨어지고
...
떨어지고
...
가지 끝에 한 잎은
...
어쩌라고
...
어쩌라고
...
바람 불면 흩날리고
...
흩날리고
...
흩날리고
...
가지만 남은 나무는
...
어쩌라고
...
어쩌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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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벤치
가을엔 벤치다
볕이 잘 드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애인이나 친구를 기다린다고 해도 좋고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도 좋다
걷는 사람도 뛰는 사람도 자전거를 탄 사람도 있다
아장아장 손녀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다
손녀가 할아버지 손을 놓고 조금 뛰어간다
이내 뒤돌아 할아버지에게 달려와 안긴다
할아버지 얼굴 주름 사이사이로 풍만한 만족감이 넘친다
내 얼굴에도 기분좋은 미소가 흐른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누군가 봤다면 얼굴 좋다고 했을거란 걸 안다
벤치에 앉아서 내게 오지 않을 미래를 본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아도
가을 벤치에 앉아서
저녁이 오는 걸 무심히 바라본다
그 사람
바닷가에서 실종된 공군 부사관
낚시를 하러 나갔는데 연락이 없어 신고한 그의 아내
방파제 주변으로 드론이 날아 다니고
경찰옷을 입은 사람과 군인옷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를 한다
실종 이틀 째, 6일짜리 연휴의 마지막 날
테트라포트 사이에서 죽은 몸뚱이를 건져 올리고
앰뷸런스와 소방관들이 다녀가고
경찰옷과 군인옷의 회의에 사복을 입은 사람들도 더해졌다
웅성거리는 곳의 반대편, 방파제 끝에서 한 사람이 낚시를 한다
소란은 점점 커지는데,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가 방파제 끝에 다녀온다
남들 다 쉴 때 쉬지 못해서 연휴 마지막 날에라도 마음 편하게 쉬고 싶었던 그 사람
방파제 끝에서 낚시가 하고 싶었던 그 사람
퉁퉁 불은 짜장면을 먹으며 행복했을 그 사람
짜장면 한 그릇은 시켜 먹을 여유는 있지만
실종자 소식을 알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는 삶을 사는 그 사람
사건 현장 주변의 사람들이 다 욕을 했지만
욕먹을 만큼 나쁜 삶을 살지는 않은 그 사람
테트라포트 위에서 실족 후 추락해도 신고해 줄 사람 하나 없는 그 사람
추분
흰 구름에 하늘에서 빌린 가을 빛이 묻어 있다
한낮의 천변엔 사람들이 물빛처럼 반짝거린다
세월이 잔뜩 묻은 담벼락 너머로 탱자가 누렇게 익었다
점프,
굳이 하나 따내려다 가시에 찔렸다
아야, 피
흔들린 가지에서 열매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진다
손 끝에 피를 빨아 먹고 탱자를 줍는다
몹쓸 쓸모에도 기분은 화사한
머릿속이 파란 하늘로 가득찬 가을날
아끼는 마음
바깥은 더우니까 지하철에서 시간을 끈다는 노인들 마음이
어릴적 오락실에서 동전 넣은 거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게임기 앞에 있으려던 내 마음과 닮았다
느니타무 무료급식소에서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시비가 붙어 한쪽이 피를 보고야 마는 일이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이미 배가 부른데도 고기한 접시 더 가져와 구워먹는 일과 닮았다
잔칫집 뷔페에서 미리 준비해 간 비닐에 떡을 싸오는 일
사무실 믹스커피를 집에 가져와서 먹는 일
술 먹고 밤늦게 회사로 돌아와서 초과근무를 찍는 일
