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국을 먹다

마주 앉은 사람은 설렁탕을
나는 만두국을 먹는다
뽀얀 뼛국물 안에
고기를 갈아 속을 채운 만두가 잠겨 있고
남의 살을 먹는 주제에
먹으면 피가 잘 돈다는 파도 잔뜩 넣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고기를 건져 먹다가 웃는다
나는 만두를 건져 먹다가 웃는다
살다보면 누군가와든 마주앉아 뼛국물을 먹는 일이 있다
친한 친구나 덜 친한 친구
처음 보는 사람 또는 자주 보는 사람
연인이거나 연인이었던 사람
방금 이혼 수속을 마친 전 아내
누군가와는 마주 앉게 된다
지금 내 앞에선
곧 나를 떠날 사람이 웃는다
뼛국물을 삼키며 웃는다
입안에서 만두가 터지고
만두에선 시큼한 김치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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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뻘의 직장 동료랑 열정에 대한 얘기를 했다.

어제 같이 걷다가 운동장에서 불을 밝히고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봤다. 조금 있다가는 족구클럽 사람들이 족구 하는 걸 봤다. 밤 10시 경의 일이다. 올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29살 친구가 자기는 족구하는 사람들 같은 열정이 없어진지 오래된 것 같다며, 저런 사람들보면 부럽다고 했다. 나는 잠깐 생각해보고 어렸을때부터 열정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 다음 웃고 말았다.

열정이란 게 불같은 사랑과 비슷한 걸까? 기타를 처음 시작해서 하루에 10시간을 치기도 했던 일을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동료가 그런 열정을 얘기한 거라면 그 친구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것도 열정에 포함된다. 20대 중반에 지금 아내 만난다고 용인에서 술 먹다가 택시타고 대학로 왔던 생각이 났다.

열정 얘기를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또 다른 조카뻘의 직장 동료랑도 열정 얘기를 했다. 공무원 시험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눈이 동태 눈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도 열정으로 공부한 게 아니라고 했다. 얘기의 결론은 가장 열정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은 사랑 뿐인 것으로 났다.

그리고 나는 동태눈깔로 회사 다니고 있다.

평생을 가져가는 열정이 있나?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한 거 같다. 혜은이 노래도 생각나고, 열정이 있으니 울었을 것이다. 안개속에서든 어둠속에서든.

처음 열정을 얘기했던 친구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해서 서울시로 가기로 했다. 계절마다 한 명씩,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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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를 먹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유행하고
돼지들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데
나는 나랑 사장님 뿐인 가게에서 돈까스를 먹는다
세상에 흔한 비오는 오후 네 시에
비 오는 오후 네 시보다 흔한 돈까스를 먹는다
언제부터 돈까스가 흔해졌나
언제부터 돼지고기가 흔해졌나
사람보다 흔한 돼지고기
흔해지고 나면 전멸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좋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군
만날 딴 생각만 하고 있는 나를 닮았다
묵직한 소스가 뱃속에 달콤하게 퍼진다
안도감을 주는 맛이군
어떤 돼지들은 죽고 나는 살았다
어떤 사람들은 죽고 나는 살았다
살아서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날
혼자서 돈까스를 먹는다
모질게 살겠다고 모듬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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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차를 먹다

 

점심으로 뼈해장국을 먹고

후식으로 생강차를 마시는 오후

대추차를 마시려고 했는데 대추가 다 떨어졌대서

대추차를 못 마시고 생강차를 마시는 오후

조카뻘 나이의 동료와 마주앉아 해장을 말하고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생강차를 마시는 오후

생이 가볍길 바라며

찻잔 위에 둥둥 떠 있는 잣을 씹는 오후

찻잔 바닥엔 무거운 생각같은 생강조각

일부러 끝까지 비우지 않은 찻잔 속을 들여다 보게 되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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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산다면

.....
이대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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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 일기

그때그때 2019. 9. 10. 17:50
누추함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것 같은 삶, 이라고 최근에 적었다.

아내의 우울이 나에게로 옮겼다. 그렇다고 아내가 쾌활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둘 다 깝깝한데, 내가 더 깝깝하다.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뽑아내려는데, 손이 칼손잡이에 붙어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칼도 못 빼고 손도 안 떨어지는 찝찝함. 아직 울지 않았지만 이런 기분은 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하필 이럴 때 토요일 당직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집에 내려갔다. 각자 자기 할 거 하면서 놀아도 아내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 

'유열의 음악앨범'을 봤다. 정해인 멋있더라, 목소리도 좋았다. 정해인도 우울할 때가 있겠지. 영화는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 는 얘기다. 그 사이사이에 선택이 있다. 라디오 영화라 봤는데, 나보다 네 살 많은 사람들 이야기라 어느정도 몰입이 됐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있기 싫은 곳(정선)에 있는 것도 배우자와의 사별만큼은 아니지만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그런 사람들이 잔뜩 있는 회사가 어떻게 잘 굴러가겠나.

어제 윗줄까지 적었다.

오늘은 몸살이 났다. 출장을 가느라 운전을 하는데 무릎이 뜨거웠고, 잠시 커피 마시다 화장실에 들렀는데 오줌에서 피로의 냄새가 났다. 요오드 냄새 같은거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 게 있다.

추석에 근무가 잡혔다. 9월 중순인데 추석이라고 산불근무를 서게됐다. 근무서라고 하는 사람이나 그걸 중간에서 커트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근무 서는 놈이나 똑같다. 

피곤한 계절이다.

근무는 안서게 됐다.

그래도 피곤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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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싸는지
싸기 위해 먹는지
먹고 살기 위해 싸는지
먹고 싸기 위해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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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가을로 가는 주말
아내는 우울병에 걸렸고 
멀리서 친구가 다녀갔다
다른 친구와는 커피를 마셨고
아내랑 호수를 한 바퀴 돌고서
바다 옆에 한참을 있었다
뭔가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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