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아니라 음식점 이름을 먹는다
옷이 아니라 브랜드 이름을 입는다
캐슬이란 이름이 붙은 아파트에 산다
사람들이 그렇게 허명을 먹고 산다
삶이 아니라 이름을 산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다 네 이름을 알았다
네 이름을 부르면 온몸에 생기가 돈다
네 이름을 부르면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네 이름을 부르면 비로소 내가 내가 된다
니 이름이 아니라
니가 있어서
너를 사랑해서
그래서,
살아간다
이름없이
날이 더워야 운다
뜨겁다고 운다
한 번 왔다가 한 번 간다고
그러니 그냥 두라고
울기 위해 태어났다고
오래 기다렸다고
아직 며칠 더 남았다고
살고 싶다고 운다
뜨겁게 운다
미지의 세계
- 누군가는 계속 살아 왔지만 나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곳
- 밍밍한 귤처럼 시지도 달지도 않지만 그런데도 누군가 살고 있는 곳
- 나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곳
- 모든 신들이 사라진 곳
- 기대가 없이 살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왔다.
- 마음속엔 어떤 기대가 있지만 겉으론 아무 희망도 없는 척한다
- 내 발이 닿자마자 이 땅에 희망이 넘쳐 흐른다
- 나는 낯선 이방인
- 그곳에 모험은 없네 다만 낯선 바람이 불고 날선 비명 소리가 들린다
- 희망을 찾다가 너를 만났네. 너는 미지의 세계
- 오직 너만이 존재하는 세계
- 남국의 바닷가도 남극의 얼음벌판도 아닌 미지의 세계
- 새로운 곳에선 뭔가 다를 줄 알았지만 절망의 반대편에 도 다른 절망이 있었네
- 보통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미지의 세계
남국의 바닷가도 아니고
남극의 얼음 위도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곳
누군가는 계속 살아 왔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
모든 신들이 사라진 곳
시지도 달지도 않은 밍밍한 귤처럼
아무런 기대 없이 여기에 있고 싶다
이곳에선 낯선 바람만이 불고
간간히 날선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다
마음속에 희망을 버리지 못한 죄로
이곳에서 너를 다시 만났다
너는 여전히 나와 다른 種族
너는 미지의 세계
오직 너만이 존재하는 세계
절망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절망
나는 미지의 세계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세계
-> 완결성이 약함
구원
저녁을 먹고 누웠다
눈을 감으니 십자가가 반짝인다
다시 태어나기 싫어서
교회는 다니지 않는데
나에게 구원이 내리는 걸까
오늘 잘못한 일들을 벌하려는 걸까
새벽에 나가서 일당 7만 원 짜리 풀베기 한 것이 죄인가
풀들에게 사죄해야 하나
일이 힘들어서 담배를 많이 피웠다
내 마음대로 담배도 못 피우나
퇴근길에 혼잣말로 앞차 운전자를 욕했다
저녁 뉴스를 보다가 대통령을 욕했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욕도 못하나
생각하는데
십자가에 메시아의 그림자가 겹친다
아내가 눈을 뜨라고 한다
형광등이 십자가 모양이다
방에 누워서 아내에게 구원 받았다
들꽃
꽃을 피우기 전까지
아무도 나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다
누가 내 이름을 물으면...
그냥 풀이라 했다
잡초라 했다
꽃을 피우고 나서도
몇 번의 눈길만 받았다
누가 내 이름을 물으면
모른다고 했다
쓸모 없는 꽃이라 했다
허나, 나는 내 우주를 살았고
이 우주를 이어갈 꽃을 피웠다
향기 없는 꽃이 교차로에서 냄새를 맡는다
벌의 노래
하품을 하는데 입 안에 벌이 들어왔다
얼른 입을 닫았다
입 안에서 벌이 춤을 췄다
그 소리가 몸 전체에 울렸다
몸이 저절로 춤을 췄다
혀를 말았더니
놈이 혀 끝을 쐈다
아파서 이를 앙시물었다
찍, 소리가 났다
씹어 삼켰다
쏘인 혀가 놈의 날개와 몸과 눈과 꼬리를 느꼈다
어쩐지 단 맛이 났다
혀가 붇기 시작하고
갑자기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온몸을 떨며 노래를 불렀다
부은 혀가 입을 틀어 막았는데도
계속해서 달콤한 노래가 나왔다
붕붕붕 붕붕붕
내 주위로 몰려든 벌들이 춤을 췄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주사를 놔줬다
붓기가 가라앉고 노래가 멈췄다
벌들은 떠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었다
1밀리 차이로 괜찮아가 쇈찮아가 된다
빈 가게
사랑하는 당신,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방 외상값은 기름 종이에 적어두고
비 오는 날은 빈 가게에서 만나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텅 빈 가게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빈 가게에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은 공허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부둥켜안고 먼지투성이의 바닥을 뒹굽니다
서로의 뼈와 살을 탐합니다
주인도 없고 물건도 없는 그곳에선
텅 빈 진열대만이 우리를 훔쳐 볼 거예요
그 시선이 부끄럽다면 부끄럽지만 그렇게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모든 열기를 뿜어내고서
우리는 서로의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웃습니다
그리곤 입을 맞춥니다
사랑의 기쁨이 텅 빈 가게를 가득 채울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주인 없는 카운터에 빈손을 내밀고 가게를 나옵니다
우리는 뼈다귀 해장국도 먹지 않고 헤어집니다
어차피 지금 내리는 비가 우리의 끈적함을 씻어낼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먹어도 먹어도 생도 사랑도 공허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비 오는 날의 빈 가게는 그런것이기 때문이에요
내 사랑,
우리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