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5

일리는 항상 여러 갈래로 있는데
왜 일리있다의 일자는 한일자를 쓰나
그 일리가 여러 일리 중 하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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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엊그제 팀장님이랑 출장 가다가 우리 사무실도 개판이지만 다른데는 더 개판인 곳도 많다고 했더니 경상도 말로 "그럼 우리가 개고?" 하시길래. "예" 했다.
뭐가 개판이냐면 체계가 없다. 체계가 왜 없냐면 원칙이 있는데 안 지킨다. 원칙을 안 지키는 이유는 여러가진데. 남을 우습게 알고 원칙을 깨거나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걸 보면 짜증이 확 밀려든다. 예를 들지는 못하겠고 아무튼 개판이다. 공직사회도 이리 개판이니 원칙이란 것 자체가 없는 다른 분야는 얼마나 더 개판일까. 원칙은 공통의 협의에서 나와야 하는데 한국 사회의 원칙은 보통 위에서 내려주는 것이다. 협의란 말도 웃기긴 하다.

개한테 미안하지만 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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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냄새

비가 온다
비 냄새가 난다
마른 아스팔트를 때린 비 냄새
흙 안으로 스며드는 비 냄새
자동차 매연과 섞인 비 냄새
초록의 잎들에 닿은 비 냄새
내 머리카락에 닿은 비 냄새
내 땀과 섞인 비 냄새
비 냄새는 모든 냄새를 바꾼다
비 냄새는 비 냄새랑만 닮았다
여전히 비가 온다
사랑했던 얼굴이 내린다
세상을 적시는 당신 냄새
내 마음에 스며든 당신 냄새
비 냄새는 당신 냄새를 닮았다
당신 냄새는 당신 냄새랑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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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위에 서 있는 꿈

나이는 육십 가까워도 좋다.
그맘 때 즈음 오직 내게만 주어진 밭을 갖고 싶다.
경운기도 트랙터도 들어오지 않는 곳
내 발걸음만 남아 있는 밭에
당신과 함께 먹을 것을 심고 가꿔서
때가 되면 수확을 하고
또 때가 되면 씨를 뿌리는 일상의 반복인 삶
누가 관심 갖지 않아도 그대로인 삶
관심 갖는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 그저 땅 위에 있는 나
그런 삶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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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백화점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언제부터 여기 백화점이 있었을까
백화점은 만물의 상징, 풍요의 표상
쩝쩝대며 밥을 먹는 사람들 표정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나도 그들에게 그래 보일까
나는 그들을 보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
역을 나와 대로를 걷는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청량리 588의 흔적은 없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기억도 사라졌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지 골목으론 가지 못한다
수 많은 간판들, 자동차들, 사람들
다들 바삐 움직이는군
나는 그들을 보지만 그들은 내게 아무 일도 없다는 걸 모른다
다 끝난 것 같은 식당에 들어가 혼자 술을 먹는다
건너편엔 여럿인 무리들도 있다
나는 낮술을 하는 그들을 보고 그들도 나를 본다
서로를 바라보는 침묵 속에서
갑자기 공평해진 동대문구 청량리동 오후 세 시
아직은 끝나지 않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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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집에 가서 감자 고로케라고 적힌 걸 하나 사 먹었다. 한 입 물었는데, 감자가 안 씹히고 게맛살이 씹혔다. 아무 의미 없는 걸 먹었다는 문장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의미 없는 걸 먹는다는 건 뭘까?
 배가 고파서 찬밥에 물 말아서 한 끼를 떼우는 것? 돈 주고 뭘 사 먹었는데 내가 원한 맛이 아닐때? 아무거나 먹자고 해서 아무데나 들어가서 대충 시켜 먹었는데, 맛이 없을 때?
 끼니를 떼우기 위해서 간장에 비벼먹는 밥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의미가 있다.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연애할 때, 애인이 끓여준 짜장라면인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먹는 것의 의미에 돈이 개입한다. 개인이 생각하는 값어치를 못했을 때, 의미 없는 걸 먹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돈이 의미 있는 것인가? 의미 있는 것이다.  
 나는 감자전을 좋아한다. 감자전 맛은 반죽에 밀가루만 섞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다. 다 맛있다. 감자전을 먹고는 의미 없는 걸 먹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해봤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근처 다른 가게는 세 장에 만 원인 감자전을 한 장에 만 원 주고 사 먹었다면 화가 날거다. 화가 난다는 것도 의미이므로 돈은 의미가 있다.
 한 청년이 길을 걸으며 싸구려 크림빵이랑 200미리 우유를 급하게 먹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나에게 그가 먹는 행위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지만 그 청년은 그저 세상에 화가 난 상태일지도 모른다.
 정말 의미 없는 걸 먹는다는 건 무엇일까? ​
 아무런 희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오직 홀로 뭔가를 먹는 것이 아닐까?
 내가 원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게맛살 고로케도 그렇게 의미없진 않았다.
 나에겐 당신이 있으므로.
 의미 없는 걸 먹었다로 쓰려고 했는데 의미 없이 먹는 것에 대해서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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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붉은 옷은 자신감이다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마음이다
붉은 입술은 매혹이다
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너의 상처에 붉은 피가 고인다
붉은 것은 살아있다는 증명이다
너의 붉은 심장으로 붉은 피가 넘나든다
붉은 것은 살겠다는 의지다
너는 붉은 눈으로 나를 본다
너의 붉은 눈빛에는 이면이 없다
차디차게 붉어진 나는 차갑게 식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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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다녀왔다.