아내가 양념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도 할인을 할 때만 포장해서 사다주는 일
문 닫을 시간에 마트에 가서 49프로 할인하는 족발을 살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일
단골 분식집 사장님이 김말이 튀김 하나 더 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일
내가 술값 내려 했는데 친구가 술값 내주면 두고두고 고마운 일
가엾고 안타깝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사장님
대리운전 기사분들은 처음 보는 나한테 왜 사장님이라고 하나
나 기분 좋으라 그러나
사장 소리 들어도 기분이 좋진 않다
집주인은 세들어 사는 나한테 왜 사장님이라고 하나
본인이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서 그러나
주인님이라 불러주면 좋이할까
누구나 다 사장님이 되는 곳
fucking 사장님, 소리 듣고 싶은 우리나라
사랑
다른 누군가를 만났어도
적당히 사랑이라 부르며 살았겠지만
그게 누구든 어떤 사랑이든
당신 만큼은 아니었을거야
-> 오랜만에 사랑
소똥 냄새
여름이 끝나가는 퇴근길
묵지근한 공기에 섞여
차 안으로 들어오는 소똥 냄새
길 양쪽으로 우사라고 부르는 소 사육장
소똥과 메탄가스를 생각하고
명절에는 한 번씩 먹게 되는 소고기를 생각하고
8월이 끝나도록 불같이 뜨거운 날씨와
9월 추석에 먹을 소고기 중에
어느쪽이 내 삶에 더 깊은 관계가 있나
결론이 없는 자주 하는 생각
소똥 냄새가 사라지기 전에
- 유기견 울부짖는 소리 못 살겠다 -
- 개보다 사람이 먼저다. -
- 유기견장 확대 결사반대 -
동물사랑센터 확대 반대 현수막을 지나고
소는 되고 개는 안되나
소는 똥을 싸도 청정지역이고
개가 짖기만 해도 물이 더러워지나
머리 끝까지 차오른 욕을 소똥 냄새 가득찬 차안에 내뱉는다
소는 고기가 되기 전까지 똥을 싸고
주인이 버린 개는 안락사 당하기 전까지 짖고
인간만은 뭘 해도 되는 세상에
나는 내일 출근길에도 이곳을 지난다
태풍후에
불어난 강물
흐린 하늘
포크레인과 백로
운동기구에 매달린 아주머니들
강아지를 데리고 징검다리 앞에 놀러나온 소년과 소녀
개도 깡총 사람도 깡총
반대 방향으로 엇갈리는 노인의 자전거와 아이의 자전거
다시 비가 내리고
돌다리 위로 빠르게 흐르는 강물
물살의 반대쪽으로 부는 바람
몸도 마음도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나
메꽃
메꽃이 피던 자리에 메꽃이 피었네
사랑이 있던 자리엔 사랑이 없네
녹아 흘러가는 여름에 당신 자리도 녹아 내렸네
비 내리고 그 흔적마저 사라졌네
바로 그 자리에 메꽃이 피었네
메꽃이 피던 자리에 메꽃이 피었네
그대가 없어도
나비가 날고 벌이 날고
그 꽃이 사랑이려니 하네
그 여름
남극에 겨울비가 내렸다
능소화가 하늘 앞에 당당히지 못하고
칡넝쿨은 꽃을 피우다 더워 죽었다
껍질을 까고 나온 매미가 말라 죽고
은행나무 잎은 급하게 누레졌다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비오듯 흐르고
손톱 발톱 머리카락에 빨리 자랐다
노인도 아이도 젊은이도
더워 죽고 폭우에 휩쓸려 죽었다
사람들은 적도에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끝보다 더한 끝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말 못할 이유로
서로에게 그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냉동 삼겹살을 먹다
오병이어 식당
일요일엔 열지 않을 이름이지만
어째선지 문을 열었기에 냉동 삼겹살을 먹는다
묵은지랑 저민 감자가 좋고
된장이랑 쌈채소도 훌륭하다
두 번째 찾아온 식당
사장님은 내가 다섯 번은 온 줄 안다
둘이 오인분을 먹고
숫자 순서가 바뀌었지만
2와 5는 한통속이니 이것도 기적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5와 2로 5천명을 먹었지만
