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음식이 아니라 음식점 이름을 먹는다
옷이 아니라 브랜드 이름을 입는다
캐슬이란 이름이 붙은 아파트에 산다
사람들이 그렇게 허명을 먹고 산다
삶이 아니라 이름을 산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다 네 이름을 알았다
네 이름을 부르면 온몸에 생기가 돈다
네 이름을 부르면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네 이름을 부르면 비로소 내가 내가 된다
니 이름이 아니라
니가 있어서
너를 사랑해서
그래서,
살아간다
이름없이
AND

이웃



주인집 할머니는 돈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이 좋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돈이 많아선지 돈을 더 벌려곤지
집 뒤에 셋집을 세 채 더 지었다
우리집은 그 중에 가운데 집이다

주인집 2층 남자는 오래 씻는다
매일밤 11시가 되면 샤워기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코도 풀고 가래도 뱉으며 열심히 씻는다
어떤날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샤워기에서 물 나오는 소리가 계속되면
아내는 가끔 밖에 비가 오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아직도 모르냐고 면박을 준다
그래 놓고 우리는 마주 보고 웃는다
그 남자는 가끔 중학생 딸을 혼낸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혼낸다
우리는 무서워서 옴짝달싹 못하고
남자의 호통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우리 옆집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랑 동갑이다
일거리가 없어서 거의 집에 있다
주말 오후에 마루에 가만히 있으면
아저씨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날에는 아들 내외가 손주를 데리고 온다
그러면 옆집에서 아기 웃음 소리와 울음 소리, 어른들 웃음 소리가 들린다
손주가 떠난 날 밤에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에게 욕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똑바로 안하면 이혼이라고 했다
옆집이랑 우리집은 마루가 붙어있다
아줌마의 욕설은 우리집 구석구석까지 퍼진다
며칠후에 아저씨랑 아줌마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며칠후에 아줌마는 또 소리를 질렀다
나랑 아내는 잠도 자지 못하고 아줌마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또 다른 옆집 아저씨는 혼자 사는데
어디서 무슨일을 하는지
아주 가끔 집에 온다
밤늦게 술에 취해서 온다
누구랑 같이 온 것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른다
몸을 가누기가 힘든지
쿵쿵 벽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 아저씨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잔다
다음날 아침에 옆집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있다

우리는 대체로 조용하지만
가끔 아내가 나에게 화를 낸다
그럴때면 아내보다 이웃들에게 미안하다

우리는 좋은 이웃들과 조용히 산다

AND

수평

바다는 기울지 않는다
바다는 수평이다
삶도 출렁거려봐야 수평이다
AND

35도 씨, 여름

과일가게 수박도 더워 보이는 날
몸이 쉰 옥수수가 되도록 일을 했다
삶이 괴롭고 형편이 좋지 않다고
푸념하는 동료와
개고기 전골을 먹고
호기롭게 계산을 했다
실내 온도 35, 샌드위치 판넬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아내에게
힘들다고 마음속으로만
괜한 짜증을 부렸다
찬물을 들이 부어도
식지 않는 몸뚱이가 얄밉다
덥다고 저리 떨어지라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찍소리도 못하고
등을 돌린채 잠을 청했다
삶이 괴로운 사람들을
나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전에 잠들었다
AND

8월 1일, 휴가, 강릉, 2015년

퇴근 후에는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읽었다
남들 다 가는 피서 대신 맛있는 거라도 먹자는 아내와
주말 저녁, 동네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계산을 위해 주방에서 나온 남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하다
혼자서 장사를 하는 주인 남자가 안타까웠다
힘드시겠어요, 하니
신경 못 써드려 죄송합니다, 한다
선량한 눈을 가진 전라도 사내의 말에서는 선함이 묻어 나온다
초면에 서로 미안한 사이가 됐다
사내는 어쩌다 강릉까지 오게 됐을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또 어쩌다가 강릉까지 왔을까
밥 한 번 사 먹는 일이
보통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세상에게 얼마나 큰 죄인가
보통날이 보통날이 아니다
AND

