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의 불안함에 대하여


모두가 취한 밤

친구가 친구의 자지를 빨았다
- 야 너 이 새끼 죽을래
친구끼리니까 괜찮겠지. 생각했다
자지를 빨린 친구는 뼈까지 토해낼 듯
먹고 마신 것을 쏟아냈다

친구가 친구의 입술을 훔쳤다
- 이 새끼 혀 집어넣었어
친구끼리니까 정말 괜찮은걸까. 생각했다
친구라도 괜찮지 않은 것이 있다
친구의 주먹에 친구가 나가 떨어졌다

다들 결혼생활이 불만이라고 했다
누구는 애 때문에 살고
누구는 바람을 피웠고
누구는 바람을 피우고 있고
누구는 생활비의 대부분을 유흥비로 쓴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가 친구의 자지를 빨았다
친구는 요리사다
친구의 자지를 빨 때
친구의 눈빛은 요리를 할 때처럼 반짝거렸다
친구의 혀는 불판에 고인 삼겹살 기름처럼 번들거렸다


이런 밤에 나는 혼자 말똥말똥하다
나만 혼자 죄를 지은 것 같다

한 친구는 집에 돌아오면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자기 삶에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어떻게 잘 풀리는 애들이 하나도 없냐고 했다
나는 가난하지만 뭐든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친구가 어이구. 라고 했다
내 이름은 어일운데. 라고 내가 말했다

친구가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ㅡ> 예전에 써둔 것. 


AND

공장에서


이력도 모르는 사내들과 점심을 먹는다
사내들은 선량한 몸을 가졌다
그 사내들과 저녁도 먹는다
선량한 몸을 가진 사내들끼리는 말이 필요없다
씹지도 않은 밥을 뭉개듯 삼키고
사내들은 다시 일을 시작한다
덜컥덜컥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밥이 내려간다

땀에서 맹물 맛이 날 때까지 일을 하면
누구와 몸을 섞어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력도 모르는 선량한 몸을 가진 사내들은 애인이 없다

- 오늘도 특근이구나
- 월급날에는 부러지게 마셔야지
- 다음 달에는 차를 사고 내년엔 집을 사야지
- 그 다음엔 결혼을 해야지

우리들은 간식으로 나온 빵을 씹으며 미래를 생각한다
나도 사내들도 꿈과 함께 살고 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에서

AND

빈 머리


내 아내는 머리가 비었다
내 머리에는 빈틈이 없는데

ㅋㅋㅋ ㅋㅋㅋ

내 아내는 이마가 넓다
내 이마는 좁은데

ㅋㅋㅋ ㅋㅋㅋ

내 아내의 머리는 이리 넘기면 이리 비고 저리 넘기면 저리 빈다
내 머리는 이리 넘겨도 빽빽하고 저리 넘겨도 마찬가진데

ㅋㅋㅋ ㅋㅋㅋ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는데 내 아내는 머리가 비었다
나는 내 아내의 텅빈 머리도 사랑하는데
내 아내는 자기 머리를 쓸어 넘기는 나를 향해 죽인다고 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ㅠ.ㅠ

내 머리칼을 모두 심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내 옆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AND

덜 취해서 쓰는 낙서


우리가 우리의 슬픔을 다 알 때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것을 다 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매일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까지만 살아가는 것이다

AND

내꺼


뭐든지 다 내 것이 좋은 거야
논도 밭도 경운기도 트랙터도 이앙기도 콤바인도
내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야

그래서 다들 내껄 가지려고 하는거야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이 슬픔이 되는 일은 별일 아니지만
죽음은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해

뭐든지 다 내 것이 좋은 거야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아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내껀 좋은 거야
아,
아내는 남의 것도 좋은 거야

뭐든지 다 내 것이 될 수 있는건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는거야
그래도 죽음만은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해

그리고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더라도
그리운 당신은 내꺼였으면 해
AND

봄밤


4월의 첫날, 밤마실을 나선다
오늘은 만우절, 농담처럼 눈이 내리고
산수유 꽃망울 하얗게 덮는다
눈을 맞은 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눈이 내리는 잊을 수 없는 봄밤
바람은 무릎위로 빠르고
바람을 맞은 내 맘은 휘청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눈,
내리다 그친 봄밤
애인과 첫키스를 했던
친구와 흥청망청 술을 마셨던
혼자서 울기도 했던

봄밤


-> 언젠가 적어둔 것
AND

당신


구름을 쫓던 길에 당신을 만났습니다
누군가에게 등을 돌린날 당신을 만났습니다
손을 잡고 강가를 걸어보지도 못하고 끝난 연애를 생각하다가 당신을 만났습니다

구름 사이로 손을 뻗어 당신을 잡았습니다
등을 돌린채 울다가 울음을 멈추고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벚꽃 흐르는 강가를 걸었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다가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을 당신을 생각하다가
당신을 당신을 만났습니다
AND

명절 - 과식(꾸역꾸역)

고기 구워 먹자
잡채 먹자
갈비찜 먹자
저녁에 뭐 먹을까
(또 먹어요?)

