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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4 20050810
  2. 2007.08.24 리스본쟁탈전
  3. 2007.08.24 야채사 - 김경미
  4. 2007.08.24 라펭 아질에서 - 박정대
  5. 2007.08.24 20060928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1

20050810

2007. 8. 24. 22:32

 입추가 지나자마자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직 말복은 안지났을텐데...ㅋㅋ


   우리들의 양식                 -이성부-


모두 서둘고, 침략처럼 활발한 저녁
내 손은 외국산 베니어를 만지면서
귀가하는 길목의 허름한 자유와
뿌리 깊은 거리와 식사와
거기 모인 구릿빛 건강의 힘을 쌓아둔다.
톱날에 잘리는 베니어의 섬세,
쾌락의 깊이보다 더 깊게
파고들어 가는 노을녘의 기교들.
잘 한다 잘 한다고 누가 말했어.
빛나는 구두의 위대를 남기면서
늠름히 돌아보는 젊은 아저씨.
역사적인 집이야, 조심히 일하도록.
흥, 나는 도무지 엉터리 손발이고
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
해머 소리, 자갈을 나르는 아낙네가 십여 명,
몇 사람의 남자는 철근을 정돈한다.
순박하고 땀에 물든 사람들
힘을 사랑하고, 배운 일을 경멸하는 사람들,
저녁상과 젊은 아내가 당신들을 기다린다.
일찍 돌아간다고 당신들은 뱉어내며
그러나 어딘가 거쳐서 헤어지는
그 허술한 공복
어쩌면 번쩍이는 누우런 연애.
거기엔 입, 입들이 살아 있고 천재가 살아 있다.
아직은 숙달되지 못한 노오란 나의 음주,
친구에게는 단호하게 지껄이며
나도 또한 제왕처럼 돌아갈 것이다.
늦도록 잠을 잃고 기다리던 내 아내
문밖에 나와 서 있는 사람
비틀거리며 내 방에 이르면
구석 어딘가에 저녁이 죽어 있다.
아아, 내 톱날에 잘리는 외국산 나무들.
외롭게 잘려서, 얼굴을 내놓는 김치, 깍두기,
차고 미끄러운, 된장국 시간.
베니어는 잘려 나가고
무거운 내 머리, 어제 읽은 페이지가 잘려 나간다.
허리 부러진 흙의 이야기
활자들도 하나씩 기어서 달아나는
뒹구는 낱말, 그 밥알들을 나는 먹겠지.
상을 물리고 건방진 책을 읽기 위하여
나는 잠시 아내를 멀리하면
바람이 차네요. 그만 주무셔요.
퍽 언짢은 자색 이불 속에 누워
아내는 몇 차례 몸을 뒤채지만
젊은 아내여 내가 들고 오는 도시락의 무게를
구멍 난 내 바짓가랑이의 시대를
그러나 나는 읽고 있다.
모두 서둘고, 침략처럼 활발한 저녁
철근공, 십여 명 아낙네, 스스로의 해방으로 사라진 뒤,
빈 공사장에서 녹슨 서풍이 불어올 때
나도 일어서서 가야 한다면
계절은 몰래 와서 잠자고, 미움의 짙은 때가 쌓이고
돌아볼 아무런 역사마저 사라진다.
목에 흰 수건을 두른 저 거리의 일꾼들
담배를 피워물고 뿔뿔이 헤어지는
저 떨리는 민주의 일부, 시민의 일부.
우리들은 모두 저렇게 어디론가 떨어져 간다.
AND

리스본쟁탈전

2007. 8. 24. 22:29
그럼 그냥 듣기만 해요, 내가 선생님한테 전화한 건 외로웠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내 건강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마리아 사라. 내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마리아 사라, 난 당신이 좋아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정말이에요. 그 말을 하려고 뜸을 참 많이도 들였네요. 어쩌면 절대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왜요. 우린 서로 달라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요. 선생님과 내 세계의 차이점에 대해 선생님이 뭘 알아요. 짐작하고 관찰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는 있죠. 그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옳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틀린 결론을 내릴 수 도 있어요. 맞아요, 지금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왜요. 난 당신 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혹시 당신이. 결혼했냐고요. 예,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약속한 사람이 있냐고요, 이건 구식 표현이지만.  예. 뭐, 내가 이미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이 날 좋아하지 않게 될까요. 아뇨. 만약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나요, 내 마음이 그런데도. 잘 모르겠어요.그럼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걸 선생님도 알고 있군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예, 그래요. 저기요, 마리아 사라. 얘기하세요, 라이문두, 하지만 먼저 말하는데, 난 삼년 전에 이혼했고, 석 달 전에 남자와 헤어진 후로 아직 아무도 사귀지 않았어요, 아이는 없지만 무척 아이를 갖고 싶어요, 지금 결혼한 오빠와 같이 살고 있는데, 아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내 올케예요, 어제 당신 집에서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 여자는 당신 파출부죠, 자, 교정자 씨, 이제 말해도 돼요, 내가 이렇게 성질을 부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너무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왜 나를 좋아하는 거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선생님이 좋아요. 그럼 일단 나를 알고 나면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런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죠, 사실, 아주 자주 일어나요.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로를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난 당신이 좋아요. 난 그 말을 믿어요.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문장을 쓰는 법도 내용도 다 너무 좋다. 돌뗏목 때 처럼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다. 부러워만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라마구씨. 아직도 '히카르도 헤이스가 죽은 해'가 번역되길 기다리면서.....2007년 3월

