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24/05/08 | 1 ARTICLE FOUND

  1. 2024.05.08 20240508 - 어버이날, 불효자 생각

 엄마 생일이 음력 3월 25일이란 건 알고 있는데, 깜빡 잊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못하고 지나갔다. 엄마랑 이틀에 한 번 꼴로 통화하긴 하는데, 생일 축하를 못한 건 내 불찰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다. 운동중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맞다. 엄마 오늘 건강검진 받는다 했는데.' 떠올렸다.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지난 4일에 엄마랑 JJ 삼촌이 아버지 보러 강릉 왔다갔다. 어린이날 연휴의 첫날, 경기도 오산에서 강릉까지 자동차로 7시간 걸렸다. 엄마가 일찍 도착할 줄 알고 외출 시작 시간을 11시로 잡았기에 아버지랑 나랑 둘이 밥 먹었다. 아버지 서울 떠나던 날 청량리역에서 냉면 같이 먹고 나서 거의 100일만이었다. 생갈비를 먹다가 냉면을 시켰다. 어쩌다보니 또 냉면을 먹었네. - 아버지는 냉면을 포함해서 면을 좋아한다. - 아버지는 젖가락질 조금 하다가 잘 안되니까 숟가락으로 냉면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먹는데도 면이랑 국물이 자꾸 테이블 위로 흐른다. 살짝 안타까웠지만 아버지는 맛있게 잘 먹었다. 오늘 기준으로 아버지 요양원 입소한 지 100일이 넘었다. 100일이란 시간이 아버지가 흘린 냉면 국물처럼 흘렀다. 100일이란 시간동안 아버지는 더 많은 일들을 잊었고 좀 더 잘 잊는 사람이 됐다.
 식사 전후로 아버지랑 요양원 바로 근처에 있는 커피숍 주차장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앉아서 볕도 쬐고 이런저런 얘기 했던 걸 기억해 둔다. 아내가 밭에 갔다가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왔고 텅빈 주차장에서 주차를 어떻게 할까 머뭇거렸고 나는 차도 별로 없으니 주차 신경쓰지 말고 그냥 내리라고 했고 아내가 '아버님' 이라고 했을 때, 아버지가 반가워했던 그 순간이 그림처럼 좋았다.
 엄마랑 JJ 삼촌은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정말 반가워 했다. 엄마도 반가워했고 엄마를 반가워한만큼 삼촌도 반가워했다. JJ 삼촌은 방위 제대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집에 살기 시작했고 - 첫 직장을 아버지가 잡아 줌 -  내 동생이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랑 둘이 한 집에 살았기에 정말 오래 같은 집에 산 형제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이름을 잊은 아버지가 형제들 중에 JJ 삼촌 이름은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싫든 좋든 정이다.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 삼촌 아내 나 이렇게 넷이서 감자 옹심이 먹고 헤어졌다. 삼촌한테 '네가 고생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밤에는 가정의 달에 내가 해야할 일을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사실은 엄마 생일도 깜빡 잊는 불효자다.
 
 우울감이 계속 깊다. 병원에 약 타러 가려고 하는데,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생활에 치인다,는 말을 생각한다. 어린이날이 생일인 형에게 생일 다음날  '형 생활에 치여서 생일 축하 연락도 못했네. 축하하고 나이 먹을수록 친구는 적은 게 좋다고 정약용 선생이 말했대.' 라고 했더니 엄지척! 했다는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이 고마웠다. 이런 사소한 기쁨과 항상 옆에 있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하루하루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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