현실에선 7만 6천원이 두 사람을 먹였다
전쟁통이 아니더라도
먹고 사는 게 기적인 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기적이라 한다
7만 6천원의 기적이라 한다
열대야 2
몸에 열이 나네
술 마시고 집에 가는 중이다
바깥은 섭씨 32도
간간히 자동차만 보이는 새벽,
집에 가서
찬물에 씻고 잘 수 있을까
다이어트
보통보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보통보다 적게 먹으면 살이 빠진다
보통으로 먹고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지고
적게 먹으면서 운동을 하면 살이 많이 빠진다
똥을 많이 싸면 살이 찌고
똥을 적게 싸면 살이 빠진다
많이 먹으면 똥을 많이 싸기 때문이다
가끔 어지러우면 살이 빠지는데
자주 어지러우면 죽을 수도 있다
살이 많이 찌면 뚱뚱한 것이고
살이 많이 빠지면 마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통통한 게 어울리고
어떤 사람은 마른 게 어울린다
대체로는 마른 사람들이 옷빨이 잘 받는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비 탤런트나 모델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뚱뚱하면 뚱뚱한 사람을 좋아한다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말랐으면 깡마른 사람을 좋아한다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뚱뚱하거나 말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 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체중을 감량하기도 하는데
자신을 혐오하게 되거나 사랑에 실패하면 체중 감량이 도루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나를 버리지 말아요 내 사랑
열대야
강가에 사람들이 있다
맨바닥에 또는 돗자리 위에
둘이거나 셋, 많으면 넷이 모여있다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직장동료로 보인다
아이가 함께인 가족도 있다
술에 취했거나 취하지 않았거나 취하는 중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연인도 있고
가로등 불빛 환히 비추는 곳에서 오줌을 누는 아저씨도 있다
아이들은 더위를 모르고 뛴다
물이 공기보다 차가우니
공기보다 차가운 바람이
강가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불어온다
다들 밤의 빛 아래서 어떻게든 생기가 있고
나방도 모기도 활발하다
밤은 전체가 그늘이라 다리 밑은 답답하다
다리 밑에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내가 있다
낮부터 쭉,
내가 있다
2023 홈쇼핑,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모텔 냄새 나는 이불을 덥고
모텔에서 잔다
친구는 방금 집에 갔다
방을 잡아준 친구가 너무 고맙다
사랑인가?
모텔 아줌마는 나랑 내 친구가 연인인 줄 알았다
티비에선 브라자를 판다
남자랑 여자랑 같이,
남녀평등인가?
어디까지가?
여자 속옷을 남녀가 같이 팔면
사랑인가?
나는 미칠 것 같지도 않은데 미칠 것 같다
그래서 미칠수가 없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그래서
그래서
5 플러스 1 브라자를 반값에 사고
자, 자야겠다
짬뽕을 먹다
해장도 아닌데
혼자서 짬뽕을 먹는다
물과 단무지가 셀프다
조리마저 셀프인 세상에 곧 올 것 같다
짬뽕,
썪였단 뜻이고 썩은 건 아니다
당근양파돼지고기오징어조갯살고춧가루가 국물에 섞여있다
띵동띵동 배달접수 소리 이어지고
홀에는 나와 파리와 짬뽕 그릇 뿐이다
파리를 애써 쫓지 않는다
다들 먹고 살자고 애쓴다
