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쟁탈전

2007. 8. 24. 22:29
그럼 그냥 듣기만 해요, 내가 선생님한테 전화한 건 외로웠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내 건강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마리아 사라. 내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마리아 사라, 난 당신이 좋아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정말이에요. 그 말을 하려고 뜸을 참 많이도 들였네요. 어쩌면 절대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왜요. 우린 서로 달라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요. 선생님과 내 세계의 차이점에 대해 선생님이 뭘 알아요. 짐작하고 관찰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는 있죠. 그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옳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틀린 결론을 내릴 수 도 있어요. 맞아요, 지금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왜요. 난 당신 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혹시 당신이. 결혼했냐고요. 예,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약속한 사람이 있냐고요, 이건 구식 표현이지만.  예. 뭐, 내가 이미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이 날 좋아하지 않게 될까요. 아뇨. 만약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나요, 내 마음이 그런데도. 잘 모르겠어요.그럼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걸 선생님도 알고 있군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예, 그래요. 저기요, 마리아 사라. 얘기하세요, 라이문두, 하지만 먼저 말하는데, 난 삼년 전에 이혼했고, 석 달 전에 남자와 헤어진 후로 아직 아무도 사귀지 않았어요, 아이는 없지만 무척 아이를 갖고 싶어요, 지금 결혼한 오빠와 같이 살고 있는데, 아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내 올케예요, 어제 당신 집에서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 여자는 당신 파출부죠, 자, 교정자 씨, 이제 말해도 돼요, 내가 이렇게 성질을 부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너무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왜 나를 좋아하는 거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선생님이 좋아요. 그럼 일단 나를 알고 나면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런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죠, 사실, 아주 자주 일어나요.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로를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난 당신이 좋아요. 난 그 말을 믿어요.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문장을 쓰는 법도 내용도 다 너무 좋다. 돌뗏목 때 처럼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다. 부러워만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라마구씨. 아직도 '히카르도 헤이스가 죽은 해'가 번역되길 기다리면서.....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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