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8/06/03 | 1 ARTICLE FOUND

  1. 2018.06.03 20180603 - 맛에 대한 생각

맛의 기억

맛은 주관적이다.
맛은 기억에서 기억으로 대를 이어 기억된다. 기억은 조금씩 변형된다.

나는 호박 볶음을 좋아한다. 어른들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으면 우리 엄마가 해준 호박볶음에 밥 비벼 먹는게 제일 맛있다고 했다며 내 기억에 없는 어린날에 대해 얘기할 때 엄마가 보여 주었던 들뜬 표정 때문이다. - 지금도 마찬가지 일 듯 -  
나는 순댓국을 좋아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많이 먹었고 어린날에 동네 시장 순대국집에서 아버지, 엄마, 동생,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외식했던 기억이 갈비집에서 외식했던 기억보다 많다.
배추전을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물놀이 하던 중 외할머니가 해줬던 배추전에 대한 기억과 내 엄마도 같은 것을 먹었을 거라는 대를 이어 올라가는 어떤 마음 때문이다.
나이 먹고도 가지를 잘 먹지 않는다. 몸에 좋지 않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엄마가 가지 반찬을 만든 적이 거의 없다. 외할머니도 가지반찬을 많이 안 만들었을까?

외할머니 생선조림 양념장이 이모들에게 전수됐다. 기억은 변형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이모들이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은 나지 않는다.
김치를 사 먹지 않던 시절에 우리 엄마도 김치를 많이 담갔다. 어떤 때는 맛이 있고 어떤 때는 맛이 없었는데, 맛있었던 김치 맛이 몸 안 깊숙히 남아 있다.
우리집은 냉면을 많이 해 먹었다. 작년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북어대가리를 끓여서 육수를 냈다고 한다. 그 냉면 육수의 맛도 내 안 어딘가에는 남아서 냉면을 사 먹을 때마다 들고 일어난다.
이런맛들은 기억으로만 이어진다.

나만 해도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
엄마의 북어육수도 외할머니의 양념장도 대가 끊겼다.​
어려서부터 투플소고기를 많이 먹인 친구 아이는 투플소고기가 아니면 질기고 맛 없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부정적인 쪽으로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텔레비 안이 온갖 먹는 것들로 가득찼고 집밥 타령도 유행을 지났다.​
티비속 맛집으로 맛있다를 처음 접한 다음 세대는 어떤 기억으로 맛의 대를 이을까 생각한다.


AND