단무지는 너무 짜서 두 개만 먹고 만다
대부분의 삶에는 짠내가 나고
알고보면 짜장면도 단맛보다 짠맛이다
건더기를 다 먹고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킨다
재료맛이 안나고 맵고 짜기만 하다
다음엔 오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국물을 한 모금 더 먹는다
짬뽕 곱빼기 만 원, 세월이 그러하지만 비싸단 생각이 들고
삶에도 입안에도 맵고 짠내가 번진다
낙원
사람들이 날 보기만 해도 웃어주는 곳
이름도 나이도 필요없는 곳
슬픈 사람은 있어도 아픈 사람은 없는 곳
혹은, 그 반대인 곳
아무 말 없이 어디든 바라만 봐도
어쩌면 눈을 감고만 있어도 좋은 곳
가물기 전에 비가 내리고
더워지기 전에 밤이 찾아오는 곳
꽃이 지면 열매가 맺고
그 열매가 다시 꽃을 피우는 곳
낙원에 가서 살고 싶다
내 옆에 한 사람이 있고
내 손을 잡아줄 그 한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곳
염소탕을 먹다
아내가 몸에 좋은 거 그만 먹고 다니라 했는데
살다살다 염소탕도 먹어본다
염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양식으로 개 대신 염소를 먹는다는 것도 아는 어른이다
염소가 새끼를 빨리친다는 얘기며
요즘 염소값이 비싸다는 얘기를 들으며
수육을 먼저 먹는다
따끈따끈 말캉말캉
식당 벽에는 염소 고기의 효능이 붙어있고
나는 세상에 기여한 일 하나 없는데
염소 고기가 이리 맛있어도 되나
간에 좋다는 염소 고기를 소주랑 같이 먹는다
이런걸 상충한다거나 쌤쌤이라 하나
개이득 상황은 아니다
고기가 냉동이 아니라는 주인의 말
그래서 더 맛있다는 동료의 말
몸에 좋다 생각하고 먹으니 진짜 몸에 좋은 것 같고
편의점 김밥을 먹으면서도 그게 몸에 좋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세상의 룰이고
삼 천 원과 만 오 천 원의 차이가 자본주의다
뽀얀 국물을 보며 우유가 귀했던 시절 얘기를 하다가
친구의 화를 돋운 친구 아내의 구찌 스니커즈 가격이면
염소탕을 몇 번 먹겠나 생각해보고
염소탕 가격이면 굶는 사람들 몇 끼를 먹을 수 있는지까지 갔다가
더 무던해질 것도 없이 나이들어 담담해진 나를
한탄하기 전에
다 잊고자
취해버렸다
설악산에서 차이다
설악산에서 차였다
정상에 가까운 자리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다
여름 아래 하늘 아래 나무 그늘 아래 새 소리 아래 뜨겁게 달궈진 바위들 아래
고백한 마음이 민망하다
눈 둘 곳이 발 아래 뿐이다
너에 대한 내 마음은 6월 산보다 무성한데
너는 아기새처럼 내 어깨를 스치고 사뿐히 날아갔다
포근하소서 포근하소서
자꾸만 자꾸만
정성껏 정성껏
한 발 한 발
네 발자국 위에 내 발을 겹쳐본다
통장과 바다
통장을 보고 좁아졌던 마음이
바다를 보니 넓어진다
생활의 빚은 어쩌지 못해도
마음의 빚은 파도가 부숴준다 포말로
수평선에 시선의 끝이 닿는 것으로
마음 옥죄는 일들 훌훌 털어내고
증발해 날아가버릴 것 같다
친구는 아니라 했지만
나는 안다
망가진 잘못은 내게 있다는 걸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래 장난을 한다
나는 뒷걸음질로 바다를 본다
조금씩 멀어지는 건 나 뿐이고
청년들도 바다도 그 자리에 있다
새
너를 닮은 새를 봤다
작년에도 이맘때 같은 새를 봤다
너는 내 곁에 없다
작년에도 너는 내 곁에 없었다
작은 새는 총총거리며 콘크리트 마당을 노닌다
작은 새는 꼬리를 위 아래로 흔들며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너는 내 곁에 없다
너는 내 곁에 없을 것이다
작은 새는 벌레를 잡아서 어딘가로 날아간다
집으로 가나보다
나는 집이 없고
너는 내 곁에 없다
작은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새는 말이 없다
너는 영원히 내 곁에 없고
나는 그 시간만큼 아무말이 없다
그 여름
물에 잠긴 징검다리에서 아이가 실종되고