7월 23일, 휴가, 서울, 2015년

화장실 문을 여니 브람스가 흘러 나온다
양변기에서 엉덩이를 떼자마다 물이 저절로 내려간다
수도꼭지 아래 손을 갖다대니 자동으로 물이 나온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움직이기 시작한 에스칼레이터에선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자동의 결정체인 백화점 8층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한껏 멋을 부린 결혼 정보 업체 직원이
시골장터에서 노인들에게 약을 팔듯이 순진해 보이는 여자에게
계약서 작성을 유도하고 있다
고무신을 신고 끈적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걸어도
세상에 부끄러울 것 하나 없이 살았다고 생각해도
그렇고 그런 세상에 공범일 뿐이다
이런 생각조차 시끄럽다고 매미가 시끄럽다
AND

더위

다른 세계에서 온 종족처럼
약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7월의 오후를 걷는다
비현실적인 하늘과 구름
비현실적인 길과 사람들
비현실적인 녹색
비현실적인 몸상태
비현실적인 세계
비현실적인 너
사랑일까, 생각하다 뭉게지는 머릿속
태양 아래 녹아버린 나
너에게 무너져버린 나
비현실적인 나
녹아버린 세계
AND

매미

 

날이 더워야 운다

뜨겁다고 운다

한 번 왔다가 한 번 간다고
그러니 그냥 두라고
울기 위해 태어났다고

오래 기다렸다고
아직 며칠 더 남았다고
살고 싶다고 운다
뜨겁게 운다

AND

균열


너랑 나 사이에는 균열의 씨앗이 있어
그 씨앗이 부풀어 오르고 무럭무럭 자라면 안녕하는거지

너의 눈물로 균열의 씨앗에 싹을 틔워서
거름을 듬뿍 준 땅에 묻고 물을 줬더니
싹이 나왔다
때때로 물을 줬더니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내 키보다 큰 나무가 됐다
나는 나무가 잘 자라도록 근처의 풀을 베줬고
그러다 지치면 나무 그늘에 앉아 쉬었다
열매가 많이 달리라고
해마다 죽은 고양이와 개를 나무 옆에 묻었다
어느해 6월에 보라색 꽃이 피었다
너무 예뻐서 나비들은 길을 잃고
꽃을 본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꽃진 자리마다 갈라진 열매가 맺혔다
가을에 새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다가
장에 나가 팔았다
따내도 따내도 열매는 자꾸자꾸 달렸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였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열매를 사갔다
나는 먹지 않았다
머지않아 세계가 갈라졌고
나는 균열의 그늘에 앉아서 세상의 균열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AND

인생을 굵게 살면 굵은 똥을 싼다
가늘게 살면 가는 똥을
토끼처럼 순하게 살면 토끼똥을
어설프게 살면 설사를
개똥같이 살면 개똥을
밝은 마음으로 살면 향기로운 똥을
어두운 마음으로 살면 시커멓고 냄새나는 똥을 싼다
간당간당 살면 똥도 간당간당하다
삶이 굵지 않아도 많이 먹으면 굵은똥을
조금 먹으면 가는똥을
풀만 먹으면 초록색똥을
매일 같은 걸 먹는 나와 아내는 같은 냄새가 나는 똥을 싼다

꽃만 먹고 꽃똥을 누고 싶다
많이 먹고 많이 누고 싶다
내 똥 위에 벌들이 다녀가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꽃이 되어 피어날텐데
AND

고향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신영시장
인생의 8할을 살아낸 곳
강서구가 양천구가 되고
해마다 어린아이 하나씩 빠지던
똥냄새나는 개천은 메워지고
시장엔 이름이 생겼다
제비가 사람보다 낮게 날아다니던 시장 골목
친구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 명동라사
오락실 마치고 친구네 중국집에서 먹었던 짜장면
나랑 생일이 같은 친구가 살던 이불집 2층
함께 세들어 살던 곰보 아줌마네 붕어빵
은영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그 아줌마네 딸
친구들과 어울려 치고 받기도 하던 588 종점