AND

야채사 - 김경미

2007. 8. 24. 22:26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하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어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오랜만에 김경미 시인 어딘가에 댓글을 달았던 마지막 연... 좋다!

무덤들마다 감자꽃 수북한 그림이 떠오른다.

way가 꼭 읽고 뭔가 느꼈으면 해서 올렸던 시였는데~~

AND

 

라펭 아질에서 / 박정대 

당신 이번 여름에 텅 빈 파리로 와요 몽마르트에 있는 라펭 아질로 와요 지나간 샹송들을 들을 수 있는 라펭 아질로 와요 원래는 카바레 드 자사생으로 불리던 곳 암살자의 주점에서 나 당신을 기다려요 당신 이번 여름에 카바레 드 자사생으로 와요 와서 삶의 두통들을 모두 암살해 버려요 당신의 멋진 덧니로 그것들을 다 암살해 버려요 그리고 밤새 우리 죽도록 사랑을 나눠요 사랑한다는 건 함께 고요히 죽어간다는 거 아마 밤새도록 나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내 거친 수염으로 당신을 암살할 거예요 웃지 말아요, 당신 추억이 고통스럽다면 추억을 암살하러 와요 당신은 나를 죽이고 나는 당신을 암살하겠지요 아무도 모르게 우리 암살자의 주점에서 만나요 당신은 사랑의 맹독으로 나를 암살해 줘요 나는 밤새도록 당신을 만지고 그러면 당신도 밤새도록 나를 만지겠지요 그리고 우리 그냥 서로에게 암살당해요 우리가 그렇게 죽는다면 그건 암살자의 주점 탓이지요 라펭 아질이든, 카바레 드 자사생이든 당신을 만나서 당신을 암살하고 싶어요 그리고 죽은 당신의 귀에 대고 오래도록 달콤하게 사랑한다고 속삭일래요 암살자의 주점으로 어서와요, 당신 암살자의 주점에서 나 당신을 기다려요 당신 내 취향이에요, 어서와요, 당신 이미 죽은 당신, 내가 죽인 당신 다시 죽이고 싶은 그리운 당신


어쩌다보니 박정대의 시집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나씩 풀어줘야지~~

AND

어젯밤 'NHK에 어서오세요' 만화책을 읽었다. '남의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밖엘 나가지않는다'라...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오늘 연이어 읽기 시작한 소설의 초반에

'나는 남들에게 나를 보이려고 애쓴다. 밖에 나갔다가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주스를 살 때가 있다......몇 달 전에 신문에서 광고를 하나 봤다. "데생 수업에 누드모델 구함. 시간당 15달러." 너무 좋은 내용이었다. 이게 진짠가 싶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쳐다본다니.

다 읽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할 수 있게된 죽음에 관한 구절

'그후 나는 나나 부모님 중 누가 죽을까 봐 두려웠다. 어머니가 가장 걱정되었다. 어머니는 우리 세계의 축이었다. 구름 속에서 인생을 보내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이성이라는 냉정한 힘으로 이 우주를 돌렸다. 어머니는 모든 논쟁의 재판관이었다. 어머니가 한마디라도 인정하지 않는 짓을 저지를라치면 우리는 구석에서 울면서 닥쳐올 순례의 길을 꿈꾸었다. 그런데도. 입맞춤 한 번이면 우리는 다시 왕자가 되었다. 어머니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주인공은 죽는 것이 무엇인지 9살에 처음 이해했다는데,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주와 어머니와 죽음을 아우르는 구절이었다. 좋았다.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폴 오스터의 '리바이어던'이 생각났다. way는 어떻게 신랑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만 보고 폴 오스터를 떠올렸을까? 멋진데...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