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9/08 | 5 ARTICLE FOUND

  1. 2019.08.30 20190830까지 사진 모음 2
  2. 2019.08.29 20190830 - 어쩌다 하나씩
  3. 2019.08.23 20190823 - 어쩌다 하나씩
  4. 2019.08.16 20190816 - 치앙마이 생각
  5. 2019.08.02 20190802 - 우울에 대한 생각

아기소나무
가리왕산 정상(바람에 치우친)
정선 제2교
사마귀
강바닥
폐허(투구꽃?)
가리왕산 하봉
강바닥(가을)
강바닥(겨울)
겨울지붕
분비나무 새잎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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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꽃

매번 사랑이 끝나고나면
열병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오르는 마른 꽃
온 몸 구석구석 간지럽게 마른 꽃
피지도 않고 저물지도 않는  꽃
마른 꽃
살아 있지 않지만
살아온 자리자리 기억하라고 피어나는 마른 꽃
작은 기억의 흔적마다 마른 꽃
간지러운 기억들 잊으려 긁은 자리마다
상처로 피어오른
마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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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에서

어느 방향에서건 최초의 파란불이 있었을 사거리 신호등
순서를 지켜 길을 건너는 자동차와 사람들
뜻없이 걷다 붉은 신호등이 사거리 한 모퉁이에 나를 멈춰 세웠을 때
문득,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생각했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을 것이고
그게 지금이라면 좋겠다 생각했다
신호가 바뀌고 내게 다가오거나 내게서 멀어지는 사람들
다시 신호가 바뀌고 나를 지나치는 자동차들
한 번 더 신호가 바뀌었을 때,
굳었던 마음이 풀리고 길을 건너는 대열에 합류했다
뜻없이 걷다가 시작도 끝도 중요하지 않은 사거리에서
다시 붉은 신호를 만났을 때
문득,
이대로 계속 나아가도 좋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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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쓴다.

오늘밤 비행기로 여길 떠난다.

치앙마이는
기념품 가게 악어들도 합장을 하고 있고 들개가 많은데 개들이 대체로 말랐다.
야시장이랑 - 낮에는 더워서? - 마사지 가게가 많다
풀밭에 땅콩이 많고 - 밥 볶을 때 땅콩기름을 쓴다고 함. 짜장면에 돼지기름 쓰는 거랑 비슷한 느낌. - 나무들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치앙마이에서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영화 '기생충'을 봤다. 초중반이 지루했지만 마지막에 몰아칠 때는 임팩트가 있었다. 남의 집을 제집처럼 생각했다가 사단이 나는 스토리.
온통 태국어에 사진도 몇 장 없는 메뉴판이 있는 식당에서 저녁 사 먹었다. 두 가지는 제대로 나왔는데 족발덮밥 대신 모닝글로리 볶음이 나왔다. 맛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마사지를 받았다. 시원했다.
인피니티 풀이 뭔지 알았고 거기서 수영했다. 좋았다.
먹고 걷고 먹고 걷고 먹고 걷지 않고 먹기도 했다. 주로 먹었는데 다 맛있었고, 아내 입맛에 맞아서 좋았다. - 난 대체로 뭐든 다 잘 먹음 - 볶음밥 먹느라 국물 쌀국수는 몇 번 못 먹었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나라에 와서 그 나라 사람들은 시세로 사 먹는 밥을 싸다고 생각하면서 사 먹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보다 물가 비싼 나라도 별로 없지.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계획이 없는 게 최고의 계획일 수 있듯이 생각이 없는 게 최고의 생각일 때도 있으니까.

아내의 결정에 따라서 앞으론 비행기 타고는 제주도도 안 가기로 했다. - 기후 위기에 악영향을 주는 일을 줄이겠다고 함 -

며칠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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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 또는 생의 허망은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삶에서도 작은 구멍을 찾아서 기어이 밀고 들어온다.

​ 체험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 이라고 얼마전에 적어뒀다. 특별히 잘 하는 게 하나도 없고 돈도 없고 당장 내년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우울과 관련이 있고, 내 우울과도 관련이 있다.

 누구나 한 가지씩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모두가 '생활의 달인'에 나오거나 이름을 떨치는 예술가나 유명인사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삶은 자기가 잘 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흘러가는 삶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진다. 살면서 직업으로 삼거나 돈을 벌었던 여러가지 일들처럼 농사를 지었던 2년도 체험들 중에 하나 뿐이었을까, 생각하면 뜨끔하고 우울하다. 농사 지을 때 농사에 100프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지 못할 여러 조건들이 있었지만 내가 좀 더 기술이 있고 생각이 있고 농사에 적성이 있었다면 '체험'이란 단어를 떠올리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지금 일은 천직이라 생각하고 초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영부영 산다.

​ 기술자나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삶. 근데 그게 어때서!

​ 인류는 망해가고 있지만 인류의 시작부터 세상은 다 서로에게 기대서 - 착취라는 말도 좋다. - 돌아가고 있고 모두가 어느 부분에선가 지금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 기여하고 있다, 는 말도 좋다.

​ 어제 '정원가의 열두달'을 읽었다. 카렐 차페크는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고 그의 형은 삽화를 그리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만들고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시간이 흘러서 한국의 출판사에서 번역을 해서 출판하고 절판된 것을 다시 복간해서 출판하고 서점과 도서관으로 책이 옮겨지고 나는 빌려읽은 책을 반납하고 누군가는 또 그 책을 읽고 그 책 속에서 내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 어쩌면 말라붙은 고추가루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 이 모든일에 연루된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남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런식이다.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 왜 이런 얘기를 썼냐면 어제 저녁에 회사 사람 하나가 나한테 욕하길래 나도 같이 욕했다. - 나는 술을 안 마셨고 상대방이 혼자 술에 취한 상태라서 때리지는 않음 - 나는 마음의 어느 구석에 나한테 못되게 굴면 가만히 안 있는다, 란 문장을 품고 있다. 나한테 먼저 욕한 사람도 마음속에 뭔가를 품고 있는데, 그게 터져나왔을 것이다. 이해는 하는데, 이해만 한다. 그래도 때리지는 말아야지.

​ 우리 회사에 일용직 아저씨들까지 50명 정도가 다니는데, 각자 자신들의 체험으로 살아온 50명이 있다보니 당연히 여러가지 갈등이 있다. 생이 끝날때까지 아니, 인류가 끝날때까지...

​ 생이 어지러운 친구 하나가 좋은 삶은 헷갈리지 않는 삶인 것 같다고 했는데, 좋건 나쁘건 어중간하건 헷갈리면서 가는게 삶이고 살아 있으면 누구나 다 어떤 삶을 산다, 는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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