그렇고 그런 세상에
그렇고 그런 나이가 된 친구들 모여
과거와 현재를
누구하나 특별히 다를 것 없는 현실을 마신다
마시고 또 마시면 과거는 되살아 나고 현재는 사라진다
비틀거리며 아버지 주무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곳이 고향이다
AND

안개

당신에게 가는 길을 알고 있지만
안개속에서 길을 잃고 싶었습니다
삽당령 정상 해발 680미터
버들고개 정상 해발 620미터
강릉시와 정선군의 경계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안개 속을 걷고 걷고 또 걷다가
안개가 걷히면 다시 길을 잃은 그 자리이길
다시 안개비 내리면
떠날 수 없는 몸이 안개와 하나 되어 길 위를 떠돌기를
그렇게 밤새 떠돌다가
아침 햇살에 부서져 영영 사라지기를 바랐습니다
당신과 헤어진 경계에서 쭉 머물다가
그렇게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개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AND

당신보다 오래
누구보다 오래
무엇보다 오래
지구보다 오래 살고 싶다
사라지지 않은 내가
절멸하는 인류와
식어가는 태양을 지켜보고 싶다
수 억 년 동안을 혼자 지내다가
외롭고 외로워서 흘린 눈물로
우주의 마지막을 적시고 싶다

그때 너에게 돌아가고 싶다

-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 살아야지
AND

미지의 세계

- 누군가는 계속 살아 왔지만 나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곳

- 밍밍한 귤처럼 시지도 달지도 않지만 그런데도 누군가 살고 있는 곳

- 나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곳

- 모든 신들이 사라진 곳

- 기대가 없이 살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왔다.

- 마음속엔 어떤 기대가 있지만 겉으론 아무 희망도 없는 척한다

- 내 발이 닿자마자 이 땅에 희망이 넘쳐 흐른다

- 나는 낯선 이방인

- 그곳에 모험은 없네 다만 낯선 바람이 불고 날선 비명 소리가 들린다

- 희망을 찾다가 너를 만났네. 너는 미지의 세계

- 오직 너만이 존재하는 세계

- 남국의 바닷가도 남극의 얼음벌판도 아닌 미지의 세계

- 새로운 곳에선 뭔가 다를 줄 알았지만 절망의 반대편에 도 다른 절망이 있었네

- 보통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미지의 세계


남국의 바닷가도 아니고
남극의 얼음 위도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곳
누군가는 계속 살아 왔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
모든 신들이 사라진 곳
시지도 달지도 않은 밍밍한 귤처럼
아무런 기대 없이 여기에 있고 싶다
이곳에선 낯선 바람만이 불고
간간히 날선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다
마음속에 희망을 버리지 못한 죄로
이곳에서 너를 다시 만났다
너는 여전히 나와 다른 種族
너는 미지의 세계
오직 너만이 존재하는 세계
절망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절망
나는 미지의 세계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세계

-> 완결성이 약함

AND

태풍 후


바람의 흔적만 남은 길을 새기고
그 길의 끝에서 춤추는 바다를
그 바다의 끝에 드리운 구름을 새겼다

구름을 따라 가다가
구름에 잠긴 산을 새기고
그 안에 자작나무 한 그루를 새겼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 연기와 연기를 피해 달아나는 나비를
나비가 내려 앉은 들꽃 한 송이를
옅은 공기와 꽃잎의 떨림을 새겼다

온종일, 빈 가슴에
너만 새기고 다녔다

모든 흔적 지워진 날
너만 지우지 못했다
AND

복숭아를 먹다

엄마 생각이 나면
바닷가에 가서 복숭아를 먹는다
복숭아 태몽을 꾼 엄마
물놀이를 마친 내게 복숭아를 건넸던 엄마
크게 한 입 깨물면 물큰 흐르는 과즙이 엄마 젖인 것 같다
사슴벌레가 복숭아 먹듯
나는 엄마를 먹고 자랐다
벌레 먹은 복숭아가 못쓰게 되듯이
엄마는 병들었다
복숭아는 흐르는 과일
흐르는 것은 눈물
엄마가 흘러간 삶을 따라 눈물이 흐른다
먼 데 있는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자꾸 생각나는 엄마