사람들은 빗속에서 아이 이름을 불렀다
새들은 다리 아래 숨어서 울었고
어떤 물고기들은 다리 위에서 살고자 펄떡 거렸다
아이는 집에 있었고
머리 위 창문을 흐르는 비를 바라보며
밤새 혼자 엄마를 기다렸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를 모질게 때렸다
사람들은 안도했고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줬고
집에는 쌀이 없었다
다음 태풍에 동네는 비에 잠겼다
엄마는 울었고 아이는 울지 않았다
올림픽도 시위대도 없었던 잊혀진 그 여름의 끝에
물이 빠져 갈비뼈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징검다리 주변에서
아이들은 개구리를 죽이며 놀았고
나는 끝내 울지 않았다
봄
봄에 파묻혔다
솟아 오르고 피어 오르는
어린 잎과 꽃 향기에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머리 위를 지난다
그 소리만 들어도 신나고 좋다
신나게 놀고 싶은데
봄에 파묻혀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함께 신난 사람이 옆에 없다
이런 내가 가엽진 않다
봄의 바깥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나도 불쑥 솟아 오르기를
언젠가 피어 오를 당신을 기다린다
오늘은 반짝반짝 날이야
햇살이 반짝
나뭇잎이 반짝
민들레가 반짝
개미들도 반짝
너도 반짝
나도 반짝
반짝반짝
살아있는 날이야
달이 반짝
별이 반짝
발걸음이 반짝
밤공기도 반짝
너도 반짝
나도 반짝
그리고
넌 나의 반쪽
봄 밤
강 건너
시작하는 연둣빛 버드나무 이파리 뒤로
붉은 꼬치구이 술집 간판 보인다
징검 다릴 건너 그곳에 가서
오래된 주인 아주머닐 만날까
바다쪽으로 내리 걸으면 그리운 집인데
정작 내 발걸음은 강물을 역행하고
무심코 들여다본 강물엔 흔한 내가 흔들린다
미풍에 실려 바람의 끝에 닿고
그곳에서 또 다른 바람에 실려 가기를 반복하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모든게 거짓이었던 것처럼
꿈이었던 것처럼
마치 아무일도 없았던 것처럼
운동화 위에 작은 나뭇잎 하나 떨어지고
빌걸음이 무겁다
그는
그는 대학 졸업 후에 바로 공기업에 입사했고
게임, 영화, 사진 같은 취미가 유행따라 있었고
중산층 소리를 듣고 살았다
스스로 이 정도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46살이 되던 해에 심정지로 죽었다
장례식장엔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많았다
갑자기 그럴 수 있는 나이라고 얘기하며 국밥을 먹은 친구들 중에 둘이 같은 해에 죽었다
아내와 두 딸, 약간의 재산 혹은 대출과 사망 보험금이 남았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통장과 주식잔고는 정리됐지만
이메일과 SNS 계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가 없이도 세상은 실체로 굴러가고
그의 이름은 실체도 없이 세상에 뒤섞여 있다
잊혀진 후에도
> 갑자기 죽는 일을 자주 생각한다. 2023년 4월.
얼룩말과 치킨
얼룩말을 봤다
주택가 골목에서
치킨 배달을 마치고
오토바이에 앉아서
눈이 마주쳤다
얼룩말이 울었다
얼룩말은 유유히 사라졌다
흰색과 검은색
내 삶에 두 줄을 새기고
결국 붙잡혀서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나는 태연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치킨을 먹었다
후라이드와 양념
닭은 두 줄을 남기고 죽었다
사람들이 얼룩말을 응원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죽은 닭을 생각했다
나도 얼룩말도 SNS를 안한다
나도 얼룩말도 외롭다
나도 얼룩말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