공항을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하고 요즘 텔레비에 자주 나온다고 한다. 앞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을 가능성이 높다. 여객선을 타는 항구는 저동항 도동항 사동항 이렇게 세 개인데 도동은 읍내 메인스트리트와 이어지는 오래된 항구이고 저동은 낚시배들이 많이 보이는 항구다. 사동은 새로 조성했고 계속 키워갈 여객 항구다. 대형 개발 광풍은 없었던지 읍내 메인 거리는 차도가 좁았다.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인지 주차할 곳이 부족했다. 쉽게 말하면 비좁고 빽빽한 이미지다. 순수한 관광객 입장에서는 자연산 딱지가 붙은 회 먹고 독도 한 번 다녀오고 호박엿 기념품 사고나면 긴 뱃시간과 비싼 물가 등 불편했던 이미지 때문에 별로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지금 개발 중인 사동항 근처는 쾌적하고 넒게 조성중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여느 바닷가 관광지(제주도나 강릉)처럼 예쁜 펜션과 특정한 식당들이 들어설 것이고 바다가 워낙 깨끗하기 때문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광 개발이란 게 지방선거 공약집처럼 너무 뻔한 스트럭쳐지만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고 누군가는 체념한다.

성인봉에 다녀왔다. 월요일, 화요일에 산 정상을 찍고 목요일에 또 산 정상을 찍으려니 조금 힘들었다. 그렇지만 예뻤다. 너도밤나무 군락이 삼나무 군락이 우산고로쇠 나무가 예뻤다. 강원도 산에 없는 나무들을 봐서 신선하고 좋았다. 나리분지 근처에 천연기념물 원시림이 있지만(여기도 엄청 예쁨) 상부 쪽 숲속은 참으로 원시림이라고 부를만 했다.

독도는 가지 않았다. 줄 서서 배를 타고 운이 좋으면 줄 서서 잠깐 내렸다가 사진 찍고 줄 서서 돌아온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 관광이다. - 독도 가는 배 타는 항구에는 태극기가 많이 나풀거렸다. -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고 나같은 누군가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이름없는 바닷가에 발을 담갔다. 너무 깨끗한 물, 육지랑 멀리 떨어진 물, 태평양에 가까운 물, 기분이 좋았다. 이 기분 좋음이 우리땅을 밟아 보겠다고 독도 가서 기분 좋은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좀 우습다.

아무튼 울릉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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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기억

맛은 주관적이다.
맛은 기억에서 기억으로 대를 이어 기억된다. 기억은 조금씩 변형된다.

나는 호박 볶음을 좋아한다. 어른들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으면 우리 엄마가 해준 호박볶음에 밥 비벼 먹는게 제일 맛있다고 했다며 내 기억에 없는 어린날에 대해 얘기할 때 엄마가 보여 주었던 들뜬 표정 때문이다. - 지금도 마찬가지 일 듯 -  
나는 순댓국을 좋아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많이 먹었고 어린날에 동네 시장 순대국집에서 아버지, 엄마, 동생,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외식했던 기억이 갈비집에서 외식했던 기억보다 많다.
배추전을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물놀이 하던 중 외할머니가 해줬던 배추전에 대한 기억과 내 엄마도 같은 것을 먹었을 거라는 대를 이어 올라가는 어떤 마음 때문이다.
나이 먹고도 가지를 잘 먹지 않는다. 몸에 좋지 않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엄마가 가지 반찬을 만든 적이 거의 없다. 외할머니도 가지반찬을 많이 안 만들었을까?

외할머니 생선조림 양념장이 이모들에게 전수됐다. 기억은 변형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이모들이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은 나지 않는다.
김치를 사 먹지 않던 시절에 우리 엄마도 김치를 많이 담갔다. 어떤 때는 맛이 있고 어떤 때는 맛이 없었는데, 맛있었던 김치 맛이 몸 안 깊숙히 남아 있다.
우리집은 냉면을 많이 해 먹었다. 작년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북어대가리를 끓여서 육수를 냈다고 한다. 그 냉면 육수의 맛도 내 안 어딘가에는 남아서 냉면을 사 먹을 때마다 들고 일어난다.
이런맛들은 기억으로만 이어진다.

나만 해도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
엄마의 북어육수도 외할머니의 양념장도 대가 끊겼다.​
어려서부터 투플소고기를 많이 먹인 친구 아이는 투플소고기가 아니면 질기고 맛 없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부정적인 쪽으로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텔레비 안이 온갖 먹는 것들로 가득찼고 집밥 타령도 유행을 지났다.​
티비속 맛집으로 맛있다를 처음 접한 다음 세대는 어떤 기억으로 맛의 대를 이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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