AND

구원


저녁을 먹고 누웠다
눈을 감으니 십자가가 반짝인다
다시 태어나기 싫어서
교회는 다니지 않는데
나에게 구원이 내리는 걸까
오늘 잘못한 일들을 벌하려는 걸까
새벽에 나가서 일당 7만 원 짜리 풀베기 한 것이 죄인가
풀들에게 사죄해야 하나
일이 힘들어서 담배를 많이 피웠다
내 마음대로 담배도 못 피우나
퇴근길에 혼잣말로 앞차 운전자를 욕했다
저녁 뉴스를 보다가 대통령을 욕했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욕도 못하나
생각하는데
십자가에 메시아의 그림자가 겹친다
아내가 눈을 뜨라고 한다
형광등이 십자가 모양이다
방에 누워서 아내에게 구원 받았다

AND

악몽 4


눈을 감고 있어도 안다

얼굴이 없는 존재가
내 입을 벌리고 가윗날을 갈고 있다
내 가슴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히죽거리며 무쇠 가위를 갈고 있다
침이 고인다
쇳물이 고인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도 된 거 같은 기분이다
구원자가 말한다
철은 드는 게 아니라 먹는거다

쇳물을 삼키고
철도 못든채 잠에서 깼다
AND

새벽 네 시, 편의점

허우대가 멀쩡한 청년이 편의점 앞에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두리번 거린다
너도 오늘 헤어졌구나
너는 젊고 허우대라도 멀쩡하지
입술 앞에까지 튀어 나왔던 말을 삼켰다
그 친구 옆에 주저 앉아 울어버렸다
계산대에 술병을 올렸다
마스크를 쓴 알바생이 반사적으로 디스에 손을 뻗길래
까멜을 달라고 했다
메르스에라도 걸려 버릴까
이름도 모르는 그녀와 나를 이어주던 실타래가 한 순간에 끊어졌다
어차피 오늘은 끊어진 날이다
모든 만남은 헤어져야 한다
허나, 그것이
모든 생에 끝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하여, 이별은 결코 끝이 아니다
허나, 오늘까지는
아니, 언제까지는
오늘의 이별을 끝으로 하자
그리고 살아가자
그래도 살아가자
AND

들꽃

 

꽃을 피우기 전까지
아무도 나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다
누가 내 이름을 물으면...
그냥 풀이라 했다
잡초라 했다

꽃을 피우고 나서도
몇 번의 눈길만 받았다
누가 내 이름을 물으면
모른다고 했다
쓸모 없는 꽃이라 했다

허나, 나는 내 우주를 살았고
이 우주를 이어갈 꽃을 피웠다

AND

해바라기

 

향기 없는 꽃이 교차로에서 냄새를 맡는다
꿈의 경계에서 헤어진
연인의 냄새를 찾아 나섰다
잘려나간 풀냄새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해바라기 모양의 간판을 단 선술집을 만났다
여주인이 테이블에 꽃안주를 내밀었다
- 당신, 해바라기 향기가 나네요
- 그게 제 이름인가요? 해바라기도 향기가 있나요?
여주인이 꽃술을 잔에 따랐다
- 향기 없는 꽃이 있나요?
- 저는 향기를 잃었어요
향기 없는 꽃이 술을 마셨다
- 제가 당신의 향기를 맡았으니 이제부터 당신은 저의 꽃이에요
- 아니오. 저는 다시 길을 떠나야만 해요
- 그렇다면 해를 따라 걸으세요
향기 없는 꽃은 해를 따라 걸었다
해바라기 향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해가 그날의 마지막 빛을 길의 끝에 머금었다
그곳에서 여주인을 다시 만났다
웃고 있는 여인에게서 헤어진 연인의 냄새가 났다
해바라기 향기가 났다
AND