엄마가 주는대로 먹는다
꾸역꾸역 먹는다

가족의 증명은 과식
거푸 먹는 술에 취하듯
꾸역꾸역 집어 넣은 엄마 손길에 체했다

이리와 돌아 앉아봐

바늘이 손을 찌르기도 전에
엄마에게 내맡긴 등짝이 편안하다

함께 먹는 것이 사랑이다
내 등짝을 쓸어내리는 손이 사랑이다
AND

겸손

 

난 겸손하지
높은 놈과 악수를 할 때처럼 두 손으로 밥을 먹지
한 손으로 거들먹거리며 밥 먹는 놈들과는 다르지

난 겸손하지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지
거만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누군가를 부르는 녀석들과는 다르지

난 겸손하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지
미용실에서 고개를 뒤로 빳빳하게 세우고 남에게 자기 머리를 내 맡기는 종자들과는 다르지

난 아주아주 겸손하지
고무신을 신고 누더기를 걸쳤어도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지

난 누구보다도 겸손하지
대통령을 김 씨, 이 씨, 박 씨라고 부르고
그들은 날 모르지

그래서
난 겸손하지만 때론 우울하기도 하지

그렇지만
너희들은 모르는 겸손을, 나는 알지

AND

춘분


봄가뭄에 아내가 울었다
울다지쳐 잠들었다
새우처럼 웅크렸다
살그머니 다가갔다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뒤에서 안았다
온기가 전해진다

오늘은 춘분
바람이 불어 별이 많았다
바람이 불어 별이 떨어졌다

AND

농민 신문 신춘문예 공고가 났다. 불손한 마음으로 300만원에 도전해야겠다. 시라고 쓰고 시로 읽으면 시가 되는 것이 시다.


명절 - 간장밥 이야기 -


뱃터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할머니들의 동네에 자가용들이 부르릉
젊은 얼굴들이 동네를 두리번두리번

나는 외롭다

흰 쌀밥 한 주걱에 s표 진간장 한 숟갈 주르륵
참기름 반 숟갈 더해서 쓱싹쓱싹 비벼서 쓱싹쓱싹 먹는다
간장밥은 참기름으로 비벼야 맛있어.
엄마가 말했다
어린것이 기름맛을 알았을까?
나이 먹고도 엄마한테 배운대로 먹는다
엄마의 맛, 집밥의 맛, 고향의 맛이다
바다 건너 보고 싶은 맛이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맛이다
울면서 먹는 맛이다


간장밥을 자주 먹는다. 반찬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렇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엄마가 나에게 간장밥을 해줬더랬다. 여러번 해줬겠지? 간장은 샘표 진간장이 맛있고 간장밥은 들기름이 아니라 참기름을 넣고 비벼야 맛있다고 했던 단 한 번의 기억 때문에 나이 먹고도 간장밥을 먹는다. 이제는 기름맛을 알까?
AND

신월동에 왔다가 이발소에 들렀다. 몇 년 전에 한 번 머리를 잘랐을 뿐인 곳인데 이상하게 발길이 창대 이용원으로 향했다. 예전에 써둔 것 때문이겠지. 이발비는 변함없이 8000원이었다.



창대이용원


머리를 자른다
생면부지의 이발사에게 내 몸을 맡긴다

어떻게 자를까요
이대로요

윙윙윙
싹둑싹둑싹둑

귀 뒤로 고추 잠자리 날개 잘리는 소리가 들리고
라디오에선 어느 목사가 죄악에 대해 말한다

그렇게

이발사도 나도
말이 없다

머리를 감기고
이발사가 요구르트를 건낸다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창대이용원
복되고 창대하게

온전한 남자들만의 공간
이발비는 8,000원

AND

20131210 - 이치

하나씩 2013. 12. 10. 22:51
나이서른 여섯에 마이쭈를 씹다가 이십년 전에 해 넣은 금니가 빠졌다. 예전에 이 아팠을 때 써둔 것


이齒


이가 아프다
온몸에 열불이 난다

이는 치(齒)다

둘을 붙이니 이빨이 아니라 이치가 된다

나는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싶어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있는데

이가 아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도의 성인도 이가 아플 때는 아프다는 생각만 했을까

아픈 이에 금을 씌우면 반짝이는 이치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어떤 사람들의 은빛의 이치로 세상을 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반짝이지는 않아도 태어난 그대로의 이치로 살겠지

세상사는 이치를 얼른 깨닫고 싶어
내 온몸이 뜨겁다
AND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아는 형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이 형과는 여지껏 두 번 만나서 술 두 번 마신 게 전부다. 그러니까 그냥 아는 사이 정도인데, 이상하게 닮고 싶고 신뢰가 가고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다. 이 형을 아는 다른 분들도 다 이 형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직 결혼을 안했다. 인품과 결혼은 아무 관계가 없구나.

형, 정리 다 하시고 쉬러 한 번 들어 오셔요. 얼음 깨고 낚시해요.


엄마 생각이 났다. 예전에 엄마 생각 하면서 썼던 것


엄마랑 나랑


가을 햇살에 벼가 익는다
모락모락 무럭무럭 소리 내며 익는다
누렇게 누렇게 노래하며 익는다

저 벼가 다 익으면
흰 쌀밥을 먹겠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쌀밥을 먹겠지

후후 불어가며
흰 쌀밥을 먹겠지

날 버린 당신도 서울 가신 아버지도 잊고
엄마랑 나랑 둘이서만 먹겠지

고봉으로 먹겠지
둘이서만 먹겠지

울면서 울면서
둘이서만 먹겠지
AND

울었다.

하나씩 2013. 10. 27. 11:46

고추를 심었다


고추를 심었다
정성껏 심었다

한 포기 한 포기마다
당신 얼굴이 떠올랐다

한 포기 한 포기마다
당신 얼굴을 지웠다

심으려 땅을 팔 때마다
당신 얼굴이 떠올랐다

심고 흙을 덮을 때마다
당신 얼굴을 꾹꾹 눌렀다

고추를 심다가 울었다
비가 왔고

비를 피하러 온
마구간에서 울었다

소들이 밥 달라고 울었다
소들이 왜 우느냐고 나를 보고 울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