마당에서

까마귀 우니
개가 짖는다
고양이는 툇마루에 동그마니 앉았다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울다가 짖다가 주저 앉았다


상반기 끝 ^^
AND

벌의 노래


하품을 하는데 입 안에 벌이 들어왔다
얼른 입을 닫았다
입 안에서 벌이 춤을 췄다
그 소리가 몸 전체에 울렸다
몸이 저절로 춤을 췄다
혀를 말았더니
놈이 혀 끝을 쐈다
아파서 이를 앙시물었다
찍, 소리가 났다
씹어 삼켰다
쏘인 혀가 놈의 날개와 몸과 눈과 꼬리를 느꼈다
어쩐지 단 맛이 났다
혀가 붇기 시작하고
갑자기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온몸을 떨며 노래를 불렀다
부은 혀가 입을 틀어 막았는데도
계속해서 달콤한 노래가 나왔다
붕붕붕 붕붕붕
내 주위로 몰려든 벌들이 춤을 췄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주사를 놔줬다
붓기가 가라앉고 노래가 멈췄다
벌들은 떠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었다

AND

괜찮아

  

1밀리 차이로 괜찮아가 쇈찮아가 된다
괜찮아 그냥그냥 사는거지
쇈찮아 그냥그냥 사는거지
괜찮든 시원찮든
그냥그냥 사는 건 다 똑같다
암만해봤자
밥 한끼 먹는 건 다 똑같다
세상에 쓰레기나 하나 더하고 가는 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건
도처에 즐비한 삶 중에 하나인 건
여기에 이런 삶이 있습니다, 라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런 삶이 있는 건
나무 한그루, 밤바다, 당신
그것이 무엇이든
기대어 사는 건 다 똑같다
1밀리 차이로
다 똑같다
AND

빈 가게


사랑하는 당신,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방 외상값은 기름 종이에 적어두고
비 오는 날은 빈 가게에서 만나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텅 빈 가게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빈 가게에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은 공허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부둥켜안고 먼지투성이의 바닥을 뒹굽니다
서로의 뼈와 살을 탐합니다
주인도 없고 물건도 없는 그곳에선
텅 빈 진열대만이 우리를 훔쳐 볼 거예요
그 시선이 부끄럽다면 부끄럽지만 그렇게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모든 열기를 뿜어내고서
우리는 서로의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웃습니다
그리곤 입을 맞춥니다
사랑의 기쁨이 텅 빈 가게를 가득 채울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주인 없는 카운터에 빈손을 내밀고 가게를 나옵니다
우리는 뼈다귀 해장국도 먹지 않고 헤어집니다
어차피 지금 내리는 비가 우리의 끈적함을 씻어낼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먹어도 먹어도 생도 사랑도 공허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비 오는 날의 빈 가게는 그런것이기 때문이에요
내 사랑,
우리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요

AND

아이들은 즐겁고
가족들은 집요하다
세상은 썩었고
나는 병들었다
하늘은 투명하고
거리는 우울하다
내 마음 속의 불온을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놈들이고
그걸 아는 나는 더 나쁜놈이다
그 간격을 메우기가 어렵다
이 비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 주말 내내 안 좋았다.
AND

삐딱하게


며칠동안 오른쪽 어깻죽지가 뻐근뻐근 하더니 날개가 돋았다
또 며칠동안 그 자리가 간질간질 하더니 날개가 내 키만큼 자랐다
입을 옷이 없어서 웃통을 벗고 편의점에 갔다
컵라면 값을 계산하면서 날개를 펄럭거렸더니 알바생이 웃었다
자신감이 생겨서 소주도 한 병 같이 샀다
취해선지 날개 때문인지 몸이 삐딱하니 세상이 삐딱해 보이고
사람들은 나를 외날개라고 병신이라고 놀렸다
나쁜짓을 많이해서 벌을 받았을까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건물 옥상에 올랐다
외날개 때문인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인지 세상이 계속 삐딱하게 보였다
마음속으로 착하게 착하게를 조곤조곤 말했다
착하게 착하게
삐딱하게 삐딱하게
떨어진다 떨어진다
수평이 된다

-> 마무리가 잘 안되네
AND

완벽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듣다가 아내의 숨과 내 숨을 겹친다
품안에 잠든 고양이의 배에 손을 얹고 있다가 그르렁거리는 그 작은 몸의 움직임에 내 숨소리를 얹는다
홀로 완벽한 것은 없다
AND

친구가 없는 친구의 가게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친구이거나
친구의 친구이거나
내 친구이거나
누구의 친구도 아닌 누군가를 기다린다
어쩌면 나는 너를 기다린다

이것은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고
오지 않을 답장을 기다리는 일
마음속으로만 너을 외쳐 부르는 일
눈물이 마르기 전에 눈물을 다시 채워 넣는 일

바다는 저만치 저물어 가는데
누구도 친구의 가게를 찾지 않고
그래서 나는 나를 기다린다
새벽이 오도록 나는 오지 않는다
나는 내 발끝도 벗겨내지 못했다
AND

독재자


쿠테타를 일으켜서 독재자가 되야겠다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재자가 될 것이다

군대를 없애야겠다
군대 없는 나라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청년들은 나를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다
군사 쿠테타는 역사속의 일로만 남을 것이다

사교육을 없애야겠다
학원이 없어지니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사교육의 원흉인 대학교도 없애야겠다
내 나라는 학벌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아파트를 없애야겠다
층간 소음으로 사람이 죽는 일도 없고
임대 아파트 산다고 무시 당하는 사람들고 없고
주민의 멸시를 못이겨 자살하는 경비원도 없을 것이다

골프장을 없애야겠다
전 검찰총장이 캐디를 성희롱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검찰 얘기가 나온 김에 검찰도 없애야겠다
경찰도 없애서 사람들이 마음껏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기업 총수가 나에게 뇌물을 주면 뇌물은 뇌물대로 받고 법인세는 더 올려야겠다
내가 받은 뇌물로는 맛있는 걸 사 먹고 올려 받은 세금으로는 국민들을 먹여야겠다
말을 안 들으면 재벌을 해체하는 것도 괜찮겠다

내 마음대로 법을 바꿔야겠다
먹는걸로 장난치는 사람은 평생 감옥에서 자기들이 팔아치운 것만 먹도록 해야겠다
광화문 광장을 불구덩이를 만들어서 내 마음에 안드는 놈들은 다 거기에 던져넣겠다

원전을 없앨 것이다
밀양의 할매들이 얼마나 나를 좋아할까
전기가 모자라다고 하면 서울 한복판에 초대형 원전을 만들어도 좋겠다

교회를 없애야겠다
교인들은 십일조를 안 내도 되니 참 좋겠다
천당에 못가서 불안할까
아니, 기도만 하고도 천당에 간다고 생각하니 좋을 것이다.

부정선거가 판치지 않도록 선거제도도 없애고
비정규직이 문제니 기업들을 싹 다 없애야겠다
대법관들의 목을 자르고
혼자서 내 마음에 맞게 헌법을 써야겠다

뭐든 문제가 생기면 다 없애야겠다
독도도 없애고 국회도 없애고 fta도 없애고 여객선도 없앨것이다
노점상 단속 못하게 노점상 다 없애야겠다

순서대로 없애기도 귀찮으니 한꺼번에 싹 없애야겠다
이렇게 다 없애고 나면 누구도 나를 못 없앨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제일 큰 문제니 나를 없애야겠다

자식을 갖지 않을테니
사람들은 오직 나만을 위대한 독재자로 기억할 것이다

독재자가 되기전에
우선 해장술부터 먹어야겠다

-> 언젠가 장난으로 써둔 것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